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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등

작품명
잔등
저자
허준(許俊)
구분
1940년대
개요
1946년 1월부터 7월까지 <대조>에 연재되었던 허준의 중편소설. 광복 후 순수문학 내지 모더니즘문학을 고수했던 많은 작가들이 개인의 윤리문제와 시대의식에 관심을 쏟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발표된 <잔등>은 냉정한 관찰정신과 역사에 대한 중립성, 균형감각이 특히 주목되는 작품이다. 광복 전에 발표한 <탁류>, <야한기>, <습작실에서> 등에서 보여주었던 주인공의 허무주의와 냉정한 고백체의 성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데올로기적 편견이나 맹목성이 없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주인공은 화가이며, 도쿄 유학경험이 있는 지식인이다. 또한 피난이라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일기장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반성적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고독적·내면적·돌발적·답보적 체념을 위한 행동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방관자의 성격을 가진 인물이 장춘에서 회령, 서울로의 여정을 따라 이동하면서 패전한 일본인들의 모습과, 혼란과 새 질서 창조의 열망에 빠져 있는 조선인들의 모습을 관찰한다. 이때 그의 관찰은 역사에 동참하지 못하는 소외자의 방관으로 빠져들기 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주인공의 ‘제3자의 정신’을 여행이라는 소설적 형식과 접맥시킴으로써 완결성을 획득한다.
내용
해방 후, 광복의 열기와 착잡함, 그리고 무질서가 뒤얽힌 시대 상황에서 친구인 ‘방(方)’과 장춘(長春)에서 청진까지 오던 ‘나’는 열차를 놓친다. ‘방’과 헤어진 뒤 화물차를 얻어 타고 청진 못 미친 수성까지 오게 된 ‘나’는 제방을 따라 내려가다가 뱀장어를 잡는 한 소년을 발견한다. 이 소년은 뱀장어를 잡아서 일본인에게 파는데, 사실은 숨어 있는 돈 많은 일본인을 알아내어 한국인들에게 알리는 일이 본업이다. 일본인들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소년의 모습을 ‘나’는 망연히 바라만 본다. ‘방’을 만나려고 청진역으로 왔을 때, 국밥 장사를 하는 어떤 할머니를 만난다. 할머니는 갓 서른에 남편을 여의었고, 독립운동을 하던 아들마저 일경(日警)에 잃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난민들에게 너그러울 뿐더러, 일본인에게까지 원한과 저주를 넘어 관대하고 동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나’는 할머니에게서 인간 희망의 넓고 아름다운 시야를 발견한다. ‘나’와 ‘방’은 다시 군용 열차로 청진을 떠난다. ‘나’의 머릿속에는 국밥집 할머니의 잔등(殘燈), 뱀장어를 잡던 소년의 잔등(殘燈)이 흐린 불빛으로 새겨진다. ‘나’는 해방된 조국에서 이국 병사들의 감시를 받으며 남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저자
허준(許俊, 1901~?)1910년 2월 27일 평북 용천 출생. 일본 호세이대학을 졸업했다. 1935년 10월 <조선일보>에 시 <모체>를 발표하기도 했으나, 1936년 <탁류>를 발표하면서 소설 창작에 전념하였다. 광복 전에는 ‘나’라는 고독한 자아의 내면심리를 그려낸 <야한기>(1938), <습작실에서>(1941) 등을 발표하였다. 광복 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여 <속·습작실에서>(1947), <평때저울>(1948), <역사>(1948) 등을 발표하다가 월북하였다. 소설집으로는 <잔등>(1946)이 있다. 광복 전에 발표된 허준의 작품은 현실에 무관심한 채 자신의 내부에 시선을 돌릴 때 필연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고독감을 주제로 하고 있다. 주인공들은 의지로 어쩔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사람들이 현실을 살아나감에 있어 가치의 판단에 굳이 골몰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다. 그저 홀로 있다는 고독을 조용히 음미하며 살아가면 된다고 본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지식인의 내면심리 추구는 광복이라는 역사적 현실 앞에서 변모하기 시작한다. <잔등>에서는 광복 직후의 상황을 지식인의 자의식을 통해 균형감각을 가지고 엄정하게 그려냈으나 <속·습작실에서>에 이르면 독립투사의 진실한 삶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화자의 중립적 태도가 흔들리게 되고, 이후의 작품에서는 역사현실에 대한 관심이 더욱 고조되어 나타난다.
