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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희(趙敬姬)

예술가명
조경희(趙敬姬)
전공
수필
개요
조경희의 수필들은, 주로 생활인들의 일상생활에서 포착되는 인정세태와 그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휴머니즘에 입각하여 형상화해내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주요 수필로 <얼굴>, <우화>, <여행>, <나의 하루>, <재떨이>, <구두>, <판관과 그들의 부인> 등이 있으며 수필집으로는 <우화>, <가깝고 먼 세계>, <면역의 원리>, <골목은 나보다 늦게 깬다>, <빈 집이나 지키는 달빛이 되어> 등이 있다. - 참고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누리미디어, 2002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생애
경기 강화에서 출생한 조경희는 1939년 이화여전 문과를 졸업했다. 1938년 <한글>에 <측간단상(厠間斷想)>, 조선일보에 <영화론>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1939년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를 시작으로 언론활동에도 뛰어들었다. 이후 1945년 서울신문 기자를 거쳐 1951년에는 부산일보 문화부장을 역임했고, 1963년 이후 한국일보에서 부녀부장, <주간한국> 부장을 거쳐 논설위원을 지냈다. 1959년에는 여기자클럽 회장을 맡기도 했다. 문단활동에도 두각을 드러내, 1973년 한국예술인총연합 부회장을 거쳐 1984년 회장을 역임했고, 한국여류문학인회 회장, 문예진흥후원협의회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문학단체에서의 활약이 많기로 유명하다. 1988년에는 정무2장관으로 입각했고, 1989년 이후 한국여성개발원 이사장, 예술의전당 이사장 등을 지냈다.
약력
1918년 인천 강화 출생 1935년 이화여자전문학교 입학 1938년 잡지 <한글>에 수필 <측간단상> 당선 등단 / 조선일보 학생란에 <영화론> 당선 1939년 이화여자전문학교 문과 졸업 / 조선일보사 학예부 기자로 입사 1940년 매일신보 문화부 기자 1946년 서울신문 사회부 기자 1947년 중앙신문 사회문화부 기자 1949년 손소희·전숙희와 함께 계간 종합지 <혜성> 창간 1951년 부산일보 문화부장 1952년 월간 <여성계> 주간 / 월간 <희망> 문화부장 1956년 평화신문 문화부장 1957년 제28회 일본도쿄 국제펜대회 한국대표 1959년 서독 프랑크푸르트 국제펜대회 한국대표 1960년 서울경제신문 문화부장 1962년 새나라신문 편집국장 / 문화공보부 영화 심의의원 / 한국일보사 <주간한국> 부장 1965년 한국여기자클럽 회장 1966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중앙위원 / 미국 뉴욕 국제펜대회 한국대표 1967년 한국방송윤리위원회 윤리위원 / 한국여류문학인회 초대 간사장 1969년 프랑스 망똥 국제펜대회 한국대표 1971년 한국수필가협회 창립 · 초대회장으로 추대 / 아일랜드 더블린 국제펜대회 한국대표 1972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회장 1974년 한국일보 논설위원 1978년 한국일보 <소년한국> 부국장 1979년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루 국제펜대회 한국대표 1980년 한국일보 정년퇴임 /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권한 대행 1981년 평화통일자문위원회 자문위원 / 5·16민족상 이사 및 심사위원 / 한국여성문학인회 고문 1982년 올림픽조직위원회 문화홍보 분과위원 / 한국수필문학상 제정 1983년 한·중우호협회 고문 1984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당선 / 올림픽조직위원회 조직위원 / 독립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이사 /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문화분과위원장 / 한국문인협회 고문 / 일본 도쿄 국제펜대회 한국대표 1986년 문예진흥후원협의회 부회장 1987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재선 1988년 제2정무장관 1989년 예술의전당 이사장 1991년 서울예술단 이사장 / 교육정책심의위원 / 동덕여자중·고등학교 동창회장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국제펜대회 한국대표 1994년 춘강상 운영위원 겸 심사위원 / 체코 프라하 국제펜대회 한국대표 / 한국예술단체총연합회 명예회장 1995년 한국여성개발원 이사장 1996년 성공회대학교 이사 1997년 이화여자대학교 동창문인회 회장 / 이화문학상 제정 /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2000년 모스크바 국제펜대회 한국대표 2003년 ‘강화를 빛낸 사람’에 선정
