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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문 강에 삽을 씻고

작품명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저자
정희성(鄭喜成)
구분
1970년대
저자
정희성(鄭喜成, 1945~)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문과를 졸업한 후,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의 초기 시들은 전통적인 것, 신화적인 것에 대한 현대적 인식의 가능성을 시를 통해 점검하고 있으며, 언어의 압축을 꾀하면서 서정성의 진폭을 시험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적 특질은 그의 첫 시집 <답청>(1974)에 잘 드러나 있다. 그가 시적 형식의 자유로움과 감수성의 역동적 요건을 확보하기 시작한 것은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를 내놓을 무렵부터이다. 이 시집을 통해 그의 시 정신의 지향이 두 방향으로 자리 잡혀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시적 진실성에 대한 관심이며 다른 하나는 민중적인 삶에 대한 애착이다. 이 두 가지의 지향은 그의 시가 일상적인 삶의 문제와 현실의 국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만든 원동력이 된다. 그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민중적인 삶에 대한 애착과 거기서 확인할 수 있는 삶의 진실성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밀도 있게 그려내었다. 민중의 일상적인 삶에 내재해 있는 건강한 생명력을 포괄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그의 시적 성과는 감정의 절제와 거기서 비롯되는 긴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실현된다. 이러한 정서의 균형과 내면적인 의지의 충일 상태는 그의 시가 성취해 낸 미적 요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집으로는 <답청>(1974)과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1991) 등이 있다.
리뷰
1978년 펴낸 정희성의 대표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의 표제작. 이 무렵 시인은 눈을 낮은 데로 돌려 여공, 노동자, 농민, 대장장이 같은 이 시대의 밑바닥에서 곤궁한 삶을 꾸려가는 계층의 삶을 노래한다. 그는 특히 노동자나 농민을 시적 화자로 내세운 시들로 비평가들의 눈길을 끈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가 그 한 예이다. ‘삽’은 노동의 신성함과 그것에 의지해 삶을 꾸려가는 노동자 자신의 운명을 함축하고 있는 이미지다. 날이 저문 뒤 노동자는 그 삽을 흐르는 물에 씻고 “사람들의 마을”로 돌아간다. 뛰어난 서정성과 고전적 품격이 조화를 이룬 이 시의 문면이 실어 나르는 것은 아무리 일해도 곤궁한 삶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는 노동자 계급에 분노와 실의다. 이 시는 지식인이 쓴 것이지만, 과감하게 그 화자로 날품팔이에 기대어 곤궁한 삶을 꾸려가는 노동자를 내세워 기층 계급의 고단한 삶과 생활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정희성의 데뷔작 <변신>(1970)에는 이제 막 20대 후반에 들어선 시인의 고통스런 현실인식이 사뭇 혼돈스런 모습으로 음울하게 각인되어 있다. 강변에 나아가 논개에게,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마디를 풀고 흐를 수 없는’ 답답한 민족현실을 절절히 호소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시에서 서정주체 ‘나’는 일제 강점기의 가난, 해방 직후 친일잔재의 발호, 4·19의 참상, 군부통지하의 억눌린 삶 등을 극히 어두운 어조로 노래한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그 시적 주제 및 표현의 유사성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작품은 뒷시기의 <노천(露天)>(1972)을 결행한 끝에 어렵게 다다른 중간 지점에서 태어난 것이 위에 예시한 작품들인 셈이다. 평명한 시어, 꼿꼿한 지사적 목소리, 비교적 견고한 시적 형식, 그리고 명료한 현실인식 등에 뒷받침된 <불망기>에서, ‘압핀이 꽂혀 있는 꿈, 포르마린 냄새, 조국의 이름에 붙은 관형사’ 등의 정치적 함의가 무엇인가는 실상 자명한 것이다. 저 서슬 퍼런 유신독재 시절의 혹독한 민중압제와 암울한 사회적 축도를 암유하는 강력한 시적 소도구들인 까닭이다. 물론 이 작품이 당대 현실의 명징한 시적 개괄이라는 점에서 그 리얼리즘적 성취는 매우 값진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지식인의 수동주의적 시선에 갇혀 있다. 이러한 사정은 그 시적 성취도에 있어 오히려 이에 못 미치는 <지하도 입구에 서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거침없는 풍자를 통한 예언자적 목소리와 탄력적인 민중적 가락에 힘입어 한결 툭 트인 시적 전망을 보유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8·15를 위한 북소리>에서 어느 만큼 해소된다. 정희성 시의 가장 빛나는 리얼리즘적 성취는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에서 비로소 두드러진다. 바야흐로 역사발전의 주도적 계층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노동자를 막바로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 곤핍한 삶을 시적 소재로 다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외형상 <노천>의 연장선상에 놓이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본질적으로 이 양자는 현격한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이 시는 <노천>의 경우와는 달리, ‘지식인 화자에 의한 시적 어조의 불균형’ 문제가 말끔히 해소됨으로써 이른바 미학적 거리를 확보하기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시인 자신의 감정을 엄격히 통제하고 스스로를 노동자의 처지에 전적으로 밀착시킴으로써 획득한 시적 승리라 할 수 있다. 