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승무

개요
승무의 유래에 대해서는 불교의 교리적인 입장에서 본 불교설과 민속춤의 입장에서 본 황진이의 무용설, 파계승의 번뇌에서 기원하였다는 설, 그리고 탈춤의 노장과정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 그 기원설이 구구하나 어느 것이 확실하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갖가지 형태로 발생되어지는 것이 민속예술의 특질이기 때문에 어느 것으로부터 유래되었으며, 그 최초의 형태는 무엇이었지 또 어떻게 변모되어 왔는지에 대해 단정짓기는 매우 어렵다. 승무의 유래에 대한 설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1) 황진이의 무용설조선시대 명기 황진이가 수도승 지족선사를 파계시킬 목적으로 세모시 장삼에 한모시 고깔을 쓰고 다홍 장삼의 승복차림으로 교태로운 춤을 춰 끝내 지족선사를 파계시켰다고 한다. 이때 황진이가 추었던 춤이 승무의 기원이라고 전해져 오고 있는데, 이는 근거 없는 속설이라고 할 수 있다. 2) 동자무설상좌중이 스승이 없을 때 평소 스승이 하는 기거범절과 독경설법의 모습을 흉내내는 동작에서 승무가 유래했다는 설이다.3)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설육관대사의 제자 성진이 길 가던 도중에 8선녀가 노니는 광경을 보고 사내의 괴로운 욕정을 광대 무량한 불법에 귀의하므로 법열과 해탈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내용을 춤으로 표현하였다는 설이다.4) 파계승의 번뇌설어느 파계승이 백팔번뇌를 잊으려고 북을 두드리며 추기 시작한 춤이 승무의 기원이 되었다는 설이나 이 역시 하나의 구전에 불과하다.5) 탈놀음의 노장춤설탈놀음에 있는 노장춤이 승무의 기원이라고 하는 설이나 이는 불교의 전성기인 고려의 팔관회, 연등회 등에서 연행되었던 잡기의 하나로 전통적인 의식무와는 그 계통을 달리한다.6) 불교의식의 무용설불교의 경전 중의 하나인 법화경에 의하면 세존께서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할 때 천사색(天死色)의 채화(綵花)를 내리니 가섭(迦葉)이 뜻을 알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춤을 추었다고 하여 후세 승려들이 이를 모방하여 춤추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또 포교방법의 변화에 의해 도장의 장엄, 염불의 유행, 범패의 발전 등이 있어 여기에 맞춰 승려의 춤 역시 유행하게 되었다. 즉 불교문화권에서 각양의 승무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기 이후 시각과 청각을 통한 포교의 편법으로 승무가 발전되어 내려왔을 것이고 불교의 대중화로 인하여 의식이 흥미위주로 변화는 과정에서 점차 민속춤으로 변모되어 왔다는 것이다.이상의 승무의 유래와 관련된 설 가운데 대부분은 그 기원을 명쾌하게 밝혀줄 만한 설득력을 지니지 못하고 있으나 ‘불교의식무 기원설’은 좀 더 신빙성이 있다. 우선 불교적인 복색춤과 불교적 명칭, 불교의식의 법고가락이 승무의 북가락과 유사성이 있다는 것 등이 그러하며, 이능화 역시 <조선불교통사>에서 승무가 불교의 법고춤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결국 승무는 조선 중엽 이후 포교의 한 방법으로 승려의 필수 일과(一科)로 중시한 뒤 더욱 발전하게 되었으나 그 후 운수승(雲水僧)들이 승무를 탁발 수단으로 이용하므로 종교적 의의를 상실할 우려가 있다고 하여 금지된 이후 민간으로 내려와 점차 민속무용으로 변모하게 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민속무용으로 변모한 승무는 염불을 하며 시주를 걷는 사당의 법고춤을 거쳐 창우들에 의해 승무와 비슷한 여러 가지 승려들의 춤 가운데 다듬어진 뛰어난 춤이 권번으로 유입되었고, 기녀들에 의해 기방춤으로 추어지며 남무에서 여무로 전이되었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승무는 불교의식과는 관계없는 오늘날과 같은 춤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지금까지 언급한 승무의 변화과정을 다시 한번 요약하면, 사찰에서 거행되던 불교의식무(나비춤, 법고춤)가 점차 세속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탁발 법고춤, 사당 법고춤, 무동 장삼춤, 창우 중춤, 기방 승무로 전이, 변천한 것이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승무는 경기 승무과 호남 승무 두 종류로 볼 수 있다. 