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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선

작품명
목선
저자
한승원(韓勝源)
구분
1960년대
작품소개
개요 1968년 한승원의 등단작으로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품이다.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장흥 바다를 배경으로 하여, 가난한 갯가 사람들의 억척 같은 생활과 에로티시즘이라는 이후 한승원 작품의 중요한 요소를 표출하고 있는 작품이다. 내용 김 채취 머슴인 석주는 아내는 바람이 나서 도망쳐 버리고 이런 저런 잡일을 하며 허송 세월을 하고 있는 홀아비다. 그에게 희망이 생긴 것은 과부인 양산댁 일을 하면서 한겨울 품팔이의 대가로 김 채취선을 봄부터 가을까지 얻어 쓰기로 약정했기 때문이다. 배만 있으면 봄에는 오징어잡이를 하고 여름엔 장어잡이를 하여 자기 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배로 김 양식을 하면 한밑천 잡아 마음씨 고운 여자에게 장가들 수 있을 터였다. 문제가 생긴 것은 양산댁이 갑자기 배를 빌려주지 못하겠다고 하고 난 뒤부터다. 화가 난 석주는 양산댁을 사주한 태수와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 양산댁을 물에 처넣겠다고 덤빈다.
저자
한승원(韓勝源, 1939~) 1939년 10월 13일 전남 장흥군 대덕면 출생. 1963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이문구·조세희 등과 교유한 바 있다.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광양중학, 광주 춘태여고 교사를 지냈다.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가증스런 바다>,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목선>이 당선되어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에 <그 바다, 끓며 넘치며>로 한국소설문학상을, 1983년에 <누이와 늑대>로 대한민국문학상을, 1983년 <포구의 달>로 한국문학작가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앞산도 첩첩하고>(1977), <안개바다>(1979), <아버지와 아들>(1989), <새터말 사람들>(1993), <시인의 잠>(1994), <해산 가는 길>(1997) 등과 장편소설 <불의 딸>(1983), <우리들의 돌탑>(1988), <갯비나리>(1988) 등이 대표작이다. 그의 작품은 고향인 남해안 지방을 중심으로 한 토속적 세계와 원초적인 생명력, 그리고 한의 공간으로서의 자연을 강렬한 색채미학과 풍부한 토착어를 통해 그리고 있으며, 그 가운데 드러나는 신비스러움과 역사의식을 통해 민족적인 비극과 한을 형상화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리뷰
한승원이라는 작가가 있다. 그는 1939년 갯가 마을인 전라남도 장흥군 대덕면 신상리에서 태어났다. 득량만의 서쪽에 위치한 이 고향 바다는 한승원 문학의 출발지요, 종착역이다. 한승원에게 바다는 영원한 고향이며 어머니이다. 그것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잉태하는 생명의 동굴이며 역으로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죽음의 동굴이다. 그의 바다에는 사랑과 증오, 빛과 어둠, 생성과 소멸, 좌·우의 이념, 일상적 생존이 모두 함유되어 있다. 끓어 넘치기도 하고 미친 듯이 울부짖기도 하고 때로 가을 햇살을 받아 잔잔하게 일렁거리기도 하는 한승원의 바다, 그것은 그의 숙명적인 판도라의 상자이다. 한승원은 이 상자를 <가증스런 바다>(1966), <목선>(1968) 이후 <불의 딸>(1983), <해일>(1991)을 거치면서 <새터말 사람들>(1993), <동학제>(1994), <까마>(1995), <연꽃바다>(1997), <해산 가는 길>(1997), <꿈>(1998)까지 약 삼십 년 동안 집요하게 조금씩 조금씩 열고 있다. (……) 한승원의 등단작은 <목선>이다. 대부분 등단작은 한 작가의 문학적 방향성을 내장하고 있다.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덕도와 우산도 등 장흥 바다를 배경으로 하며, 가난한 갯가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의 억척 같은 생활과 에로티시즘을 표출하는 <목선>은 이후의 한승원 작품의 중요한 요소를 대부분 포함하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김 채취 머슴인 석주다. 아내는 바람이 나서 도망쳐 버리고 그는 홀아비로 이런 저런 잡일을 하며 허송 세월을 하고 있다. 