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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행

작품명
월행
저자
송기원(宋基元)
구분
1970년대
작품소개
1977년 <창작과비평>에 발표한 송기원의 단편소설. 이십 년 동안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도망자 신세로 지내다가 중병마저 걸린 한 사내가 아들을 데리고 귀향하지만, 도망친 사내로 인해 큰 대가를 치른 노인은 돌아온 아들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한 집안과 마을의 몰락 등 민족사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농촌마을이 광기에 휩싸인 살육의 현장으로 변해가는 과정과 참혹했던 과거의 상흔이 아물지 않은 현실을 한 가족의 비극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저자
송기원(宋基元, 1947~) 1947년 12월 8일 전남 보성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및 서라벌예대를 졸업했다. <실천문학>과 <민중교육>의 발행인으로 활동했으며, 1980년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3년여의 구금생활을 한데 이어 1986년에는 무크지 <민중교육> 문제로 다시 영어의 몸의 되는 등 1980년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197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경외성서(經外聖書)>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회복의 노래>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열아홉 살의 시>(1977), <다시 월문리에서>(1984), <인도로 간 예수>(1995) 등을 간행한 바 있다. 고통스러운 환경 속에서 피워내는 삶의 아름다움을 그린 <인도로 간 예수>, 청산거사 고한영의 수련기를 다룬 <청산>(1997), 선(禪)을 찾아 떠나는 인물의 행적을 담은 <안으로의 여행>(1999) 등의 작품을 통해 민중적 진실과 진정한 자아찾기를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다. 이 외에 소외된 민중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긴 <마음 속 붉은 꽃잎>(1996) 등의 시집이 있다. 시대의 진실을 진지하게 파헤치는 시인으로, 소설에 있어서도 탁월한 민중적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3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리뷰
송기원은 197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회복기의 노래>가, 그리고 <중앙일보>에 소설 <경외성서(經外聖書)>가 당선됨으로써 공식적인 문인의 길로 들어섰다. 그 후 작가는 창작집 <월행>(1979)과 <다시 월문리에서>(1984)를 간행했고, 시집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1983)와 <마음속 붉은 꽃잎>(1990)도 내었다. 작가로서의 활동기간이 상당히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송기원이 내놓은 이러한 세목들은 의외로 비쳐질 수 있다. 그만큼 그는 과작의 작가에 해당된다. 흔히 등단 이후 의욕적인 창작활동을 하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여러 권의 창작집과 장편소설들로 자신을 빛나게 치장하고 있는 현실에 송기원은 얼마만큼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송기원의 작품활동이 이처럼 지지부진했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뭐라고 단정지어 말할 순 없지만 한 가지 추측이 허용된다면, 지나친 폐쇄성에서 오는 자기고립주의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송기원은 남들보다 특이한 성장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가가 고백한 것처럼, 그는 화목하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으며, 학교에서는 문제아의 취급을 받으면서 성장기를 보냈다. 그러한 편편치 못한 상황들이 작가를 여타의 사람들과 구분시키는 계기로 작용했고, 결국은 자기혐오증, 자기비하증을 일으키게끔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감정들이 송기원을 폐쇄적으로 몰아갔고, 또한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출구를 막는 장애물로 작용했다. 그리하여 그는 <아름다운 얼굴>이라는 자전적 소설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졸업기념 사진첩에서 자신의 사진을 오려 내는 자학증세를 보여야 했고, 사회에서는 건달패 노릇이나 하면서 지내야 했다. 그러다가 문학을 만났다. 그는 똘마니 시절 건달패를 따라 노름빚을 받으러 갔다가 상대편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친척집에 숨어 사는 신세가 되었는데, 그때 바로 문학을 만난 것이다. (……) 문학은 극심한 자기혐오증에 시달리고 있던 송기원에게 일종의 구원의 샘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는 문학과의 교통 속에서 세상에의 출구를 발견했고 비로소 자신도 세상 사람들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송기원은 소설보다는 우회적 속성을 가진 시라는 장르에 더 관심을 갖는 장르상의 편향성을 보인다. 산문의 솔직성 때문에 자신의 치부가 세상에 낱낱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웠던 까닭이다. 송기원 문학의 본질은 바로 이 뒤틀린 개인사의 비극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작품이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에 찬란히 성숙했던 도도한 민중문학의 물결에 약간 비켜서 있었던 것도, 그가 과작의 작가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것도 바로 개인사의 비극에서 오는 한계, 즉 지나친 자기 고립주의가 가져다 준 폐쇄성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송기원은 개인사의 비극을 가족사적인 테두리 내에서만 이해했을 뿐, 그것이 현대사가 파행적으로 진행되면서 비롯된, 보편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 송기원이 자신의 개인사적인 비극을 사회사적인 비극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된 것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월문리의 연작들에서이다. 