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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기

작품명
영기
저자
이정환(李貞桓)
구분
1960년대
작품소개
1969년 <월간문학> 입선작 <영기(令旗)>는 소설가 이정환의 존재가 드러난 첫 작품으로 격변기 남사당패의 애환과 삶의 비애를 그린 작품이다. 부모 없이 마을 이장집에서 자라난 판쇠는 꼭두쇠 두보가 이끄는 남사당 패거리를 따라 나선다. 두보는 기량 면에서는 누구보다 뛰어난 꼭두쇠이지만 심한 기침병을 앓고 있고 걸립패니 서커스니 하는 통에 남사당 연희가 사람들로부터도 점차 외면당하고 있는 차였다. 두보는 삼십 리 길을 좇아온 판쇠에게 뭉클함을 느끼며 그에게 패거리의 영기(令旗)를 들게 한다. 새로 들어선 마을의 서낭당 인근에서는 한때 두보의 둘도 없는 동료였으나 두보의 처와 패거리를 데리고 몰래 떠나버린 흑달의 걸립패가 재주를 펼치고 있었다. 마을에서의 한판 놀이를 놓고 두보의 남사당과 흑달의 걸립패가 대결을 벌이게 된다. 결국 두보의 열두 발 상모와 흑달의 장구가 맞붙고 신기의 재주가 펼쳐지는 가운데, 흑달이 두보가 제 자식인 줄 알고 키우던 새미가 다른 이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두보는 결국 분노와 괴로움에 거품을 물고 쓰러진다. 도리어 흑달이 누구보다 슬퍼하며 두보의 시신을 거두고, 두보의 죽음 이후 남은 남사당패들은 흑달의 걸립패에 합류할 것을 의논한다. 한편, 흑달 패거리에게 영기를 빼앗길까 두려워진 판쇠는 영기를 들고 새미와 남사당패의 화주와 함께 새로운 길을 떠난다.
저자
이정환(李貞桓, 1930~1984) 아명 칠봉(七峰). 1930년 10월 18일 전북 전주 출생. 전주향상중학원, 남중학교, 농업학교 등을 다녔으나, 가정 사정으로 모두 중퇴했다. 1969년 <월간문학>에 단편 <영기>가 입선되었고, 이듬해 같은 잡지에 <안인진 탈출>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백인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소설집 <벌받는 화사(花蛇)>(1971), <까치방>(1975), <겨울 갈매기>(1976), <샛강>(1976) 등을 간행하였다. 그의 소설은 남사당패의 애환과 삶의 비애, 수인(囚人)들의 삶의 양상, 하층민의 밑바닥 생활을 주된 대상으로 삼았으며, 현실의 체험적 기록이라는 성격을 띠면서도 사실의 추구보다 소설적 허구성을 중시하는 강한 자의식을 보여준다.
리뷰
이정환의 삶은 그 자체가 한 편의 소설과 다름없습니다. (……) 전주가 고향인 그는 인근의 중학교와 농업학교 등을 다녔지만 가정 사정으로 모두 중퇴하였습니다. 전주농업학교에 다니던 중 한국전쟁이 나자 10대의 나이로 학도병에 지원합니다. 그러나 북한군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야간전투를 벌이다 포로로 잡혀 몇 개월의 포로생활을 하다 탈출에 성공하지요.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지내던 그는 다시 육군에 입대합니다. 하지만 군에 적응하지 못하고 탈영해 숨어 지내다가 붙잡혀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가 다시 특사로 출옥해 세상에 나왔다고 하니 참으로 특이한 경력의 소설가인 셈입니다. (……) ‘두보’의 최후는 비장미를 느끼게 합니다. 일반적으로 비장미는 냉정한 현실 앞에서 최후의 이상이 무릎 꿇고 마는 형국에서 비롯되는데, 두보의 최후 역시 안타깝지만 장렬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분노와 괴로움이 범벅이 되어 파란 빛이 감”도는 두보의 눈빛이라든지 “절망의 회오리”가 겹치는 회한을 묘사한 장면은 탁월합니다. 또 속 깊은 독자라면 ‘두보’와 ‘흑달’의 대결을 개인적 차원으로만 한정하지 않을 줄 압니다. 근대 이전의 인간과 사고방식이 서서히 소멸해가는 방식으로 이해할 것입니다. 물론 두보의 죽음 속에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삶에 대한 번민이 있을 수 있겠지요. 