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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짜기 옵서예

출연 / 스태프
출연 배비장/한상림 애랑/패티김 목사/김성원 정비장/곽규석 방자/나영수 채봉/문혜란 도사공/주염돈 스태프 작/김영수 작곡/최창권 안무/임성남 연출/백은선,임영웅
내용
제1부 제1장 바닷가. 제주도 어느 항구변 바닷가. 어망을 맨 어부들과 젊은 해녀들이 이른 아침에 일을 나가면서 서로 희롱하는 노래를 주고 받으며 춤을 출 때 신임 제주목사 일행이 당도한다. 몰려드는 해녀들을 보며 바람둥이 목사는 女多의 섬에서 시작될 새 생활의 부푼 꿈에 길을 재촉한다. 제2장 산중 망월루. 달밤. 관명에 의해 전임 제주목사를 따라 서울로 가게 된 정비장은 재임기간 중 사귀었던 제주기생 애랑을 어떻게 해서라도 떼어놓고 가려하나 이를 눈치 챈 애랑은 애절한 노래로 정비장의 옷을 몽땅 벗길 뿐만 아니라 앞니까지 뽑아 혼을 내 준다. 이 광경을 본 배비장은 정비장의 허랑한 점을 비웃는데 房子는 언젠가는 배비장도 애랑에게 홀릴 것이라고 말하며 배비장으로 하여금 내기를 하게 해서 자기의 계략에 빠지게 만든다. 제3장 비장들의 심부름을 받은 방자는 은근히 눈치를 살피지만 배비장의 마음은 여전히 굳다. 이를 숨어서 보던 목사와 비장들은 배비장의 결심을 깨뜨릴 계략을 짜낸다. 제4장 동헌 기생점고가 춤으로 화려하게 펼쳐진다. 목사는 기생들에게 벽창호 배비장을 유혹하면 상을 내리겠다고 제의할 때 애랑이 나서서 장담하며 그 계책으로 한라산에서 들꽃놀이를 하자고 권유한다. 애랑이 바라는 상은 배비장의 상투. 애랑과 기생이 부르는 상투의 노래가 흥겹게 울려퍼진다. 제5장 돌담이 보이는 길가. 기생점고 후 집으로 돌아오는 애랑과 채봉 앞에 방자가 나타나 셋이서 배비장을 골려주자며 즐겁게 노래를 부른다. 제6장 수포동 폭포가 있는 숲속. 오색찬란한 기생들의 군무가 끝난 후 목사일행이 애랑의 계략대로 자리를 뜨면 놀이의 처음부터 외톨이로 떨어져 있던 배비장의 귀에 애랑이 부르는 '살짜기 옵서예'가 은은히 들려온다. 노랫소리를 따라 폭포근처까지 가서 목욕하는 애랑의 아리따운 자태를 엿본 배비장은 방자의 만류도 뿌리친 채 넋을 잃고 황홀감에 빠지는데 눈 앞에 어른거리는 망부의 환영… 일대 환영무가 펼쳐지고 배비장은 울상이 되어 산호동곳이 꽂힌 상투를 움켜 잡고 퇴장하면 牧使 일행은 '이렇게 될 줄 알았네'의 노래와 춤으로 배비장을 비웃는다. 제2부 제7장 배비장의 방과 애랑의 방. 애랑을 그리워하는 배비장… 무대는 병치무대 형식을 써서 방을 나란히 배치하였다. 양심과 감정의 두 갈래 마음의 갈등 속에서 사랑을 찾기로 결단을 내린 배비장은 방자를 시켜 편지를 보내지만 이미 계략을 짜 놓은 애랑은 친구들을 불러 편지를 돌려보며 배비장을 후릴 계획에 즐겁다. 이런 줄은 모르고 방자의 꼬임에 넘어간 배비장은 깊은 밤에 몰래 애랑에게 가기로 결심한다. 제8장 바다가 보이는 길가. 애랑, 방자, 채봉 등이 인부에게 궤를 지워 나오며 배비장을 골려 줄 마지막 계략을 꾸민다. 그러나 산호동곳의 사연을 방자로부터 들은 애랑은 왜 그런지 배비장에게 참사랑을 느낀 듯 설레인다. 이런 소식을 들은 목사들은 초조하다. 그러나 비장들은 ‘잘 돼 갈 것으로’ 아뢴다. 제9장 애랑의 집. 목사의 일행이 숨어서 구경하는 줄도 모르고 놋 벙거지에 개가죽 두루마기를 입은 배비장은 개구멍으로 기어들어 꿈에도 잊지 못할 애랑을 만나 회포를 풀려 할 때, 애랑의 남편으로 가장한 방자가 집을 부실 듯이 집안에 뛰어든다. 혼비백산한 배비장은 궤 속으로 들어가고… 제10장 바다가 보이는 길가. 出漁의 노래가 들리는 바닷가로 궤를 메고 나온 방자 일행은 궤 속에 업귀신이 들었다며 바닷물에 던지겠다고 엄포를 놓고 궤 속의 배비장은 후회와 절망에 빠져든다. 제11장 동헌. 방자 일행은 목사와 각 비장들, 그리고 기생, 동리 사람들까지 있는 동헌 마당으로 궤를 가져다 놓고 파도소리며 노젓는 소리 등을 낸다. 바다 한 가운데서 어선에 의해 구출된다고 생각한 배비장은 궤 문이 열리자 눈을 꼭 감고 헤엄을 쳐 나온다. 보다 못해 주위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배비장의 품 속으로 뛰어드는 애랑, 비로소 참사랑을 느낀 것이다. 두 사람의 행복을 비는 멋쟁이 목사와 전원의 환호 속에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임영웅 (1936년 ~ )
