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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冬)

작품명
동(冬)
저자
김구용(金丘庸)
구분
1950년대
저자
김구용(金丘庸, 1922~2001)본명은 영탁(永卓). 경북 상주 출생. 광복 이전까지 동학사 등 여러 사찰을 돌아다니며 유불선의 경전들에 묻혀 지냈다. 광복이 되자 상경하여 성균관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시절인 1949년에 <신천지>에 시 <산중야>, <백탑송>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하였다. 이후 왕성한 창작력을 보여 시 <탈출>, <분광의 심장>, <산재>, <적라한 노예> 등을 연달아 발표하였고, 1956년에는 제1회 현대문학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김구용의 초기시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상처와 암담한 현실을 불교적 세계관에 근거해 독특한 자의식의 세계로 담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그가 주로 사용했던 산문시 형태는 종래의 그것과 전혀 다른 것으로 행과 연의 구분이 완전히 무시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로 형상화가 가능했던 것은 고도의 함축성을 내재한 시어를 구사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는 오히려 행과 연의 구분을 무시함으로써 시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뒤이어 발표한 <관음찬>, <꿈의 이상>, <육곡> 등은 더욱 장형화되어 나타나는데 이는 산문시를 넘어서 장시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그의 장시들은 인간 자의식의 기저를 파헤치려는 강한 열망을 담고 있어 짧은 형태의 시로 표현하기 어려운 사상적 깊이를 담아내고 있다. 시적 사상의 근저가 불교에 놓여 있기 때문에 작품 전체를 통해 불교적 분위기가 느껴지는 반면, 시적 표현방식은 서구 초현실주의 기법을 동원하고 있으며 산문적 요소를 극단적으로 도입하여 해체에 가까운 시 형태를 실험하고 있다. 즉 사상과 기법의 양 측면 모두를 통해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차원을 마련하고 있다.
리뷰
긍정적인 입장이든 부정적인 입장이든, 그동안 김구용의 시에 대한 일치된 의견은 난해하다는 것이다. 통상적인 독법으로는 그의 작품에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의견들이 그것이다. 흔히 일반적인 시 읽기에서 우리는 한 편의 작품을 읽으며 행간이나 텍스트 심층에 도사린 작자의 의도를 헤아리고 그 언술된 내용을 산문으로 되번역해낸다. 이때 좀더 시 읽기에 훈련된 독자라면 작품의 구조와 결에 따라, 또는 해석의 층위에 따라 다양하게 분석과 감싸기를 행할 것이다. (······) 김구용 시의 난해성 역시 훈련된 독자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상당한 수준에서 많은 부분들이 극복되고 풀릴 수 있는 것들이다. 한때 김구용 시의 난해성은 “소피스티케이션을 위한 소피스티케이션”(유종호)이니 “난해의 장막”(김수영)이니 하는 등등으로 집중 비판된 바 있었다. (······) 김구용 시의 두드러진 한 방향은 말할 것도 없이 산문 지향성이다. 그 산문성은 줄 갈이 없는 줄글 형태에서, 또는 한 작품이 이 같은 줄글 형태의 한 문장만으로 이루어진 데에서, 그리고 한 논자에 의하여 ‘중산문시’라고 일컬어질 정도의, 일정한 줄거리 서사를 담은 긴 분량 등에서 확인되고 있다. (······) 그러면, 이와 같은 산문시 지향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실제로 김구용은 시인 김종철과의 대담에서 자기 시의 산문 지향성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6·25 사변 중에 산문시를 많이 썼는데 그것은 그 당시 복잡한 시대적 어지러움 속에서 산문시로밖엔 말을 소화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 시가 길어진 것은 사실 짧게 쓸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는 질이 중요한 것이지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그 무렵 일기에 기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질적으로 압축시킬 능력이 없었습니다. 특히 압축시킬 여건이 그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옮겨온 말이 얼마간 길어지긴 했지만, 이 진술은 김구용이 왜 산문시를 지향했는가 하는 나름대로의 사정을 소박한 대로 보여준다. 그것은 시인이 극도로 혼란한 전쟁의 와중에서 겪은 갖가지 중층적인 체험을 산문 형식으로밖에 구조화할 수 없었음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시를 짧게 쓸 능력이 없었다는 진술 역시 따지고 보면 이 같은 명분의 다른 한 면일 터이다. (······) 김구용 시의 난해성은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여러 요인에서 비롯되고 있다. 신비평류에서 말하는 뜻겹침 같은 시적 장치에서 오는 단순 소박한 난해성과는 근본적으로 거리가 먼 현상이다. 오히려 지난 20세기 초 유럽 중심으로 전개된 모더니즘 시의 갖가지 실험적 기법이나 미학적 장치들에 근사한, 또는 근사해지려는 그의 시는 모더니티 기획에서 연유된 것이다. 시인 자신의 말을 신뢰한다면 “시대의 어지러움”이나 “정신의 혼란상”을 드러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미학의 선택인 셈이다. 시는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라고 어느 외국 시인은 말했다. 과거 시처럼 작품의 핵심 사항들을 쉽게 산문으로 되짚어 설명하고 독해할 수 없는 현대시 - 그렇다. 그것도 이미 20세기의 일이 되었다 - 의 숙명을 두고 한 말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김구용의 정말 좋은 시들은 이제 서서히 난해의 장막을 걷고 독자들 앞에 본모습을 드러내게 되리라. ‘현실 중압과 산문시의 지향’, 홍신선, <김구용 문학전집 1: 시>, 솔, 2000
작가의 말
(······) 나는 미사여구를 얻으면 그것이 매소부의 작태를 보듯 불쾌해지는 버릇이 있어 결국 지워버리고 만다. 그래서 나의 시는 시도 산문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모양이다. 나는 나의 역량 부족을 자인한다. 그러나 교묘하다는 건 생명의 희박을 의미하며 진실은 오히려 평범하고 장구하다는 생각을 좀체 버릴 수 없다. 내가 유서를 쓰듯 시를 쓴다면 경박한 과장일지 모르나 적어도 내가 원하는 독자는 사춘기의 소녀도 30대의 청년도 아니며 40, 50된 교양인이 읽어줄 것을 상대로 하고 있다. 취중에 또는 몽중에 스스로 경이의 눈을 부릅뜰 만한 시구를 얻을 때도 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써 볼 때, 그 시구는 번번이 실망을 갖다주었다. 나는 지성이 결여된 정열이라든지 감정의 노출이 얼마나 큰 과오인가를 알 수 있었다. 판단에서 받는 염오와 의욕이 소재로, 저미고 깎아 시를 이루기까지의 붓이 된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으로서 시 아닌 것이 없다. 특히 우리의 동양, 우리나라엔 어딜 가나 어디에나 언제든지 세계적인 시가 있건만 이루어진 나의 시는 미족(未足)하기 짝이 없다. 나는 부단히 그 이유를 알고자, 그 비밀을 찾고자 주시한다. 그러기에 약간이라도 성력(誠力)을 경주했다면 나의 작품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는다. 이것은 답보가 아니며 아직도 나아갈 수 있는 영역이 앞에 있는 까닭이다. 나의 시작 방법은 도달이 아니고 비록 그것이 지지(遲遲)할지라도 항상 진행할 수 있는 불만과 여백에 있다. ‘내 시의 발상과 방법’, 김구용, <김구용 문학전집 6: 산문집 인연>, 솔, 2000
관련도서
<김구용 문학전집>(전6권), 김구용, 솔, 2000 <한국현대시인론>, 성기조, 한국문화사, 1997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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