경기 승무는 한성준에 의해 전승의 맥이 이어졌는데, 이 승무는 전적으로 불교의식무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놀이판을 토대로 전해지는 승무와 불교의식춤이 합해져 한성준에 의해 새로이 창작된 춤이다. 그러나 이렇게 새로이 창작된 승무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춤이 그때까지 불교의식춤이나 무속장단 속에 남아있던 춤과 음악의 기본을 집대성한 춤이기 때문이다. 승무의 다른 한 계파는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이대조 계통을 이은 호남형 승무이다. 호남형 승무는 1935년 경 이매방이 조부 이대조에게서 학습한 뒤 오랜 시간 그 원형을 고수, 보존하며 연마하여 창조한 춤이다. 이매방의 증언에 의하면 호남형 승무는 남도 소리도 하는 신방초(申芳草)에게서 이대조와 이매방에게로 전승되었으며, 그 원형은 이매방이 간직하고 있고 북가락은 박영구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현재 승무는 경기 승무와 호남 승무가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내용
승무는 이대조계의 이매방이 중심이 되는 호남형 승무와 한영숙이 중심이 되는 경기 승무의 두 유파로 구분되고 있는데, 부분적으로는 두 유파 사이에 차이점이 나타나지만 구성상으로는 통일성이 있다. 승무는 모두 10개의 과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장단과 장단수는 승무 공연 당시 사용하는 시간에 의해 약간씩 변화가 생긴다. 공연 시간에 따라 어느 과장이 생략되기도 하고 줄어들거나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이매방과 한영숙의 차이점도 각각의 과장마다의 장단수도 상황에 따라 조절하는 식이나 전체적인 흐름은 변하지 않는다. 각 과장의 진행순서 역시 약간의 차이점은 있으나 공통적으로 흐르는 맥은 다르지 않다. 각 과장의 공통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염불과장 염불과장은 장중하고 무게 있는 무태(舞態)로써 내면의 깊은 세계를 표찰하고 있으며 멋이 짙게 깔려있는 승무의 대표적인 부분이다. 춤판 뒤편에 있는 북을 향하여 엎드려 있다가 서서히 일어나 합장하고 앞으로 나오고 뒤로 물러서면서 장삼을 뿌리고 젖히고 휘돌리는 등 여러 동작의 춤으로 무릎을 많이 굽히는 것이 특징이며 특히, 긴 장삼 소매가 공간에 불려지는 모습은 초인적인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2) 염불 도드리과장 빠른 염불과장은 염불과장에서 타령과장으로 넘어가는 교량적 역할을 하는 부분으로 넘어가는 장단에 맞추어 장삼 소맷자락으로 북을 몇 번 치다가 타령으로 넘어간다. 이것은 도드리 염불과장의 끝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3) 타령과장 염불도드리 과장에서 북을 치고 끝맺음을 한 다음 뒷걸음으로 나와 정면을 향해 앉으면 타령가락이 시작된다. 앞의 염불과장은 장중하고 무거운 무태로서 인간의 감정을 내면적으로 나타냈으나 타령은 경쾌한 리듬감으로 활달하고 직선적인 춤사위를 통해 통쾌한 멋을 불러일으키며 도약과 비약의 춤사위를 이루고 있다. 4) 잦은 타령과장 잦은 타령과장은 굿거리 과장의 연결 역할을 하는 과장을 장삼가락으로 북을 잠시 어르다가 굿거리로 들어간다. 장삼을 뿌리며 앉은 동작과 북을 치는 동작이 조화되어 속도가 점점 빨라지며 끝을 맺는다. 5) 굿거리 과장 잦은 타령에서 북을 친 다음 춤판 정면으로 나와 어깨춤으로부터 시작되어 본격적인 굿거리 과장으로 들어간다. 타령이 직선적이며 박(拍)이 또박또박 끊어져서 역동적이면서 의도적인 성격을 띠는데 비해 굿거리는 모가 나지 않고 끊어지지 않으며 계속 이어지는 부드러움과 즉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6) 잦은 굿거리과장 잦은 굿거리과장은 느린 굿거리로 넘어가는 교량 역할을 하는 부분으로 북을 어르면서 북 앞에서 춤을 춘다. 7) 느린 굿거리과장 느린 굿거리과장은 장삼 소매에서 손을 빼내어 북채를 어르면서 북채의 부딪히는 소리와 춤추는 사람의 흥이 어우러져 흥이 무르익어 한다. 8) 북 치는 과장 굿거리 춤이 무르익었을 때 자진모리로 넘어 가면서 북채를 꺼내 북을 두드리게 된다. 앞 과장에서 느리고 무겁고 끈기 있게 서서히 발전한 감정의 기복을 끌어올려 법고를 침으로써 풀어내는 흥분, 희열, 환희로 무아의 경지에 이르게 되며 춤의 절정을 이루게 된다. 9) 당악과장 가장 빠르고 경쾌한 과장으로 발의 움직임이 섬세하고 민첩하여 팔의 움직임도 날렵하다. 