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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작품명
노을
저자
김원일(金源一)
구분
1970년대
작품소개
개요 1977년 9월부터 1978년 9월까지 <현대문학>에 연재된 김원일의 장편소설. 1978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하였다. <노을>은 한마디로 한 개인의 삶에 깊숙하게 각인되어 있는 분단의 상처를 드러내고 그 상처의 치유방법을 모색한 소설이며, 발표 당시 분단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소설로 평가된 바 있다. 한마디로 <노을>은 과거의 상처(혹은 분단의 상처)는 이데올로기에 너무 빠져 인간이 인간다움을 상실한 데서 연유한 것이며, 이것의 극복은 인간다운 본성을 회복하는, 곧 사랑과 용서로 서로를 이해하는 것에서 가능하다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남북 분단의 원인과 그 극복 방안에 대한 전혀 새로운 시선이며, 이후 여러 작가들이 이 관점을 계승함으로써 분단문학의 중요한 이정표로 자리한다. 또한 <노을>에서 취한 귀향형 구조, 과거와 현재의 교차 등의 소설적 방법은 이후에 등장한 여러 소설의 서사적 기법과 이야기의 짜임새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내용 아픈 과거가 담긴 고향에 대해 무조건 거부반응을 보이던 갑수는 삼촌의 죽음으로 어쩔 수 없이 고향을 찾게 된다. 갑수의 아버지는 백정이었다. 백정이었지만 인간다움을 잃지 않았던 김삼조는 광복 직후 좌익 이데올로기에 깊숙하게 빠져들면서 이른바 ‘사람 백정’이 되고 만다. 그리하여 갑수의 행복했던 유년기는 철저하게 으스러지며, 갑수의 어린 영혼에는 어린아이가 품음직한 꿈 대신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 그리고 아버지에게 허황된 이데올로기를 전달한 인물들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 찬다. 그러나 29년이라는 세월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하고 결국 주인공은 아버지를 용서한다. 갑수는 광복 직후의 그 긴박했던 역사가 인간에게서 인간성을 앗아가 버렸고, 인간성을 상실한 이데올로기의 탐닉이 사람들 사이를 혹은 남과 북을 갈라놓았으며, 따라서 그를 이데올로기에 허우적거리게 한 인물 모두가 역사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불행했던 과거와 화해하고 또 나아가서는 당신의 가해자도 같은 상황의 피해자인만큼 사랑과 용서로 서로 동질감을 회복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저자
김원일(金源一, 1942~) 1942년 3월 15일 경남 진해군 진영읍 진영리에서 3남 1녀의 장남으로 출생. 대구농림고등학교와 서라벌예대를 졸업하였고, 다시 영남대학교를 거쳐 단국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66년 대구 <매일신문>의 <매일문학상>에 단편 소설 <1961년 알제리아>가 당선되었으며, 1967년 <현대문학> 제1회 장편소설공모에 <어둠의 축제>가 준 당선되며 등단하였다. 1973년 자신의 가족사를 보편화시킨 <어둠의 혼>을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후 한 가족의 가족사에 깊게 새겨진 분단의 상처를 주제로 한 <노을>(1978), <미망>(1982), <마당 깊은 집>(1988) 등과 광복 직후와 한국전쟁 시기의 한국사회를 총체적으로 형상화한 <불의 제전>(1983), <겨울 골짜기>(1987) 등의 소설을 발표하면서 대표적인 분단문학 작가로 소설사적 위상을 확립하였다. 1973년 창작집 <어둠의 혼> 발간을 시작으로, <오늘 부는 바람>(1976), <도요새에 관한 명상>(1979), <환멸을 찾아서>(1984) 등과 함께 장편소설<진토(塵土)>(1977)와 <노을>(1978), <불의 제전> 1부(1982), <바람과 강>(1985), <겨울골짜기>(1987), <마당 깊은 집>(1988), <늘 푸른 소나무>(전9권, 1994)를 발간하였다. 1974년 현대문학상, 1978년 반공문학상 대통령상(후에 대한민국문학상으로 개칭), 1990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리뷰
