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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재(康信哉)

예술가명
강신재(康信哉)
전공
소설
개요
강신재의 작품을 살펴보면 초기에는 주로 현대 남녀들의 애정 모럴을 추구하는 데에 몰두,그들의 생태를 리얼하고도 감각적인 기법으로 그리고 인물을 희화적으로 다루는 데에 능숙한 솜씨를 보였다. 1960년에는 계부의 이복오빠와 오누이 아닌 오누이 관계에서 순수한 남녀로 돌아가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섬세하고 리얼한 필치로 묘파한 단편 <젊은 느티나무>를 <사상계>에 발표, 본연한 인간성과 사랑의 순수한 경지를 추구하는 작가로서의 정평을 굳혔다. 강신재의 작품 경향은 다양한 인물 선정과 주제를 표면에 드러내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습관이나 차림새 같은 데서 인물의 특징을 잡아서 하나의 발랄한 생명체를 구성하는 특이한 인물묘사 기법을 구사, 세련된 감각으로 그만의 조화있는 특이한 세계를 구축하였다. - 참고 :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국어국문학자료사전>, 국어국문학편찬위원회 편, 한국사전연구사, 1995
생애
서울 남대문로 어성동에서 의사의 장녀로 출생한 강신재는 경기여고를 거쳐 1943년 이화여전 가사과에 입학, 2학년 때 중퇴하였다. 결혼 후 김동리의 추천으로 <문예>에 단편 <얼굴>, <정순이>를 발표하였고, 1960년 무렵부터는 주로 중·단편을 쓰기 시작하여 <임진강의 민들레>와 펜클럽 작가기금으로 씌어진 <오늘과 내일>의 두 전작소설을 발표했다. 1959년 <절벽>으로 한국문인협회상을, 1967년 <이 찬란한 슬픔을>로 여류문학상을 수상했다.
약력
1924년 서울 어성동 출생 1942년 경기여고 졸업 1945년 이화여전 중퇴 1949년 김동리의 추천으로 <문예>에 <얼굴>·<정순이>를 발표하며 등단 1968년 한국문학가협회 이사 / 펜 이사 역임 1974년 <강신재 대표작 전집> 간행 1982년 한국여류문인회 회장 1983년 소설가협회 대표위원 / 대한민국예술원 정회원 1987년 한국소설가협회 대표위원회 위원장
상훈
1959년 한국문학가협회상 - <절벽> 1967년 한국여류문학상 - <이 찬란한 슬픔을> 1984년 중앙문화대상 - <사도세자빈> 1988년 대한민국예술원상 - <사도세자빈> 단편소설집 <희화>(1958) <여정>(1959) <젊은 느티나무>(1970) <황량한 날의 동화>(1976) 장편소설집 <임진강의 민들레>(1962) <파도>(1970) <강신재 대표작 전집>(1974) <사도세자빈>(1981) <간신의 처>(1989) <명성황후>(1991) <광해의 날들>(1994) 수필집 <사랑의 아픔과 진실>(1966) <모래성>(1974) <무엇이 사랑의 불을 지피는가>(1986) 희곡집 <갈소리>(1956)
작가의 말
(……) 한 인간상을 그리려 할 때 거기에는 당연히 사람과 세상에 대한 작가의 모든 생각, 모든 감정이 투사된다. 경건한 신자인 작가는 신을 섬기는 작품을 쓸 것이고, 유물론자는 물질 생활에 중점을 둔 글을 쓸 것이다. 나는 그 본질을 알 수 없어서 모호히 불안한 토대 위에서, 그러나 또 이는 너무나도 생생하게 감촉되는 사람들의 아픔이나 환희나 비애나 절규를 그리려 한다. 현상학적인 입장에서 인간 드라마를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평생토록 있는 힘을 다하여 그렇게 하더라도, 인간의 삶의 본질에 관해서는 아마도 아무러한 해석도 내려지지는 못할 것이다. 심한 편견이나 구처 없는 독단에 사로잡히지 않는 한 그 일은 인간 모두의 숙명이겠기 때문이다. 사람은 약한 생물이고 또 기원이라는 강한 성향을 지니고 있지만 이는 또 달리 논해져야 할 문제일 것이다. 어쨌거나 내가 종사하고 있는 문학 수련이라는 일은, 나 자신의 안심입명을 위해서는 그다지 이로운 노릇은 아닐 듯하다는 마음이 요즘 들고 있다. 좋은 쪽은 잠시 두고-기실 소설 속에서 기쁨이라든가 감사, 평온의 문제는 별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슬픔이며 괴롬은 이를 남의 몫까지 비슷하게 맛보아야 한다는 작업을 썩 현명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내가 택한 길이다. 뭐니 하면서도 또 오늘도 이렇게 원고지 앞에 앉아 있는 것이다. - ‘문학 수련’, 강신재, <무엇이 사랑의 불을 지피는가>, 나무, 1986
평론
(……) 우리의 삶 속에서 이 일상과 역사의 이분법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맑은 가을하늘 아래 푸른 강물을 배경으로 노랗게 피어 있는 민들레를 볼 때라든가 아기의 눈동자를 들여다볼 때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이런 종류의 사건은 친숙한 일상의 리듬 속에 늘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역사적 흐름을 바꾸어 놓는 중요한 계기도 될 수 있다. 오히려 일상과 격리되어 존재하는 듯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 미의식을 느낄 때, 자신이 진부한 일상 속에서 탈출한 듯한 착각을 느끼고는 한다. 강신재의 소설에서 느끼는 아름다움도 이런 종류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젊은 느티나무>는 작가의 이런 기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사실 이 소설의 내용만을 본다면 이것은 근친상간의 금기를 담고 있는 충격적인 것이다. (……) 그러나 이 소설에서 독자가 느끼는 감정은 근친상간에 대한 혐오감이나 어두운 운명에 대한 부조리가 아니다. 이 소설의 주제를 단적으로 요약해주는 것은 작품 첫머리의 문장,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맨 앞의 이 한 줄을 위해 씌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소설 초반의 ‘비누 냄새’로 대변되는 추상적인 감각은 십대의 그녀가 남성에게 느낄 수 있는 한계에 해당한다. 