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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명

작품명
실비명
저자
김이석(金利錫)
구분
1950년대
개요
1954년 3월에 발표된 김이석의 단편소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여 홀아비 인력거꾼인 덕구와 그의 외동딸인 도화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딸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아버지와 그러한 아버지의 기대를 따르지 못하는 딸의 삶이 엇갈리며 전개된다. ‘실비명’은 비명(빗돌에 새긴 글)을 잃어버렸다는 뜻으로서, 아버지의 소망을 저버린 딸의 뉘우침을 상징하고 있다. 작자는 아버지의 꿈과 딸의 소양에 비극적 인간성을 설정해 놓고서, 일제 시대 불우했던 민족적 현실을 휴머니티의 힘으로 초극해보려는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독특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단편소설로서의 긴장감이나 응축미가 결여되어 다소 추상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내용
인력거를 끄는 덕구의 소망은 도화를 공부시켜 의사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인력거의 단골손님인 기생들 대신 의사인 자기 딸을 태워 마음껏 달리고 싶다는 것이 아버지의 꿈이다. 반면에 도화는 어릴 때와는 달리 여학교에 들어가 주위 환경에 부딪치면서 덕구의 기대와는 다른 삶을 꿈꾼다. 이 과정에서 도화는 아마추어 여배우가 되어 무대에 오르기도 하지만, 이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퇴학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요구에 못이겨 의사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간호사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도화는 병원 일을 어려워하고, 결국 간호사 일을 그만두게 되는데, 바로 이날 병원을 나와서 집으로 가는 도중 싫다는 도화를 억지로 인력거에 태우고 달리던 덕구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덕구가 죽은 후 도화는 기생학교에 들어가고, 이듬해 추석날 덕구의 묘를 찾아가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서러움에 겨운 춤을 한껏 춘다. 그리고 기생이 된 후 다시는 인력거를 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저자
김이석(金利錫, 1914~1964)1914년 7월 16일 평남 평양 출생. 1938년 광성고보를 졸업한 후 연희전문에서 수학하였다. 1937년부터 평양에서 동인지 <단층>을 발간하면서 <감정세포의 전복>, <환등> 등을 발표했다. 1938년 <동아일보>에 단편소설 <부어>가 입선되어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51년 월남하여 종군작가로 활약했다. 평양 명륜여상 교사, 평양미술전문학교 강사, <문학예술> 편집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56년 작품집 <실비명>을 발간하여 제4회 아세아자유문학상을 수상했다. 1957년 <조선일보>에 <아름다운 행렬>을 연재한 이후 주로 신문연재소설에 주력하였다. 김이석의 소설은 그 내용면에서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한국적인 정과 한을 다룬 작품들, 둘째 한국전쟁으로 인한 고통과 전후의 혼란상을 그린 작품들, 셋째 남녀의 애정 윤리를 다룬 작품들, 넷째 역사적 사실을 다룬 작품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그의 작품은 주제를 철저하게 밀고 나가는 내밀한 힘이 부족하여 대부분 안이하고 평범한 이야깃거리로 멈추어 버린 경우가 많고, 사건의 설정이나 인물의 성격도 유형적이어서 작품 하나하나의 개성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리뷰
