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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저자
황순원(黃順元)
구분
1950년대
개요
1953년 5월 <신천지>에 발표된 황순원의 단편소설. 작품 말미에는 탈고 시기가 1953년 1월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1956년에 나온 황순원의 다섯 번째 단편집에 표제작으로 수록되었다. <학>은 부역 혐의로 체포된 덕재라는 인물을 그의 어린 시절 친구인 성삼이가 호송해 가는 도중 풀어주고 만다는 간단한 내용의 작품이며, 분량도 매우 짧다. 콩트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 소품에 불과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그동안 상당한 주목의 대상이 되어왔는데, 그 이유로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기법적인 면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이다. 평화와 깨끗함 그리고 고고한 기품을 상징하는 학이라는 장치를 적절히 활용한 것이라든지, 설명을 가능한 배제하면서 독자들에게 풍부한 함축을 전달한 수법이라든지, 열린 결말로 적절하게 끝을 맺은 구성의 묘미 등이 모두 단편 미학의 모범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황순원이 꾸준히 견지해 온 인간 신뢰의 태도를 이 작품이 인상적으로 대표해준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보면 <학>은 황순원 소설의 한 축도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 나타난 바와 같은 인간 신뢰의 태도는 무조건적으로 긍정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며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상당한 논란거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황순원 문학의 한 중요한 요소를 이루며 그 문학의 많은 부분을 해명해주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셋째, 한국전쟁에 대한 한국 소설가들의 일반적 대응 양식 가운데 한 가지 유형을 이 작품이 대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소박한 인간 신뢰에 기초한 휴머니즘의 자세를 가지고 전쟁의 상처를 이겨내보고자 하는 유형의 대표작으로 이 <학>을 꼽을 수 있다.
내용
한국전쟁 직후 고향인 3·8선 접경의 이 마을에 들어온 주인공 성삼은 농민동맹 부위원장을 지낸 친한 친구 덕재가 치안대에 잡혀오자 그를 단독으로 호송하기로 한다. 처음에는 이념의 대립 때문에 적대감을 품었으나, 덕재가 빈농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제로 농민동맹 부위원장이 되고, 노부와 농사일 때문에 피난을 못 가게 되었다는 사정을 들으면서 갈등이 점차 해소된다. 어렸을 때의 따뜻했던 우정이 다시 되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3·8선 완충지대에 이르러서 학떼를 본 순간 성삼은 어린 시절 학을 잡으러 다니던 추억을 떠올리며 덕재의 포승줄을 풀어준다.
저자
황순원(黃順元, 1915~2000)1915년 3월 26일 평남 대동 출생. 숭실중학교, 와세다제2고등학원을 거쳐 1939년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31년에 시 <나의 꿈>을 <동광>에 발표한 후 시 창작을 계속하여 <방가>, <골동품> 등의 시집을 출간했다. 1937년부터 소설 창작을 시작하여 1940년에 <황순원 단편집>을 출간하고, 그후 소설 창작에 주력하여 <목넘이 마을의 개>, <기러기>, <곡예사>, <학>, <잃어버린 사람들>, <너와 나만의 시간>, <탈> 등의 단편집과 <별과 같이 살다>, <카인의 후예>, <인간접목>, <나무들 비탈에 서다>, <일원>, <움직이는 성>, <신들의 주사위> 등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1957년 예술원 회원이 되었고, 아세아자유문학상, 예술원상, 삼일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간결하고 세련된 문체, 소설 미학의 전범을 보여주는 다양한 기법적 장치들, 소박하면서도 치열한 휴머니즘의 정신,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에 대한 애정 등을 고루 갖춘 황순원의 작품들은, 많은 논자들에 의하여 한국현대소설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위치한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특히 그의 소설들이 예외없이 보여주고 있는 서정적인 아름다움은 소설 문학이 추구할 수 있는 예술적 성과의 한 극치를 실현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소설 문학이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 주력할 경우 자칫하면 역사적 차원에 대한 관심의 결여라는 문제점이 동반되기 쉬운 법이지만, 황순원의 문학은 이러한 위험도 잘 극복하고 있다. 그의 여러 장편소설들을 보면,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충실히 견지되는 가운데, 일제 강점기로부터 이른바 근대화가 제창되는 시기에 이르는 긴 기간 동안의 한국정신사에 대한 적절한 조명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리뷰