송기원은 이 연작에서 그를 지금껏 가두고 있었던 폐쇄성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는바, 그것은 곧 생생히 살아 숨쉬는 민중들의 노래와 숨결들을 듣고 마시면서부터이다. 송기원 문학의 개화(開花)는 바로 비극적인 개인사가 보편적인 사회사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갈 때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개인성의 탈피와 사회성의 획득이 상호 맞물리면서 가능해진다. 물론 그 도정에 가로 놓인 것이 가족이다. 가족의 굴레에 대한 극복이야말로 송기원이 자신의 폐쇄성을 벗어날 수 있었던 진정한 길이었으며, 또한 사회의 문으로 나아가는 배출구였다. 따라서 송기원이 월문리라는 열린 공간에 자신의 장(場)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가족이라는 테두리, 곧 자신을 지금껏 짓눌러 왔던 비극적인 개인사에 대한 이해와 용서가 필요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처럼 보인다. 그것이 <어허라 달궁>에서의 아버지에 대한 용서, 그리고 <다시 월문리에서>의 어머니의 한에 대한 이해이다. <어허라 달궁>은 늙은 어머니와 서른이 넘은 자식 두 식구가 경기도 서해안의 한 빈촌, 즉 월문리에 들어와서 정착하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자식은 이 마을에 들어올 즈음 동네 사내의 죽음과 그 아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잊혀졌던, 아니 잊혀질 수 없었던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그러한 기억들은 동네 사내의 죽음과 상호 교직되면서 반복을 거듭하는데, 자식의 뇌리 속에 들어오는 아버지에 대한 모습들은 자식에게 굴레로만 작용해 온 모멸감들뿐이다. 자식은 그런 부정적인 아버지의 모습 속에서만 성장하였던 까닭에, 아버지는 언제나 용서받을 수 없는 타자로 나타난다. (……) 송기원에게는 어머니 역시 아버지 못지않게 사회와 교통하는 데 있어서 장애였다. 물론 어머니는 작가에게 직접적인 한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니었지만, 어머니가 살아온 한많은 세월이야말로 자신에게는 또 다른 굴레였던 셈이다. <다시 월문리에서>는 송기원이 어머니에 대해 갖는 그러한 굴레들이 어떤 것이었으며, 또 이를 어떻게 벗어나는가를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1980년대 초 어떤 조작된 사건에 의해 감옥에 들어갔다가 풀려나 다시 월문리에 들어오게 된 과정을 상세히 적어 놓고 있다. 물론 어머니는 자식이 감옥에 가 있는 동안 그 충격으로 자살을 한 후이다. 자식은 그런 어머니의 산소에 벌초를 하면서 어머니의 한을 이해하며 화해를 시도한다. 나는 기진맥진해 가면서도 결국 아카시아숲을 모두 쳐냈다. 그것이 봉분임을 확인한 순간 나는 너무 지친 나머지 어머니 산소 앞에 벌렁 나자빠져 버렸다 문득 잘했다,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 오는 듯했다. 나는 어린애처럼 자랑스러운 기분으로 몸을 뒤집어 어머니의 산소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 화해합시다.”(<다시 월문리에서>) 여기서 자식이 어머니에게 “이제 화해합시다”라고 하는 것은 바로 어머니의 삶에 대한 자식의 이해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라는 부권에 짓눌리고, 그러한 억압 속에서 형성된 그녀의 한은 자식의 삶에 또 다른 짐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화해란 서로 모순 충돌하는 대상간의 교통이자 일체감에 의해 이루어진다. <다시 월문리에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자식이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을 말끔히 치우고 “그렇게 자리에 누워서 나는 어느 사이에 자신이 바로 이 폐가의 일부가 되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느 사이에 나는 또다시 어머니와 내가 한몸이 되어 있는 것을 깨달”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송기원 문학에 있어 이러하니 화해 내지 이해는 <다시 월문리에서>나 <어허라 달궁>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초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월행>이나 <배소의 꽃>의 경우도 그 주제는 서로 대립되는 대상들간의 화해로 되어 있다. 가령 <월행>에서 이념적 원인에 의해 가족 사이에 형성된 원한이 아버지의 중재에 의해 화해되는 경우나, <배소의 꽃>에서 월곡댁과 우리집 사이에 형성된 30년 전의 갈등이 주인공인 나에 의해 화해되는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그러나 이들 작품에서 드러나는 화해의식들은 약간의 의도성이 가미된 관념적인 소설적 장치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데 비해, <다시 월문리에서>나 <어허라 달궁>에서의 화해는 관념적인 요소가 거의 사라진 실제 생활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 ‘자기환멸을 벗어나는 길’, 송기한, <아름다운 얼굴 얼음벽의 풀 外>, 동아출판사. 1995
작가의 말
모두들 어려운 시절에 소설집이랍시고 내는 마음이 편할 리만은 없다. 이 땅에 있어서 ‘창작의 자유’ 혹은 ‘언론의 자유’라는 절대의 문제와 힘겹게 싸우다가 희생당하고 있는 여러분이 있는가 하면, 그런 한편에서 버젓이 창작집을 내는 스스로가 어쩔 수 없이 자괴스럽다. 또한 이 한 권의 소설집이 이 땅이 안고 있는 많은 어려움들에 대해서 과연 얼마만한 관심을 기울였는가를 자문해볼 때 부끄러움을 넘어서 참담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창작집을 내는 뻔뻔스러움을 변명한다면 그 동안의 작품활동을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고, 또한 이 부끄러운 창작집을 도약대로 삼아 보다 힘차고 뜨거운 문학의 길로 뛰어나가고자 하는 바람 때문이다. 첫 창작집에 나왔던 <월행>, <연못 시장 은정이> 등을 재수록하는 것도 순전히 자신에 대한 정리와 거기서 오는 반성의 의미에서임을 부연한다. 바라건대 이 소설집이 나의 무질서한 삶에 보다 아픈 채찍질이 되기를……. ‘후기’, 송기원, <다시 월문리에서>, 창작과비평사, 1984
관련도서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아름다운 얼굴 외>, 송기원·김향숙, 동아출판사, 1995 <다시 월문리에서>, 송기원, 창작과비평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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