어쩌면 흑달을 포함해 다른 사람에 대한 용서도 들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은 두보로 상징되는 근대 이전의 기운이 소멸한다는 자체가 중요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흑달의 태도가 아닐까요? 최후의 대결을 통해 지난날에 대한 복수와 미움을 해소하지만 정작 두보의 죽음에 제일 먼저 달려와 섧게 울었다는 것은 사랑과 미움이 뒤엉키고, 예술과 인생이 착종된 이 소설의 주제를 잘 드러내주는 장면일 테니까요. 결국 작가는 근대화의 격랑 속에서 남사당패의 쇠락과정을 통해, 즉 두보와 흑달의 인생행로 및 대결을 통해 열두 발 상모처럼 휘감아 돌아가는 인간의 분노, 그리움, 용서, 애증 등을 보여준 셈입니다. (……) 작가는 두보의 운명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렸지만 나머지 세 사람의 운명에 대해서는 마침표를 찍지 않았습니다. 판쇠, 새미, 화주, 이 세 사람이 두보 이후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즉 두보의 후예들이 세상 혹은 운명과 대결하는 장면을 새로운 여로형(旅路型) 소설로 열어놓고 있는 셈입니다. 이들의 제각기 다른 처지와 실존적 선택은 예술의 선택으로 나타나지만 궁극에 가서는 거대한 근대와 맞서는 삶의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세 사람의 선택은 저마다 의미가 다릅니다. 먼저 화주의 선택은 ‘장영준 행중’을 재건하고자 한 ‘두보’의 길을 잇는 것입니다. ‘젊은 두보’ 혹은 ‘작은 두보’인 셈인데, 작가는 이러한 선택을 “해사한 얼굴의 화주 어른”으로 묘사함으로써 낙관적 기운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새미의 선택은 어떻습니까? 엄마를 찾아가야 할지 할머니를 찾아가야 할지 모르는 혼란스런 상황에 놓입니다. 소설의 결말은 일단 엄마도 할머니도 아닌 두보, 즉 죽은 아비의 길을 따릅니다. 마지막으로 판쇠의 선택은 무엇일까요? 판쇠는 누가 시켜서가 아닌 스스로의 결정으로 남사당패에 들어옵니다. 쇠락해가는 남사당패의 ‘두보 행중’에 자기 발로 걸어 들어온 것입니다. 따라서 판쇠야말로 거대한 근대화의 물결을 거스르며, 세상과 맞서는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새미와 함께 스스로 운명을 선택하고, 세계와 맞서자고 제안합니다. ‘고향의 재발견과 말의 힘’, 강미자·구자황 대담, <20세기 한국소설 : 이문구·박상륭·이정환>, 창작과비평사, 2005
작가의 말
첫 단편집을 펴내면서 뭐 따따부따한들 무엇이 얼마나 얻어지겠습니까마는, ‘후기’라 초해놓고, 좌사우고해 보니, 문득 내 살아 있는 몸뚱이가 만져지고 그저 즐거워, 이렇듯 점잖은 후기 자리에 넣기에는 초동네 머슴애 같은 육성만이 절 얼큰하게 들쑤셔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우선은 소설로 꿰고 이렇듯 창작집으로 꿰들매, 그것이 구슬인 듯 아닌 듯 알쏭달쏭하여, 미친 사내처럼 웃어 보았습니다. 티없는 옥이 되어 만백성까지야 어쩌지 못한다 하더라도 딱 한 사람 어떤 수인의 가슴에 투석한 돌처럼 나는 새가 되어 살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직도, 나의 까치방 창가에선, 저 검었던 나날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겁니다. 웅얼웅얼, 웅얼거리는 소리가 울려오지 않습니까? 이야기 대회를 벌이는 벽 속 화자들의 끝없이 애타함으로 울려오는 중입니다. 귀기에 매달려 제작하려 합네다. 그것은 저 하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거외다. 제가 사는 새벽은, 매일처럼 길조가 절 일깨워 놓고…… 수많은 화자들이 밤마다 베갯머리에 앉아 호소해 오는 것을…… ‘후기’, 이정환, <까치방>, 창작과비평사, 1976
관련도서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20세기 한국소설 : 이문구, 박상륭 외>, 최원식 외 편, 창작과비평사, 2005 <영기 외>, 이정환 외, 태극문화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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