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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킴이

출연/스태프
* 출연 김종/송용태 패두/김종엽 아내/김성녀 산지기/최현길 관원/정태화 노인/문용철 숙부/류동철 사장/김종진 손자/정승호 아들/이희도 증손/이명수 노파/나종은 손부/박혜진 여인/동광자 분이/김영화 집사/윤의식 지킴이/이용자, 김미애 어린이/손지형 지킴이 무리/한유림, 이숙경, 이인의, 이난택, 이기봉 * 스태프 무대/강경렬 미술/최연호 작곡/박범훈 조명/이상봉 음향/김벌래 의상/그레타리 분장/김기진, 윤경남 효과/한동근 안무/국수호 영상/문영주 소품/최현길
내용
나이 여든에 이르른 개성 갑부의 후예 김종 노인은 자손들을 이끌고 젊은 시절 절망 끝에 폐지해 버렸던 지킴이 제사를 다시 일으켜 모신다. 연극은 이 제사의 진행과 함께 김종 노인의 회상으로 과거, 상고시대, 현재의 장면들이 뒤섞이며 진행된다. 개성 갑부 김씨 문중에는 세상이 암울할 때면 까닭 없이 집 앞 산소가 파헤쳐지는 매굿귀신의 전설과 함께 삼십대 이상 종손에서 종손에게로 은밀하게 내력이 전해져 온 지킴이 제사의 수수께끼가 있다. 상고시대의 윤리의 척도이며 무기이며 의술용도구이기도 했던 칼을 들고 온갖 전란, 질병,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백성을 지켜왔던 무사계급 지킴이의 전통과 기백을 변천하는 역사 속에서 차츰 돈이라는 칼을 들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웃과 내 땅의 맥을 지켜 대물린 만석꾼이 어떤 시대에도 당당하고 의연했던 개성 갑부의 김씨 문중에 내력을 만든다. 그러나 일제시대에 나라를 빼앗긴 충격으로 집안의 내력에 마저 회의를 품고 시류에 합리적으로 순응해 온 젊은 김종은 친일파로서의 득세와 오욕 반동 지주로 몰려 공산당에 아들을 잃은 타격, 그로 인한 아내의 자살, 부정 축재자로서 4.19의 와중에서 종손을 잃은 고통 등을 겪으며 만신창이의 삶을 보낸다. 이제 나이 여든, 임종을 바라보며 남은 자손들이 다시 의지할 가치 기준 없이 표류하며 불행해지는 것을 보다가 독립운동 끝에 옥사했던 숙부의 산소가 또 수수께끼 같은 매구를 당하자 집안의 전통인 지킴이 제사를 일으켜 다시 대물려 모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이를 먹었어도 자손은 자손, 난세를 만나면 결국 아버지, 할아버지한테 의지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제사를 끝내며 김종은 호소한다. 스스로 모멸하여 내던져 버렸던 저 오랜 우리의 도덕과 윤리의식 지킴이의 칼을 자손들에게 돌려 달라고…… 참고: 1987년 공연 프로그램
예술가
손진책 (1947~ ) 1947년 경북 영주 출생의 연출가. 1967년 서라벌예술대학 연극과에 입학했으며 같은 해 극단 산하에 입단하였다. 1972년 서라벌예술대학 부설 민족연극연구소 조교로 근무하다 허규 연극연구소 강사로 일하였으며, 1973년 구자흥, 정현, 김흥기, 공호석, 오승명씨 등과 함께 허규 선생을 모시고 극단 민예를 창단하였다. 1974년 장소현 작의 <서울 말뚝이>로 첫 연출데뷔를 했으며, 1976년 명동국립극장의 마지막 공연인 <한네의 승천>을 연출하였다. 1981년 <허생전>을 시작으로 마당놀이의 개념을 수립, 해마다 작품을 올리고 있다. 1982년 문예진흥원 해외연수자로 선발되어 영국 로열세익스피어컴퍼니에서 연수를 받았다. 1986년 윤문식, 김종엽, 김성녀, 정태화 등과 함께 극단 미추를 창단하였고, 창단공연으로 <지킴이>를 연출하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 한강축제에 총감독을 맡았으며, 1989년 서울연극연출가그룹 회장, 1994년 ITI(국제극예술협회) 부회장,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 연극제 예술감독, 2002년 FIFA 한일월드컵 개막식 총연출을 역임하였다. 1976년 제12회 한국연극영화예술대상 신인상을 필두로 한국연극예술상, 서울연극제, 백상예술대상, 이해랑 연극상을 다수 수상하였다. 대표작품 <서울 말뚝이> <한네의 승천> <지킴이> <오장군의 발톱> <신이국기> <남사당의 하늘>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정복근 197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여우>로 등단한 후 현재까지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1989년 <실비명>으로 한국백상예술대상 희곡상, 1994년 <이런 노래>로 서울연극제 희곡상을 받았으며, 1997년 영희연극상을 수상하였다. 희곡 뿐만 아니라 창극 <박씨전>과 발레대본 <사군자>와 <나운규-꿈의 아리랑>을 집필하였다. 대표 작품 <태풍> <지킴이> <실비명> <이런노래> <덕혜옹주> <그 자매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나> 등
