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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작품명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저자
김광규(金光圭)
구분
1970년대
저자
김광규(金光圭, 1941~) 1941년 1월 7일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대학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1975년 <문학과지성>에 시 <유무>, <영산>, <시론> 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하였다. 1979년 첫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을 발간한 이후 시집 <반달곰에게>(1981), <아니다 그렇지 않다>(1989),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1998) 등을 발간하였다. 녹원 문학상(1981), 오늘의작가상(1981), 김수영문학상(1984) 등을 수상하였다. 현재 한양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김광규의 시는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즉 평범한 일상의 일들을 내용으로 하고, 형식 또한 시의 언어가 추구하던 긴장을 오히려 이완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함축이나 상징, 비유 등 시적 언어의 특징이라고 여겨져 왔던 요소들이 배제되며, 시와 산문 사이의 구획도 모호해진 일상시라는 새로운 영역이 개척된다. 그런데 <좀팽이처럼> 이후의 시들에게는 이러한 일상에 대한 지적 묘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연스러움’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리뷰
문학과지성사에서 1979년에 간행된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에 수록된 시이다. 대학생으로 4·19를 겪은 시인은 오랜만에 학창 시절의 친구들을 만난다. 어느덧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된 그들은 자잘한 일상 속에 주저앉아 “목소리를 낮추어” 생활과 직접 연관되는 월급과 물가 등을 화제에 올린다. 4월혁명은 그 세대의 자의식의 기반이며 양심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그들에게 부정적인 현실 구조를 타파하기 위한 순교자적 투신 같은 도덕적 열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들은 4월혁명이 그 내포적 의미로 머금고 있는 이상주의를 탕진한 채 현실에 안주하는 중년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결코 유보할 수 없는 삶의 권리”라고 말하는 김광규의 시작 태도를 잘 보여준다. 그의 시는 철저하게 객관주의를 지향하고 있는데, 이는 대상을 과장·왜곡하는 주관주의를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이다. 이처럼 김광규의 시는 지적 통어, 사실감의 확보, 커다란 흐름 속에서의 대상에 대한 차분한 관조를 통해 삶의 진실에 다가서려는 주체적 노력에서 흘러 나온다. 산문적 서술체로 실어 나르는 당대의 삶에 대한 평균적 인식은 그의 시 세계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김광규 시의 특징은 얼핏 형태적으로는 산문성, 내용적으로는 상식성으로 보이는 것이 놀라운 시적 긴장으로, 그리고 빛나는 지혜로 승화되는 과정에 있다. 그 승화를 가능케 하는 것은 김광규의 지적 성찰과 아이러니의 정신이다. 등단작 중 하나인 <영상(靈山)>은 유년의 신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영산은 시인의 유년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신비로운 존재인데, 성인이 된 시인은 그것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한다. 이 경우 흔히는 신비의 상실을 안타까워하거나 사라진 신비를 그리워하는 언술이 행해지는 법인데, 이 시는 그런 감정을 조금도 내보이지 않는다. 다만 신비의 부재를 현실로서 담담히 확인할 뿐이다. 그 담담함은 구문상이나 의미상의 평이함과도 상응한다. 그러나 그 담담함과 평이함의 이면에는 깊은 지적 성찰이 숨어 있다. 이 지적 성찰을 음미하고 저작함으로써만 우리는 김광규 시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묘비명(墓碑銘)>과 <도다리를 먹으며>는 어떤 시적 대상에 대한 관찰로부터 일정한 반성을 이끌어내는 구조로 되어 있다. <묘비명>에서는, ‘한 줄의 시는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행복과 권세와 부를 누리고 죽어서는 훌륭한 비석을 남긴 자의 묘비명을 바라보고, <도다리를 먹으며>에서는 ‘두 눈이 오른쪽에 몰려 붙은’ 도다리를 바라보는데, 시인은 그 바라봄들로부터 각각 역사의 기록의 정당성에 대한 반성, 좌우를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인간의 습성에 대한 반성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는 제도적인 것의 허위에 물든 자기를 반성한다.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던 학생 시절, 즉 순수와 정열의 시절로부터 18년이 지난 뒤 ‘우리’는 모두 제도적 삶 속에 깊숙이 편입되어 있다. 