김원일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분단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초기의 실존적 경향의 소설들로부터 일제하 식민지 시대의 역사를 다룬 최초의 <늘 푸른 소나무>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세계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상당한 변화를 보여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분단작가’라는 틀로 자리매김하려는 것은 아마도 민족분단의 비극과 모순의 문제를 그만큼 집요하게 다룬 작가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노을>과 <불의 제전>과 같은 뛰어난 장편소설들뿐 아니라 <분단소설선>이라는 제목으로 모은 <달맞이꽃>의 여러 중·단편소설에 이르기까지 그는 다각적으로 분단문제를 파헤치면서 소설의 언어로 이야기해 온 작가이다. 그는 왜 이처럼 육이오 전쟁을 전후로 한 격동의 시대와 파란 많은 사람을 줄곧 이야기의 소재로 이끌어 오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은 그의 부친이 직업적인 공산주의자로 월북한 집안의 장남으로서 겪었던 독특한 체험 때문이라거나 그 스스로 ‘조국 분단의 문제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첨예한 이슈다’라고 생각할 만큼 확고한 시대적 인식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전쟁을 전후로 겪은 성장과정의 체험과 본격적인 문학의 높이에 선 지식인 작가로서의 시대적 인식의 상승작용을 일으켜 그는 분단을 주제로 한 어둡고 풍부한 여러 자료들로 그만이 이룩할 수 있는 독특한 문학적 성채를 구축한 작가가 되었다. (……) <노을>은 육이오라는 민족적 비극의 참상과 그 비극의 중압으로부터 아직 벗어나지 못한 역사적 현실을 본격적으로 다루면서 작가의 문학적 성과를 높인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일인칭의 시점은 어린아이의 경우와 어른의 경우로 나누어진다. 어른이 된 현재의 시점과 과거의 시점이 교차되고 있는 것이다. 고향에서 어두운 공포의 체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한 고향의 상처와 기억을 잊으려고 하면서, 떠나온 지 삼십 년 가까이 된 중년의 출판사 직원인 ‘나’는 어느 여름날, 고향에 있는 삼촌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어두웠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어른이 된 현재의 ‘나’와 어린 시절의 ‘나’는 동일한 존재이면서 또한 구별되고 있는데, 그 구별과 전환은 극적인 긴장의 전개로 이루어져 있다. 대략 1장, 3장, 5장, 7장이 현재의 ‘나’의 시점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 것이라면, 2장, 4장, 6장은 어린 시절의 ‘나’의 체험이 주축을 이룬다. 그 두 개의 ‘나’의 시점은 단조롭게 병치되지 않고, 마치 의식의 지속적 흐름 속에서 교체되듯이 이어진다. 그리하여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의식과 기억의 지속에 의해 일체를 이루는 한편, 상충하고 또한 상호적인 영향을 주고받는다. 어린 시절의 체험은 생생히 재현되고 어른이 된 ‘나’의 입장에서 반추되어 알게 모르게 현재적인 상황의 이해와 해석의 조명을 받는다면, 또한 어린 시절의 ‘나’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여러 부분들이 환기됨으로써 현재의 ‘나’의 의식과 상념을 어둡게 짓누른다. 사건의 빠른 전개, 적절한 내면묘사와 서정성의 표현, 자연스럽게 농축된 언어 구사 등은 이 소설의 이야기를 빈틈없는 사실성의 내용과 흐름을 구성하면서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요소들이다. 그 이야기는 마치 오랜 연습 끝에 뛰어난 조화와 화음을 만들어 낸 오케스트라의 공연처럼, 미세한 부분들에 대한 치밀한 배려를 바탕으로 전체적인 다양성과 통일성을 이룬다. 이 소설의 제목처럼, 노을로 시작했다가 노을로 끝나는 소설의 현재의 ‘나’로부터 시작하여 며칠 후의 현재의 ‘나’로 돌아오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그 회귀는 이미 변증법적 변화를 거친 후의 출발지점으로 돌아온 자아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 1장에서 고향을 연상하게 된 노을빛이 공포의 핏빛인 것처럼, 고향과 소년 시절에 관련된 사건을 서술하는 대목에서는 피와 관련된 어휘들이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나’의 아버지의 신분이 백정이었다는 것도 칼과 피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노을>의 아버지는 <연>에서처럼 낭만적인 떠돌이 기질의 모습도 아니고, <어둠의 혼>에서처럼 좌익 지식인의 모습도 아니다. 그가 백정일 뿐 아니라, 야만적인 광기의 소유자로 그려져 있다는 것은 그만큼 고향과 집, 아버지의 기억을 공포의 붉은 빛으로 채색하는 효과를 거둔다. 