북을 당악장단으로 치기도 하며 북채를 어르면서 부딪치기도 하여 흥을 돋우면서 북을 치며 격렬한 춤을 춘다. 이 과장에서는 장삼소매를 뒤로 모아 등 뒤의 끈에 묶고 추기 때문에 의복 면에서도 독특한 미를 발견할 수 있다. 10) 느린 굿거리과장 북소리가 멎으면서 느린 굿거리 장단에 맞춰 감정을 가라앉히고 연풍대를 돌 때 원을 그려가면서 장삼 소매가 허공에 날리며 그어지는 선과 무릎을 들어 180도 돌리면서 그어지는 모습은 종교적 의미를 내포하는 듯 하다. 승무의 춤사위는 경기 승무(한영숙 류)와 호남 승무(이매방 류) 모두 장삼놀음의 사위이므로 공통적인 춤사위가 많고 가장 많은 춤사위는 무복과 장단이 영향을 받아 여러 가지 뿌리는 사위와 걸치기 사위이다. 그 외 합장이나 연풍대, 까치 걸음 사위, 딛음, 완자걸이, 안가람, 잉어 걸이, 한발 들기 등의 공통된 춤사위가 많다. 승무에 사용되는 음악은 춤반주 음악으로 대표되는 염불장단, 타령장단, 굿거리장단, 당악장단으로 이루어지며, 악기는 피리 2, 젓대 1, 해금 1, 장고 1, 북 1 등의 삼현육각으로 이루어진다.
전승자정보
승무는 변천과정을 거쳐오는 동안 일정함 춤의 격식이 없이 즉흥성이 짙은 민속춤으로 전승되었기 때문에 여러 춤꾼들이 법통대로 또는 자기 류의 승무를 추어왔다. 여러 승무 명인 가운데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한영숙과 이매방, 그리고 그들의 뒤를 잇고 있는 전승자들을 언급해보면 다음과 같다.
한영숙(韓英淑, 1920년~1989년)
한영숙은 충남 천안 출생으로 조부인 한성준(고수, 무용가)로부터 승무를 전수받아 1969년도에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을 받았다. 1937년 부민관에서 열린 한성준 무용발표회가 한영숙의 첫무대로 승무를 비롯하여 학춤, 살풀이 등을 추어 많은 갈채를 받았다. 그 후 1942년 한영숙 고전무용학원을 개설하여 승무, 살풀이, 태평무, 학무 등을 후진들에게 전수하고 교단과 대학강단에서 후학을 길러냈다. 1963년에 미국 30개주 순회공연을 하는 등 많은 해외공연을 하였고 외형적인 기교보다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한국무용의 정수를 아름답게 표현하여 한국무용계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 1969년에 승무, 1971년에는 학춤으로 예능 보유자 인정을 받았다.
이매방(李梅芳, 1927년~)
전남 목포 출신으로 본명은 이규태이다. 이매방은 목포 권번에서 승무와 고법을 가르치던 명무이자 명고수인 할아버지 이대조에게서 검무와 승무, 법무를 학습하였다. 본래 판소리도 겸하려 하였으나 소리가 터지지 않아 할아버지로부터 “평생 춤만 춰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후 7~8년동안 목포 권번에 있으면서 어린 동기들을 가르치고, 광주 권번을 오가면 박여구 선생에게서 승무와 북을, 이창조 선생에게서 검무를 각각 익혔다. 1935년에 임방울선생의 명인명창대회에 ‘승무’로 출연한 것을 비롯하여 수 많은 공연을 하였으며, 이매방 승무의 특징은 호남류의 화려한 장단과 정확한 발디딤, 현란한 장삼놀음, 힘차고 변화 많은 북놀음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이매방의 살풀이는 멋과 흥취, 한(恨)과 신명을 은은하게 표현해주며 단아한 맛이 두드러진다. 그는 늘 “살풀이는 연륜과 숙달이 필요하지. 출수록 맛이 나고 곰삭아야 제 맛이 나는 법이야.”라고 말한다. 1987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 27호 승무의 예능보유자가 되었고, 1990년에는 중요 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이애주(李愛珠, 1947년~)
1947년 서울 출생으로 4~5세 때부터 춤을 잘 추어 귀여움을 많이 받았으며, 춤을 정식으로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 김보남 선생(한성준 선생에게서 사사받은 민속 무용가)에게 배우기 시작하면서이다. 이때 춤의 기본과 양산도, 노들강변, 검무, 춘앵전, 승무 등을 배웠다. 대학원에 입학한 해인 1969년 여름에 한영숙 선생의 승무강습회에 참석하였을 때 이애주의 춤을 본 한영숙 선생이 자신의 춤을 전수해 주고 싶다고 하여 1970년 겨울부터 승무를 전수받았다. 1976년에 한영숙 선생의 승무 이수자 자격을 얻었으며, 1989년 한영숙 선생이 별세한 뒤 한동안 승무 예능보유자의 맥이 끊어졌다가 1997년 이애주가 한영숙 선생의 뒤를 이어 보유자 인정을 받으면서 전승이 이어지게 되었다.