상훈
1975년 한국문학상 1982년 서울시문화상 1987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1990년 청조근정훈장 1992년 프랑스문화훈장 1993년 춘강상 1995년 일붕문화상 1996년 은관문화훈장 / 한국수필대상 2000년 올해의자랑스런미술인상 / 이화문학상공로상 / 20세기1000명세계지도자상 / 20세기200명세계작가상 수필집 <우화>(1955) <가깝고 먼 세계>(1963) <얼굴>(1966) <음치의 자장가>(1971) <면역의 원리>(1978) <골목은 아침에 나보다 늦게 깬다>(1986) <웃음이 어울리는 시대>(1988) <낙엽의 침묵>(1994) <치자꽃>(1999) <하얀꽃들>(2000) 기타 <조경희 자서전>(2004)
작가의 말
(……) 이태준 선생님의 첫 강의 시간 때의 일이다.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우리에게 ‘무덤자리’라는 글 제목을 숙제로 주셨다. 나는 어떻게 써야 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해서 나는 원고지와 연필을 들고 학교 뒷산을 헤매고 다녔다. 한참 돌아다니다가 무덤이 있었던 자리같이 움푹 패어 있는 곳을 발견했다. 그 옆에 주저앉아서 사람이 죽어서 묻힌 무덤을 생각했다. 새로운 느낌을 가지고 무덤자리의 글을 써 나갔다. 본대로 느낀대로 쓰기 시작했고 나는 원고지 12장을 써서 선생님께 제출했다. 최선을 다해서 쓰긴 했지만 결과는 기대하지 않았다. 이선생님은 다음 작문시간에 우리가 쓴 원고뭉치를 들고 들어오셔서 제일 먼저 내가 쓴 글을 읽으셨다. 나는 너무 놀랐고 부끄럽기조차 해서 책상에다 머리를 숙이며 양손으로 얼굴까지 감쌌다. 그러나 이 일은 나에게 커다란 전환점을 가져다주었다.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에 용기와 자신을 얻은 내게 점점 글쓰는 일에 몰두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 나는 램의 수필을 가끔 읽어도 새 글을 읽는 것 같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영문학의 보물이란 경지를 알게 해주기도 한다. 김사용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램의 수필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던 것을 잊을 수가 없다. “램의 수필 ‘로스트 픽’은 언제 읽어도 맛이 난다. 연한 돼지고기 굽는 냄새가 식욕을 느끼게 한단 말이야.”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해주신 말씀과 학창시절에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은 어른이 되어서도 언제나 내 뒤통수를 따라다닌다. 그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학창시절에 배운 <엘리아 수필집>은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었고 결국은 나의 스승이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수필을 쓴답시고 책상에 앉아 고민할 때마다 나는 <엘리아 수필집>을 펼쳐보곤 했다. 엘리아는 램의 필명이다. 이 책 속에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것들이 교묘하게 표현되고 있으며 그 표현 방법은 뭐라 말할 수 없이 내 마음을 끌어당긴다. 특히 슬픔과 고통을 극복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유머와 위트, 그리고 삶의 패러독스를 발견할 때 나는 내 삶과의 동질성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그의 수필을 아끼는 것이다. 나는 언제고 여행을 할 때는 핸드백 속에 <엘리아 수필집>을 넣고 떠난다. - ‘이화전문학교에 입학’, 조경희, <조경희 자서전>, 정우사, 2004많은 생각, 많은 일들, 그밖에 무수하게 느끼는 상념의 세계를 사람들은 그냥 흘려버리게 된다. 그것이 아무리 평범한 생활 속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라 해도 버릴 수 없는 인생의 탑이 될 수 있다. 작은 사상의 줄거리, 그것이 아무리 연약한 상념의 덩굴이라 할지라도 간직하고 싶어한다. 나는 이삭을 줍듯 나의 하찮은 인생 기록들을 표현하며 정리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때가 있다. 여기 모은 글들은 1955년에 낸 첫 수필집 <만화(萬話)>, 1963년에 낸 여행기 <가깝고 먼 세계> 이후 10년 가까운 동안 여기 저기 신문, 잡지에 발표해온 것들이다. 때로는 잡무에 쫓기면서, 때로는 여독에 젖어, 때로는 병고에 시달리면서 쓴 단장(斷章)들이었지만, 먼지가 뿌우연 스크랩을 정리하면서 나대로의 감회가 없지도 않아 여러 번 미소를 금치 못했다. 