아무도 그것으로부터 일탈하지 못한다. 18년 전의 순수와 정열은 단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로 남아 있을 뿐이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라는 ‘바람의 속삭임’을 귓전으로 흘리고 ‘우리’는 제도적 삶의 ‘늪’으로 더욱 깊이 들어간다. 시 속의 ‘우리’는 그러하지만, 그런 ‘우리’에 대한 담담한 묘사는 그 자체로 반성의 행위이다. <크낙산의 마음>과 <동서남북>, <노동절>은 제도적 삶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을 자연에서 발견한다. <크낙산의 마음>의 산에는 ‘아무런 중심이 없’고 ‘어디서나 멧새들 지저귀는 소리/ 여울에 섞여 흘러가고’ ‘짙푸른 숲의 냄새/ 서늘하게 피어오른다.’ 요컨대 산은 제도화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동서남북>은 한반도의 자연에 남과 북의 분단이 존재하지 않음을 담담하면서도 아름다운 필치로 이야기 한다. 계절의 변화가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퍼져 가는 것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분단은 제도화의 한 극단적 양상이다. <노동절>은 꼭 노동절이 아니어도 좋은 장면을 묘사한다. 여기서 노동절은 노동자의 삶이나 권익과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공휴일이라는 의미로 나타난다. 대상은 공휴일의 주차장이다. 공휴일이어서 주차장은 텅 비어 있다. 이 텅 빈 주차장을 시인은 ‘부당한 온갖 점거를 벗어나/ 잠시 제자리를 찾자/ 쉬고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말하자면 제도적인 것에 의한 점거로부터 해방되어 일시적으로나마 자연의 상태로 돌아와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시인은 자연 체험으로부터 제도적 삶의 늪에 빠져 있는 일상에 대한 구원의 계기를 얻는다. ‘크낙산에서 돌아온 날은/ 이름없는 작은 산이 되어/ 집에서 마을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일시적인 숨구멍 트기에 불과하더라도 그것이 있음으로 해서 질식사를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린 게의 죽음>은 김광규 시의 일반적 문맥으로부터 조금 벗어난 시이다. 담담한 언술은 그이고, 새끼줄에 묶인 게를 제도에 묶인 인간의 비유로 본다면 의미상으로도 같은 맥락에 속한다 하겠지만, 그러나 ‘바다의 자유’를 찾아 아스팔트를 기어가다 트럭(그것도 군용 트럭이다!)에 깔려 죽는 어린 게의 비극적 이미지는 김광규 시에서 비교적 예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두 행이 특히 그러하다. ‘먼지 속에 썩어가는 어린 게의 시체’라는 행은 일탈을 허용하지 않는 제도적 폭력 앞에서의 비관적 전망으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마지막 행의 ‘아무도 보지 않는 찬란한 빛’이 그런 해석을 부분적이고 단순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것은 일상적 자아의 죽음을 통해 제도적 삶으로부터의 초월이 이루어지는 강렬한 이미지이다. 기실, 김광규의 시 쓰기의 이면에는 이 초월의 ‘찬란한 빛’이 은밀히 숨어서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판과 반성의 추동력으로서 말이다. ‘담담한 설득력 갖춘 지적 성찰의 시’, 성민엽, <한국대표시인선 50>, 중앙일보사, 1995
작가의 말
(……) 1975년 여름, 계간지 <문학과지성>에 네 편의 시를 발표한 것이 나에게는 창작의 공식적 출발점이었다. 이른바 데뷔 작품 가운데 <시론(詩論)>이라는 시도 있었다. 자기의 시론을 시로써 표현한 시인은 나만은 아니었지만, 첫 번째 발표작으로 ‘시론’을 쓴 예는 드물 것이다. 어쩌면 당돌하고 건방진 수작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내 나이가 삼십대 중반이었고, 내 또래 문인들이 문단의 중견으로 발돋움하던 시점이었음을 감안하면, 늦깍이다운 등단선언이었다. 이 시는 나의 첫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에 첫 번째 작품으로 수록되었다. 동시대의 언어가 권력과 자본에 의하여 조작되고 왜곡되고 훼손되는 현실 속에서 ‘헛된 절망을 되풀이’한 이 시는 첫 시집을 여는 서시로서는 부적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번째 시 <영상(靈山)>과 함께 언어와 문학에 대한 나의 시학을 솔직하게 토로한 것이다. “언어와 더불어 사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다만 말하여질 수 없는/ 소리를” 하나의 형상으로 포착해 보고자 시도한다. 끝내 성공할 수 없는 이 시도를 나는 지금까지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시는 오늘날 멋진 아리아가 될 수 없다. 오페라에 비유한다면, 테너나 소프라노의 열창으로 관객을 감동시키는 아리아가 한때 시인을 의미하던 가객의 몫으로부터 이제는 다른 매체의 인기 직종으로 옮겨 갔다. 시인이 아직도 무엇인가 읊조린다면, 그것은 레시터티브에 불과하다. 하지만 노래와 연기를 연결시키며 오페라를 끌고 가는 레시터티브의 역할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판소리에서 아니리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창으로만 판소리가 될 수 없고, 아리아만 가지고 오페라를 꾸밀 수 없음을 인식하는 것은, 시를 아니리나 레시터티브에 비유하는 것과는 물론 다르다. 다만 오늘날의 삶에서 시가 차지하는 위상을 나는 그렇게 본다. 