리뷰
(······) 이 소설은 해방이 되어 만주에서 귀환하는 동포들의 이야기가 소재로 되어 있다. 소위 해방 공간기의 문학에는 이런 소설들이 상당수 있는데, 채만식의 <소년은 자란다>(1947), 계용묵의 <별을 헨다>(1946), <바람은 그냥 불고>(1947), 김동리의 <혈거부족>(1947), 최인욱의 <개나리>(1947), 정비석의 <귀향>(1946), 이석훈의 <고향 찾는 사람들>(1950), 그 밖에 <해방의 아들>과 같은 작품이 그런 예이다. 해방이 우리에게 준 의미는 어떠한 말로도 설명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충격이 당시의 소설에는 그만큼 강한 자극으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시의 경우에 있어서는 해방의 환희가 엄청난 격정으로 노래되었다. 1945년에 간행된 <해방기념 시집>은 온통 그런 감격으로 차 있다. (······) 그러나 ‘돌아오고 되찾은’ 이 기쁨도 작가 허준은 냉담하게 맞았다. (······) 문학에 온 해방은 이렇게 문학 외적 문제로 문단에 반영되었고, 이런 문학 외적 문제는 정치적 노선에 지나치게 접근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해방 공간기 문학의 이와 같이 바짝 달라붙은 정치와의 밀착은 다음 단계에 결국 우리 문단을 좌우 대립의 극한 상황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그것은 민족 문학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국토 분단에 악역의 한몫까지 하게 된 것이다. 한데 지금까지 월북한 문인으로 처리되어 온 허준의 이름은 이 대회의 어느 기록에도 발견되지 않는다. 참여한 흔적이 없으니 사회주의 사상을 신봉한 문인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문학 외적인 것에는 무관심한 작가라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그의 문학적 진지성을 알 만하다는 뜻이다. 허준의 이런 ‘냉담한 문학성’을 <잔등>이 잘 보여주고 있다. 작품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1인칭 화자 ‘나’로 나타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 천(千)은 방(方)이라는 친구와 함께 해방이 되자 만주 장춘(신경)에서 회령, 청진을 거쳐 서울로 돌아온다. 이 소설의 첫 행이 “장춘서 회령까지 스무 하루를 두고 온 여정이었다.”로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대단원 역시 명멸하는 청진역의 불빛 속에 서울행 무개열차를 타고 떠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말하자면 이 소설은 귀향으로 시작되고 귀향으로 끝난다. 그만큼 ‘돌아옴’의 의미로 꽉 차 있다. 그러나 돌아옴의 과정에는 해방의 감격도, 귀국의 흥분도, 식민지 시대에 대한 치떨리는 분노도, 새로운 희망도 없다. (······) 작가는 모든 사람이 다 감격하고 흥분하는 광복을 ‘차갑게’ 맞이하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 김윤식 교수는 이런 대목을 두고 ‘보다 진정한 진보주의자’라고 평한 바 있다. 일본에 대한 열등감과 동포에 대한 우월감에서 오는 미안함에 의해 자기 분열을 일으켰고, 여기서 빚어진 세계관이 적극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허준을 최명익 계열과 함께 묶어, 사이비 진보주의 안회남으로 대표되는 문맹계나 프로 문학과 구별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왜냐하면, <잔등>에 나타나는 의미는 해방 공간의 감격적 시대 의식이 외연화된 것이 아니라 작품의 처음과 끝이 모두 다 문학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삶의 방법’, ‘인간의 문제’를 내포화하는 긴장으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허준의 소설이 감추고 있는 ‘냉담성’의 정체는 바로 여기서 출발된다. (······) 주인공 ‘나’가 바라보는 해방 공간의 시각과 할머니의 ‘은근한 목소리’가 서로 일치되는 것을 발견한다. 