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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이대

작품명
수난이대
저자
하근찬(河瑾燦)
구분
1950년대
개요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하근찬의 단편소설. 하근찬의 문단 데뷔작이자 출세작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하여 한국의 수난 역사가 어떻게 한 개인이나 가족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작자는 이러한 아픔의 역사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배척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미래에 대해서 다소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작품의 끝부분에서 두 부자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모습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극복의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
내용
아버지 박만도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아들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신바람이 나서 마중을 나간다. 그는 아들 진수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등어 한 손을 산다. 그리고 기차 대합실로 들어가 차가 오기를 기다린다. 차를 기다리는 동안 만도는 예전에 자신이 바로 이 대합실을 통해 일본으로 강제징용 가던 일을 회상한다. 그는 그곳에서 허기와 무더위 그리고 강제 노동에 시달려야 했고, 비행장 닦는 노역 중에 폭격을 당해 그만 한쪽 팔을 잃고 만 것이다. 마침내 기적 소리가 울리고, 만도는 울렁거리는 마음으로 대합실을 뛰쳐나간다. 그러나 아들은 보이지 않고 마음이 착잡해진다. 그때 등 뒤에서 아버지, 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깜짝 놀라 뒤돌아본 만도는 순간 한없이 실망하고 만다. 아들이 한쪽 다리를 잃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2대에 걸쳐 일어난 수난을 그저 한탄하고, 울분과 슬픔을 달래며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 두 사람은 외나무다리를 만나 난처해진다. 결국 다리가 성한 아버지가 고등어를 든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리를 건넌다.
저자
하근찬(河瑾燦, 1931~)1931년 10월 21일 경북 영천 출생. 전주사범학교와 동아대 토목과를 중퇴한 후 수년간 교직에 종사하였으며 잡지사 기자로 활동하였다.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수난이대>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후 7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제7회 한국문학상, 제2회 조연현문학상, 제1회 요산문학상, 유주현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하근찬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진 소시민의 내면세계에 침잠하던 동시대 대부분의 작가와는 달리 인정과 향토성이 짙은 농촌을 배경으로 농민들이 겪는 민족적 수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그리고 역사적 현실 속에 드러난 사회의 모순에 대하여 강한 고발의 자세를 견지하였다. 그러한 작품들로는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이라는 전란과정을 통해서 민족의 수난을 집약한 <수난이대>, 한국전쟁부터 종전까지를 배경으로 마을 청년들에게 소집 영장을 전하러 온 경관의 나룻배 승선을 거절하는 <나룻배 이야기>, 한국전쟁 때 노무자로 동원되어 팔 하나를 잃고 돌아와 얼굴에 흰 수염을 붙이고 극장 광고판을 메고 다니는 동길이 아버지의 이야기 <흰 종이 수염>, 들고 있는 편지 뭉치가 집집마다 통곡소리를 자아내는 전사 통지서임을 알고 냇물에 띄워 보냈다가 해고되는 배달부 이야기 <홍소>, 한국전쟁이 끼친 파괴적 영향력과 그 문화적 의미를 하나의 상징적 축도로 보여준 <왕릉과 주둔군>, 한국전쟁 직후 격전장이었던 지역 근처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불발탄 피해를 묘사한 <붉은 언덕>, 전후 어느 빈민촌의 판잣집과 부잣집의 개집을 견주어 같은 모양의 삼각집들이 일으키는 묘한 갈등을 다룬 <삼각의 집> 등이 있다.
리뷰
하근찬의 문학 세계는 재삼 기억하기도 싫은 회색의 시대-일제하의 민족 수난의 시대와 동족 상잔의 비극을 낳은 6·25 사변에 자리잡고 있다. 이 두 시대에 대한 우리들의 일차적인 연상은 칼을 찬 순사들이 독립 투사를 개 끌듯이 잡아가는 장면과 뻣뻣한 털이 무성하게 나고, 길고 날카로운 손톱을 가진 시뻘건 손이 우리의 목덜미를 노리고 있는 포스터이다. 어떤 장면이나 그림도 우리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우리가 하근찬의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서움과 두려움이 아니라, 그러한 공포의 상황에서도 훈훈한 정이 있고 피가 통하는 인정이 있는 소박한 사람들의 생활 세계와 순박한 생활 감정이다. 하근찬의 소설에서는 일제의 압제나 6·25라는 전쟁의 폭거에서 발원하는 사디즘적 감정과 상황의 압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마조히즘적 본능이 가급적 억제되어 있다. 