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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박

작품명
핍박
저자
현상윤(玄相允)
구분
신문학의 등장~1910년대
작품소개
1917년 6월호 <청춘>(통권 8호)에 발표된 현상윤의 단편소설. ‘나’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은 당시 지성인들의 고뇌를 그리고 있다. 고등교육도 받고 모든 면에서 어느 만큼의 교양을 갖추었다고 자부하는 주인공인 ‘나’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당시의 지식인들이 가졌던 이상과 현실의 괴리현상(乖離現象)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은 주제의식이 경미하나, 그 소재가 리얼할 뿐만 아니라, 형식에 있어서도 완벽한 단편소설로 평가되고 있다. 그 구성법이나 리얼한 장면묘사뿐만 아니라 완벽한 구어체문장(口語體文章) 구사 등 우리의 근대적 단편소설 형성과정에서 과도기를 대표하는 중요한 위상을 가진 작품이다.
저자
현상윤(玄相允, 1893~?) 호는 소성(小星), 기당(幾堂). 1893년 평북 정주 출생. 평양 육영학교와 대성학교를 거쳐 보성중학을 수료하고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사학과를 졸업했다. 1910년대에 이광수·최남선 등과 함께 활동했다. 주로 <학지광>과 <청춘>에 시, 소설, 수필, 평문을 다수 발표했다. 그의 장시 <실락원>은 일제강점기 초 일제의 식민정책을 고발한 것이다. 3·1운동 당시에는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에 참가했다가 투옥되기도 했다. 광복 후에는 고려대학교 초대총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전쟁 중 납북되었다. <친구야 아느냐> 등의 그의 초기 시는 4·4조의 음수율을 기조로 하는 개화가사형의 작품들이다. 후기로 가면서 정형률을 벗어나 점차 자유시형에 가까워져 간다. 즉 그의 후기 시는 1920년대에 본격화되는 자유시에 이르는 과도기적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이 밖에 그는 러시아 산문시의 영향으로 산문시를 쓰기도 했고, 때로는 시조형의 시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의 소설 역시 장르적 관점에서 의미 있게 검토될 수 있다. 1914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한(恨)의 일생>, 1917년의 <핍박> 등은 김동인의 단편과 비견하여 평가되는 작품으로서 소설사적 의미를 띤다. 신문학 초기 단편소설이라는 장르의 개념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의를 부여할 수 있는 소설을 남겼다.
리뷰
(……) <핍박>은 현상윤의 다른 다섯 편의 단편과는 달리 1인칭 화자를 사용하는 내적 독백형의 서술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춘원의 <방황>에서 볼 수 있듯 이러한 독백의 성격을 띠는 소설들은 1910년대 후반기 소설의 주종을 이루면서 후에 <폐허>, <창조>에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고백체 형식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장편의 내용을 단편의 형식에 요약하여 신소설까지 이어져온 주인공 일대기에 대한 전지적 서술에 머물렀던 다른 작품들과는 구별되지만 근대 단편소설의 성립이라는 문학사적 요구에는 부응하는 양식으로 등장한 것이다. (……) 소설에서의 화자는 자전적 1인칭일지라도 시대적 문맥 속에서 객관적으로 해석될 수 있을 때 소설적 화자로서의 의의를 획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 작품 속에서 주인공 ‘나’가 개인적 차원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는 논의를 진행하면서 구체적으로 밝혀질 것이다. 이즘은 병인가 보다. 그러나 무엇으로든지 병일 이유는 없다. 신선한 공기가 맥힘 업시 들어오고 영롱한 광선이 가림 업시 빗치고 새는 울고 꼿은 웃고 샘은 맑고 산은 아름다운데. 조곰도 병일 까닭은 없다. (……) 그러나 무슨 병인지는 나도 스스로 알 수가 없다. 오직 이편 저편에서 쏘아오는 시선이 나로 하야끔 못살게 군다. 얘 이놈아 정신 차려라 하는 듯하다. 이 편에서는 휩싸고 따리는 듯하면 저편에서는 내리쓸며 달내는 듯하다. “엑 이놈아! 