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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의 기

작품명
정념의 기
저자
김남조(金南祚)
구분
1960년대
저자
김남조(金南祚, 1927~) 1927년 9월 25일 경북 대구 출생. 일본 큐슈(九州)에서 여학교를 마쳤고, 1951년 서울사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마산고교, 이화여고에서 교편을 잡았고 이후 성균관대 강사를 거쳐 1954년부터는 숙명여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대학 재학 시절인 1950년 <연합신문>에 시 <성수(星宿)>, <잔상(殘像)> 등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1953년 첫 시집 <목숨>을 발간하면서 본격적인 시작활동에 들어갔는데, 이후의 시 <황혼>, <낙일>, <만가> 등과 더불어 이 시기의 작품들은 인간성에 대한 확신과 왕성한 생명력을 통한 정열의 구현을 소화해 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제2시집 <나아드의 향유>(1955)로 이어지면서 종교적 신념이 한층 더 강조되고 기독교적 인간애와 윤리의식을 전면에 드러내게 된다. 이후의 시들 대부분이 지속적으로 이러한 기독교적 정조를 짙게 깔고 있으며 후기로 갈수록 더욱 심화된 신앙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정열의 표출보다는 한껏 내면화된 기독교적 심연 가운데에서 절제와 인고를 배우며 자아를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집 <정념의 기>(1960), <풍림의 음악>(1963), <잠시, 그리고 영원히>(1965), <김남조 시집>(1967) 등을 발간하면서 왕성한 창작력을 보여주었고, 1963년에는 오월문예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1990년대까지 <평안을 위하여>(1995), <외롭거든 나의 사랑이소서>(1997), <희망학습>(1998) 등 총 30여권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리뷰
1960년 5월 10일 정양사에서 발간한 김남조의 제4시집 <정념(情念)의 기(旗)>의 표제작이다. 시집의 판종은 변형국판이며 표지는 고급양장으로 하였고, 전체 158쪽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 작품을 일관하는 주조는 사랑의 탐구이지만 이것이 인간적인 데에 머무르지 않고 영혼에 귀의함으로써 위안과 안식을 얻으려 하고 있으며, 여류시인 특유의 다감함과 아울러 준열한 자기인식을 담고 있다. 시집 전체는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각각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부에는 <정념의 기>, <회춘>, <너에게>, <후조(候鳥)>, <가을의 기도>, <가을의 노래>, <동방의 별>, <동작동 군묘지에서>의 8편의 시가 실려 있다. 제2부 역시 <마지막 장미>, <흐르는 계절>, <아가와 엄마의 낮잠>, <고별>, <벗에게>, <애가>, <가을날 소녀에게>, <자화상> 등 8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제3부에는 <미운 마음의 시>, <꽃과 인형>, <제야(除夜)>, <메리 크리스마스>, <소박한 기도>, <송수사(頌壽詞)>, <눈오는 벌판에서>의 7편의 시가 실려 있다. 제 4부에는 <기도의 문>, <그분의 백합>, <달밤>, <가을>, <보내는 날에>, <진혼소곡(鎭魂小曲)>, <요람(謠藍)의 노래> 등 역시 7편의 시가 실려있다. 마지막 제5부에는 <앞산만 하옵네>, <빗물 같은 정을 주리라>, <눈의 시(時)>, <영광의 마리아>, <계보(系譜) 없는 감정> 등 5편의 시가 실려 있다. 이렇게 모두 35편의 작품이 수록된 <정념의 기>는 인생의 고뇌를 극복하고자 하는 격렬한 몸짓이 시적 언어 속에 매끄럽게 용해되어 있다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기’는 정념의 고독과 허무를 내면화하고 있는 시적 자아를 표상하는 이미지다. 