(······) <실비명>(1952)은 마라톤에서 3등을 한 적이 있는 권번에 소속된 인력거꾼으로 기생들의 인력거를 끌어주는 ‘덕구’와 그의 딸과의 기질적 차이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페이소스, 그것의 해소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덕구는 자신의 딸을 의사로 만들어 그녀의 인력거를 끄는 것을 삶의 유일한 목표로 삼고 있다. 그래서, 처가 죽은 후에 재혼도 하지 않고 먹고 싶은 술도 절주를 하는 등 딸의 출세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딸은 예능 방면에 관심과 소질을 가지고 있다. 결국 ‘도화(덕구의 딸)’는 ‘허신’이라는 남자와 ‘아마튜어 협회’라는 곳에 들어가 콤박을 추다가 학교에 발각되어 퇴학을 당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덕구는 실의에 빠져 매일 술만 먹고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된다. 함박눈이 쏟아지는 어느날 밤, 병원에 자기의 딸이 어떻게 지내고 있나 보러 왔던 덕구는 도화의 얼굴이 너무 안 되어 보이는 것을 깨닫고 그녀를 독촉하여 인력거에 태우고 돌아오는 길에 그만 차에 치여 죽고 만다. “도화는 무심히 앉아서 아버지의 무덤을 지켜주는 듯이 무덤 앞에 홀로 서 있는 소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이 휙 하고 스쳐갈 때마다 솔가지들은 나부끼며 흡사 춤을 추는 것 같았다. (······) 다시금 솔잎을 치는 바람소리가 울리자, 불시에 그는 그 소리를 따르듯 활개를 벌려 허공에 던지었다. 순간에 그의 얼굴에는 인(燐) 같은 불빛과 함께 엄숙한 긴장이 흘러들며 허공에 놓인 비조(飛鳥)처럼 허망한 공간을 찾아 몸을 움직이었다. 무덤과 소나무의 잔디밭을 헤매던 그는 다시 들었던 팔을 하늘 위로 매지를 접으며 전신이 부드럽게 휘돌면서 소나무 아래로 달려갔다.” 교통사고로 죽은 덕구의 무덤에 와서 승무를 추는 도화의 묘사이다. 승무라는 춤의 예술적 의미를 단적으로 느낄 수 있는 훌륭한 묘사라고 판단된다. 예술은 사람들 사이에 쌓이게 마련인 한을 초현실적인 정신작용으로 해소시켜 줄 수 있는 마술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마치 한 마리의 비조처럼 허공을 가르면서 벌어지는 도화의 몸 동작은 죽은 아버지의 못다 이룬 한과 끝내 아버지의 한을 풀어주지 못한 자신의 불효를 예술로 승화시켜보려는 최대한의 인간적 노력이다. (······) 과거에 이루지 못한 아쉬운 기억들을 춤(예술)에 의지하여 모두 잊어버리고 하늘(자연)과의 합일을 꿈꾸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초인적인 힘을 불러일으키려고 노력하는 데에 예술(춤)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도화가 비록 힘든 인력거를 끌며 자신의 출세만을 바라는 아버지의 간절한 소원을 거절하여 그의 유일한 꿈을 꺾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녀의 독특한 기질에서 우러난 예술적 ‘끼’ 때문이었다는 것이 납득되는 것이다. “이듬해 봄에 기생이 된 도화는 인력거를 타지 않기로 결심했다. 비가 악스럽게 퍼붓는 밤에도 그는 옷을 적시면서 혼자 걸어왔다.” 비록 살아생전 아버지의 한을 풀어주지는 못했지만 자기 딸을 의사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모든 현실적 욕심을 버린 아버지를 추억하며 그 뜻을 지금이라도 받들어 보자는 딸의 애절한 마음이 돋보이는 구절이다. 김이석은 아버지의 뜻을 끝내 저버린 도화를 악한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본래적인 성품과 기호가 다른 인간 속에서 벌어지는 어쩔 수 없는 인간적 비극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간적 비극을 딸 도화의 승무라는 예술적 몸짓으로 승화시켜 보려는 태도에서 김이석의 문학관을 단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이 발표된 것이 1952년이었으니 아직도 6·25 전쟁이 끝나지 않았을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인간적인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예술적으로 승화해보려고 하는 김이석의 태도는 일련의 추상적인 내용을 긴밀한 구성과 섬세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훌륭히 형상화하였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 ‘김이석론’, 이동국, <어문논집> 41, 안암어문학회, 2000년 2월
관련도서
<20세기 한국소설 14>, 창작과비평사, 2005 <대표한국단편문학전집 9>, 금성출판사, 1991 ‘김이석론: 전향소설문제와 그의 작품세계를 중심으로’, 이동국, <어문논집> 41, 안암어문학회, 2000.2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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