쓴맛 단맛의 내 인생의 편답(遍踏)과 편력(遍歷)이 여기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웃기보다 속으로 웃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겉으로 울기보다 속으로 울기란 더욱 어려운 것이었다. 또한 겉으로 기뻐하기보다 속으로 기뻐하기란 더더욱 어려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항상 겉보다 속으로 웃고, 속으로 울고, 속으로 기뻐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펜 끝으로 웃고, 펜 끝으로 울고, 펜 끝으로 기뻐하기란 얼마나 더 큰 어려움이었던가를 이 원고를 뒤적이며 더욱 절실히 느껴보았다. (……) - ‘책 머리에’, 조경희, <음치의 자장가>, 중앙출판공사, 1971
평론
(……) 그의 문필생활은 1938년 <한글>지에 수필 <측간단상>을 발표하면서 오늘에까지 장장 반세기의 작가편력을 보여주고 있다. 조경희의 수필은 주로 인간애를 불러일으키는 휴머니티에 바탕을 두고 그로부터 생활인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형상화시키는 데 그 특징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의 주요 수필로는 <얼굴>, <선물>, <네거리>, <골목>, <자기도취>, <돌>, <아침길>, <아일랜드의 인상(印象)>, <해피의 슬픔>, <소리 노이로제>, <면역(免疫)> 등이 꼽힌다. 또 그의 대표적 수필집으로는 <우화>(1955)를 비롯 <가깝고 먼 세계>(1963), <음치의 자장가>(1966), <면역의 원리>(1978), <골목은 나보다 늦게 깬다>(1986), <낙엽의 침묵>(1994) 등이 있다. 그의 수상경력으로는 한국문학상(1975), 서울시문화상(1982), 대한민국문화예술상(1987)과 정부의 훈·포상을 받았다. 한편, 1994년 서울여자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특기할 명예이며 1997년에는 만시지탄이 있지만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추대되었다. 이러한 다양하고 화려한 경륜이 바탕이 되어 조경희의 수필세계는 꽤나 폭넓은 제재로 흥미있는 화제를 보여준다. 그의 수필은 새삼 수필의 본 자태가 무엇인가를 생각케 해주는 글들이다. 또 그의 수필에서 우리는 현란한 수사학을 결코 볼 수 없다. 평범한 언어로 빚은 야산의 들꽃 같은 소박한 향내가 있을 뿐이다. 작가 스스로 글을 업으로 삼고자 쓴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소위 수필이라는 형식의 글을 계속 쓰다 보니까 수필가라는 칭호가 붙어 있었다고 실토한다. 조경희 수필의 특징은 한마디로 일상생활에서 느끼게 되는 자잘한 삶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을 반성하는 사색의 거울인 셈이다. (……) 실제로 조경희의 수필을 보면 어려운 제목의 글은 단 한 편도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글이 자신의 생활체험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를테면 “나는 얼마 전 시계를 하나 선물로 받았다. 시계는 책상머리에 놓아둘 수 있는 야광시계다”<선물>, “요즘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밤중에 걸려오는 전화벨이다”<소리 노이로제>, “사직동에 사시는 친정 부모님을 찾아보는 때마다 대문 소리만 나면 해피는 요란스럽게 짖어댄다” 등의 첫 문장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수필은 자신의 생활체험으로부터 결코 벗어난 적이 없다. 이런 수필의 특징은 글을 쓰는 목적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의 글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창작물이 아니라 그 자신의 생활로부터 자연스럽게 발원해나온 삶의 목소리다. 요즘처럼 바쁜 세상에서 자기 상실에 빠지기 쉬운데, 나를 잃어버린다는 것이 곧 나를 속이게 되는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자신은 자기상실을 극복하기 위한 생활의 일부분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조경희의 수필이 자기 위안과 자기 성찰로서 작가 자신에게 우선 진실하며, 이러한 진솔함이 독자들에게 삶의 진실로 자연스럽게 다가간다. (……) - ‘자연의 섭리 수용한 겸허한 모습: 조경희의 문학과 인간’, 윤병로, <한국예술총집 문학편 4>, 대한민국예술원, 1997
관련도서
<조경희 자서전>, 조경희, 정우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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