그에게 희망이 생긴 것은 과부인 양산댁 일을 하면서 한겨울 품팔이의 대가로 김 채취선을 봄부터 가을까지 얻어 쓰기로 약정했기 때문이다. 배만 있으면 봄에는 오징어잡이를 하고 여름엔 장어잡이를 하여 자기 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배로 김 양식을 하면 한밑천 잡아 마음씨 고운 여자에게 장가들 수 있을 터였다. 문제가 생긴 것은 양산댁이 갑자기 배를 빌려주지 못하겠다고 하고 난 뒤부터다. 화가 난 석주는 양산댁을 사주한 태수와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 양산댁을 물에 처넣겠다고 덤빈다. 비교적 간단한 이 소설의 줄거리보다 눈에 띄는 것은 양산댁과 석주 간의 에로티시즘이다. 거먼 소록도 위에 턱이 조금 찌그러진 하얀 달이 둥실 떠 있었다. 좀더 짙은 어둠이 밀려드는 듯하자 달이 더욱 하얗게 빛났다. 바다는 온통 은물을 칠해놓은 듯 하얗게 출렁거리며 빛났다. 뱃전에 와 부딪는 물결이 하얗게 부서졌다. 그 물결 속에서 저녁놀을 받아 붉게 물이 든 듯하던 하얀 속옷과 상어의 등처럼 둥그렇던 엉덩이의 살결이 보이는 듯했다. (<목선 중에서) 조그만 김 채취선에서 소변보는 양산댁의 엉덩이를 보며 석주가 생각하는 부분이다. (……) <목선> 에서 요의와 같은 배설욕이 성욕과 동일하게 취급되는 것은 역설적으로 에로티시즘이 건강한 생활인의 자연스런 행위라는 한승원의 인식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보인다. <목선>에서 건강한 에로티시즘과 함께 보이는 중요한 요소는 갯가 사람들의 억척스러운 삶과 운명적인 한이다. 양산댁의 눈에 물이 괴고 있었다. 석주는 양산댁의 저고리 앞섶을 움켜쥔 채 바닷물이 흘러들어 쓰린 눈알을 껌벅거렸다. 여우 같은 양산댁이 또 자기를 꾀고 있다 싶었다. 양산댁을 물 속에 처넣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멍청히 양산댁이 바라보는 먼바다의 한 점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먼바다에는 한가로운 잔물결의 이랑들이 햇빛을 받아 금빛 고깃비늘처럼 반짝거리고, 그 반짝거림 속에 오징어잡이 배들이 장난감처럼 조그맣게 보였다. (<목선> 중에서) <목선>의 마지막 장면이다. 묘사를 주제로 연결시키는 뛰어난 솜씨를 확인할 수 있거니와 여기서 바라본 주인공들의 ‘먼바다의 한 점’은 무엇일까. 양산댁이 바라보는 것이나 석주가 바라보는 것은 다같이 한스런 자신들의 삶이다. 일찍 과부가 되어 아들 하나를 키우며 수절하는 양산댁, 그녀는 석주를 받아들일 수도 안 받아들일 수도 없는 처지에 있다. 석주 역시 아내를 김장수에게 도둑맞고 홀아비로 살아온 신세, 마음에 있는 양산댁은 끝까지 자신을 배척한다. 석주는 그녀에게 배를 핑계로 폭력을 행사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행하는 폭력이란 비애가 아닐 수 없다. 바다와 같은 거대한 자연물 앞에서 그들의 지나온 삶과 앞으로의 삶은 너무나 보잘것없는 것이다. 그들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그것 역시 먹빛 바닷물같이 암울한 것이 아닐까. 이것이 쌓이면 한이 된다. 한과 에로티시즘과 갯가 사람들의 현실적 삶이 동시에 나타나는 <목선>의 세계는 씨앗과도 같은 것이어서, 이 세계는 점점 자라나 설화와 주술성과 역사성이 추가되면서 <폐촌>, <해일>, <동학제>와 같은 울울한 나무로 성장한다. (……) 한승원의 소설은 남도 갯가의 척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 속 한을 풀어내는 이야기다. 그 한의 원인을 한승원은 역사보다는 운명 쪽에 더 기댄다. 운명은 합리성을 넘어서는 초자연이기 때문에 한승원의 역사 해석 혹은 한풀이는 근대적 방식에 의존하지 않는다. 한승원 소설이 남도의 바다에서 출발하여 신화(설화)와 주술성과 역사성을 한꺼번에 포용하고 있는 것도 한승원의 독특한 운명관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한승원에게 세상은, 그리고 세상사는 합리적인 이성으로 도저히 재단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다. 그의 소설이 리얼리즘으로 갈 듯하면서도(<한> 연작), 한이라는 논리적으로 잡히지 않는 심리적 반응체와 더 밀접하게 연관되는 것도 이성적 사유로는 해석되지 않는 그 무엇 때문이다. 리얼리즘에 기대지 않고 소설적으로 한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승원은 어떻게든 한을 해결해야만 하는데- 신화와 샤머니즘의 세계로 가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말로 이것은 설화와 주술성의 세계이다. 한 자체가 현실 세상의 현실적인 방법으로는 풀 수 없는 심리적 메커니즘이므로 설화와 주술성의 세계에서만 풀릴 수 있다. 그러니까 한승원의 소설은 신화와 샤머니즘을 통한 한풀이의 소설이다. 한승원의 소설이 굿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한 개인 혹은 한 마을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동학란이나 6·25 때의 동족상잔의 비극과 같은 역사적 한 맺힘을 풀기 위한 제의적 문자 행위라는 것이다. 한승원의 소설은 신화와 한의 미학이다. 그의 소설은 한을 신화와 주술로 풀어 사랑과 생명으로 간다. 그는 남해 푸른 물을 바라보면서 북 치고 장구 치는, 근대 속의 주술사다. - ‘신화와 한의 소설 미학’, 하응백, <한승원 중단편전집 1 : 목선>, 문이당, 1999
