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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백운랑

  • 출연 / 스태프

    출연 도창/박초월 백운/홍갑수 제후/박봉선 모부인/김소희 청산/박후성 정대감/박영호 손대감/강종철 스태프 작/서항석 연출/박진 작창/김연수

  • 내용

    국립창극단의 제 5 회 정기공연 <백운랑>은 5막 6장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신라 진흥왕 시절 서라벌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백운과 제후의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 서항석 (1900~1985)

    독문학자이자 극작가이자 연출가. 호는 경안. 함경남도 흥원 출생. 1929년 도쿄제국대학 독문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사 학예부장을 지냈다. 1931년 해외문학파 회원으로 가담했고, 홍해성, 윤백남, 유치진 등과 극영동호회를 조직했는데, 이 단체는 극예술연구회의 전신이다. 이어 극예술연구회 창립 동인으로 참여했으며, 1938년 4월 유치진과 함께 극예술연구회를 극연좌로 개칭하여 1939년 해산되기까지 이끌었다. 1941년 현대극장 결성에 참여했고, 1948년 민주일보사 편집국장을 거쳐 1952~61년 중앙국립극장장을 지냈다. 1963년 서라벌예술대학 교수를 거쳐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냈고, 1965년 서울 특별시 문화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1971년 한국연극협회 고문을 거쳐 1978년 대한민국 예술원 부회장을 지냈다. 1932년 5월 극예술연구회 산하에 있는 극단 실험무대에서 공연한 고골리의 <검찰관>에 출연했고, 카이젤의 <우정>, 클리포드오데츠의 <깨어서 노래부르자> 등을 번역했다. <부활>, <콩쥐팥쥐>, <파우스트> 등을 연출했으며, 주로 비평 강연을 통한 연극계몽운동에 앞장섰다. <괴테의 시>(문예월간, 1932. 1), <독일문학의 특질>(삼천리, 1936. 6), <하우프트만의 예술>(신문학, 1946. 8) 등은 대표적인 평론이다. 또 시에도 관심을 갖고 <산 넘어 또 산넘어> 등을 발표했으며, 희곡 <여당원>(1926), <마을의 비가>(1962) 등을 발표했다. 해방 후 괴테의 <파우스트>를 번역해 1960년대 중반 국립극장 무대에 올림으로써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독일의 괴테 훈장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서항석 전집’(하산출판사, 1987)에 수록돼 있다.

  • 박진 (1905~1974)

    서울 출생의 극작가이며 연출가. 일본대학 예술과 중퇴 이후 연극에 투신, 토월회에 가입했으며 간부로서 연출을 맡아 활동하였다. 이어 1928년 산유화회, 화조회를 조직 했으며, 동양극장에서 안종화, 홍해성 등과 더불어 연출가로서 활동했다. 광복 후 문교부 주최 제1회 연극경연대회에서 <혈맥>(1946)을 연출하여 연출상을 수상하였다. 1959년 국립극단 단장, 1960년 예술원 회원, 1962년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1973년 국립극장 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연출작품으론 <향토심>(1927), <화란을 당한 자>(1928), <꽃피는 나무>(1943) 등 수백편에 달한다. 극작가로서는 장막극<소낙비>(1927)가 데뷔작으로 <명기 황진이>(1936), <공작선생>(1951) 등이 있다. 대표작품으로는 <검사와 사형수>, <혈맥>, <야화>, <딸들 자유연애를 구가하다>,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 등이 있다.

  • 박초월 (1917~1983)

    본명은 박삼순으로 전남 순천에서 출생했다. 1933년 김정문 선생과 송만갑 선생께 판소리를 배워 판소리계에 입문한다. 1935년 동일창극단 단원이었으며, 1954년 여성동지회 창립 동인이었다. 1955년 여성동호회 이사장에 취임했으며, 1962년 사단법인 국악협회 초대이사장을 맡은 바 있다. 1967년 수궁가 부문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됐다. 박초월은 김소희,박녹주와 함께 1930년대부터 현대 여창 판소리를 대표했던 명창이었다. 1962년 국방부장관상을 수상했고, 1967년 제1회 국악상을 수상했다. 1962년 국립국극단 창단 단원으로, 1972년~1979년 국립창극단 단원이었다. <춘향가>(국립창극단 제1회 정기공연)에서 월매 역을 맡아 명창의 명연기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으며, 그외 <수궁가>(19회), <배비장전>(22회), <대업>(23회), <심청가>(26회) 등에 출연했다.

  • 리뷰

    <백운랑>은 판소리에 집중된 창극과는 다른, 창극의 새로운 방향을 의도한 공연이다. 연출을 맡은 박진은 과거 동양극장 전속 연출가였던 경력대로 소리보다는 극적 재미에 보다 집중했다. 박진은 우선 레퍼토리를 판소리의 다섯 마당으로부터 벗어나 창작 쪽에서 찾는 작업부터 하며, 창극에 새로움을 불어넣으려 한다. 그는 <배비장전>을 시험적으로 무대에 올린 후 계속해서 <백운랑>, <서라벌의 별> 등을 공연했지만, 전통을 현대감각에 맞도록 쇄신하는데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이두현은 "우리의 창극이 민족 '오페라'요 국극으로서 발전되고 정립되기를 희망"한다고 전제하면서, "작자의 의도를 그대로 현대극조로 다루었다"는 연출의 의도가 타당한가에 대해 질문하는 한편 "출연자에게는 좋은 곡 좋은 노래를 요구하면서 좋은 연기는 강요치 않았다"라는 연출의 입장도 창극에서 '연기'의 문제를 등한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이두현은 "창극은 고전적인 음악극이라는 전제. 분장이나 장치에 있어서 스타일과 앙상불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독창, 중창, 합창 등 오페라처럼 창을 다채롭게 하는 방법에 대해서 논의했다.

  • 평론

    신라시대 이야기를 소재로 한 <백운랑>은 창작 창극이었다. 이 공연은 종래 신파조의 창극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일련의 노력과 더불어 사실주의에 기반을 둔 무대화로 볼 수 있다. 전자가 신파와의 접합이었다면 후자는 서구적인 사실주의 연극과의 접합을 정직하게 추구한 시기였다. 사실적인 연기, 사실적인 무대, 사실의 전달 및 표현이 중시되는 창극이었다. (<동시대적 삶과 연극>, 서연호, 열음사, 1988, '창극의 발전과 과제')

  • 관련도서

    <동시대적 삶과 연극>, 서연호, 열음사, 1988, '창극의 발전과 과제' <한국연극운동사>, 유민영, 태학사, 2001 <한국일보>, 이두현, 1963.10.11, '국극정립에의 몇 가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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