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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토의 자유

작품명
까토의 자유
저자
정을병(鄭乙炳)
구분
1960년대
작품소개
개요 1966년 9월 <현대문학>에 발표된 정을병의 중편소설. 로마시대 스토아 철학자인 까토의 이야기를 제3공화국 대통령 박정희의 독선적 정치권력 강화에 빗대어 상징적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절제와 도덕성으로 자유를 지켜야 하고 그것이 지켜지지 않을 때에는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자유는 외적인 자유와 내적인 자유, 즉 칼로 얻을 수 있는 폼페이우스적 자유와 마음에서 얻을 수 있는 케사르적 자유로 구분된다. 그러나 양자 어느 하나로만은 부족하다는 것, 양자를 지양하고 이를 극복한 까토적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이 작가의 핵심적인 전언이다. 적절한 사건의 배치와 간결한 문장으로 높은 서사적 가치를 이룩하고 있으며 1960년대 한국의 시대적 특성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짙게 풍겨 일종의 풍유적 의미 기능을 지닌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내용 폼페이우스가 개선해 돌아오자 수많은 원로원 의원들과 로마시민들이 열렬히 그를 환영한다.그러나 까토만은 폼페이우스가 군사적 승리를 바탕으로 정치를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할 것이라고 비판한다. 까토는 무력으로 나라를 정복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실에 의해 나라를 통치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한편, 까토는 외래문화에 의해 피폐화되는 로마의 당시대 풍조를 비판하면서 금욕적 정신주의의 이념을 제시한다. 이 이야기 과정에서 독재자 술라의 칼 아래 반대파가 살해되는 내용이 제기되어 그 아들이 칼로 독재자를 처단할 것을 말하나 까토는 최선의 무기는 칼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임을 재차 강조한다. 다음에는 우매한 폼페이우스가 집권하는 이야기에서 카이사르의 군사력에 의한 반격으로 로마는 카이사르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까토는 카이사르의 불의에 굴하지 않고 폼페이우스와 디라키움의 피란 정부에 봉사하며 의를 고집한다. 후에 카이사르의 군대에 의해 폼페이우스가 패하자, 동지였던 키케로까지 카이사르에게 투항하나 까토는 우티카에서 카이사르의 군대를 맞을 각오를 하고 다른 사람들을 피난시킨다. 최후의 밤에 까토는 스스로 자결함으로써 정의와 자유를 수호하는 지조를 지킨다.
저자
정을병(鄭乙炳, 1934) 1934년 7월 5일 경남 남해 출생.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했고 미국 하와이대학에서 수학한 바 있다. <국도신문> 기자, 대한가족협회 홍보부장, <동서문학> 주간, 한국펜클럽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대문학>을 통해 <부도>(1961), <반모랄>(1963) 등으로 추천 받고 문단에 등단했다. <개새끼들>(1966), <아테나이의 비명>(1968), <유의촌>(1971), <피임사회>(1973), <까토의 자유>(1976), <인동덩쿨>(1980), <역사가 움트는 소리>(1980), <영혼의 선택>(1992), <마지막 날의 한강>(1994) 등을 비롯한 많은 창작집을 발간하였다. 초기 대표작으로는 기존 가치를 부정하고 새로운 모랄을 제시하고자 한 <반모랄>(1963), 권력조직과 산업기구 등에 의해 침해당한 인간성 회복을 외친 <개새끼들>(1965), 까토의 이야기를 통해 자유와 정의에 관한 상념을 형상화한 <까토의 자유>(1966), 서구문명서구정신의 해독을 고발한 <병든 지구>(1974), 옥중 체험을 바탕으로 감옥 주위의 부조리를 다룬 <육조지>(1974) 등을 꼽을 수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신 독재에 항거해서 투옥되었을 때의 이야기를 다룬 <인동덩쿨>(1980), 한 작가가 공안당국에 끌려갔다 나온 후 무력한 삶을 살다가 화훼에서 생명력을 발견하는 과정을 다룬 <일어서는 풀>(1984) 등을 발표했다. 그는 거침없는 태도와 넘쳐흐르는 활력으로 사회의 제반 부조리를 비판 풍자하는 창작태도를 보였다. 또한 치밀하게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소설 창작에 임하여 다산의 작가들이 지니기 쉬운 작품의 밀도 문제에 있어서도 면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문학상, 한국일보창작문학상, 서울시문화상, 대한민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리뷰
