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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칼론 1

작품명
식칼론 1
저자
조태일(趙泰一)
구분
1960년대
저자
조태일(趙泰一, 1941~1999) 호는 죽형(竹兄). 1941년 9월 30일 전남 곡성 출생. 1966년 경희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69년부터 1970년까지 시 전문잡지 <시인> 주간을 지냈으며,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원,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등을 역임했다. 만해문학상, 편운문학상, 전라남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아침 선박>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이듬해 시집 <아침선박>을 간행하였고, 계속하여 <식칼론>(1970), <국토>(1975), <가거도>(1983), <연가>(1985), <자유가 시인더러>(1987), <산 속에서 꽃 속에서>(1991), <풀잎은 꺾이지 않는다>(1995),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1999) 등을 발간했다. 평론집으로 <고여 있는 시와 움직이는 시>(1979), <김현승 시정신 연구>(1998) 등을 간행하기도 했다. 그의 초기 시는 원시적인 삶에 기반을 둔 상상력에 의하여 삶의 순수성을 보여주는 세계상을 그리는 데 집중되어 있다. 그는 삶의 순결성이 철저하게 파괴된 현실 앞에서 진실을 은폐하려는 기도에 당당히 맞서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시를 통해 민중적 연대감을 획득하고자 한다. 시집 <국토>(1975)는 분단 현실의 폭력성과 허구성을 고발하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충만해 있는데, 이는 분단을 극복하고 남과 북을 아우르는 건강한 민중성에 기반을 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고 있다. 시집 <가거도>(1983)에서는 민중적 삶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보여주고, 삶의 내적 충일을 통한 역동성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리뷰
(……) 시에 의해서만 보자면 물론 그는 강골(剛骨)의 시인이자 동시에 반골(反骨)의 시인이다. 그런 자기의 시적 체질을 조태일 씨만큼 완강하고 집요하게 지키고 키워 낸 시인을 우리는 우리 시문학사에서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뜻에서는 그는 비교적 단조로운 시인이다. 이 단조로움은 한편으로 우리 시대의 모든 정직한 시인들이 고집스럽게 감내해야 할 응분의 덕성 중의 하나이다. (……) 물론 조태일 씨의 문학이 처음부터 이처럼 시대적 현실과의 각박한 격투로 시작되었던 것은 아니다.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던 데뷔작 <아침 선박(船舶)>이나 이 무렵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 보면, 이 시인 특유의 활달한 기상과 튼튼한 체질이 이미 느껴지기는 하면서도, 그가 넓은 의미의 모더니즘 계열에 드는 여타의 흔한 시인들과 근본적으로 구별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철저한 자유를 부르면서/ 흐느끼는 심연 그 움직이는 고요./ 가파른 정오의 한때를.// 이해만 오직 진행이 있을 때/ 당황하던 파도를 식욕을 거느린 별들이 주워들고 멀리 떠났다” 이것은 <아침 선박>의 일정이다. 시의 토운(語調)이 단호하고 심각한 데에 비하면 무엇이 그처럼 단호하고 심각하게 얘기되고 있는지 하는 것은 대단히 불분명하다. ‘흐느끼는 심연’, ‘움직이는 고요’, ‘당황하던 파고’ 등의 어귀들은 시인만이 느낀 어떤 특수한 정황(情況)의 시각화(視覺化)임이 명백하지만, 그것을 독자들이 더불어 실감하기는 매우 어렵다. 무엇보다도 이런 표현들의 본질적인 상투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런 표현들은 그것을 낳을 만한 객관적 현실이나 체험적 현실에 대응된 시적 결실이 아니고, 시적이라고 여겨지는 수사법에 의탁함으로써 현실에의 대응을 회피한 결과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서의 ‘철저한 자유’라고 하는 것은 관념적 자유 이상의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 조태일 씨의 시에 참된 문학적 가능성을 열어 주는 것은 자기 시의 이러한 상투성과 관념성에 만족하지 않는 그의 정직성이다. <아침선박> 자체에도 이미 ‘당황하던 파도’ 식의 표현과 양립할 수 없는 씩씩한 기백이 드러나고 있지만, 그리고 <다시 포도에서>, <물동이 환상>, <골목유감>, <4월의 메오>, <문풍지(門風紙)와 나무와 나와> 같은 작품에서는 그것이 더욱 활달하게 표현되고 있지만, 역시 단순한 정서적 기백으로서가 아니라 뚜렷이 자각된 시적 목표로서 현실의 문제가 정립되는 것은 연작시 <나의 처녀막(處女膜)>에 이르러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들에 이르러 비로소 조태일 씨는 이 시대의 정치적·사회적 현실의 문제를 자기 시의 중심적 주제로 맞아들이고 그 문제와의 싸움에 최대의 문학적 정열을 바치게 된다. 