언뜻 ‘샛강’ 취로 사업장의 날품팔이 노동자의 출구 없는 삶을 그저 평면적으로 노래한 것처럼 보이는 이 작품의 구조는 그러나 의외로 간단치 않다. 시적 통사 면에서 이 시는 정확히 4행씩 네 단락으로 구분되는데, 그 두 번째 단락의 지배적인 시적 정서는 화자가 자신의 무능력을 깊이 질타하는 모습, 즉 강한 자책감의 성격을 띤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제2~3행과 13~14행에 각각 두 번씩 반복되는 ‘우리가 저와 같아서’와 ‘삽을 씻다’의 문맥적 의미를 잘 살펴보면, 이 작품을 관통하는 시적 분위기는 그와는 정히 상반된 것임을 쉽사리 깨닫게 된다. 제2행이 함축하는 바는 무엇인가. 삶은 쉬임 없는 물의 흐름과 같이 생동하는 것이므로 거기에는 한시도 슬픔과 좌절이 끼여들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가 하면, 제13행의 그것은 ‘저문 샛강바닥에 떠오르는 달’의 휘황하면서도 비극적인 낭만적 이미지로 표상된다. 이는 절망 속에서도 마침내 희망을 투시해내려는 시적 자아의 건강한 모습을 쉽게 연상시킨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강력한 남성 상징으로서의 ‘삽’을 ‘씻는다’는 것은 삶의 무기를 한층 날카롭게 벼리어 밝은 미래를 앞당기고자 하는 거룩한 통과의례에 다름 아니며, 이때 8행과 16행의 ‘돌아가다’는 문득 하나의 역사적 당위로 전화되기에 이른다. 이 작품이 70년대 시사에서 우뚝한 업적 또는 뛰어난 절창으로 되는 또 다른 사연이 있다. 왜곡된 근대화 과정에서 반드시 수반되게 마련인 자연과 인간의 괴리 또는 환경파괴의 위험성을 앞질러 통찰한 ‘생태시’의 전위적 존재로 넉넉히 자리매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얼비친 이그러진 달의 형상이야말로 다름아닌 파행적인 근대화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인가. 시적 현실의 견고함과는 딴판으로 그윽한 서정적 분위기를 연출해 보이고 있는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1979)에서 화자는 자신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연약한 이웃에 대해 한없는 연민과 동정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은밀하게 토로한다. <불망기>의 상황처럼 여전히 ‘압핀’에 꽂혀있는 ‘꿈’의 해방을 위하여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라고 결연히 다짐하는 데서 우리는 곧장 민중적 삶에 따스한 연대감을 표하는 시인 정희성과 마주하게 된다. 이는 시대의 궁핍에 힘겨워하는 이 시인의 비순응주의적 삶의 모습이 가장 생생하게 점묘되어 있는 <길>(1984)의 한 대목, ‘평생에 죄나 짓지 않고 살면 좋으련만/ 그렇게 살기가 죽기보다 어렵구나/ 어쩌랴, 바람이 딴 데서 불어와도/ 마음 단단히 먹고/ 한치도 얼굴을 돌리지 말아야지’에서 한층 약여한 바가 있다. ‘6·29’라는 희대의 정치적 사기극 위에서 위태로운 존명을 내디딘 노태우 정권 첫해에 행해진 ‘갑오농민전쟁 전적지 답사’ 보고서라 할 수 있는 <황토현에서 곰나루까지>(1989)는 시인의 이 같은 준엄한 역사인식에서 솟구쳐 나온 하나의 시적 백미이자, 지금도 구태의연한 지역차별주의의 횡행 속에서 이전투구의 형국으로 치닫기만 하는 오늘의 어지러운 정치판에 대한 서릿발 같은 경고이기도 하다. ‘지사적 목소리, 견고한 리얼리즘의 시적 성취’, 윤영천, <한국대표시인선 50>, 중앙일보사, 1995
작가의 말
내 시의 독자 가운데 아직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상당수는 첫 시집 <답청>에서 받은 인상에 기대를 걸고 있으며, 그 후 변화를 회의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독자들의 느낌과는 다른 입장에서 오히려 <답청>의 시세계를 부정하고 싶다. 역사의 발전을 믿고 이 땅의 여러 가지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무언가를 이룩해 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양심적인 사람들의 문학과 행동을 뒤늦게나마 자각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을 나는 기쁘게 생각한다. 아무런 부끄럼 없이 이 책을 권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시집을 내놓는 지금 나는 특히 이 시대를 사는 억압받는 민중들에게 이 시가 읽혀지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한다. 그들이야말로 내 시의 진정한 비판자라는 생각 밑에서 이 몇 년 동안 나는 시를 써왔다. 그런 지금, 나는 무엇보다 시라는 허울 좋은 이름에 값하기 위하여 더 큰 진실을 놓쳐버린 것은 아닌가 반문하고 두려워한다.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주로 내가 사는 시대의 모순과 그 속에서 핍박 받는 사람들의 슬픔에 관해 써왔지만, 그것이 진정한 신념과 희망과 용기를 주는 데 이르지 못했음을 부끄럽게 여긴다. 이러한 성과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리라. 그러나 한 시대의 사회적 모순이야말로 바로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원동력이며 억압받는 사람들의 슬픔이 어느 땐가는 밝은 웃음으로 꽃필 것임을 나는 믿는다. ‘후기’,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창작과비평사, 1978
관련도서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장석주, 시공사, 2000 <한국대표시인선 50>, 중앙일보사, 1995 <문학과 현대사상>, 구중서, 문학동네, 1996 <한국 현대시 연구>, 김용직 외, 민음사, 1989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창작과비평사,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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