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

작품명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
저자
김인겸(金仁謙)
장르
가사
작품소개
조선 후기에 김인겸(金仁謙)이 지은 기행가사. 국문본. 총 7,158행 3,500여 구에 달하는 장편기행가사이다. 이 작품은 1763년(영조 39) 8월 일본 통신사 조엄(趙湄), 부사 이인배(李仁培), 종사관 김상익(金相翊), 제술관(製述官) 남옥(南玉) 등으로 구성된 이른바 계미통신사(癸未通信使)의 삼방서기(三房書記)로 수행한 작자가 이듬해 7월 8일 복명할 때까지 11개월 동안 견문한 바를 기록한 것이다. 군관 17명, 역관 12명, 의원 3명을 비롯, 100여 명의 행원(行員)과 400명에 달하는 역원들을 합하여 일행 500명이 서울을 떠난 지 두 달 만인 10월 6일 부산항에서 승선하여 대마도와 대판성(大阪城)을 거쳐 에도(江戶)에 도착한 것이 다음해 2월 16일이다. 이역만리의 긴 노정에 따라 곳곳에서 일어난 사건, 일본의 풍속, 외교임무의 수행과정 등을 소상히 기록하였고, 강직한 선비의 기개와 비판의식이 넘쳐 있을 뿐 아니라, 기행문의 요체가 잘 갖추어져 있어 홍순학(洪淳學)의 <연행가>와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다. 작자 김인겸은 1753년(영조 29)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통신사의 서기로 발탁되기까지 향리 공주에 칩거한 강직 청렴한 선비로서, 문장에 특출하였다. 이 작품에서는 행로에서 받은 융숭한 대접과 풍물에 대한 이야기며, 수천 수에 달하는 시를 지어 왜인에게 준 문인외교의 편모를 알 수 있다. 특히 “당당한 천승국의 예물예단 가져와서 개돝 같은 취류에 사배(四拜)하기 어떠할꼬.”라는 구절에서는 개돝 같은 왜놈에게 예배하기 싫어 상사(上使)들의 강권도 듣지 않고 국서 봉정식에도 참여하지 않은 작자의 대일감정을 엿볼 수 있다. 일본의 풍속과 경관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도 특유의 통찰력을 볼 수 있다.
저자
김인겸(金仁謙, 1707~1772) 조선 후기 문인. 본관은 안동. 자는 사안(士安), 호는 퇴석(退石). 14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 때문에 학문에 전념하지 못했다. 1753년에야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763년 통신사행의 종사관인 김상익의 서기로 뽑혀 일본에 다녀왔다. 이때 일본 문사들을 상대로 한시를 지었는데 재주가 뛰어나 문사들이 감탄했다고 한다. 1764년 일본에서 돌아와 기행가사인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를 지었다. 그후 지평현감 등을 지냈으며 저서로 <동사록>이 있다.