이 보잘것없는 처지에서 시가 예술로서의 필연적 존재 이유를 발견하고, 스스로의 품위를 지켜 나가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나의 다섯 번째 시집 제목 ‘아니리’는 여기에서 유래한다. 시의 현실적 입지가 약화되는 현상은 지난 십여 년 동안 더욱 가속화되었다. 아니리라 레시터티브는 적어도 커뮤니케이션의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 요즘 말을 빌리자면 콘텐츠를 전달 내지는 매개하는 역할을 했었다. 그러나 전자매체의 영향력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가상현실이 현실의 영역을 확대시키고 삽시간에 상상의 시공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른바 시적 상상력의 자장이 축소된 반면에, 확대된 현실의 온갖 폭력이 언어를 유린하고 있다. 아직도 수많은 시집이 출판되고 시 전문지도 심심찮게 창간되지만, 시의 독자는 날로 줄어들고, 일부 문인들만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시를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은밀한 속삭임도 못 되고, 일방적인 중얼거림으로 바뀌었다. 시인은 이제 혼자서 중얼거리는 이상한 사람으로 되어 버린 것이다. ‘중얼거리다’는 상대방을 전제로 하지 않고, 메시지의 전달을 원하지도 않는, 글자 그대로 절대적 고백에 접근하는 언술행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뮤니케이션의 종언을 개의치 않는 중얼거림이 도처에서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차렷! 한마디로 연대 병력을 움직이고 목숨을 바쳐 싸우겠습니다 여러분! 사랑해 당신을 달콤한 속삭임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사로잡고 짜장면 하나에 짬뽕 둘! 경제 성장률 하향 조정! 임금 총액 동결!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 자반고등어나 먹갈치 사려! 저마다 목청 높여 부르짖는데 중얼중얼 혼자서 지껄이는 말 누가 들으려 하겠는가 어디를 가나 그래도 바람결에 실려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소리 들리지 않는 곳 없고 한평생 중얼거리는 사람 또한 없지 않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중얼중얼중얼 나의 일곱 번째 시집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에 실린 위의 시는 <시론>에서 시작된 나의 시학이 사반세기 동안 천천히 그려온 궤적의 종점 부근이다. 언어에 대한 부정적 절망에서 출발하여, 오백여 편의 시를 쓰는 동안 아니리를 거쳐서 겨우 중얼거림에 도달했다니, 이것은 발전인가 퇴보인가 아니면 제자리걸음인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격동과 변화의 한 세대를 살아보면서 너무나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한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끔 ‘당신은 중얼거리는 방식이 틀렸다’고 욕을 먹기도 했고, 때로는 ‘참 잘 중얼거렸다’고 상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나는 왜 중얼거리는가’에 관하여 이렇게 글을 쓰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어디서나 들려오고 나처럼 ‘한평생 중얼거리는 사람 또한’ 없지 않다는 사실이다. 심지어는 ‘중얼중얼/ 혼자서 지껄이는 말’을 찾아와 들으려는 사람도 있다. 시 낭송회를 개최한다든가, 한국 작가들이 외국에서 열리는 작품 낭독회에 초대받는다든가, 시 낭송을 담은 카세트 테이프나 시디가 판매된다든가 하는 것들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일사불란한 논리와 정확한 통계숫자와 온갖 미사여구를 총동원하여 사자후를 토하는 광경을 우리는 정치집회에서 자주 보게 된다.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 선거 때가 되면 온 나라가 확성기의 소음으로 가득 차고, 일당 얼마씩에 동원된 박수부대의 연호로 유세장이 들썩거린다. 그러나 밀물처럼 몰려온 이러한 함성의 분출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면, 일상을 되찾은 우리의 주변에서 풀벌레의 노래가 다시 들려 오고, 어디선가 낮은 목소리로 여전히 중얼거린다. 소음과 연호가 우리의 귀를 가득 채웠을 때도 이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다만 들리지 않았을 뿐이다. 큰소리로 똑똑히 말하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것도 인간이 오랜 역사를 두고 간직해 온 특유의 언술방식이다. 한번 이 낮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면, 이 세상의 온갖 소란한 외침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며, 한 시간에 걸친 시정연설이나, 숫자로 가득한 삼백 페이지의 경제백서가 얼마나 허망한지 알게 될 것이다. ‘중얼거리기 위하여’, 김광규,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열화당, 2004
관련도서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한국대표시인선 50>, 중앙일보사, 1995 <김광규 깊이 읽기>, 성민엽 편, 문학과지성사, 2001 <20세기 한국문학의 탐험 4>, 장석주, 시공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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