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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출연/스태프
* 출연 홍도/차홍녀 철수/황철 광호/심영 시누이/한은진 외
내용
<초연> 어려서 부모를 일찍 여의고 가난한 살림에 오빠 철수의 학비를 벌기 위해 기생이 된 홍도는 오빠의 친구인 부잣집 아들 광호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 둘은 집안의 반대와 동경유학을 한 신여성인 광호의 약혼녀 혜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 후 광호는 홍도와 함께 북경으로 유학을 떠나려 하지만 어머니의 강력한 반대로 홍도만을 남겨둔채 혼자서 떠나게 된다. 유학간 광호는 하루가 멀다하고 편지를 보내지만 시어머니와 시누이 봉옥, 옛 약혼녀 혜숙, 하인 월초의 방해로 매번 받아보지 못한다. 끝내 작당을 하여 홍도를 함정에 빠뜨려 시집에서 쫓아버린다. 1년 후, 홍도는 유학갔던 남편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시댁을 찾았으나 홍도는 남편에게마저 버림을 받는다. 억울한 누명에 제정신을 잃은 홍도는 과도로 혜숙을 찌르고 운명의 장난처럼 순사가 된 오빠에게 잡혀가게 된다. <속편> 원작에 약 30분 분량이 덧붙여진 속편에서는 홍도가 살인미수로 법정에 서게 되고 오빠 철수는 변호사로 나서게 된다. 오빠의 변론으로 법정의 재판관, 방청객들이 눈물바다를 이루는 가운데 마침내 무죄 선고를 받은 홍도가 오빠와 감격의 포옹을 나누며 막이 내린다.
예술가
임선규 충남 논산 출생의 극작가. 강경상고를 졸업하였다. 고교 재학중 개벽지의 현상 문예에 희곡 <수풍령>을 써서 당선되었다. 고교 졸업 후 상경한 그는 조선연극사에 입단하여 작가와 배우로 활동하였다. 이 때 여배우 문예봉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 폐결핵을 얻어 고생하는 와중에 쓴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동양극장의 공연으로 대성공을 거두자 임선규는 동양극장의 인기작가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그의 극작 데뷔작인 <수풍령>이 민족주의 작품으로 상연 중지 명령을 받자 이후로는 <유랑삼천리> <북두칠성> 등의 오락적, 가정적 작품에만 전념하였다. 이후 극단 아랑의 전속작가로 <청춘극장> <김옥균> <어머니를 찾아서> <동학당> 등의 작품을 남겼고, 한참 명성을 날리고 있던 이 시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동보클럽 극장 연수실에서 1년간 일본의 우수작가들과 함께 극작법을 공부했다. 귀국 후 <바람부는 시절> <거리의 목가> <신생활설계> 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해방이후 다시 도진 폐결핵으로 고생하던 임선규는 먼저 월북한 부인 문예봉을 따라 월북하였으나 별다른 활동은 하지 못하고 지병으로 고생하다가 타계하였다. 홍해성 (1893~1957) 대구 출생의 근대극 연출의 선구자다. 1920년 김우진 등 동경유학생들이 조직한 극예술협회의 회원이 되면서 근대극 운동에 생애를 바치기로 결심하고 연극 공부를 위해 일본대학 예술과에 편입학하여 졸업했다. 이후 본격적인 연극 수업을 쌓기위해 당시 일본 근대극 최고 극장이자 극단인 축지소극장에 가입하여 50여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무대 앞뒤의 풍부한 체험과 지식을 쌓았다. 1930년 귀국하여 극예술연구회의 초기 작품인 <검찰관> <관대한 애인> <토막> <인형의 집> 등을 연출하였고, <벚꽃동산> 등의 학교극도 연출하였다. 그 후 1936년부터 동양극장이 창설된 후 연출책임자로 초청되어 1941년까지 <승방비곡> <유랑삼천리> <검사와 사형수> <단종애사> <어머니의 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등 수많은 작품을 연출하여 성공시킨다. 광복 후에는 신극협의회 초대회장을 지냈고 서라벌예대에서 후학을 양성하기도 하였다. 대표작품 <검찰관> <관대한 애인> <토막> <인형의집> <앵화원> <승방비곡> <유랑삼천리> <검사와 사형수> <단종애사> <어머니의 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여인애사> <김옥균>
리뷰
임선규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동양극장 최고의 인기 레퍼토리이자 해방 전 연극사상 최다 관객을 동원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원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이었으나 동양극장 사장이던 홍순언의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에 최독견이 ‘그거 기생 이야기 아니오, 기생이란 건 사랑에 속고 돈에 우는 게지 뭐.’라고 한 말이 그대로 제목이 되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홍도야 우지마라>라는 제목은 지방 유랑극단들이 변조해서 사용하던 명칭이다. 처음에 임선규가 이 작품을 써왔을 때 박진 선생이 먼저 작품검토를 하고, 내용이 저속하니 상연할 수 없다하여 원고를 쓰레기통에 처박아 두었다. 갑작스레 터진 일에 당황해하던 홍순언은 자기 생각엔 괜찮은 작품 같으니 공연을 해보자며 다른 사람의 반대를 우격다짐으로 묵살했다고 한다. 공연을 해 보니 첫날엔 관객이 없었는데, 재일(둘째날)부터 극장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이었다. 홍순언의 흥행사적 기질이 빛난 것은 이 다음이다. 연일 관객이 장사진을 치고 표를 못 구해 아우성이었는데도 일주일만에 극장사정이라며 공연을 중단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임선규에게 두둑이 작품료를 지불하고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속편의 집필을 부탁하여 석 달 뒤 부민관에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전, 후편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때 광화문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질서유지를 위한 기마 경찰대가 파견될 정도였다. 동양극장은 700석 규모였고 부민관은 1200석 규모였으니 재주를 부린 것이다. (<이야기 근대연극사> 고설봉, 2000. p.147)
재공연
- 1938년 1월 부민관, 극단 동양극장 청춘좌,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전후편 대회 - 1943년 성보극장, 극단 아랑, 15번째 서울 재공연 - 1995년 11월 25일~12월 10일 문화일보홀, 이윤택 연출, 연희단거리패, 동양극장 개관 60주년 기념공연 - 2000년 4월 1일~5월 9일 명동창고극장, 김정택 연출, 극단 창작마을 - 2003년 3월 1일~23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이윤택 연출, 연희단거리패 - 2003년 5월 23일~6월 3일 문화일보홀, 이윤택 연출, 연희단거리패
관련도서
<이야기 근대연극사> 고설봉, 창작마을, 2000. <한국 근대극의 이론과 연극성> 신아영, 태학사, 1999. <동양극장의 연극인들> 김영무, 동문선, 1998. <한국 근대극의 재조명> 김미도, 현대미학사, 1995.
관련사이트
연희단거리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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