(……) 구체적인 억압 속에 있을 때 개인의 자유에의 꿈은 더욱 절실하다. 아니 어쩌면 진정한 자유에의 꿈은 억압이라는 통과제의용 터널을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유는 늘상 억압이라는 반명제의 위협과 도전 속에서 합명제로 지향하려는 경향성을 갖는다. 이 땅의 경우 4·19 혁명은 합명제로서 자유의 진정성을 유감없이 보여준 바, 역사철학적 사건이었다. 이승만 독재정권이 구축했던 억압의 아성에 의해 억눌렸던 개인의 자유의지가 하나의 공동선으로 고양되면서 일어난 일대 혁명이라고 해도 큰 잘못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급기야 날아오른 미네르바의 부엉이의 장쾌한 비상이었다. 그러나 곧 뒤따른 5·16이라는 반 4·19적 역사에 의해 억압은 새로운 국면으로 돌입했다. ‘칼과 군화’는 어김없이 자유를 압살시켜 갔다. 바로 이 무렵 자유를 향한 미네르바의 부엉이 소리가 있었으니, 그 중 하나가 정을병의 <까토의 자유>라 할 수 있다. 이 중편은 까토의 지혜와 정의론을 당대의 시대상황에서 구체적으로 풀어가면서 끝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지혜롭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억압의 상황을 역설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까토는 누구인가. 일찍이 로마의 감찰관을 지낸 바 있는 탁월한 정치가요 도덕가였던 마르쿠스 포르시우스 까토의 동명의 증손자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천하를 다투던 기원전 50년을 전후한 시절에 로마의 원로원군을 이끌고 아프리카의 우티카라는 도시에서 카이사르군과 대결하다가 자살한 까토는 스토아 학파였다. 아니 증손자 까토는 뛰어난 정치가이기 앞서 지혜를 사랑하고 정의를 추구하는 철학자였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까토의 생애 마지막 단층을 이 소설은 집중적으로 입상화하고 있다. 까토의 마지막 순간 초상을 웅숭깊게 그리기 위해 혹은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자유의 형이상학을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작자는 플라톤의 저서 <파이돈>을 패러디하고 있다. 기원전 390년에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법정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독배를 든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영혼과 육체의 문제를 다룬 <파이돈>을 패러디한 것의 심층에는 분명히 까토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했던 것이 영혼의 자유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음을 입증하고도 남는 것이라 하겠다. 모든 사물은 자연에 순응하여야 하고 인간의 노력은 그 순응의 범위 안에서만 의미를 가진다······(중략) ······인간의 노력은 영원한 것이며, 영겁을 돌아 시간이 인간의 노력을 다시 평가할 때가 오면, 그것은 자유를 지상에다 더욱 넓고 두껍게 펼쳐 주리라. 비록 로마는 카이사르의 칼끝으로 찢어지지만, 자유를 향한 인간의 양심은 제신의 은총 밑에 사는 영원한 불사조요, 결코 굴하지 않는 넋······ (<까토의 자유> 중에서) 인간은 자연상태로 살아갈 때 참 자유를 획득한다. 그러나 인공의 질서에 의해 자연상태가 훼손되면 곧 억압의 굴레에 휘말리게 된다. 까토는 예의 타락한 인공의 질서는 ‘칼과 군화’로 점철된 것이라 파악한다. 정권욕에 사로잡힌 군벌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가운데 나라는 어지러워지고 백성들은 빈궁과 부패 속에서 흐느적거린다. 곧 진정한 자유가 넋나간 억압의 질서요, 닫힌 세상의 모습이다. 현자 까토의 고뇌와 회의의 근본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목전의 억압상은 비단 정치의 영역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전반적 인간 생활에 널려 있다. 그러니 정녕 문제적인 현실이다. 세상의 자유란, 반드시 정치적 자유만이 자유의 전부는 아니니까 말이다. 정치에서보다도 더 실질적인 면에서 인간은 너무나 자유가 아쉬운 생활을 하고 있다. 인습에서, 학문에서, 혹은 생활 전체에서, 그리고 과거의 역사에서 인간은 노예처럼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까토의 자유> 중에서) 노예상태, 비인간적 억압상태를 벗어나는 길은 오직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자유에의 비상을 해야 하는데, 현실의 노예상태는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넌’ 상태가 돼버렸다. 하고 보니 어쩌랴. 소크라테스가 그랬듯이 까토 역시 노예상태의 육체를 죽여 자유상태의 영혼을 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폭력과 그리고 모든 악에서 완전히 자유를 얻는 길은 죽음밖에 없지. 죽음 없이 어디서 자유를 찾으며, 어디서 참다운 삶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카이사르에게 잡혀 명예를 더럽히기보다는, 죽음으로써 내 자유를 끝까지 지킨다는 것은, 내게 주어진 신들의 마지막 은총이야.’(<까토의 자유> 중에서) 결국 까토는 죽음으로써 자유를 획득한다. 카이사르의 군대가 서서히 그에게로 거칠게 말을 몰며 다가오는 가운데 까토는 평화 속에서 자살하는 것으로써 본원적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자살로써, 죽음으로써 자유를 얻는다는 것은 대단한 역설이며 또 역설의 정도만큼이나 비극적이다. 나아가 비극적 고양감만큼 감동을 주며 형이상학적 깊이와 울림을 준다. 물론 이 부분은 자칫 관념적인 언어유희로 받아들여질 소지도 없진 않다. 그러나 본질적인 맥락을 따라 행간을 파고 들어가 심층의 의미망을 살펴볼 것을 작가는 준열하게 요구하고 있다. 유사 이래 인간의 자연질서는 계속 억압받아 왔던 게 사실이다. 물론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가열찬 자유에의 투쟁 또한 역사의 핵심적인 줄기였다. 