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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

작품명
도정
저자
지하련(池河連)
구분
1940년대
개요
1946년 발표한 작품으로 광복 후 문인들의 자기비판과 삶의 자세를 다룬 수작으로 평가받아 조선문학가동맹의 제1회 조선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운동가였던 주인공 석재가 갑작스러운 광복을 맞아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삶의 방향을 찾아 나아가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광복 전 금광을 했던 동료 기철의 행적을 광복 후의 행적과 대비하는 것을 통해 석재가 자신감을 찾아가는 모습이 작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도정>은 이렇게 해방 직후에 등장한 사회주의 운동가의 두 가지 유형을 대조적으로 그려놓고 있다. 하나는 일제 시대 사상운동에 가담했던 인물로서 당 조직과 개인의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함께 계급운동 자체에 대한 의지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인물은 광산업을 하여 돈을 번 속물로서, 자신의 금력을 이용하여 당의 고위 간부가 되고 당을 이용하여 개인적인 권력욕을 충족시키고자 한다. 이 작품은 이같은 두 인물의 대비를 통해 사이비 사회주의자에 대한 비판과 당적 이념에 대한 열정을 강조하고 있는데, 관념적인 경향이 강하여 삶의 현실을 역동적으로 그려내지는 못하고 있다.
내용
사회주의자 석재는 일제 강점기에 적극적으로 투쟁을 하다가 체포되어 6년이나 징역을 살고 나온 후 투쟁 일선에서는 물러나 있던 인물이다. 해방을 맞아 상경한 석재는 새로 재건된 당의 최고 간부진 가운데 기철이 있음을 알고 크게 놀란다. 기철은 일제 말 광산을 한다면서 돈주머니를 거머쥐고 돌아다니던 기회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석재는 그런 인물이 당의 핵심부에 자리잡았다는 것이 놀라웠지만 그것을 이유로 당을 떠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기철은 당사를 찾아온 석재를 반기며 함께 일하자고 한다. 석재는 그에게 심한 혐오감을 느끼지만 기철을 비난하는 것은 당을 비난하는 일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갈등을 겪는다. 결국 석재는 입당 수속을 밟기로 하고 입당 원서의 계급란에 ‘소부르주아’라고 쓴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소시민과 싸울 것을 다짐하며 현장으로 향한다.
저자
지하련(池河連, 1912~?)본명 이현욱(李現郁). 필명은 지하련. 1912년 7월 11일 경남 거창 출생. 일본 쇼와여고를 졸업했고 1935년 카프 해산을 전후하여 당대 카프의 지도자였던 임화와 결혼하였다. 1940년 소설 <결별>이 백철의 추천으로 <문장>에 발표되면서 문단에 등단했는데, 백철이 추천사를 통해 이 <결별> 한 작품으로도 능히 당대 문단 수준을 육박하고도 넘칠 것이라고 칭찬할 정도로 참신하고도 능숙한 솜씨를 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광복 직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여 1947년 임화와 함께 월북할 때까지 중요 작가로 활동하였다.
리뷰
(······) ‘문맹(문학가동맹)’ 소속 소설가의 작풍이 해방과 더불어 대부분 시대상을 반영한 정치·사회소설이었듯이 지하련의 해방 직후 유일한 작품인 <도정(道程)>도 이념의 색깔을 담은 소설이다. ‘소시민(小市民)’이란 부제가 붙은 이 소설은 해방 전의 작품과는 경향을 전혀 달리한 일종의 정치소설이다. 장안파 공산당(長安派 共産黨)의 재건을 박헌영파의 시각에서 희화화(戱畵化)한 줄거리를 복선에 깔고 주인공 ‘석재’가 해방 전후에서 한갓 소시민이기를 거부하며 새시대의 일꾼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이 발표되자 좌익문단의 논진들은 ‘해방 이후 감격과 흥분의 현란한 분류 속에서 침착·착실한 수법으로 씌어진 이 <도정>은 조선문단이 8·15를 기념할 만한 값진 작품’이라고 격찬했다. 뿐만 아니라, 소설 <도정>은 조선문학가동맹이 제정한 1946년도 ‘해방기념조선문학상’ 소설부문 추천작품으로 이태준의 <해방전후>와 함께 최종 경선에 오름으로써 주목을 받은 작품이었다. 심사평에서 선자들은 ‘지하련의 <도정>은 8·15 직후 국내에서 발흥한 민주주의운동에 있어서의 양심의 문제를 취급한 거의 유일한 작품으로서, 새로운 조선문학이 창조하여 나갈 인간 형상의 한 경지를 개척하고 있으며, 심리묘사 및 인물의 형상화에 있어 표시된 작자의 비범한 자질과 더불어 우리들 가운데 있는 소시민의 음영을 감지하는 예민한 감각은 주목에 값하는 것이다’고 격찬했다. 