수상현황
- 1987년 8월 31일~9월 4일 문예회관 대극장, 제11회 서울연극제 참가 공연 - 1987년 제11회 서울연극제 연출상(손진책) 수상 - 1987년 제24회 백상예술대상 연출상(손진책) 수상 - 1987년 극평론가협회 최우수 연기상 수상
평론
우리 역사의 뒤안길을 훑어 내리면서 거기 진하게 점철된 맥을 짚어 오늘의 마음을 향해 외치는 작가의 큼직한 시각과 극적 구성, 그것을 몸짓과 소리, 연기의 앙상블로 단단하게 구축해낸 연출과 참여자들의 성취가 큰 무대였다. 이 무대의 제주 김종 역을 맡았던 배우 송용태의 연기는 연륜에 비해 큼직한 걸음이었다. (1987년 10월 18일, 구히서) <지킴이>란 지키다의 명사형으로 지키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연극정신을 지켜나가기 위해 극단을 만들고자 하였으니 창립공연 작품으로는 걸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목에 무슨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 시대에 우리가 토로해야 할 참회록으로 택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있다. 또한, 우리의 역사와 함께 해 온 한 사람의 한국인으로서 짊어져야 할 현실적 과제를 외면할 수 없는 의무도 주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지킴이>에는 밟히고 찢긴 우리 역사에 대한 참회적 항변이 있다. 한국사의 시발점에서 1987년 봄,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의 줄기를 잡고 더듬어 보면, 우리는 그 속에 꿈틀거리며 살아 숨쉬는 그 무엇의 감촉을 느낄 수 있으리라 본다. <지킴이>는 그 꿈틀거림의 실체를 만나보고자 향을 피우고 잔을 드리는 우리의 제사이다. 지킴과 뺏김의 한의 역사 속에 투영된 우리들은 과연 누구인가하는 질문이자 해답니다. <지킴이>는 우리 스스로 모멸하여 던져 버렸던 우리 자신이다. 그리고 어떤 시대, 어떤 질서에도 변하지 않은 장엄한 우리의 의식이기에 창립공연으로 정하였다. (1987년 연출자 인사의 말 중, 손진책) 상실의 원인이 되는 온갖 종류의 질병, 비리, 부도덕, 부조리에 대해서 그리고 각자 내부의 온갖 악덕에 대해서 우리가 나와 내 이웃을 지켜 서로가 서로를 상하게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 일이 있었다. 그런 즈음에 우연히 <지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었다. 말 그대로 지켜주는 자라는 뜻인 이 말은 본래 우리 전통무술의 무인을 지칭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호랑이를 산지킴라고 부르기도 하고는 터줏대감을 터지킴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노인들의 말씀을 들으면 무인을 가리켜 지킴이라고 불렀다는 말에도 쉽게 수긍이 갔다. 본래 우리의 전통무술은 의술, 정복, 무예의 세가지 요소를 고루 지녀서 질병, 재난, 적군으로부터 항상 백성을 지키는 화법의 무예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거니 하고 있다가 나를 지키고 이웃을 지키며 적마저 지켜서 살리는 화법의 무의 개념과 윤리가 우리의 실생활 속에 아직도 얼마나 깊고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지가 여기 저기에서 눈에 띄기 시작했을 때 이 작품이 스스로 틀을 만들어갔다. (1987년 작가의 말 중, 정복근)
관련사이트
극단 미추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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