이 기는 끊임없이 에로스의 욕망으로 흔들리고 있는 기임과 아울러 종교적 성스러움과 정결함을 지향하는 기다. 이 기의 비애가 무서운 것은 그것이 안고 있는 모순 때문이다. 이전의 시집들보다 한층 더 심화된 신앙적 견고성과 경건성을 드러내고 있어 가톨릭 신앙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시인의 시세계를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는 시집이다.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김남조는 광복 이후 우리 시단의 커다란 향목(香木)으로서 의연한 자태를 지켜온 시인이다. 그 연륜은 일찍이 모국어 문학에 뜻을 둔 시인 자신이 해방을 맞은 조국에 돌아와 뿌리를 내리던 50년대 초엽 무렵부터 비롯되고 있다. 이 땅에 전에 없이 전화(戰禍)가 한 고비를 넘기던 1953년에 첫 시집 <목숨>을 펴낸 이후 김남조 시인은 실로 40년이 넘는 나이테를 새기며 대학강의를 겸하면서 시종 시쓰기 작업에 임해온 그대로 문단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최근 출간된 시인의 열세 권 시집에 걸친 김남조 문학의 가치와 특성을 살펴볼 만하다. 여기서는 대체로 이 시인의 작품연보상 전기(50~60년대)에 속하는 시 <너를 위하여>와 중기(70~80년대)의 시 <바람>이나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후기(90년대)에 해당하는 <광야> 등을 주로 논의하기로 한다. 김남조 시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우선 사랑을 기리고 갈구하며 호소한다는 점이다. 시인은 따뜻한 사랑의 정감을 한껏 고즈넉하고 간절한 호흡으로 노래하는 것이다. 나의 밤기도는 …(중략)…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너를 위하여> 중에서) 또한 이런 사랑 구가는 아가(雅歌) 곳곳에서도 곧잘 드러나고 있음을 본다. 이렇듯 김남조의 시가 사랑의 미학이란 사실은 그 자신이 손수 쓴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랑과 시, 그렇다.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로 심각하고 지엄한 명령으로 나를 묶고 내가 사역 당한 그 대상이란 사랑과 시……. 사랑 때문에 기도하고, 사랑 때문에 시를 써왔다. 사랑은 내 존재 근원지에 꽃피는 축제요, 염원이요, 참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김남조 시의 원형질적 사랑은 에로스적인 것과 아가페적인 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음을 본다. 그리고 그것은 다분히 처음에는 인간적이고 감성적이며 육신적인 에로스에서 시작하여 점차 종교적이고 이성적이며 정신적인 아가페로 향하는 성향을 드러낸다. 과연 김남조의 시의 태반은 사랑예찬이요 구원의 연가이다. 이런 에로스적인 사랑 노래는 <밤편지>나 <고백>, <비파 소리>, <편지>, <임>, <너의 집>, <나에게>, <촛불>, <가난한 이름에게>, <그 젊음에게>, <사랑 연서> 연작 등으로 계속되고 있음을 본다. 사랑 추구에 이은 또 다른 김남조의 시문학 특성은 가톨릭적인 기원과 영가스런 가락으로 이루어진 종교시라는 점이다. 이런 성향은 그의 모친을 잃은 중기부터 두드러진 요소이다. 하기는 그 전해에 낸 시집에도 기독교 성향을 띤 <거룩한 밤에>, <부활의 새벽>, <영광의 마리아> 또는 <소박한 기도> 등의 작품이 있었지만 보다 간절하고 진지한 종교시는 그 이후에 쓰여졌다. 이를테면 <겨울 그리스도>, <예수의 얼굴>, <막달라 마리아>나 <깨어 나소서 주여>, <주를 보오려>는 물론이요 <어머니의 성서>, <눈>, <아침기도>, <새벽 외출> 등의 시편들이 이에 해당된다. (……) 끝으로 김남조 시의 중추가 되는 특성으로서는 생명의 존귀함과 인간적 삶의 예찬의식이란 점이다. 이런 성향은 위에서 살펴본 사랑이나 가톨릭적인 요소와도 상호 연결되면서 원숙한 시 미학의 구현으로 나타난다. 더욱이 처녀 시집인 <목숨>에서부터 다소 열띠고 항변적으로 드러냈던 생명의식은 이제 정중히 가라앉고 보다 밝고 경건한 삶의 예찬으로 심화되고 있다. 이런 성향은 중기 이후 최근의 시편들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바람>이나 <범부의 노래>, <서녘> 등에서는 더 인간주의적인 삶의 예찬이 짙게 드러나 있다. (……) 오랜 메커니즘의 일상에서 파김치된 채 잃었던 자신을 찾기 위해 더러 거칠지만 원시의 본고향을 그리며 갈구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존재의 마모를 벗어나 본연의 인간에 회귀하기를 바라면서 휴식의 향유를 염원하는 실존의식을 작품화한 것이다. ‘사랑과 종교, 삶의 예찬 구현해 온 ‘명상의 세계’’, 이명재, <한국대표시인선 50>, 중앙일보사, 1995
