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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문 밖

작품명
자하문 밖
저자
김관식(金冠植)
구분
1950년대
저자
김관식(金冠植, 1934~1970) 호는 우현(又玄). 1934년 5월 10일 충남 논산 연무대 출생. 동국대 농대에서 수학했다. 경기상고 등에서 교사생활을 했고, <세계일보> 논설위원, 육당기념사업회 이사 등을 역임하면서 사회활동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며, 1960년 4·19 혁명 후 실시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낙선하기도 했다. 폭음, 주벽, 폭언, 기행 등으로 문단 안팎의 화제를 불러일으킨 기인이기도 했던 그는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다가 1970년 8월 31일 사망했다. 1955년 <현대문학>에 <연>, <계곡에서>, <자하문 근처> 등의 시로 시인 서정주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였다. 등단하기 전인 1952년 시집 <낙화집>을 펴냈고, 1956년에는 <김관식 시선>을 발간했다. 한학에 능하여 <노당한시존(老棠漢詩存)>(1958)을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1976년에 창작과비평사에서 유고와 함께 묶은 <다시 광야에>가 간행되었다. 김관식의 시는 동양인의 정서를 동양인의 정감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어려서부터 한학과 서예를 익혔고, 성리학과 동양학을 배운 것에 기인한다. 또 김관식의 작품 속에는 현실의 부조리한 상황을 가차없이 통렬하게 비판하는 선비정신도 드러나 있다. 한자어를 과다하게 사용한 결점을 갖고 있지만 그의 시어들은 동양적 예지의 깊은 사유를 드러내는 섬세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현실에 침잠하면서도 끈질기게 그것과 관계하는 동양적인 지혜, 그리고 유교적 비판정신이 김관식의 시정신임을 알게 해준다.
리뷰
남다른 기행으로 세인의 화제를 모으던 김관식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그의 상식을 벗어난 괴벽도, 그의 호쾌한 기개도 이 각박한 세월의 파도에 밀려 어느덧 잊혀져 가는 듯하다. 생각해 보면 오늘의 이 시대는 김관식 씨처럼 몸 전체를 붓삼아 시를 쓰는 시인의 존재를 점점 용납하지 않아가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자의와 방종의 배제가 아니라 인간다움의 추방과 관계되어 있다는 데에 있다. 김관식 씨에게서 가장 바람직한 시인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왜소한 규격품들의 범람에 끝내 항거했던 시인으로서의 그를 점점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여기에 까닭이 있는지 모른다. 이 시집을 위하여 우리는 구할 수 있는 한에서 김시인의 모든 작품을 수집하고자 하였다. 처녀시집으로 <낙화집>(1952)이 있다고 하나 김시인의 미망인도 갖고 있지 않았다. 시집 <해 넘어가기 전의 기도>(1955, 이형기·이중로 공저)와 <김관식시선>(1957)에 실린 작품들이 이 시집의 제4부와 2·3부의 일부이고, <신풍도>(1959), <한국전후문제시집>(1961) 및 <52인시집>(1967, 현대한국문학전집 제18권) 등의 선집들에 수록되었던 작품들, 그러니까 50년대 말부터 60년대 중반까지의 작품들이 주로 이 시집으로 2·3부를 이루고 있다. 60년대 중반부터 작고하기까지의 5, 6년간 각종 신문과 잡지에 발표한 작품들을 모은 것이 제1부이다. 따라서 이 시집의 순서는 대체로 발표연대와 역순으로 되어 있다. 동일한 작품이 제목만 바뀌거나 약간 손질이 가해져서 선집 같은 데 재수록된 경우에는 시기적으로 뒤의 것을 기준으로 했다. 이만하면 그의 전 작품을 거의 빠짐없이 모았다고 자부하며, 혹시라도 여기 수록되지 못한 작품이 발견되면 앞으로 보완의 기회가 있으리라 믿는다. 김관식 씨는 1934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여 고향에서 강경남고를 졸업한 뒤 정인보, 최남선, 오세창 씨 등 당대의 노대가들 밑에서 한학을 배웠다고 한다. 1955년 <연(蓮)>, <계곡에서> 등의 작품으로 현대문학지에서 추천을 받았으며, 이 무렵 서울상고에서 교편을 잡았고 잠시 세계일보에서 논설위원으로 재직한 적도 있으나, 작고하기까지 10여 년 동안 별다른 직업을 가짐 없이 세검정 높은 지대에 널찍한 터를 잡고 시와 술과 병고와 기이한 행적으로 세월을 보냈다. (……) 김관식 씨의 초기작은 젊은이다운 원색적 감수성의 싱싱한 몸부림을 담은 전통적 서정시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뼛골 안에 잦아서 녹아 흐르는 설움”(<창세기초>)도 있고 “짓밟힌 내 청춘의 슬픈 사연”(<황토현에서>)도 있으나, 이와 아울러 자연과 생명의 현상에 대한 기쁨과 찬탄이 토로되어 있기도 하다. <해일서장(海溢序章)>이나 <귀양가는 길> 같은 작품들은 청춘의 눈이 인식한 삶의 고통과 그 고통으로부터의 황홀한 희생을 동시에 포용한 뛰어난 서정시이다. 이 점에서 김관식 씨의 초기작들은 젊은 날의 서정주를 연상케 하는 면을 많이 갖고 있으면서도 이보다 훨씬 긍정적인 빛에 싸여 있고, 그리하여 때로는 안이하고 평면적인 서술에 머무르기도 하는 것 같다. 초기작 중에서도 <동양(東洋)의 산맥(山脈)>이나 <소부허유전(巢父許由傳)>처럼 어려운 한자어들을 많이 섞어 동양의 유학자적 풍취를 내려고 한 상당수의 작품들이 있는데, 1960년 전후에 씌어진 김관식 씨의 시들은 주로 이런 경향에 물들어 있다. 물론 이런 작품들에도 이 시인 특유의 호탕한 기개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것이 흔히 심정적 허장성세로 기울고 있으며, 따라서 삶의 절실한 체험을 조형하는 데 한계로서 작용하기 십상인 듯하다. 이런 결함은 60년대 후반의 작품에 와서 완전히 극복되는 것 같다. “몸은 야위더라도 마음을 기르는 청심과욕(淸心寡欲)의 생활”(동아일보, 1968. 8. 29)에서 나온 오연한 자부심, 이 시대의 사회적 부조리와 정치적 모순에 대한 직정적 매도, 그리고 가난하게 사는 자신과 이웃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융합된 만년의 그의 시들은 이제는 사라져 볼 수 없게 된 옛 선비의 칼칼한 음성을 다시 듣게 한다. 다음과 같은 시구에서 우리는 지극히 평이한 진술 속에 비할 바 없이 고귀한 지혜와 놀라운 예감을 포괄한 예를 본다. “가여운 내 아들딸들아, 가난 하에 행여 주눅들지 말라. 사람은 우환에서 안락에서 죽는 것, 백금 도가니에 넣어 단련할수록 훌륭한 보검이 된다. 아하, 새벽은 아직 멀었나 보다.” ‘편집후기’, 염무웅, <다시 광야에>, 창작과비평사, 1976
관련도서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김관식 평전>, 고은, 청년사, 1977 <다시 광야에>, 김관식, 창작과비평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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