(······) 단편 <학>은 좌우이데올로기의 대립보다는 오히려 이를 우정으로써 뛰어넘는 휴머니즘을 보여준 작품이다. 이 작품은 6·25 당시 삼팔선 접경의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국군인 성삼이가 농민동맹 부위원장을 지낸 어릴 적 친구 덕재를 호송해가면서 학사냥을 미끼로 전쟁이 빚은 갈등의 상황을 우정으로 극복하려 시도한다. 이 작품에서 ‘학’은 전쟁이 일방적으로 부여한 이데올로기의 갈등 상황을 해소시켜 주는 매개물로서 작용한다. 덕재의 손에 묶여있던 포승줄이 학을 잡는 올가미로서의 구실을 하게 됨으로써 구속이 아닌 자유를 표상하는 반어적 이미지의 역할을 담당한다. 어릴 때에 “그저 자기네의 학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사냥꾼의 손을 피해 단정학을 푸른 하늘로 날려보낸 그들의 생명사랑정신은 이데올로기가 빚어낸 현실의 갈등 상황을 우정의 화합으로써 극복하게 하는 데 기여한다. 특히 “이 자식아, 그동안 사람을 몇이나 죽였나”라고 묻는 성삼이에게 “그래 너는 사람을 그렇게 죽여봤니?”라는 덕재의 말을 들으며 “가슴 한복판이 환해짐”을 느끼고 “막혔던 무엇이 풀려내리는 것만 같은” 감정을 느끼는 성삼이는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대표적 인물로 표상된다. 이 점에서 성삼이가 학사냥을 구실로 하여 덕재를 살려주려는 행위는 어쩌면 필연적인 행위라고 볼 수 있다. (······) 어릴적 그들이 놓아주었던 ‘단정학’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그대로 우정의 표징으로 수용되면서 성삼이와 덕재에게 현실의 갈등을 극복하게 하는 자유와 평화의 새로서 표상된다. 이 소설의 결미에서 보여주는 ‘단정학’, ‘높푸른 가을 하늘’, ‘유유히’ 등의 표현은 이데올로기가 빚은 갈등의 현실상황을 뛰어넘은 우정과 생명사랑과 자유와 평화를 암시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한편 문학평론가 김윤식은 성삼이가 덕재를 풀어주는 행위는 “직무유기에 다름 아니다. 학사냥을 빙자하여 그런 행위를 저지르는 일은 합리적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세계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작가 황순원은 “합리적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세계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을 다룰 수 있는 게 오히려 소설의 세계가 아닌가”라고 말하며 김윤식의 작품 해석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황순원은 김윤식이 <학>을 샤머니즘과 민화의 세계에 결부시켜 얘기하면서 단편 <학>을 소설이라 부르기 어렵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 당혹스러움을 표시한다. 이러한 황순원의 견해는 타당하게 보인다. 반면 신동욱, 조남현, 송하섭 등이 단편 <학>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신동욱은 “민족 분열의 비극적 현실을 분열 이전의 공동생활체의 경험을 통하여 회복시킴으로써 치유하는 인간애의 정신을 펼쳐보이고 있다. (······) 어렸을 때의 통합된 삶을 온전히 회상케하는 혹부리 할아버지의 고함소리, 밤나무, 소녀 꼬맹이, 학사냥 등 단순하고도 값진 향리의 어렸을 때의 삶을 통하여 분열의 상처를 회복하는 한 치유의 슬기로 보여주고 있다.”라고 평가하면서 “민족분단의 고통과 슬픔의 극복도 문화의 동질적 바탕에 두고 이루어질 때 보다 쉽게 또는 바람직하게 이룰 수” 있음을 제시한다. 이러한 신동욱의 평가는 성삼이와 덕재가 과거 공동생활체의 경험을 토대로 우정을 확대 지속시키고 있음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가진다고 본다. 또한 조남현은 “<학>에서 황순원이 정작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대립과 분열로서의 현재가 아닌, 화해와 동심으로서의 과거였다. (······) 학사냥 놀이를 시작함으로써 학사냥 놀이가 상징하는 과거, 평화와 순박성과 일체감이 감돌고 있는 과거로 복귀할 뜻을 분명하게 내보인 것이 된다. ‘학’의 상징적 의미를 잠깐 떠올리기만 해도 대립과 탐욕의 세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작가의 열망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쉽게 짐작하게 된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나아가 송하섭은 황순원 소설의 서정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학>은 사회체제라는 이데올로기 의식을 넘어서는 인간생명의 소중함을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나아가 황순원 소설 속에 현실의식과 역사의식이 포용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이런 뜻에서 황순원 소설의 서정성은 효석과 유정을 함께 수용한 것으로 소설의 서정성에 있어 새로운 지표를 열은 것으로” 평가한다. (······) <황순원 문학 연구>, 장현숙, 푸른사상, 2005
작가의 말
(······) 그림의 소재가 우선 물감이듯이 글의 소재가 우선 말이라는 상식을 우리는 곧잘 잊어버리곤 한다. 이 소재를 소홀히 하고서 좋은 글을 기대한다는 건 아무런 쌀로나 맛있는 밥을 바라는 것과 같은 염치없는 일이라고 나를 타이르곤 한다. 오늘의 문장은 말하듯이 써야 한다는 얘기를 가끔 듣는다. 과연 그럴까. 말은 귀로 듣고 글은 눈으로 본다. 귀로 듣는 말과 눈으로 읽는 글이 같을 수 있을까. 언젠가 감명 깊게 들은 한 강연을 후에 속기록을 살려 글로 옮겨놓은 것을 보고 그 지리멸렬함에 놀랐다. 역시 말하듯이 말하고 글쓰듯이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 일단 활자화된 내 작품에 대해 나는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고 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작품으로 하여금 독립된 생명을 스스로 지니게 하기 위해서요, 작품에 대한 독자의 자유스러운 감상을 작가로서 방해하지 말자는 생각에서다. 작가의 의식은 언제나 깨어있어야 한다. 무의식의 세계를 그릴 때도 작가는 그걸 분명히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 ‘말과 삶의 자유’, 황순원, <황순원>, 새미, 1998
관련도서
<황순원 다시 읽기: 모래와 별 사이에서>, 장현숙, 한국문화사, 2004 <현실인식과 인간의 실: 장현숙 비평집>, 장현숙, 한국문화사, 2004 <1930년대 소설의 서사기법과 근대성>, 구수경, 국학자료원, 2003 <한국현대작가연구>, 김상태 외 편저, 푸른사상사, 2002 <한국 소설사: 근현대편>, 이재선, 민음사, 2000 <황순원: 선비 정신과 인간 구원의 길>, 송현호, 건국대출판부, 2000 <1950년대 문학의 이해>, 조건상 편, 성균관대출판부, 1996 <황순원문학연구>, 장현숙, 시와시학사, 1994 <한국현대소설의 해부>, 조남현, 문예출판사, 1993 <소설과 운명의 언어: 권영민 평론집>, 권영민, 현대소설사, 1992 <한국현대작가연구: 황순원에서 임철우까지>, 권영민 편, 문학사상사, 1991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연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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