작가의 말
대학 4학년이 된 해에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이때 어느 누구라고 하는 개개인은 거대한 총체적 혼란과 비극 안에 갇혀 부침하였다. 특히 젊은이들은 저마다 명운(命運)의 격랑에 휘몰렸기에 피난지 부산의 남성여고 강당에서 거행된 졸업식(서울대 제5회)엔 재적인원의 삼분의 일에도 못 미치는 졸업생만 참석하는 등 공석현상이 많아 참담하였다. 나의 어설픈 원고뭉치는 은사님의 주선으로 출판사에 넘어갔으나 상당 기간 유보되어 있다가 53년 1월 혹한의 날에 <목숨>이라는 상처보따리 혹은 상황의 보고서라 할, 첫 시집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부산의 영도다리를 넘어가야 그날 밤의 숙소가 있었던 나는 몇 권의 책을 품고 다리의 한가운데쯤에서 난간을 붙들고 검게 일렁이는 물결을 굽어보았다. 혼자였고 추위 때문에 더 걸을 수가 없었던 그날 밤의 착잡한 심정을 나는 내 문학이 직면한 최초의 절망으로 기억하여 그날 밤 안에 그 절망을 끝내었다고 어디선가 술회한 바 있다. 시집 <목숨>의 초판 장정은 친구인 조동화 씨(잡지 <춤> 발행인)였으나, 현재는 한 권도 남아 있지 않고 어른들이 열어주신 출판기념회에서 자작시 낭송을 하고 있는 사진에 겨우 표지모양이 나타나 있다. 출판사의 결정으로 재판 장정은 다른 이로 바뀌었는데 그것과 3판인 양장본은 현재 가지고 있다. 연이어 몇 권의 책을 내게 되었고 문단의 후의(厚意)도 입었으나, 나의 초기 작품엔 두 가지의 허물이 있음을 스스로 알게 되었다. 그 하나는 감상과잉이고 다른 하나는 언어의 미성숙이었다. 일제강점기여서 국어교육이 전무하다시피 한데다, 중학 과정을 일본에서 보낸 나는 시인의 첫째 기능이라 할 말의 궁핍에 빠져 허위적인 경우가 허다했다. 그리하여 후일 언젠가 전 작품을 되읽고 필요한 부분들의 수정을 꼭 해야겠다는 다짐을 되뇌이곤 했었다. (……) 문학은 내게 있어 ‘병이면서 치유’이던 것이다. 더 근사치로 말한다면, ‘병이면서, 병이면서, 또 병이면서 겨우 약간의 치유’가 될 것 같다. 세월이 깊어지면서 나는 시와 더욱 친밀하게 되었고 시인들과의 사이에도 돈독한 일체감을 얻어온다. 시인은 한평생 시의 사역(使役)에 신음하지만, 다름아닌 그 고통 안에 시인의 구원이 포함되었음을 시인들은 어느 날 문득 알게 된다. 시인이라는 관사는 나에게 있어 무겁고 불편한 것이면서 한편, 가진 것 없는 나를 다소간 자랑스럽게 해주었다. 바라느니 나의 여생에도 날마다 시가 내 시린 손을 잡아주기 염원하며 이 책이 나오기까지 애써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더하여 나와 동시대를 사는 모든 이에게 공감과 사랑을 드린다. 우리는 다난한 시대에 이 아름다운 별을 방문하여 이 땅에 살았고, 저마다 최선을 다해 그 자신의 생을 껴안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삶에의 외경을 배운다. 정녕 우리 중에 그 누가 무력감과 이에 따른 겸손 없이 생을 감당할 힘을 얻어내겠는가. ‘시전집을 펴내며’, 김남조, <김남조 시전집>, 국학자료원, 2005
관련도서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한국대표시인선 50>, 중앙일보사, 1995 <김남조: 한국대표시인 101인선집>, 김남조, 문학사상사, 2002 <한국 페미니즘의 시학>, 강금숙 외, 동화서적, 1996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3>, 장석주, 시공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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