숙희에게 아직 남녀간의 사랑은 미지의 무엇일 뿐, 구체적인 육체적 접촉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 일상의 생활을 통해 체득되지 않은 사랑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숙희가 느끼는 사랑은 육체적 접촉이 배제된다는 점에서 현실적 사랑이 아니며 젊은 느티나무를 껴안은 것으로 소설이 멈춤으로써 갈등을 야기시킨 일상적 인습의 부조리를 조금도 건드리지 않는다. 이 사랑은 현실의 관점에서 보건대 현저히 미숙한 것이다. 그러나 숙희의 사랑은 아름답다. (……) 현실에 훼손되지 않은 것을 아름다움으로 치부하는 발상법은 <파도>에서도 고스란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소설은 표면상으로는 한 소녀의 성장소설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으나 사실은 한 소녀의 눈에 비친 현실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글이라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우선 이 소설에서는 성장소설이 가지는 선조적 시간개념이 부재한다. <파도>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란 계절의 순환에 따라 진행된다. 계절의 순환은 하나의 리듬으로 자연이 지속되는 한 한결같이 유지되는 반복의 존재이다. 이것의 성격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존재가 질적 변화를 겪는 성장소설의 그것과 정반대의 축에 놓이는 원점회귀의 순환구조라 할 수 있다. 즉 이 소설에서 계절의 흐름은 이것이 성장소설이 아님을 상징적으로 적절하게 보여주는 기제이다. (……) 작가는 영실의 눈을 통하여 신실의 무책임함, 본능에서 오는 행동의 불균형이 그녀의 절대적 아름다움으로 대체된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애경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애경은 높은 교양과 미모를 이용하여 수많은 남자들을 타락시킨다. 그녀는 친자식의 실종에도 무관심하였고 남편을 빼앗긴 많은 여자를 절망에 빠뜨렸다. 그녀는 “사내가 시초였고 또 마지막이었으며 남자와의 생활에 낮도 밤고 없는” 여자라는 것이다. 열락과 아름다움 외에는 인습, 제도, 도덕, 어디에도 관심이 없다는 태도, 이 무목적성과 맹목성은 실제 생활에의 외면이라는 점에서는 영실의 천진난만함과 동질의 것이라 할 수 있다. 남자들 또한 생활이 존재하지 않는다. (……) 심지어 균형잡힌 생활인인 백의사조차도 삽시간에 생을 마감하여 삶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보여준다. (……) 작가는 너무도 수월하게 삶의 기반 위에 굳건하게 서 있었던 한 남자를 붕괴시키고 만다. 사실 죽음은 많은 경우 삶과 어떤 인과관계도 갖지 않으며 그것과 단절적이다. 그 단절감이 갖는 무게와 불가항력을 통해 작가는 먹고사는 과정을 제외하고도 우리 삶에 남는 비중있는 어떤 것을 또 하나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생활 이외의 것이 아주 절박한 상황에서 얼마만큼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예를 들면 전쟁 같은 상황에서 어린아이의 천진함이나 시가 과연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이 의문점을 작가는 <임진강의 민들레>에서 제시하고 있다. <임진강의 민들레>의 여주인공 이화는 스무 살의 의과 대학생이다. 그러나 나이와 지식 수준에 걸맞지 않게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젊은 느티나무>의 숙희의 그것과 똑같은 수준이다. 그녀는 숙희처럼 이성의 육체를 거리를 두고 볼 때 아름다움을 느끼며 구체적으로 성적 느낌이 감지될 때 거부반응을 보인다. (……) 둘째딸인 옥엽은 폐문임파란 병으로 휴학하고 있는 처지이면서도 주부로서의 벅찬 역할을 ‘천사처럼’ 우아하게 수행하고 있다. (……) 작가는 일을 하고 신경을 쓰는 옥엽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해놓은 일의 결과만을 서술함으로써 인물과의 거리두기에서 오는 신비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생활하는 인물의 모습은 배제되고 일문의 독특한 개성이 부각되는 강신재의 독특한 기법이 살아나는 것이다. (……) 그녀의 눈에 모든 생활적인 것은 그녀의 미적 감각에 의해 윤색되어야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것이다. 그녀가 임진강가로 달려간 것은 목이 마르다는 절박함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주는 생활 이외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생활 이외의 오묘한 것을 사랑하며 사람끼리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삶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생활을 삶의 전부인 양 전쟁을 일으키고 서로 미워한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 앞에 음악, 시, 그림, 사랑을 감히 내세워보는 것. 그것이 얼마만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먹고사는 문제와 단절된 것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본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가끔은 우리를 감동시킨다는 점에서 강신재 소설의 의미가 있다. - ‘생활과 대립구도로서의 미’, 최혜실, <한국소설문학대계37: 젊은 느티나무 외>, 동아출판사, 1995
관련도서
<강신재 대표작 전집>, 강신재, 삼익출판사, 1974 <한국소설문학대계37: 젊은 느티나무 외>, 강신재 외, 동아출판사, 1995 <무엇이 사랑의 불을 지피는가>, 강신재, 나무,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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