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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산대놀이

흐름
송파산대놀이는 산대도감계통의 한 분파로 본래 강동구 송파동에서 전승되어 오던 탈놀이이다. 현지 연희자들에 의하면 송파산대놀이는 약 200여 년 전부터 연행되기 시작하였다고 하나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조 말 송파산대를 논 연희자료는 윤종현, 김도환, 허석복 등과 그 외 여섯 사람의 이름이 전한다. 서울에 철도가 생기면서 번성했던 송파장이 쇠퇴하기 시작했고, 을축년 홍사로 송파장을 돌말이로 옮긴 뒤 송파장이 완전히 깨진 뒤 송파산대놀이 역시 시들해졌다. 작고한 연희자 허호영에 증언에 의하면 1900년초 송파거주 허윤이라는 사람이 연희자인 윤희증을 초청하여 부흥시켰다고 한다. 그 후 연중행사로 정월대보름과 단오, 추석에 명절놀이로 놀았는데 1924년에는 큰 규모의 산대놀이 모임을 송파에서 가졌고 이 때 구파발, 애오개, 퇴계원, 의정부, 노량진 등에서 20여 명의 명연희자들이 모였다고 한다. 이것이 경기 일대의 산대놀이가 한 곳에 모인 마자막 행사였다고 전한다. 송파장이 돌말이로 옮길 무렵 돌말이 거주의 한유성, 이범만, 엄준근 등이 옛 송파에서 산대놀이를 하던 윤종현에게 배워 놀았으며, 이 때 이웃마을 이충선이 악사로 참가하였다. 한국전쟁 뒤에 정한규에게 배운 허호영이 앞장서서 송파산대놀이를 복원하였다.
내용
송파장이 성하던 무렵 큰 상인들이 명절날이나 난장터에서 씨름을 붙이고 광대 줄태우고 탈꾼들을 시켜 산대놀음을 하였다고 하는데 단오에는 일주일씩 계속되는 수도 있었다고 한다.
구성 및 내용
송파산대놀이도 양주별산대놀이와 마찬가지로 반주음악에 맞춰 춤이 추가되고 재담과 소리, 동작이 따르는 탈놀음의 일종이며 산대도감계통극의 중부형 가운데 하나이다. 송파산대놀이는 놀이 내용의 플롯이나 과장, 춤, 가면 등이 양주별산대놀이와 거의 비슷하여 다같이 본산대의 분파임을 말하여 주지만 몇 개의 탈과 배역이 송파산대놀이에서는 고형(古形)을 지니고 있어 특징적이다. 즉 송파산대놀이에는 양주별산대놀이에서 이미 사라진 초라니, 당녀, 해산어멈, 실할멈, 무당탈 등을 따로 갖고 있고 놀이과장에서도 이들 탈들이 맡는 역이 따로 있어 비교적 고형을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근래에는 송파산대놀이에서도 초라니와 당녀는 없어졌다. 또한 근래에 양주별산대놀이에서 배꼽춤을 왜장녀가 추지만 송파산대놀이에서는 해산어멈이 조산하는 대목에서 소무의 배를 문지르며 배꼽춤과 엉덩이춤을 춘다. 초라니탈은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초랭이탈과 비교되고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도 우리말에 초라니는 산대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대목이 있는데 산대에 초라니탈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어 이 역시 고형을 남기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놀이 전에 거리굿(길놀이)으로 마을을 한바퀴 돌아오는데, 이때 가면과 의상을 갖추고 길군악을 울리면서 영기(令旗), 악사, 연희자 순으로 행렬을 한다. 마을을 돌아 놀이판으로 와서는 서막고사(序幕告祀)를 지내며, 제사가 끝나면 놀이가 시작된다. 제1과장 상좌춤(上佐舞)으로 첫째 상좌와 둘째 상좌가 차례로 나와 타령 장단에 맞추어 화장무, 곱사위춤 등을 춘다. 제2과장 옴중과 먹중으로 둘째 상좌의 춤이 잦은 타령으로 끝날 무렵 옴중이 뛰어들어 상좌를 물리친다. 옴중이 용트림, 멍석마리, 여다지춤 등을 춘다. 춤이 끝날 때쯤 먹중1이 등장하여 옴중의 의관과 용모에 대해 재담을 하고는 함께 대무(對舞)를 춘 뒤 퇴장한다. 제3과장 연닢과 눈끔적이로 연닢과 눈끔적이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나온다. 이어 팔먹중들이 나와 춤추다가 이들의 얼굴을 보고는 놀라 달아난다. 다른 팔먹중(일명 完甫)이 등장하여 연닢과 눈끔적이를 알아보고 함께 춤을 추면, 한 구석에서 있던 나머지 팔먹중들이 등장하여 함께 춤을 추고 들어간다. 제4과장 팔먹중이며, 제1경 '북놀이'에서는 먹중 둘이, 북과 북채를 들고 등장한다. 이 때 왜장녀도 나와 북채를 든 먹중에게서 돈을 받고는 함께 나온 애사당에게 법고를 치도록 한다. 모두 어울려 춤추다가 퇴장하면 제2경 ‘곤장놀이(염불놀이)’가 시작된다. 