독한 호주를 마시는 천의 태도는 바로 할머니의 인간적이기를 원하는 삶의 긍정이기 때문이다. 결국 천은 소년에게서 너무 격렬한 되살아남의 자세를 발견하고 그러한 삶의 태도가 얼마나 반지성적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해방, 광복이 되어 피난 보따리 하나만 짊어지고 돌아온 이 화가가 고국에서 오직 이 늙고 외로운 국밥집 할머니의 삶에서 시대의 참 모습을 발견한다. 그래서 천의 머리에는 모든 것이 잔등의 영상으로 남는다. 이런 면은 이 소설의 마지막 몇 단락의 문장이 잘 보여 주고 있다. 작품의 대단원은 천과 방이 군용 열차를 타고 청진항을 떠나는 장면이다. 소련병의 다발총 공포에 다른 피난민들은 다 떨어지고 이 두 사람만 서울행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실향성의 회복이다. 그러나 지금 천의 머릿속에는 국밥집 할머니의 잔등, 뱀장어 잡는 소년의 잔등- 늦은 밤 심지가 타들어간 흐린 불빛으로 인각되어 가는 것이다. 이렇게 주인공은 해방된 조국에서 이국 병사의 감시를 받으며 밤의 청진을 다시 떠나게 된다. 이것은 결국 실향성의 회복이자 새로운 실향의 체험이다. 이래서 소설의 대미가 감상적 색조를 띠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점에서 <잔등>은 ‘보다 진정한 지식인 작가’ 허준이 해방 공간이란 복잡한 시대를 바라보는 불확실한 역사 의식, 무조건 되살아남으로만 인식할 수 없는 시대에 대한 깊은 우울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그의 이런 불투명한 현실의 상징으로서의 잔등은 어떻게 살 것인가란 문학 본질의 문제에서 출발된 초이념적 시각으로 한 시대를 증언하고 있다. 우리가 이 작품을 다시 논의하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이 아니겠는가. ‘허준과 이석훈의 문학 세계’, 오양호, <북으로 간 작가선집>, 을유문화사, 1988
작가의 말
(······) 너의 문장은 어째 오늘날도 흥분이 없느냐, 왜 그리 희열이 없이 차기만 하나. 새 시대의 거족적인 열광과 투쟁 속에 자그마한 감격은 있어도 좋을 것이 아니냐고들 하는 사람이 있는 데는 나는 반드시 진심으로 감복하지 아니한다. 민족의 생리를 문학적으로 감득하는 방도에 있어서 다시 말하면 문학을 두고 지금껏 알아오고 느껴오는 방도에 있어서 반드시 나는 그들과 같은 방향에 서서 같은 조망을 가질 수 없음을 아니 느낄 수 없는 까닭이다. (······) ‘소서(小序)’, 허준, <잔등>, 발행자불명, 1946
관련도서
<한국현대대표소설선>, 창작과비평사, 1996 <북으로 간 작가선집>, 을유문화사, 1988 <모더니티와 타자의 현상학: 한국 근대 문학의 풍경>, 권성우, 솔출판사, 1999 <소설담론과 주체형식>, 박훈하, 삼지원, 1998 <한국 근대 리얼리즘 작가 연구>, 김윤식·정호웅 공편, 문학과지성사, 1988 ‘해방기 삶의 탐색 태도와 그 의미: 허준의 <잔등(殘燈)>론’, 윤애경, <한국문학이론과비평> 26. 2005.3 ‘1930년대 후반기 모더니즘 소설 재고: 최명익과 허준을 중심으로’, 김민정, <한국학보> 77, 1994.12 ‘허준 소설의 미학적 현대성 연구’, 권성우 <한국학보> 73, 1993.12 ‘식민지 체험과 식민주의 의식의 극복: 허준의 <잔등> 연구’, 김종욱, <현대소설연구> 22, 2004.6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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