또한 도수장에서 도살당하는 황소의 피,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잦은 폭력행사와 피의 상처, 피묻은 빗자루, 피묻은 옷, 도수장에서의 시체와 역겨운 피냄새 등 피와 관련된 표현이나 소도구들은 그만큼 섬뜩하고 두려운 느낌을 유지하게 한다. 그처럼 잔인하고 흉포한 일자무식의 백정 아버지는 남로당의 모의에 참여하고, 폭동에 가담하다가 나중에 경찰의 반격으로 쫓기던 중 자살했다는 후문을 남긴다. 이 과정에서 어린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혐오와 연민, 애정과 두려움이 뒤섞인 착잡한 감정을 갖는다. 백정이자 빨갱이였던 아버지, 그 아버지와의 인연을 끊고, 과거를 지워 버리듯이 근면하고 검소하게 살아온 소년은 서울의 유명한 출판사의 직원으로 비교적 안락한 중산층의 삶에 편입해 지낸다. 그러나 재일동포 진필제의 사건과 관련하여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되는 과정에서 ‘나’는 결국 고향의 비극적 사건이나 분단상황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고, 그것이 바로 시대의 모순과 질곡에 묶인 자신의 자화상임을 깨닫게 된다. 그런 점에서 분단의 비극은 아직 완결된 것이 아니고, 제도적으로나 심정적으로 그 비극의 모순들은 예기치 않은 상태에서 여러 형태로 돌출하여 통일을 꿈꾸는 민족의 앞날에 장애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요소들이 있고 없음의 사실적 문제가 아니라 그것들을 인식하고 극복하는 태도의 문제일 것이다. <노을>은 그런 점에서 작가가 분단 문제를 문학의 중요한 물줄기로 잡아 끌어올림으로써, 절망과 도피의 욕구를 자아내는 노을이 아닌, 빛과 희망과 통일에의 긍정적 의지로 연결될 수 있게 만든 작품으로 해석된다. (……) ‘분단문학의 확장과 현실인식의 심화’, 오생근, <마음의 감옥 外>, 동아출판사, 1995
작가의 말
(……) 내 연령층은 8·15 해방을 기억하지 못하고 소년시절에 민족 상잔의 전쟁을 겪었다. 농촌 인구가 팔십 퍼센트에 달했던 농경시대에 모두가 힘겹게 춘궁기를 넘겼다 보니 가난을 절실히 체험하며 성장했고, 둘러보면 주변의 작가들 중에는 의외로 결손가정 출신이 많다. 그런 헐벗은 경험은 다른 무엇보다 글로 쓰기에 알맞으므로 그들 역시 청년기를 맞은 1960년대 이후 쉽게 문학의 길로 접어들었을 것이다. 문학가가 되는 길은 재력, 인맥, 학력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로부터의 배움이 필요 없는 분야이다. 대본집에서 빌려 볼 망정 책이 길잡이요 공책과 필기구만 있으면 자신이 살아온 삶의 한 자락에 문학적 장치를 섞어 억하심정을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경상남도 소읍 장터거리에서 일정한 생업 없이 어영부영 살림을 꾸려갔던 식구 단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지금 따져 보면, 독자였던 아버지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코뮤니스트였다. 어머니와의 불화까지 겹쳐 아버지는 집에 붙어 있는 날이 거의 없었고, 집안 분위기는 늘 폐가처럼 음습하게 고즈넉했다. 아버지의 지하 암약에 따라 1948년 가족이 서울로 이주했으나 이년 뒤 전쟁을 만나 아버지는 단신 월북하고 남은 가족은 피난을 내려와 낯선 땅 대구에 정착했다. 나만이 고향의 먼 친척집에 맡겨져 초등학교를 가까스로 졸업했다. 읍내 주변 소작농들의 핍진한 삶, 뜨내기 장꾼들의 애환을 어린 눈으로 목격한 게 뒷날 내가 문학에 뜻을 두게 된 촉매가 되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1954년에 대구로 나가 가족과 합류했다. 그 뒤 우리 가족은 고난의 어려운 세월을 억척같았던 어머니의 힘으로 견뎌냈고, 나는 중학교 때부터 고학으로 대학을 마쳤다. 집안 형편이 공부에만 몰두할 수 없었고, 학교 공부에는 애초 재주가 없기도 했다. 하류학교만 다녔는데도 학업성적은 늘 중간 아래였다. 누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자폐에 가까운 울증, 홀연히 딴 생각에 사로잡히는 잡념 많은 사춘기에 나는 쉽게 문학의 길로 아련하게 빠져들었다. 그 동기는 토마스 만의 짧은 단편 <환멸>을 읽은 어느 날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다른 글에서 고백한 바 있다.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그 어떤 직업에도 적응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로 여겨질 때 여린 바이올린 선율처럼 예술적인 어떤 기미에 현혹되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그런 삶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심약한 사람도 이 세상에는 소수나마 존재한다는 예시였다. 