따라서 가해와 피학대의 적나라한 충돌이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의 문단 데뷔작 <수난이대>를 보면 이 작가의 작품 세계의 특징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수난이대>는 일제의 침략 전쟁에서 외팔이가 된 아버지 박만도와 6·25 사변 중 외다리가 된 아들 진수, 이 두 사람의 피해자가 등장한다. 아버지 박만도는 다리가 잘린 아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지만 실망하지 않는다. 이 두 사람은 서로 의지하며 외나무다리를 용케 건너간다. 이 작품에서 주목되는 것은 이 두 사람을 보는 작가의 시선과 태도이다. 작가는 이 두 피해자가 당한 육체적, 심리적 피해에 대하여 담담한 태도로 서술해 나간다. 대단히 무심하고 어떤 면에서 보면 냉혹한 시선이지만, 이 두 사람이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는 정경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우뚝 솟은 용머리재처럼 의연하면서도 엄숙한 시선이기도 하다. 역사가 불의에 의해 주도당하고 역사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당한다고 하더라고 사람들은 거기 그 자리에 언제나 그런 모습으로 서 있을 용머리재처럼 꿋꿋이 살아갈 것이라는 작가의 확신이 이 작품에 나타나 있다. (······) 하근찬의 소설의 진폭이 그다지 크지 못한 것은 그 스스로 작가의 계층적 한계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생애사적 사실과 결부시켜 이야기한다면 하근찬은 국민학교 교사의 아들로 자라나 그 스스로 국민학교 교사를 지내고 잡지사 편집기자를 거친 그런 사람으로서 체험하지 않은 것은 허구화하지 않으려는 작가 의식으로 작품을 써온 작가이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정결한 결벽성이라고 할 만하다. 하근찬의 작품은 허황된 것, 체험할 수 없었던 것, 쓸데없이 흥분하는 것, 잡다해서 다른 사람의 골치만 아프게 하는 것, 너무 비참해서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주는 것 등을 구조적으로 거부한다. 하근찬의 문학 세계는 미의식과 아울러 현실을 보는 역사의 시각과 인생과 역사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근찬의 소설은 역사 의식, 실존 의식, 비극적 세계관 따위의 거창한 이념보다는 ‘인생과 역사를 생각하는 마음’, 다시 말해서 감성적인 것에서 지성적인 것으로 솟구쳐 올라오는 마음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그 터전을 잡고 있다. ‘작품 해설’, 전영태, <수난이대>, 어문각, 1993
작가의 말
(······) <수난이대>의 착상이 머리에 떠오른 것은 1956년 가을 어느날 동해남부선의 삼등열차 속에서였다. 그 무렵 부산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던 터이라, 나는 부산과 고향인 경북 영천 사이를 기차로 자주 왕래했었다. 그 무렵의 기차타기란 한마디로 여간한 고역이 아니었다. 연발 연착은 다반사고, 차중에서 으레 두어 차례 증명서 조사를 받아야 하며, 또 끊임없이 잡상인들에게 시달려야만 했다. 안 사면 그만이지 잡상인들에게 시달리다니, 얼른 납득이 안 가는 얘기겠지만, 사실 그 무렵은 그랬다. 장사치들이 승객들에게 물건을 사 달라고 사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승객들이 장사치들에게 돈이 없어 못 사니 봐달라고 사정을 하는 판국이었다. 그 잡상인들이란 대개가 상이군인들이었다. 팔이 하나 없거나, 다리가 하나 없거나, 혹은 안면 같은 곳이 형편없이 뭉개져 버린 그런 상이군인들이 둘 또는 셋씩 패를 지어 다니며 물품을 강매했다. 손 대신 갈고리가 박힌 의수로 협박하듯 물건을 불쑥 내밀며 사달라는 데는 질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사 주면 그만이지만, 그렇다고 한두 번도 아닌데 번번이 자꾸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또 강제에는 으레 반발심이 일어나는 법이다. 그러나 안 산다고 그냥 고개만 내저었다가는 야단이다. “우리가 누굴 위해 이렇게 됐는지 모르갔수?” 갈고리가 눈앞으로 다가드는 것이다. 그러니 더럽지만 그저,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해야 한다. 아무튼 그런 분위기의 기차 속에서 나는 <수난이대>의 모티브를 얻었던 것이다. 당장 눈앞에 대하면 불쾌하고 저항을 느끼게 하는 상이군인들이지만,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게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전율과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팔이 하나 잘려 나간 사람, 다리가 하나 떨어져 나간 사람, 혹은 얼굴이 끔찍하게 뭉개져 버린 사람··· 이런 인간 파편 같은 상이군인들의 모습에서 전쟁이라는 괴물의 수법을 볼 수가 있었고, 그 잔인하고 거대한 괴물의 그림자 속에서 발버둥치는 무고한 백성의 모습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이 땅과 이 겨레의 운명 같은 것을 느낄 수도 있는 것 같았다. 이 땅과 겨레의 암담한 운명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은 상이군인들의 모습-무엇이 하나 될 것 같았다. (······) 나는 결코 절망에 그치는 쪽을 택하고 싶지는 않았다. 절망을 디디고 넘어서려는 의지, 그 강인한 삶에의 집념 쪽을 택하고 싶었다. 이 땅과 이 겨레의 암담한 운명의 극복을 희망하고 싶었다. (······) ‘수난이대, 산에 들에’, 하근찬, <내 안에 내가 있다>, 엔터, 1997
관련도서
<한국 근현대 소설 연구>, 김진기, 박이정, 1999 <전후 한국소설의 연구>, 박동규, 서울대출판부, 1996 <한국현대작가연구: 황순원에서 임철우까지>, 권영민, 문학세계사, 1991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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