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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수병

작품명
청자수병
저자
구자운(具滋雲)
구분
1950년대
저자
구자운(具滋雲, 1926~1972)1926년 11월 3일 부산 출생. 1949년 동양외국어전문학교 노어과를 졸업, 부산 <국제신보> 논설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55년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 <균열>, <청자수병>, <매> 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하였다. 1959년에 현대문학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문인으로서의 주목도와는 달리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가 1972년 12월 15일 사망했다. 구자운의 초기 작품들은 한국적이고 동양적인 사상을 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1960년대에 들어서 4·19혁명 등 역사적 격동기를 맞게 되면서 정치적 성향을 보이는 작품들을 발표한다. 후기에 오면 오랜 생활고로 시형에 변화가 생겨 종래의 깔끔하고 간결하던 형태의 시가 사라지고, 장형화·산문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 1950년대 시적 경향의 한 측면으로 중시될 수 있는 서정시의 전통은 한하운의 <보리피리>(1955), 김관식의 <낙화집>(1952), <김광식시선>(1956), 구자운의 <청자수병>(1969), 김윤성의 <바다가 보이는 산길>(1959), 구경서의 <회귀선>(1957), <염전지대>(1966), 김종길의 <성탄제>(1969), <하회에서>(1977), 박성룡의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1969), 황금찬의 <오월의 나무>(1969) 등과 맥을 같이 한다. (······) 김관식, 구자운, 김종길 등의 경우에는 모두 고전적인 기풍을 절제된 언어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김관식의 언어의 활달함에 비해 구자운은 섬세한 언어미에 더욱 치중한다. (······) 이들 시인은 공통적으로 개인적 정서의 영역에 시의 세계를 안착시키고 있다. 그리고 시적 정서의 포괄성을 의도하면서, 현실을 초월하는 순수에의 의지가 강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들의 시적 성과는 전후시의 ‘시다움’을 위한 노력으로 평가될 수 있으며, 새로운 시 형태의 추구, 새로운 시적 리듬의 창조로 이어지는 전후시의 한 경향이 이들의 시와 짝을 이루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 <한국현대문학사2>, 권영민, 민음사, 2002 (······) 시인 구자운은 그가 딛고 선 이 세상의 땅 한 모서리는 높고, 한 모서리는 낮아서, 언제나 천방지축으로 절며 살다 가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종교적 깊이에까지 다다른 미의식으로 사물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인인가 하면, 그것이 어떤 한계에 부딪치자 용감하게 옛 것을 버리고 전통찬미자의 자리에서 개혁과 참여를 부르짖는 민중의 시인으로 옮겨 앉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탈바꿈이 그를 키운 교양과 시정신에는 늘 잘 맞아 들어가지 않았던 것 같으며, 그의 시적인 고뇌도 언제나 여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여겨집니다. 시인 구자운의 시적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면, 대략 다음 네 시기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첫째는 1955년에 <현대문학>에 시 <균열>이 추천된 이래, <청자수병>, <매>, <포도도>, <도가>, <고도이품> 등을 발표한 시기입니다. 아어(雅語)의 멋을 살린 전아한 수사와 형식미로, 그는 이 무렵 한국적 내지 동양적인 사상을 산뜻하게 그려내어, 전에 못보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무렵이야말로 그의 시가 가장 빛나고 살찌던 시기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둘째는 1960년에 일어난 4·19 혁명을 고비로 한 시기인데, 역사적 격동기 속에서 시인이 마땅히 해야 할 사명을 자각한 그는, 그 시대의 모든 이들과 고뇌를 함께 하기 위하여 관념의 상아탑을 박차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좀 너무나 성급한 전환인 듯한 느낌이 없진 않으나, <너희들 잠에서 깨어날 때>, <젊은 피로써 물들인 큰길에서>와 같은 시편은 이때의 감격을 시원하게 읊은 이 시인의 육성입니다. 그러나 4·19에 뒤이은 일련의 나라 안 사정은, 시인이 생각하는 정치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메울 길 없는 간극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고, 또한 그 무렵 우연처럼 겹친 이직과 가정적인 불협화 등으로 말미암아 가뜩이나 섬약한 그는 실의와 좌절의 구렁으로 휘몰리기에 이르렀습니다. 셋째는 서울에서 궁핍한 생활에 견디다 못해 시인이 식구들을 거느리고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간 시기입니다. 입에 풀칠을 위해 내려간 그곳 모신문사의 논설위원이란 자리는 허울뿐인 대우에 지나지 않았으며, 낯설기가 타향만도 못한 그곳에서 시인은 다시금 뼈에 사무치는 회한을 짓씹지 않을 수 없었던 듯합니다. 더구나 이 무렵에 가정의 파탄은 극에 달하여, 생활에 지친 부인은 집을 떠났습니다. 그리하여 객지 못지않은 그곳에서 시인은 다시 의식을 찾아 거리를 방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넷째는 부산에서의 짓눌린 생활에 견디다 못해 시인이 다시 식구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온 뒤에 쓴 작품들입니다. 그가 다시 상경한 것은 1964년경으로 생각되는데, 이렇게 보면 부산에서 그가 지낸 것은 불과 2년 남짓이 되는 셈입니다. 이때에 이미 엄청난 삶의 무게에 짓눌린 시인은 앞뒤를 돌아볼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호구를 위해서라면 출판사의 값싼 번역일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그의 착하고 꾸밈없는 성품을 장사치들은 십분 이용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무렵, 그에게 있어서 가장 슬픈 것은 시에 대한 굳은 신념마저 흔들리고 있지 않았을까 염려되는 점입니다. 종래의 깔끔하고 빈틈없던 그의 시적 기량은 자취를 감추고, 대신 지리한 산문적 요소가 자리를 차지합니다. (······) 돌이켜보면, 시인 구자운의 생애는 그가 가진 영롱하게 빛나는 천분에 비해 너무나도 박행하고 불운한 것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좀더 오래 살았으면 다시 피어나는 우람한 화엄의 빛도 볼 수 있었으련만, 그 사이를 못 참아 가고 말았으니, 마음 아플 뿐입니다. (······) ‘편집을 마치고’, 민영, <벌거숭이 바다: 구자운시전집>, 창작과비평사, 1976
관련도서
<벌거숭이 바다: 구자운시전집>, 창작과비평사, 1976 <한국 서정시와 자연의식>, 황인원, 다운샘, 2002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출판부,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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