그러므로 나는 시작부터가 생산적이고 힘찬, 현실성 강한 건강한 작품을 쓸 능력이 달린다는 데서 내 문학을 출발시켰다. 그런 초심을 지금까지 내 글의 결점임을 나는 알고 있으나 이를 만회해 보려는 어떤 작위적인 시도도 하지 않았다. 인간은 제 그릇에 담을 수 있는 양만큼 담게 마련이다. 좌익 아버지가 총살당한 하루 저녁을 소년의 시점으로 그려 1973년에 발표한 단편 <어둠의 혼>도 따지고 보면 가족사의 한 부분을 픽션으로 만들겠다는 작심 외, 민족 분단문제의 접근이란 이념성 없이 씌어졌다. 당시 나는 변변한 이론서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했고 우리의 현대사와 사회과학적 지식은 거의 상식선에 머문 정도였다.(……) 민주화운동의 대표적 탄압 사례인 1974년에 발생한 ‘민청학련’ 사건이 소시민 의식에 안주하던 나의 정신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나는 비로소 ‘당면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정치, 경제, 사회과학 서적을 열심히 탐독했다. 분명 부계 쪽 피의 작동은 또 다른 욕망이 내 심저에 숨어 있음을 발견했으나 망령처럼 따라다닌 아버지의 공포를 떨쳐내는 데는 나의 실천력을 자제케 했다. 그 후 팔십 년대 초반까지는 내 삶의 선택과 딛고 선 문학적 현실에 갈등을 겪은 어려운 고비였다. 1986년에 십팔 년 동안 봉직한 출판사 직장을 놓자 전업작가로서 글쓰기에 매달려, 내 소년기의 고단한 편린이 깔린 <마당 깊은 집>을 썼다. 그 즈음, 진보주의자와 노동 세력의 응집력이 폭발한 현실에서 나는 회의적인 지식인으로서 심적 갈등을 겪다, 이를 우회하는 다른 출구로 쓴 소설이 일제하 민족 변절자의 자기 정화 과정을 그린 <바람과 강>과 독일 성장소설을 바탕을 두고 일제하 우리 현실에 적응시켜 본 <늘 푸른 소나무>였다. 문학을 시작했을 때, 내 마음은 내가 소년기에 겪은 육이오 전쟁을 꼼꼼하게 기록해 보겠다고 작심했던 만큼, 십팔 년에 걸쳐 씌어진 <불의 제전>은 내가 가장 힘들여 쓴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나는 내가 소년기에 서울과 고향에서 겪었던 기억과, 내 청춘기에 자리잡은 육이오 전쟁을 바라본 관점에서 한 발도 움직이지 않은, 그러므로 어느 쪽 이념에도 경도되지 않고 전쟁 직후 우리네 삶을 진솔하게, 객관적 시점으로 그리려 노력했다. 이 긴 소설은 1950년 그 해 열 달간의 우리 민족이 당한 고통의 기록이다. 내가 최근에 쓴 연작소설 <슬픈 시간의 기억>은 젊었을 때 읽었던 서구 작가들의 ‘의식의 흐름’ 수법을 치매 과정에 있는 노인들을 매개로 시도해본 소설로, 역시 내가 즐겨 다루어 온 일제 치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고난의 긴 세월을 살아온 팔순 노인들의 치유되지 못한 시간의 기억모음집에 해당될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내 문학은 오늘, 이 자리의 현장성보다 육이오 전쟁 전후의 내가 살아온 소년기에 큰 줄기를 내리고 있음을 보게 된다. 어쩔 수 없는 나의 한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는 일에 능력껏 최선을 다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한계를 인식할 때가 있다. 아무리 해도 그 이상에 이를 수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때, 내가 여태 해 온 문학은 져 버린 꽃처럼 시들 수밖에 없음이 내가 나에게 묻더라도 자명한 이치이다. 그래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부지런한 습성대로 숨을 쉬는 한 무슨 일이든 해야 하기에, 쓰는 과정은 고통스럽더라도 그 작업이 그 중 내게는 손에 익은 분야요 보람있는 일이라 여겨 지금도 글을 쓴다. 불면증에 시달리다 언뜻 잠에서 깨면 사위가 고요한 새벽 세시쯤이다. 찬물 한 잔 마시고 담배 한 대 꼬나물고선 깜깜한 어둠을 밀치며 컴퓨터를 점등시킨다. ‘고단한 기억을 치유하기 위하여’, 김원일,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열화당, 2004
관련도서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장석주, 시공사, 2000 <치유와 회복의 서사>, 조회경, 푸른사상사, 2005 <김원일 깊이읽기>, 권오룡 편, 문학과지성사, 2002 <한국 문학 속의 도시와 이데올로기>, 이동하, 태학사, 1999 <마음의 감옥 외>, 김원일, 동아출판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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