정재만(1948년~)
경기도 화성 출생으로 열 여덟 살 때 본격적으로 무용을 시작하여 68년부터 고 한영숙 선생에게 승무와 학무 등을 배웠다. 76년부터는 전수 조교로 임명되어 스승 곁에서 전수교육에 열중하였고 80년대엔 한영숙선생의 세종대학 교수자리를 물려받고 스승의 춤을 계승하고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2000년 12월에 승무 예능보유자 인정을 받았다.
연계정보
재구성승무,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 권 10, 국립문화재연구소, 1998.한국예술사전 4권(연극/무용/영화 편), 대한민국예술원, 1985.한국무용사, 김매자, 삼신각, 1995.http://www.cydance.co.kr/people/people1_2.htm Cydance 정재만http://www.cydance.co.kr/people/people1_5.htm Cydance 한영숙
관련도서
승무,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 권 10, 국립문화재연구소, 1998. 한국예술사전 4권(연극/무용/영화 편), 대한민국예술원, 1985. 한국무용사, 김매자, 삼신각, 1995.
연풍대
원을 그리며 빙빙 도는 춤 동작으로 승무에서는 1박에 오른발을 회전하는 방향으로 딛으며 오른발을 뿌려 2박에 원 안 쪽을 향하여 앉는다. 두 팔을 가슴에서 교차시켜 어깨에 뿌려 얹고 3박에 가슴을 뒤로 제치며 왼팔을 머리 위에서 밖으로 뿌리고 왼발을 들어서 180도 돌린다. 4박에 오른팔을 위로 뿌려 어깨에 걸치며 왼발을 가는 방향으로 딛어 다음 동작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이 동작은 춤판을 크게 이동할 때 쓰이는 보법으로 뿌림 사위를 하면서 원을 그려 회전하듯 부드럽고 안정감을 준다. 풍물에서도 연풍대 동작이 나오는데, 등을 원의 중심에 향하고 시계 반대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돌아간다. 검기무에서는 허리를 뒤로 제끼며 공중에 나는 듯 빙빙 돌아 가장 어렵고 볼 만한 춤사위로 꼽힌다. 그 밖에 첨수무(尖袖舞), 장구놀이, 무속무용 계통의 춤에도 연풍대가 들어 있다.
까치 걸음 사위
빠른 걸음으로 까치처럼 걸어가는 동작을 말한다. (이매방류 승무)
완자걸이
1박에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고 2박에 왼발을 앞으로 디딘 다음 셋에는 오른발을 왼쪽 옆으로 꼬아 왼발 앞으로 교차하여 딛고, 넷에는 왼발 발끝을 왼쪽 옆으로 디디며 다섯에는 다시 오른발을 왼발 앞으로 교차하여 왼쪽 옆으로 디딘다. 다시 반대쪽으로 춘다. (이매방류 승무)
안가람
한발을 뒤로 살짝 튀겨서 올리므로 약간 무릎이 굽혀지는 동작을 말한다. (이매방류 승무)
잉어 걸이
하나에 오른발을 왼발 앞으로 겹쳐 왼쪽으로 딛고, 왼발 발끝으로 왼쪽으로 디딤과 동시에 둘에 다시 오른발을 왼발 앞으로 겹쳐 왼쪽으로 디디며 셋에는 반대 방향으로 왼발을 오른발 앞으로 겹쳐 오른쪽에 디딘다. (이매방류 승무)
한발 들기
한영숙류 승무에서는 비스듬히 팔을 펴며 한 발을 가볍게 들고 정지한 학 동작을 말하며 이매방류 승무에서는 한발을 가볍게 들고 정지한 동작을 말한다.
관련사이트
문화재청
관련사이트
문화재청
관련멀티미디어(전체6건)
이미지 6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