내용
현대어풀이(부분발췌) 일생을 살아감에 성품이 어설퍼서 입신 출세에는 뜻이 없네. 진사 정도의 청렴하다는 명망으로 만족하는데 높은 벼슬은 해서 무엇하겠는가? 과거 공부에 필요한 도구를 모두 없애 버리고 자연 찾아 놀러다니는 옷차림으로 전국을 두루 돌아다니며 명산대천을 다 본 후에, 음풍농월하며 금강 유역에서 은거하고 지냈는데, 서재에서 나와 세상 소식을 들으니 일본의 통치자 관백(關白)이 죽고 우리나라에 친선 사절단을 청한다네. 이때가 어느 때인고 하면 계미년(1763) 팔월 삼일이라. 경복궁에서 임금님께 하직하고 남대문으로 내달아서 관우의 사당 앞을 얼른 지나 전생서에 다다르니, 사신 일행을 전송하려고 만조 백관이 다 모였네. 곳곳마다 장막이 둘러쳐 있고 집집마다 안장을 얹은 말이 대기하고 있도다. 전후 좌우로 모여들어 인산인해가 되었으니 정 있는 친구들은 손잡고 먼 여행길을 걱정하고 철모르는 소년들은 한없이 부러워하네. 석양이 거의 되니 하나하나 이별하고 출발 신호에 따라 차례로 떠날 때에, 절과 부월 앞을 인도하는 군관이 국서를 인도하고 비단으로 만든 양산과 순시 영기가 사신을 중심으로 모여 섰다. <중략> 거센 바람에 돛을 달고 여섯 척의 배가 함께 떠날 때, 악기 연주하는 소리가 산과 바다를 진동하니 물 속의 고기들이 마땅히 놀람직하도다. 부산항을 얼른 떠나 오륙도 섬을 뒤로 하고 고국을 돌아보니 밤빛이 아득하여 아무것도 아니 보이고, 연해변에 있는 각 포구의 불빛이 두어 점 구름 밖에서 보일 듯 말 듯하니 선실에 누워서 내 신세를 생각하니 가뜩이나 마음이 어지러운데 큰 바람이 일어나서, 태산 같은 성난 물결이 천지에 자욱하니, 만 석을 실을 만한 큰 배가 마치 나뭇잎이 나부끼듯 하늘에 올랐다가 땅 밑으로 떨어지니, 열두 발이나 되는 쌍돛대는 나뭇가지처럼 굽어 있고 쉰 두 폭으로 엮어 만든 돛은 반달처럼 배가 불렀네. 큰 우렛소리와 작은 벼락은 등 뒤에서 떨어지는 것 같고, 성난 고래와 용이 물 속에서 희롱하는 듯하네. 선실의 요강과 타구가 자빠지고 엎어지고 상하좌우에 있는 선실의 널빤지는 저마다 소리를 내는구나. 이윽고 해가 돋거늘 굉장한 구경을 하여 보세. 일어나 선실 문을 열고 문설주를 잡고 서서, 사면을 바라보니 아아! 굉장하구나. 인생 천지간에 이런 구경이 또 어디 있을까? 넓고 넓은 우주 속에 다만 큰 물결뿐이로세. 등 뒤로 돌아보니 동래의 산이 눈썹만큼이나 작게 보이고 동남쪽을 돌아보니 바다가 끝이 없네. 위아래 푸른빛이 하늘 밖에 닿아 있다. 슬프다, 우리의 가는 길이 어디란 말인고? 함께 떠난 다섯 척의 배는 간 곳을 모르겠도다. 사방을 두루 살펴보니 이따금 물결 속에 부채만한 돛이 들락날락하는구나. 배 안은 돌아보니 저마다 배멀미를 하여 똥물을 다 토하고 까무라쳐서 죽게 앓네. 다행하도다. 종사상은 태연히 앉았구나. 선실에 도로 돌아와 눈 감고 누웠더니 대마도 가깝다고 사공이 말하거늘 다시 일어나 나와 보니 십 리는 남았구나. 왜선 십여 척이 배를 끌려고 마중을 나왔네. <중략> 굿을 보는 왜인들이 산에 앉아 굽어본다. 그 가운데 사나이들은 머리를 깎았으되 뒤통수 한복판은 조금 남겨 고추같이 작은 상투를 하였으며, 발 벗고 바지 벗고 칼을 하나씩 차고 있으며, 여자들은 머리를 깎지 않고 밀기름을 듬뿍 발라 뒤로 잡아매어, 족두리 모양처럼 둥글게 꾸려 있고, 끝은 둘로 틀어 비녀를 찔렀으며, 노인과 어린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막론하고 얼레빗을 꽂았구나. 