그는 자기 시대를 4·19적 순결성이 유린된 시대로, 그 이상이 난폭하게 좌절된 시대로 인식한다. 그것을 그는 처녀막의 파열에 비유하여 “아아, 내 작은 한 줌의 자유여. 민주여./ 나의 상한 처녀막 근처에 웅성이는/ 고달픈 아우성을, 쫓기던 음성을 듣는가.”(<나의 處女膜 1>고 부르짖는다. 그런데 조태일 문학의 뛰어난 점은 그러한 현실인식의 정확성 여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꺾이고 짓밟혔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런 좌절의 경험을 통해서 더욱 튼튼하고 우렁찬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데서 찾아진다. (……) 조태일 씨의 이러한 현실인식과 자기 각성은 연작시 <식칼론>에 와서 더욱 세련되고 심화된 민중적 지혜로 발전한다. 그의 ‘식칼’은 “창틈으로 당당히 들어오는/ 햇빛으로” 달구고 “가장 타당한 말씀으로”(<식칼論 1>) 벼린 칼이다. 그것은 사람뿐 아니라 모든 짐승과 새와 물고기와 나무와 돌멩이들이 원래의 저 태어난 대로 살아가도록(또는 존재하도록) 마련되어진 근원적 힘이며 말하자면 우주적 섭리이다. 그러므로 이 칼은 본질적으로는 부드럽고 고요하고 너그러운 것이나, 생존이 위협받고 생긴 대로 사는 방식이 방해 받을 때에는 한없이 날카롭고 난폭하고 용맹하다. 눈 뜨고 가슴 열리게 먼 눈 썩은 가슴들 앞에서 번뜩임으로 있겠다! 그 고요함으로 있겠다! 이 칼빛은 워낙 총명해서 관용스러워서, - <식칼論 3> 중에서 50편 가까운 연작시 <국토>에서 우리는 조태일 씨의 이러한 지혜와 투지가 70년대적 현실 속에서 얼마나 끈덕지게 몸부림쳐 왔는가를 읽을 수 있다. 더욱 어려워지는 상황 속에서 그의 문학은 타협 없는 저항의 목소리를 때로는 자기연민의 심정으로, 때로는 위트와 파라독스의 형태로, 때로는 신변의 생활에 대한 푸념으로, 또 때로는 민중의 역량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고 역사의 광명을 앞당기는 싸움에 몸바치리라 스스로 다짐하는 자세로 거듭 발하는 것이다. (……) ‘발문’, 염무웅, <국토>, 창작과비평사, 1975
작가의 말
목숨 부지하며 살아가기가 참말로 부끄러워 괴로움에 온 마음과 온몸을 조인 채 허우적거리며 살아온 5년 남짓한 소용돌이 속에서 썼던 연작시 <국토> 43편을 1·2부로, 시집 <아침 선박>(1965)과 <식칼론>(1970)에서 39편을 골라 3·4부로, 모두 87편을 묶어 세 번째 시집이 되는 <국토>를 펴낸다. 그러므로 이 시집 <국토>는 1960년대 초반에서 197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십수 년 동안에 썼던 시들을 거의 한데 묶은 셈이 된다. 그리고 원래는 <국토>를 발표하기 시작할 때부터 일정기간 동안에는 제목 붙이기조차 게을리해서 연작 번호만을 붙여 발표했던 것인데, 이번 시집을 준비하면서 연작 번호 위에 적당한 제목을 붙여줬을 뿐만 아니라 매편의 시를 약간씩 혹은 시에 따라서는 대폭 수정했음을 밝혀둔다. 시집을 내는 일은 즐거워야 하고 약간 들뜨는 심정이 들어도 무방할 터인데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이, 들뜨는 심정보다는 찹찹하고 허전한 마음이 강세다. 이는 마치 어떤 대단한 일을 끝낸 뒤에 오는 심정일 터인데, 대단한 일은커녕 늘 지혜롭지 못하고 힘 모자라서 역사와 민중의 변두리쯤에서 가까스로 버텨오면서도, 부지불식간에 이 역사와 민중을 앞질러 가고 있다는 자만과 망상까지 가지면서 살아온 터임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마당에 심히 부끄러울 뿐이다. 따라서 나는 이 시집을 계기로 뉘우치고 깨달으면서 나에게 채찍을 가할 것이다. 줄기차게 시를 써야 할 것이고, 때에 따라서는 절필(絶筆)도 각오해야 한다면서. ‘후기’, 조태일, <국토>, 창작과비평사, 1975
관련도서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장석주, 시공사, 2000 <나는 노래가 되었다>, 조태일, 창작과비평사, 2004 <국토>, 조태일, 창작과비평사,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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