용렬한 놈아…” “얘 미욱한 놈아 말 들어라…” 라고 하는 듯이 생각한즉 몸이 후루룩 떨니며 땀이 밧삭 흐름애 지릅뜨고 보든 눈은 더욱 꺼지는듯 하다. (<핍박> 중에서) 이 작품은 주인공 ‘나’가 자신의 상태를 병적 상태로 파악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때 먼저 증상을 제시하고, 뒤이어 원인을 설명하는 단순한 서술방식이 아니라 주인공이 병의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과 주인공의 증상이 번갈아 교차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주변의 자연적 환경, 평안한 가정, 경제적 안정 등 일반적으로 병의 원인이 될만한 것들에 대해 아무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이사이에 삽입된, 병명도 명확하지 않은 증상으로 인해 고통 받는 모습이 일인칭화자를 통해 절실하게 전달된다. 병명도 없고, 외적으로 드러나지도 않는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내부를 들여다봐야 한다. 병의 원인이 쉽게 밝혀지지 않는 것은 그것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편 저편에서 쏘아오는 시선’ 자체는 병의 원인이 아니다.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려면 누구나 타인의 시선을 받게 마련이다. 시선에 대해 병적 반응을 보이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며, 따라서 주인공의 내적 상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러한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일인칭 화자를 필요로 하게 된다. 일인칭 화자라고 해서 자기자신의 문제에 대해 전지적인 것은 아니기에, 전지적 화자와 같은 능력으로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기보다는 병의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게 되며, 독자 역시 이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된다. “이즘은 병인가 보다”로 시작하는 소설의 첫 장면은 자연의 배경묘사라든지 상황묘사로 작품이 시작되는 신소설로부터 훨씬 벗어난 구성법이며, 여타 1910년대 소설에서도 보기 힘든 초두 구성이다. 즉 첫 문장이 현재형 시제로 주인공의 의식세계가 직접 표현되는 등 일상어의 세계와 구어체의 문장, 띄어쓰기, 묘사의 면에서 한층 달라져 있다고 평가된다. 이러한 구성법은 같은 일인칭이라도 주인공 자신의 체험을 회고하면서 전달하는 방식과 달리 서사적 전개보다는 주인공의 심리적 정황을 묘사하는데 적합하다. (……) 이 작품은 특별한 사건의 제시가 없이 주인공 ‘나’의 일상적인 삶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일상적’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따름이요, 평범하거나 무료한 하루는 결코 아니다. 주인공은 치열한 내적 갈등 속에 방황하고 있다. 박태원의 ‘구보씨’처럼 주인공은 마을을 거닐고 있다. 물론 그것은 1930년대의 서울이 아니고 식민지 초기의 평안도 어느 농촌이다. 주인공이 볼 일이 있어서 들어간 정주성내든지 저녁밥을 먹고서 찾아간 농부들의 집회장소든지 아니면 마을 앞 세거리 길이든지 그곳에서 주인공의 눈을 통해 보여주는 식민지 농촌의 모습은 그 자체를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제시하려 했다기보다는 그 장면을 매개로 주인공이 점차로 자각하게 되는 정신적 압박과 ‘병’의 원인을 밝혀주고 있다. 각각의 장소에서 보여지는 현실이 주인공의 내성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때 주인공이 ‘지식인의 분열적 자아상’을 보인다는 것은 적절한 지적이지만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현실의 모순 속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자꾸만 분열해가는 존재가 아니라, 작가의 그리고 독자의 현실인식의 창구가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주제적 측면에서 이 작품은 주인공 ‘나’가 자기인식, 현실인식을 확장시켜 나감으로써 스스로를 객관화시키는데 일정 정도 성공하여 소설적 인물로서의 특성을 획득함으로써 소설적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1920년대 단편소설의 형성과 우리 문학사에서 내성적 관심을 보이는 작품군에 잠재적 영향을 끼친 점을 부정할 수 없겠다. ‘<핍박>의 수필적 속성과 소설적 가능성’, 김명석, <한국 소설과 근대적 일상의 경험>, 새미, 2002
관련도서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한국 소설과 근대적 일상의 경험>, 김명석, 새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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