의복을 보아하니 무 없는 두루마기, 옷단 없는 소매는 남녀 없이 한가지요, 넓고 큰 접은 띠를 둘러 띠고 날마다 사용하는 온갖 것을 가슴 속에 다 품었다. 남편 있는 계집들은 이를 검게 칠하고 뒤로 띠를 매었으며, 과부, 처녀들은 앞으로 띠를 매고 이는 칠하지 않았구나. <중략> 점심 먹고 길 떠나서 이십 리를 겨우 가서 날이 저물고 큰비가 내리니 길이 끔찍하게 질어서 미끄러워 자주 쉬어야 하는지라. 가마 맨 다섯 놈이 서로 돌아가며 교대하되 갈 길이 전혀 없어서 둔덕에 가마를 놓고 한참 동안 머뭇거리면서 갈 뜻이 없는지라. 사방을 돌아보니 천지가 어둑어둑하고 일행들은 간 데 없고 등불은 꺼졌으니, 지척을 분간할 수 없고 넓고 넓은 들 가운데서 말이 통하지 않는 왜놈들만 의지하고 앉았으니, 오늘 밤의 이 상황은 몹시 외롭고 위태하다. 가마꾼이 달아나면 낭패가 오죽할까. 그 놈들의 옷을 잡아 흔들어 뜻을 보이고 가마 속에 있던 음식을 갖가지로 내어 주니, 저희들끼리 지껄이며 먹은 후에 그제서야 가마를 메고 조금씩 나아가는데 곳곳에 가서 이러하니 만일 음식이 없었더라면 필연코 도주했을 것이다. 삼경쯤이나 되어서야 겨우 대원성에 들어가니 머리가 아프고 구토하여 밤새도록 몹시 앓았다. <후략>
해설
<일동장유가>의 구성은 다음과 같이 총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① 제1권 : 일본에서 친선 사절을 청하여, 여러 수속 끝에 1763년 8월 3일 서울을 떠나 용인, 충주, 문경, 예천, 안동, 경주, 울산, 동래를 거쳐 부산에 이름 ② 제2권 : 10월 6일 부산에서 승선하여 발선(發船)하는 장면에서부터 대마도, 일기도(壹岐島), 축전주(築前州), 남도(藍島)를 거쳐 적간관(赤間關[下關])에 도착하여 머묾 ③ 제3권 : 이듬해 정월 초하루 적간관의 명절 이야기로부터 오사카(大阪), 교토(京都), 와다와라(小田原), 시나카와(品川)를 거쳐 에도(江戶)에 들어가 사행(使行)의 임무를 마침 ④ 제4권 : 3월 11일 귀로에 올라, 6월 22일 부산에 귀환. 7월 8일 서울에 와서 영조께 복명(復命)함 이 작품은 작자의 강직 청렴한 정신과 여유와 해학이 넘치는 성격이 반영되어 있으면서 지명·인명·일시·거리와 역사적인 사실에 객관성을 잃지 않은 고전기행문의 대표작이다. 국내의 노정은 주로 삽화와 지방의 특색을 서술하고 감상을 주로 하고 있으나, 일본에 대한 묘사는 객관적인 관찰과 주관적 비판으로 일관하면서도 주체적 정신에 입각하고 있다. <일동장유가>는 국문학자료로서는 물론, 외교사절단의 규모와 일본의 풍속 및 외교의 방법 등, 한일외교사의 측면에서도 귀중한 자료이다. 이 작품은 가사체로 된 기행문이라는 특성 때문에 서정적 가사라기보다 기행수필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이도 있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가람본이 영인, 보급되어 있고, 따로 이가원(李家源)본이 있다. 정확한 노정(路程)과 일시(日時)를 적고, 날씨, 자연 환경, 일어난 사건, 작자의 느낌 등을 과장 없이 그대로 묘사했을 뿐 아니라 도처에 날카로운 비판과 유머가 곁들어져 있어 기행 문학의 묘미를 십분 살려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홍순학의 <연행가>와 쌍벽을 이루는 장편 기행 가사의 백미(白眉)로 일컬어진다.
연계정보
-연행가(燕行歌)
관련멀티미디어(전체1건)
이미지 1건
  • 관련멀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