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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야담(於于野譚)

작품명
어우야담(於于野譚)
저자
유몽인(柳夢寅)
장르
고전수필
작품소개
조선 광해군 때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이 지은 한국 최초의 야담집(野談集)으로 야사(野史)·항담(巷談)·가설(街說) 등이 수록되었는데, 흔히 민간에 유포된 음담패설이 아닌 풍자적인 설화와 기지 있는 야담들로서 조선 중기 설화문학의 좋은 자료이다. 왕실 귀인에서 상인·천민·기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간의 삶과 시문에 얽힌 사연 꿈·귀신·풍속·성에 관한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기록하고 있다. 원본은 한문본(漢文本)이나, 후인의 손으로 번역되어 널리 퍼졌다.
저자
유몽인(柳夢寅, 1559∼1623)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설화 문학가로 본관은 고흥(高興)이고 자는 응문(應文)이며 호는 어우당(於于堂)·간재(艮齋)·묵호자(默好子). 호 어우당(於于堂)은 <장자(莊子)> 천지(天地)편의 ‘쓸데없는 소리로 뭇사람을 현혹시킨다[於于以蓋衆]’고 한 데서 인용한 것이다. 성혼(成渾)과 신호(申濩)에게서 수학했으나 경박하다는 책망을 받고 쫓겨나 성혼과는 사이가 좋지 못하였다. 1582년(선조 15) 진사가 되고, 1589년 증광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1592년 수찬으로 명나라에 질정관(質正官)으로 다녀오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를 평양까지 호종(扈從)하였다. 왜란 중 문안사(問安使) 등 대명 외교를 맡았으며 세자의 분조(分朝: 임란 당시 세자를 중심으로 한 임시 조정)에서도 활약하였다. 그 뒤 병조 참의·황해 감사·도승지 등을 지내고 1609년(광해군 1) 성절사 겸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벼슬에 뜻을 버리고 고향에 은거하다가 왕이 불러 남원 부사로 나갔다. 그 뒤 한성부 좌윤·대사간 등을 지냈으나 폐모론이 일어났을 때 여기에 가담하지 않고 도봉산 등에 은거하며 성안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그리하여 1623년 인조반정 때 화를 면했으나 관직에서 물러나 방랑 생활을 하였다. 그 해 7월 현령 유응형(柳應泂)이 ‘유몽인이 광해군의 복위 음모를 꾸민다’고 무고해 국문을 받고 역률(逆律)로 다스려져 아들 유약과 함께 사형되었다. 서인들이 중북파(中北派)라 부르며 끝내 반대 세력으로 몰아 죽인 것이었다. 이때 관작의 추탈은 물론 임진왜란의 공으로 봉해진 영양군(瀛陽君)의 봉호도 삭탈되었다. 정조 때 신원되고 이조 판서에 추증되었다. 유몽인은 당시 성리학의 대가였던 성혼에게서 ‘경박하다’는 비판을 당할 만큼 유가(儒家)라 하기에는 자유롭고 호방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이러한 뛰어난 재기와 해학 넘치는 성격은 그의 문학 속에 그대로 드러난다. <어우야담>을 통해 당대 현실을 비판·풍자하고자 했던 저자는 현실 세태의 풍자라는 창작 정신 아래 민간의 패설적 이야기에 새롭게 주목하였다. 이는 임란 직후의 격변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개방적·적극적으로 현실의 변모에 대응하고자 한 진취적 현실 인식의 소산으로 여겨진다. <어우야담>·<어우집> 등의 문집을 남겼으며, 전서·예서·해서·초서 등 글씨에도 뛰어났다.
내용
저자인 유몽인은 연산군 이래 야기된 정치적 혼란과 임진왜란 이후의 사회적 난맥으로 인하여 형성된 풍부한 야담을 팔도어사(八道御史) 등을 역임하면서 많이 채집할 수 있었다. <어우야담>은 특히 전란의 참혹함을 겪으면서 사회적 모순에 눈뜬 민중들의 실상과 정서를 야담이라는 자유로운 형식을 통해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통해 세상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도록 하려는 교훈적 의도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총 5권 1책으로 되어 있는데 각 권의 내용을 보면, 권1은 인륜편으로, 효열·충의·덕의(德義)·은둔·혼인·처첩·기상(氣相)·붕우·노비·배우(俳優)·창기(娼妓), 권2는 종교편으로, 선도·승려·서교(西敎)·무격(巫覡)·몽(夢)·영혼·귀신·속기(俗忌)·풍수·천명(天命), 권3은 학예편으로, 문예·식감(識鑑)·의식·교양·음악·사어(射御)·서화·의약·기예·점후(占候)·복서(卜筮)·박혁(博奕), 권4는 사회편으로, 과거·구관(求官)·부귀·치부·내구(耐久)·음덕(陰德)·붕당(朋黨)·무망(誣罔)·고풍(古風)·외임(外任)·용력(勇力)·처사(處事)·구변(口辯)·오기(傲忌)·교학(驕虐)·욕심·재앙·생활고·도적·해학, 권5는 만물편으로, 천지·초목·인류·금수·인개(鱗介)·고물(古物) 등의 조목으로 분류, 수록되어 있다.
해설
<어우야담(於于野譚)>은 조선 중기에 유몽인(柳夢寅)이 편찬한 설화집으로 5권 1책의 활판본이다. 당초 10여 권이었으나, 저자가 모반의 혐의로 형사(刑死)됨에 따라 많이 산질(散帙)되었다. 1832년(순조 32) <어우집(於于集)>을 발간하면서 종후손 유금이 <어우야담>의 유고를 수집하여 간행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뒤에도 줄곧 필사본으로 전하여 왔는데, 필사의 과정에서 여러 종류의 초사본(抄寫本)이 나타났다. 1964년 그의 종후손 유제한이 가전의 잔존본에 여러 이본을 수집, 보충하고 부문별로 나누어 5권 1책으로 간행하였다. 책머리에는 유몽인의 영정과 유묵(遺墨), 이어 유영선(柳永善)의 서문, 성여학(成汝學)의 구서문(舊序文, 1621)과 연보를 실었다. 책 끝에 종후손 제한의 발문이 붙어 있다. 이 책에는 인간 생활의 여러 방면에서 야사·항담(巷談)·가설(街說) 등이 수록되었는데, 흔한 음담패설이 아닌 풍자적인 설화와 기지에 찬 것들이다. 간결하면서도 명쾌한 문체로 임진왜란 전후의 생활상이 만화경(萬華鏡)같이 투영되어 있다. <어우야담>은 작가 자신의 견문에 입각하여 이야기를 기술했기 때문에 현실성이 살아 있으며, 그만큼 여타 야담집에 비해 제재가 다채롭다. 또한 기본적으로 사실에 입각하여 서술되거나 사실지향적인 서술 태도를 보여주되, 내용의 흥미성과 함께 교훈성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문학적 가치를 찾아볼 수 있다. 야담은 주목할 만한 당대의 삶의 변화와 새로운 문학적 성향을 보여주는 조선조 후기의 중요한 문학 장르로서 <어우야담>은 한국 최초의 야담집이다. 전대의 필기잡록류(筆記雜錄類)의 전통을 이어오면서 후대에 본격적으로 전개될 야담문학을 선도하였으며 빼어난 문학성을 지니고 있다는 측면에서 국문학사적 위상이 높이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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