1948년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 연극연출을 전공하고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였다. 1965년 동인극장에서 <전쟁이 끝났을 때>의 연출을 처음으로 맡았고 그 이후에는 예그린 가무단의 연출을 맡았다. 1966년 한국 최초의 뮤지컬이라 할 수 있는 <살짜기 옵서예>를 연출했으며, 1968년 <환절기> 연출을 시작으로 국립극단 작품도 다수 연출하였다. 1969년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한국 초연을 연출하였고, 1970년 극단 산울림을 창단하였다. 1969년 한국연극협회 이사를 역임했으며, 2001년 문화관광부 21세기 문화정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69년 한국백상예술대상 연출상을 필두로 서울연극제 연출상, 대한민국문화연출상 등 다수 수상하였다. 대표작품 <고도를 기다리며>, <환절기>, <달집>, <하늘만큼 먼 나라>, <위기의 여자>, <목소리>
리뷰
1966년 10월 26일 시민회관에서 <살짜기 옵서예>가 막을 올려 29일까지 공연하게 된다. 이 뮤지컬은 엄청난 성황을 이루어, 마지막 날에는 입장권이 매진되어 개막 3시간 전엔 5배 비싼 가격으로 암표가 거래될 정도였다. 이 공연은 3백만원의 제작비, 출연자 300명이라는 한국 무대사상 최대의 기록을 세웠고, 관객동원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살짜기 옵서예>는 한국적 뮤지컬의 토질이 발견됐으며, 2주 이상 롱런하여 성공, 7회 공연에 1만 5천명을 기록한 것, 또 '본격적인 성격의 한국제 뮤지컬'로서, 뮤지컬의 가능성이 확인됐으며, 특히 최창권의 음악은 뮤지컬 음악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는 호평을 받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창작 뮤지컬로 평가받는 <살짜기 옵서예>는 여러 면에서 대중예술로서의 가능성을 실험한 작품이었으며, 1966년 공연계의 최고 작품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 공연의 성공은 극적 줄거리와 음악, 춤이 조화를 이룬 작품성에서 기인했다. 실로 이 작품은 예그린의 대표작이고, 동시에 뮤지컬의 토착화 가능성을 입증한 첫번째 창작 뮤지컬이었다.
재공연
1967년 2월 22일 ~ 26일, 서울시민회관, 예그린, 임영웅 연출 1971년 1월 1일 ~ 6일, 서울시민회관, 예그린, 임성남 연출 1978년 10월 6일 ~ 10일, 세종문화회관, 미리내, 표재형 연출
평론
<살짜기 옵서예>는 우리 뮤지컬사에서 보면 초기 작품에 속한다. 프로덕션도 3번에 걸쳤고 관객도 가장 많이 동원하였다. 웬만한 한국인이면 <살짜기 옵서예>의 테마를 흥얼거릴 수 있으며, 의상실, 술집 등등의 상호가 되었을 만큼 <살짜기 옵서예>는 유명해졌다. 그러나 후속타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 이유 가운데는 실험적인 작은 형태의 공연이 배제되고 대형무대에만 집착했다는 점과 정책적 소재에 지나치게 매달려 관객의 호응을 사지 못했던 점들이 두드러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러나 뮤지컬에의 열망과 기대는 지금 대단히 커져 있으며 이는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서민적이며 민주적인 소재와 주제, 평이한 형식과 컬러풀한 무대, 그리고 박진성 등등은 뮤지컬의 특성으로서 현대관객들에게 유치하거나 저급하지 않은 오락성을 제공한다. 다만 우리 뮤지컬들은 음악, 무용, 연극이 균형있게 ‘하나’로서 융합·조화되지 못했다는 약점이 있어서 뮤지컬의 참맛은 아직까지 창조되지 못한 느낌이다. <살짜기 옵서예>의 성공적 요인은 (1) 스토리의 간결성, 친밀성 (2) 코믹하고 아름다운 한국적 색채 (3) 쉽게 부를 수 있는 선률과 한국의 색채가 서구식 표현으로 조화가 된 점 (4)스타의 적절한 기용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의경, 뮤지컬센터 미리내 창단 3주년 기념공연 프로그램) 실험적인 예그린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는 다음과 같은 신문평을 받았다. ‘배비장전을 뮤지컬로 꾸민 예그린의 再起出演은 뮤지컬 코메디를 한국에 정착시키려는 극단의 오랜 숙원을 다른 측면에서 앞질러 실현시킨 무대였다. … 이번 공연은 한국적인 折哀式 뮤지컬이 우리 풍토에서 가능하다는 시사를 던져 주었다’ (동아일보) ‘템포가 빨라 12장의 무대가 어느새 끝났는지 몰랐다 … 고전을 이런 감상으로 다룬다면 뮤지컬은 앞날이 있을 것 같다. … 예그린이 이 공연을 통해 우리 고전을 현대화하는 가능성을 개척해 놓았다.’ (경향신문)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는 애당초 예그린 악단의 이념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기 어려우나, 우선 미국 뮤지컬풍의 감미로운 선율이 청중들의 귀를 간지럽힐만 하다’ (신아일보) (참고 : 1978년 공연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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