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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망매가(祭亡妹歌)

작품명
제망매가(祭亡妹歌)
저자
월명사
장르
향가
작품소개
월명사가 죽은 누이의 명복을 빌기 위해 재를 올릴 때 부른 추도의 노래
저자
월명사(月明師, 생몰년 미상) 국선의 한 사람으로 능준대사의 제자이다. 본명은 정확하지 않고 다만 피리를 잘 불어 달이 그를 따라다니며 비춘다고 하여 월명사라고 불렀다. 승려 신분이기는 하지만 불교 음악보다는 향가에 능했으며 <제망매가> 이외에 <도솔가(兜率歌)>를 지었다.
양주동 해독
삶과 죽음의 길이 여기 있으매 두려워하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 다 이르고 가느냐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 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서 났지만 가는 곳 모르겠구나 아아 극락에서 만날 나는 도 닦으며 기다리겠다
김완진 해독
生死 길은 예 있으매 머뭇거리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몯다 이르고 어찌 갑니까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온저 아아, 彌陀刹에서 만날 나 道 닦아 기다리겠노라 (참고) <고가연구>, 양주동, 일조각, 1980 <향가해독법연구>, 김완진, 서울대출판부, 1980
어휘풀이
- 이른 바람 : 누이의 이른 죽음을 비유하고 있다. 뒤의 떨어지는 잎과 대비되어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죽음)를 의미한다. - 잎 : 인생을 의미한다.
배경설화
경덕왕 19년 경자(160) 4월 초하루에 두 해가 함께 나타나서 열흘 동안이나 사라지지 않았다. 일관이 아뢰었다. “연승(緣僧)을 청해 산화공덕(散花功德)을 지으면 가히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조원전(朝元殿)에 단을 깨끗이 하고 청양루(靑陽樓)에 행차하여 연승을 기다렸다. 그때 월명사가 밭두둑으로 난 남쪽 길을 가고 있었다. 왕은 사람을 보내어 그를 불러서 단을 열고 계(啓)를 짓게 했다. 월명사는 왕께 아뢰었다. “빈도는 그저 국선(國仙)의 무리에 속해 있으므로 향가만 알 뿐 범성(梵聲)에는 익숙지 못합니다.” 왕은 말했다. “이미 인연 있는 중(緣僧)으로 뽑혔으니 비록 향가라 하더라도 좋소.” 월명은 이에 도솔가를 지어 임무를 마쳤다. 그 가사는 이렇다. ‘오늘 이에 산화가를 불러 뿌린 꽃아 너는 곧은 마음의 명령을 부림이니 미륵좌주를 모셔라’ 풀이하면 이렇다. ‘용루(龍樓)에서 오늘 <산화가>를 불러 청운에 한 조각 꽃을 뿌려 보낸다. 은근하고 정중한 곧은 마음이 시킴이니 멀리 도솔천의 부처님을 맞이하라.’ 지금 세간에서는 이것을 <산화가>라고 하나 잘못이다. 마땅히 <도솔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산화가>는 달리 있는데 그 글이 번거로워 기재하지 않는다. 조금 후에 괴이하게 나타났던 해가 사라졌다. 왕이 그를 가상히 여겨 품차(品茶)한 습(襲)과 수정 염주 백팔 개(箇)를 주었다. 홀연히 동자가 한 명 나타났는데 외양이 곱고 깨끗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차와 염주를 받들어 궁전 서쪽의 작은 문으로 나가버렸다. 월명은 이것을 내궁의 사자(使者)라 했고, 왕은 스님의 종자(從者)라 했으나 알아보니 모두 아니었다. 왕이 매우 이상히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뒤를 쫓게 했더니 동자는 내원(內院)의 탑 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차와 염주는 남벽의 미륵을 그린 벽화 앞에 있었다. 이와 같이 월명의 지극한 덕과 지극한 정성이 미륵보살을 감동시킬 수 있었다. 조정과 민간에서 이 일을 듣지 못한 이가 없었다. 왕은 그를 공경하는 마음이 더해져 다시 명주 1백 필을 주어 지극한 정성을 나타내었다. 월명은 또 일찍이 죽은 누이동생을 위해서 재(齋)를 경영하였는데, 향가를 지어 제사 지냈더니 갑자기 광풍이 일어나 종이돈이 서쪽으로 날려 사라졌다. 향가는 이렇다. ‘삶과 죽음의 길이 여기 있으매 두려워하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 다 이르고 가느냐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 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서 났지만 가는 곳 모르겠구나 아아 극락에서 만날 나는 도 닦으며 기다리겠다’ 월명은 늘 사천왕사에서 살았는데 피리를 잘 불었다. 일찍이 달밤에 피리를 불면서 문 앞의 큰길을 지나가니 달이 그를 위해 가는 것을 멈추었다. 이로 말미암아 그 길을 월명리라 했다. 월명사도 또한 이로써 이름이 났다. 월명사는 곧 능준대사의 제자였다. 신라 사람들이 향가를 숭상함은 오래되었는데 대개 시송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자주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킨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칭송하기를 ‘바람은 종이돈을 날려 죽은 누이동생의 노자를 삼게 했고 피리는 밝은 달을 흔들어 항아가 발을 멈추었다. 도솔천이 하늘처럼 멀다고 말라 만덕화 한 곡조로 즐겨 맞았다.’ - 삼국유사(三國遺事), 월명사도솔가(月明師兜率歌)
해설
향가문학의 백미라고 일컬어질 만큼 형식과 내용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이는 작품이다. 10구체 향가가 흔히 보여주는 모습인 3단 구성(4행+4행+2행)으로 되어 있다. 작품의 창작 배경이나 목적이 뚜렷하게 제시되어 있어 그 성격에 대한 별다른 이견은 존재하지 않으며, 일찍부터 그 문학성을 밝히는 데 연구가 집중되어 왔다. <제망매가>가 높은 문학성을 가지고 있는 주요한 원인은 적절한 비유법의 사용과 그러한 비유법을 통한 골육(동생)의 죽음을 종교적으로 승화시킨 데 있다. 비유적 표현은 5~8행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5행의 가을이라는 시어에서 <제망매가>의 시간적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가을은 일반적으로 풍성함과 넘치는 생명력을 나타내주는 계절이다. <제망매가>에서 나타나는 이런 역설적 시간설정은 누이의 이른 죽음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보이며 이른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으로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인간 삶의 나약함과 인생무상을 비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에서 난 형제의 죽음이지만 죽음 뒤에 무엇이 있고 어디로 가는지조차 알 수 없는 막막함은 작자의 개인적 고뇌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시상의 흐름을 살펴보면, 1~4행에서 동생의 급작스런 죽음과 그에 대한 슬픔을 체념적인 모습으로 보여주고, 5~8행에서는 누이의 이른 죽음을 이른 바람에 떨어지는 잎으로 비유하며 죽음 앞에서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무상함에 대한 고뇌가 엿보인다. 앞에서 노래한 죽음에 대한 슬픔과 인생무상에 대한 고뇌를 마지막 9~10행에서 내세를 기약하는 종교적인 자세로 극복하는, 개인적인 슬픔과 고뇌의 종교적 승화를 보여주고 있다. 9행에서 보이는 감탄사는 10구체 향가에서 나타나는 전형적 형식을 맞추기 위한 시어이지만 <제망매가>에서는 그러한 전형적 감탄사가 절묘한 시상의 전개와 맞아떨어져 개인적 고뇌를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전환점의 구실을 하고 있다. 즉, 감탄사를 사용하여 감정의 전환 또는 정화(淨化)를 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연계정보
-삼국유사(三國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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