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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調信)

작품명
조신(調信)
장르
전·전기
작품소개
<조신설화>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권3, 탑상(塔像) 제4, 조신조(調信條)에 실려 전하는 이야기이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인 인생의 허무를 주제로 한 ‘꿈의 문학’으로서 한국에서는 그 원조(元祖)가 되는 설화이며, 소설 이상의 구성과 압축된 주제를 살렸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이광수(李光洙)는 <꿈>이라는 작품을 썼고, 그것이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내용
국문풀이 본사(本寺)에서 중 조신(調信)을 보내서 지장(知莊: 장사(莊舍)의 관리인)을 삼았다. 조신이 장상(莊上)에 와서 태수 김흔(金昕) 공의 딸을 좋아하여 깊이 혹하여 누차 낙산대비(洛山大悲) 앞에 가서 인연을 맺어주기를 몰래 빌었다. 수년간에 그 여자가 출가하였으므로 또 불당 앞에 가서 대비 앞에 그 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원망하여 날이 저물도록 슬피 울다가 그리운 정에 지쳐 잠깐 졸았다. 갑자기 꿈을 꾸니 김씨 낭자가 문을 열고 들어와 반가이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상인(上人)의 낯을 알아 마음에 사랑하여 잠시도 잊지 못하였으나 부모의 명에 못 이겨 억지로 다른 사람을 좇았다. 지금 동혈(同穴)의 짝이 되고자 원하여 왔다.”고 하였다. 조신이 대단히 반기어 같이 향리로 돌아가 40여 년을 살고 자녀 다섯을 두었다. 집은 네 벽뿐이요, 조식(粗食)조차 대지 못하고 마침내 영락(零落)하여 서로 이끌고 사방으로 다니면서 호구하였다. 10년을 이와 같이 하는 사이에 초야를 두루 유랑하여 옷이 해져 몸을 가리지 못하였다. 마침내 명주해현령(溟州蟹縣嶺)을 지날 때 15세 된 큰 아이가 홀연히 굶주려 죽었다. 통곡하다가 길가에 묻고 나머지 네 자녀를 데리고 우곡현(羽曲縣)에 이르러 길가에 모옥(茅屋)을 하고 살았다. 부부가 늙고 병들고 굶주려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10세 되는 여아가 두루 빌어다 먹었는데 어느날 마을 개에게 물리어 아픔을 부르짖으며 앞에 와 눕자 부모가 탄식하여 울며 눈물을 흘리었다. 부인이 눈물을 씻고 창졸히 말하되 “내가 처음 낭군을 만났을 때에는 얼굴이 아름답고 나이가 젊었으며 의복이 많고 깨끗하였고 일미(一味)의 단것도 그대와 나누어 먹고, 수척(數尺)의 옷도 그대와 나누어 입어 출가 50년에 정이 이를 데 없고 사랑도 얽히어 두터운 인연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근년에 와서 쇠병이 날로 더하고 기한이 날로 더 핍박하여 사람들이 방사(傍舍)와 호장(壺漿)도 용납하여 주지 않으니 천문(千門)의 치소는 무겁기 산과 같고 아이들의 기한(飢寒)도 면케 할 수 없으니 어느 틈에 사랑이 있어 부부의 즐거움이 있겠는가. 홍안(紅顔) 교소(巧笑)는 풀 위의 이슬이요, 지란(芝蘭)과 같은 백년가약도 바람에 불리는 버들꽃과 같다. 그대는 나 때문에 누가 되고 나는 그대 때문에 근심이 되니 가만히 옛날의 기쁨을 곰곰히 생각해 보건대 그것이 바로 우환의 섬돌이었다. 그대와 내가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뭇새가 같이 함께 굶어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짝 없는 난(鸞)새가 거울을 향하여 짝을 부르는 것만 못할 것이다. 역경을 당하면 버리고 순경(順境)을 당하면 같이 하는 것은 인정상 차마 못할 일이지만 행하고 그치고 하는 것은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며 헤어지고 만나는 것도 운명이 있는 것이니 청컨대 내 말을 좇아 헤어집시다.” 조신이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각각 아이 둘씩을 나누어 가지고 가려할 때 여자(女子)가 말하기를 “나는 고향으로 가겠으니 그대는 남쪽으로 가시오.”하고 이별하고 막 길을 떠나려할 때에 꿈을 깨었다. 쇠잔한 등불은 어스름한데 밤기운이 장차 깊었다. 아침이 되니 수발(鬚髮)이 모두 세고 멍청하여 세상에 뜻이 없어져 괴로이 사는 것이 싫어지고 백년신고(百年辛苦)에 싫증이 나서 탐염(貪染)하는 마음이 얼음처럼 녹아 가시었다. 이에 성용(聖容)을 대하기가 부끄러워져서 뉘우침을 마지못하였다. 돌아와서 해현(蟹峴)에 묻은 아이를 파보니 곧 돌미륵이었다. 물로 닦아 부근 절에 봉안하고 경사(京師)에 돌아가 장사(莊舍)의 임(任)을 벗었다. 사재(私財)를 기울이어 정토사(淨土寺)를 창건하고 부지런히 백업(白業)을 닦더니 그 후에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다. 참고: <원문겸역주 삼국유사 수정판>, 이병도 역주, 광조출판사, 1982
창작배경
<조신전>은 <태평광기>에 실려 있는 <침중기(枕中記)>와 그 전후 영향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 <침중기>는 중국 중당(中唐)의 심기제(沈旣濟, 750∼800)가 지은 전기(傳奇)소설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으나 현실에서는 성취할 수 없는 소망을 꿈을 통해 이룬다는 모티프를 가지고 있는 환몽류(幻夢類) 문학의 원형격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당대는 물론 현대의 문학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작품이다. 줄거리는 개원(開元) 연간의 한단(邯鄲 河北省)의 서생(書生) 노생(盧生)이 사냥길에 다점(茶店)에서 여옹(呂翁)이라는 노인을 만나, 이상한 청자(靑磁) 베개를 빌려 쉬고 있는 동안에 차차 출세하여 재상이 되었으며, 그 후 유배되기도 하고 죽을 뻔하기도 하다가 끝내는 임금 다음 가는 높은 자리까지 오르고, 온갖 영화를 다 누린 속에서 일생을 마친다는 꿈을 꾼 이야기이다. <침중기>는 고려시대의 승 일연에게 사상 내지는 모티프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조선시대 김만중의 <구운몽(九雲夢)>, 이광수의 소설 <꿈>에 이르기까지 그 지류가 흐르는 것으로 보인다.
해설
<조신전>은 한미한 청년이 고귀한 신분의 여성을 동경한 이야기로 두 남녀의 순수한 사랑은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현실 아래 안타깝게 묵살되고 만다. <조신전>은 갈등을 제시해 놓기만 할 뿐 그 해결책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처리해 버리고 마는 나말(羅末) 전기문학의 특징을 전형적으로 보이고 있다. 결말을 종교의 힘에 귀의하는 것으로 미봉, 해소시키고 말았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신분적·경제적 불평등이 초래한 사회 모순이 충분히 암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으며 한국문학의 서사문학 상한선을 올려놓았다고 평가할 만한 작품이라 하겠다. 또한 <조신전>은 일연에 의해 수록되었으나 일연의 평소 문체와는 판이함을 보이는 세련된 표현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육두품 지식인들이 활동했던 신라 말에 이미 완성된 원본을 일연이 약간의 개작을 거쳐 그대로 수록하였을 것이라는 전기문학의 나말 출현설을 뒷받침해 주는 작품이다.
연계정보
-꿈
-삼국유사(三國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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