팔먹중들이 나와 춤추다가 먹중1(또는 완보)이 나머지 먹중들이 땡땡이중들임을 알고는 염불을 가르치려 하나, 한 먹중이 못하겠다며 먹중1의 곤장을 맞고 퇴장한다. 나머지 먹중들이 어울려 춤을 추나 한명씩 곤장을 맞고 내쫓긴다. 제3경 ‘침놀이’에서는 팔먹중 하나가 쓰러지자 먹중1이 신명을 풀어준다고 백구타령을 하지만 실패하고 싸릿골 신주부가 침을 놓자 벌떡 일어나자 모두 기뻐하며 춤을 추며 퇴장한다. 제5과장 ‘노장’으로 제1경 ‘파계승놀이’에서는 팔먹중들과 노장이 나온다. 팔먹중들이 노장을 생선인 줄 알고 먹으려다 아님을 알고는 춤을 추며 퇴장한다. 이때 소무(小巫) 둘이 나와 춤추며 노장을 유혹한다. 제2경 ‘신장수놀이’에서는 신장수가 원숭이를 지고 나온다. 노장에게 신을 팔고는 원숭이더러 값을 받아오라고 하나, 원숭이는 소무와 희롱만 한다. 화난 신장수는 원숭이를 때리며 퇴장한다. 제3경은 ‘취발이놀이’로 취발이가 나뭇가지를 들고 나와 춤을 추며 놀자, 노장이 부채로 친다. 취발이가 노하자 노장은 소무 한명과 함께 도망친다. 취발이는 남은 소무와 함께 춤을 춘다. 조금 후 소무가 아기를 낳고는 마당쇠라 이름짓고 얼르다가 소무와 함께 퇴장한다. 제6과장 샌님 과장으로 제1경 ‘의막사령놀이(말뚝이놀이)’에서는 말뚝이가 샌님, 서방님, 도련님을 모시고 나와 의막을 정하고, 돼지우리로 양반들을 몰아넣는다. 제2경 ‘샌님과 미얄할미’에서 샌님이 소첩(소무)과 함께 등장하여 흥겹게 춤을 추는데, 본처인 미얄할미가 엉덩이춤을 추며 나와 소첩과 싸우다 샌님의 나무람에 퇴장한다. 제3경 ‘샌님과 포도부장’에서는 샌님과 소첩이 굿거리장단에 맞춰 노는데, 포도부장이 나와 소첩을 빼앗는다. 샌님은 실망하며 퇴장한다. 제7과장 마지막 과장인 ‘신할아비와 신할미’로 이 과장에서는 두 사람이 나와 서로를 확인하고는 신할아비의 구박에 신할미가 뒤로 넘어져 죽어버린다. 놀란 신할아비는 아들인 도끼를 시켜 도끼누이를 불러오게 하여 셋이서 무당을 불러 지노귀굿을 한다. 굿과 함께 연희자 전원이 나와 춤을 추다가 퇴장한다.
송파산대놀이의 춤사위
송파산대놀이의 춤사위는 다른 여러 지방 탈놀이의 춤사위와 비교해 볼 때 상당히 섬세하고 종류가 다양한데, 기본춤 외에 배역춤까지 모으면 약 40가지의 춤사위가 있다. 춤사위에는 염불장단의 거드름춤, 굿거리장단의 허튼춤, 타령장단의 깨끼춤 등이 있고 이 가운데 타령장단의 깨끼춤은 탈춤의 기본 춤사위로 흥과 신명을 풀어 내는 춤이며, 대중성을 띤 민중 순수감정의 표현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춤이기 때문에 주로 팔먹중, 취발이, 말뚝이 같은 민중성을 띤 배역이 춘다. 춤에는 화장무와 자진화장이 가장 뛰어나고, 여다지(여닫이)는 풍농(豊農)과 인간승리를 갈구하는 환희적인 춤으로서 깨끼춤 가운데서 가장 활달한 춤이다.
전승자 정보
송파산대놀이의 역대의 연희자로는 윤종현(尹宗鉉, 옴중/탈제작), 김도환(金道煥, 첫상좌/노장), 조영완(曺永完, 탈제작과 보관/왜장녀/소무), 김동현(金東鉉) 등이 있었고, 이충선(장구, 피리, 해금악사), 김윤택(첫상좌, 신주부), 이범만(노장, 샌님, 신할애비, 팔먹중), 한유성(韓有星: 탈제작, 취발이, 눈끔적이, 신주부), 문육지(文陸地: 노장, 무당) 등이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다.
연계정보
· 재구성 <한국의 전통예술>, 심우성 외, 한국문화재보호재단, 1997
관련도서
<문예진흥>, 서연호, 1979년 5월호, '송파산대놀이' <송파산대놀이연구>, 이병옥, 집문당, 1982 <한국의 전통예술>, 심우성 외, 한국문화재보호재단, 1997 <(注釋本) 韓國假面劇選>, 李杜鉉, 교문사, 1997 <無形文化財 調査報告書 藝能. 工藝種目>, 문화재청,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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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_주요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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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탈-송파산대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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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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