억압과 자유의 변증법적 역사 속에서, 억압적 상황은 끊임없이 인간을 죽음의 벼랑으로 몰아쳤고, 자유와 해방을 되찾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는 죽음도 불사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크라테스가 죽어갔고, 까토가 또 그렇게 죽어갔다. 물론 이 경우 죽음의 의미망은 양가음소적이다. 억압적 상황 그 자체의 은유이면서, 그것으로부터 해방되고자 몸부림치는 마지막 자유에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작가는 이런 양가적 의미의 죽음이 비단 소크라테스나 까토 시절에서 그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소설이 씌어졌던 60년대 중반의 한국상황을 생각해 보면, 왜 작가가 굳이 어려운 이웃 나라의 형이상학적 이야기를 길게 쓰고 있는가를 잘 알 수 있게 된다. 일종의 정치적 알레고리가 아니겠는가. 서슬 푸른 칼날을 세워 루비콘 강을 건너는 카이사르의 모습에서, 4·19 바로 다음 해 5월 무장한 채 한강을 건넜던 쿠데타 군인들을 떠올릴 수 있다면 지나친 비약이 될까.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까토의 자유>는 한편의 형이상학적 역사소설로 읽혀질 가능성도 있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현재의 구체적 정신으로 파악한다는 역사소설의 기본명제에 입각해 볼 때 그러하다. 소설 속의 상황은 역사를 격해 내려오면서 계속 문제적이었거니와, 그것은 이 소설을 쓰던 때나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읽는 때나 역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 <까토의 자유>를 읽고 감동을 느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자유를 위한 까토의 죽음을 보면서 우리는 김상진과 김의기, 김세진과 이세호 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오랜 군부독재의 억압 속에서 자유를 위한 수많은 피흘림의 역사를 살아왔던 우리에게 <까토의 자유>가 주는 의미망은 여러모로 각별하다고 보겠다. 자유라는 나무는 언제까지 더 피를 일용할 양식으로 요구하려는가! (……) 요컨대 정을병의 감옥의 사상은 자유의 사상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폭넓은 억압상은 자유라는 대항명제에 의해 극복되어야 마땅한 것이라는 자유의 사상을 정을병은 소설로써 웅변해주고 있는 것이다. (……) ‘억압과 자유의 변증법’, 우찬제, <까토의 자유>, 한겨레, 1991
작가의 말
나는 육십 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책으로 치자면 60권에 이르는 작품을 썼다. 이 중에는 장편소설과 중편소설 그리고 단편소설들이 함께 들어있으며, 약간의 수필집도 들어 있다. 나는 불행하게도 내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무렵부터 박정희 군사독재정치가 시작되었고, 그것이 무려 25년이나 계속되었다. 그 바람에 나는 군사독재정권과 싸우면서 자유와 평화를 주장하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부조리를 고발하고 파헤치는 그런 작업에 정열을 쏟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바로 문학의 본령인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생각하면 너무 현실적인 면에 급급하다 보니,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상실한 느낌이 없지도 않다. <까토의 자유>는 박정희 대통령이 바야흐로 혁명 공약을 어기고 장기집권을 시작할 무렵에,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던 로마에서 소재를 구해 와서 그의 독재정권을 간접으로 비난했고, <본회퍼의 죽음>은 박정희 씨가 히틀러처럼 망령이 들어갈 무렵에, 역시 히틀러의 제거작업에 참여했던 독일의 본회퍼를 소재를 만든 소설이다. 우리가 다 아는 바이지만, 그 당시는 그렇게라도 간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무서운 시대였기 때문이다. (……) 그렇게 기성을 부리던 박 정권이 허물어지고 전 정권도 허물어지고 지금은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는 것 같아서, 그동안 내가 그들과 집요한 자유의 획득을 위한 문학적인 투쟁을 해오던 것도 이제는 목표를 바꾸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자유가 얻어진 다음에 자유를 위한 작품을 쓴다는 것은 맥빠지는 일이니까. 과거에 썼던 작품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이번 선별작품 출판은 그런대로 내게는 뜻이 있는 작업으로 생각된다. 나는 이제 또 다른 길로 열심히 걸어가야 하니까. 그래서 나는 요즘, 작품에 아무런 이데올로기도 담지 않는 소위 ‘백색소설’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고 있는 중이다. 그것이 확연하게 무엇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작가의 말’, 정을병, <까토의 자유>, 한겨레, 1991
관련도서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까토의 자유>, 정을병, 한겨레,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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