그러나 ‘그 음영을 과장함으로써 작자 자신이 기하지 않고 소시민성에 대해 일종의 편애를 했으며, 그리하여 주제의 시대성과 표현의 조밀에도 불구하고 현실성이 멸살되고 작품 전체의 사실성 및 예술적 박력이 부족’하여 <해방전후>에 수상을 놓쳤다고 했다. (······) 해방 직후에 지녔던 지하련의 문학관(창작태도)은 ‘문맹’이 주관한 ‘제1회 소설간담회’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당시 좌익문단에서 호평되던 허준의 소설 <잔등(殘燈)>을 합평하던 끝에 동석한 현덕이 ‘아까 말한 냉철한 세계는 비단 허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지하련의 냉철한 작품세계를 예시하는 듯하자, 지하련은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다. “허준씨의 찬(냉철한) 데 대하여 감동하지 않는 것은 사실은 제 자신 속에 있는 이러한 면에 항거하는 자세일지 모릅니다. 저부터도 잘 감동하지 않고 자꾸 차지려고 해서 곤란해요. 제가 본시 이처럼 차가운 사람이냐 하면 그렇지 않아요. 거의 주책없이 감동하고 더워지기 잘하는 사람인 줄 몰라요. 그럼 지금껏 소설 가운데 ‘내사람’이 그처럼 차지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하고 생각할 때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정치적 서민으로서 개성이 일종의 불구의 발전의 해온 데 소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본시 문학이란 자연과 함께 싱싱하고 완전해야만 정말이고 아름답고 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 까닭이 있어 서민으로 불구와 같은 허약자가 된 것도 행각하면 분할 텐데 이제 ‘새것’이 있고 정열이 솟아 부끄러움이 없을 때 무슨 사증(邪症)으로 불구의 취미를 가지겠습니까. 너무 어두운 방 속에 있었던 사람은 바깥에 나와도 한참동안 캄캄한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어딘지 죄스럽고 염치없어 제가 미워져요.” 소설 <도정>은 결국 지하련의 이런 자기실토가 있은 석 달 뒤 발표되었던 만큼, 의식적으로라도 차고 방관자적인 작중인물이 아닌, 뜨겁고 참여적인 인물(주인공 석재)을 내세워야 했을 것이다. 동시에 그의 눈과 의식을 통해 사이비 정치인들을 비판하고 변모하는 역사의 주체로 나서도록 설정했던 것이 지하련의 새로운 ‘내사람’이었던 셈이다. (······) ‘지하련의 삶과 문학’, 정영진, <지하련전집>, 푸른사상, 2004
작가의 말
(······) 조곰 후에 그는 훨씬 급쪼로 “그 온 소설을 쓰면 사람이 무식해지는지 당신네들 소설 그 웨 그래?” 하면서 웃었다. 이리되면 아까보다도 멧 배 더한 무안이다. (······) 그래 기끗 하고 싶은 말들이 고것 뿐이람?”-그가 이렇게 여전 작난이ㅅ틔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듯고 서야 나는 겨우-하고 싶은 말을 그리 쉽게 다 할 수가 있다면 뭐가 어려울 게냐-고, 제법 침착하게 대답을 했는데도, 그는 그저, 흔히 하는 말들이라는 것처럼 내 말을 조금도 그대로 믿어주는 것 같지가 않었다. 나는 끝내 –통이 소설을 모루는 소리라-고 입을 담을고 말었다. 물론 이것은 내 한때의 단정(斷定)이겠거니와 지금도 나는 이따금 우리들의 실없이 주고받은 말이 문듯 생각힐 때가 있다. 그야 ‘무식하다’는 말에 상구도 내가 노염을 띈 대답을 하려면-소설에 있어 천하 더러운 병이 그 너무 유식(有識)하고 싶은 병일 게라-고, 말할 수 있을 게고, 또-아무리 유식한 사람이라고 그 유식한 것이 그대로 나와, 소설이 제대로 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지 모룬다. 그리고, 본시 소설이란 그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리는 게 소설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내 하고 싶은 말들이 나와서 능히 살겠거름 ‘집’을 짓겠느냐, 는 것이 소설일 게라고 말할 수도-또는 이러기에 한 단편(短篇)에서 자기의 하고 싶은 한 마디의 말이 아무 것에도 거리낌 없이 완전히 살 수가 있었다면 그건 본망을 달한 소설일 게라고 말할 수도 있을 거다. 그러나 유식한 것이 그대로 나와 못쓰듯,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도 무식한 그대로가 소설에 나와, 가령 남이 봐서 무식하다고 말할 정도라면 이건 좀 딱한 일이 않일 수 없을 거다. 그리고, 만일 그 하고 싶은 말을 많이 허되 다 충실히 살릴 수가 있는 재간이라면 얼마나 다행한 고마운 일일지 모를 거다. 이렇게 생각는다면 내 벗의 내게 대한 불만이 당연하고도 남을 것이, 가령 기왕 목수일 바에야 무엇으로 어떻게든 그저 넘어지지 않을 정도로 집을 세우는 것이 결코 그리 장(壯)한 게 없다. 이보다도 어느 터전에 무슨 체목으로다 어뜬 솜시로 지어진 얼마나 훌륭한 집이냐고 사람들은 먼저 물을 것이고, 이건 집에 대한 좋은 안목일지도 모른다. 물론 개중에는, 저렇게 삐두러진 터전에 저처름 굽은 나무로다 그래도 용케 집을 세웟다는 식으로 먼저 목수의 경우를 삺이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루나, 그러나, 목수는 한 사람도 이것을 바랄 염치는 없을 거다. ‘소감(所感)’, 지하련, <춘추>, 1941.6
관련도서
<지하련전집>, 서정자 편, 푸른사상사, 2004 <페미니즘 정전 읽기: 근대소설편>, 송명희·안숙원·이태숙 공편, 푸른사상사, 2002 <통한의 실종문인: 6·25를 전후한 실종문인사>, 정영진, 문이당, 1989 <한국현대문학사 2>, 권영민, 민음사, 2002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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