작가의 말
(……) 사람은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마저도 가둔다. 혼자 살기 두려우므로 무리를 지어 그 속에 자기를 가둔다. 무리는 이념을 가지게 되고, 모든 개인은 그 이념 속에 갇히게 된다. 자의반 타의반에 갇혀 산다. 모든 사상, 모든 주의 주장, 심지어 종교까지도 하나의 이념일 수 있다. 자기를 가두어 놓고 살기에 염증이 나면 자기를 풀어 놓으려 한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자기를 풀어 놓지 못하고 곧 다시 가두어 놓는다. 자기 가두어 두기와 자기 풀어 놓고 살기가 모순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극복하지 못한다. 그것은 한없이 거듭된다. 따지고 보면 자기를 풀어 놓는다는 것이 사실은 더 확실하게 자기를 자기 이념과 사상 속에 가두는 것이다. 수탉은 자기가 늘 노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념과 사상의 강박 속에 갇혀 산다. 목청껏 노래하지 않으면 수탉일 수 없다는 의식이 속에 깊이 숨어 있다. 그것이 사업이다. 사업을 하지 않으면 신명이 나지 않고 신명나지 않는 삶은 죽음과 한가지이다. 사람은 신명(사업)을 위해 살아 있어야 한다. 신명 속에 갇혀 사는 신명의 노예이다. 그 사업은 무엇인데 어디에서 왔는가, 그것은 꽃이 왜 피는데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질문, 나는 왜 소설을 쓰는데 그 소설은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질문하고 같을 터이다. 나의 삶은 나의 본래 모습(원형)으로 회귀하려 한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왔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들의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왔다. 그 뿌리는 우주 생성의 첫 순간으로 뻗어 있다. 애초에 불과 물만 있었고, 그것이 땅을 만들고 땅이 푸나무와 짐승을 만들었다. 푸나무를 짐승이 먹고, 사람이 푸나무와 짐승을 먹고 살아간다. 먹이사슬의 꼭지점에 서 있는 사람은 텅 빈 하늘로 날아갈 꿈을 꾸고 산다. 하늘은 신의 또 다른 이름이다. 신은 완성된 존재이다. 그것은 우주를 만든 불과 물의 영혼일 터이다. 우주의 원형이 그것이다. 소라고동의 나선처럼 한사코 오른쪽으로 돌려고 하는 무늬가 내 속에 있다. 소설을 쓰는 것은 독자에게 우리 삶의 진실에 대하여 질문하기에 다름 아니다. 소설가는 살아 있는 한 끝없는 우주의 율동에 대한 의문 속에 잠겨 있고, 그는 늘 그 의문을 수탉처럼 스스로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질문한다. 자기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독자로부터 증명받기이다. 정다산은 강진에서 책 한 권을 저술할 때마다 그것을 하필 고해절도인 흑산도에서 유배살이하고 있는 형 약전에게 보내어 증명받으려고 했다. 약전 또한 자기 서출을 동생 약용에게 보내 증명받으려고 했다. 수탉과 꽃은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소리쳐 노래하고 울긋불긋한 색깔로 자기 몸을 치장하고, 또한 귀 가진 모든 것들로부터 자기 노래의 아름답고 고귀함을 증명받고 싶어하고, 눈 가지고 코 가진 것들로부터 고혹적인 교태와 향기를 증명받고 싶어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가와바타 야스나리, 미시마 유키오와 로맹 가리가 왜 자살을 했는가를 잘 알고 있다. 나는 살아 있는 한 소설을 쓸 것이고 소설을 쓰는 한 살아 있을 것이다. ‘살아 있는 한 쓸 것이고, 쓰는 한 살아 있을 것이다’, 한승원,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열화당, 2004
관련도서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장석주, 시공사, 2000 <한승원 중단편전집>, 문이당,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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