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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수(文德守)

예술가명
문덕수(文德守)
전공
개요
문덕수의 시 세계는 시기를 따라 대략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그의 초기 시집이라 할 수 있는 <황홀>, <선·공간> 등에 실린 시들과 그 이후의 일부 시들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자동기술법을 위시한 자유분방한 작법으로 그려내고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새벽 바다>, <영원한 꽃밭>, <살아남은 우리들만이 다시 6월을 맞아>에 실린 시들로, 현대 문명사회가 지니는 여러 가지 부조리, 부도덕, 갖가지 획일화, 단순화에 의한 비인간화를 비판하고 있다. 세 번째 유형은 <다리 놓기>, <조금씩 줄이면서>, <그대 말씀의 안개>, <만남을 위한 알레그로>에 실린 시로, 내면의식과 문명비판, 문명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시적 형식면에서의 실험적 경향과 보수적 경향을 통합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이는 그가 섭렵해온 문학에 대한 끊임없는 모색의 결과 얻은 흑백논리의 거부라는 철학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그는 상투화된 언어 사용을 탈피하여 언어가 원래 지녔던 심리적 감성의 바탕을 다시 포착하게끔 하였으며, 언어를 기호로서의 기능보다는 하나의 실재를 구축하는 형상적 재료로 사용하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문덕수의 시적 경향은 한마디로 모더니즘 계열의 시로 지적될 수 있다. 1930년대 이후, 이 땅의 시를 대표했던 모더니즘시는 회화화를 특성으로 하는 사물시로 대표되었고, 그도 이미지를 중시하는 이미지즘시를 바탕으로 자신의 시를 출발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서구편향적인 시의 회화성을 통한 이미지의 조형성에 선, 공간과 같은 내면성 및 의지까지를 이미지화함으로써 이 땅의 모더니즘시가 지향했던 사물시의 한계를 극복했다고 할 수 있다. - 참고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누리미디어, 2002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생애
경남 함안에서 출생한 문덕수는 경남교원양성소를 거쳐 홍익대 국문과 및 고려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마산상고 교사, 제주대 교수를 거쳐 홍익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시문학> 주간, 한국현대시인협회장, 한국펜클럽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현대문학상, 현대시인상, 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문덕수는 1947년 <문예신문>에 시 <성묘>를 발표하였으며, 1955년 <현대문학>에서 <침묵>, <화석>, <바람 속에서>가 유치환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등단했다. 그는 시 창작 외에도 이론적인 작업에도 관심을 보여 <현대문학의 모색>, <현대한국시론>, <한국모더니즘시연구>, <현실과 휴머니즘 문학> 등의 연구서를 간행하였다. 1960년대에 발표한 연작시 <선에 관한 소묘>, <종이 한 장>, <새벽바다> 등을 고비로 순수 심리주의적 경향을 계속 추구, 현실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반영한 내면세계의 미학을 개척했다는 평을 들었다. 동인지 <시단>, <한국시> 등을 주재해 우수한 시인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약력
1928년 경남 함안 출생 1955년 홍익대 졸업 /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1961년 홍익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1963년 이형기·황금찬·함동선·정공채 등과 동인지 <사단> 결성 / 국제 앤솔러지 <태평양 연안시집> 주재 1965년 월간 시지 <시문학> 주간 1979년 일본 스쿠바대학 대학원 수학 1981년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1982년 홍익대학교 사범대학장 1983년 한국현대시인협회장 1992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장 1993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94년 홍익대 교수 정년퇴임, 명예교수 취임 1995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
상훈
1964년 현대문학상 1978년 현대시인상 1981년 아카데미학술상 1983년 국민포장(褒章) 1985년 펜문학상 1990년 유럽문학상(이탈리아) 1991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1994년 국민훈장목련장 1996년 춘강상 1997년 서울시문화상 2000년 은관문화훈장 2002년 대한민국예술원상 시집 <황홀>(1956) <선·공간>(1966) <본적지>(1968) <새벽바다>(1975) <영원한 꽃밭>(1976) <살아남은 우리들만이 다시 6월을 맞아>(1980) <다리 놓기>(1982) <조금씩 줄이면서>(1986) <그대 말씀의 안개>(1986) <만남을 위한 알레그로>(1990) <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1991) <꽃잎 세기>(2002) 평론집 <현대문학의 모색>(1966) <한국현대시론>(1974) <한국 모더니즘시 연구>(1981) <현대시의 해석과 감상>(1982) <현실과 휴머니즘문학>(1985) <시론>(1993) 기타 <세계문예대사전>(1975)
작가의 말
(……) 시인은 시쓰기에 있어서 사물과 완전한 일치를 가장 이상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사물과 언어 사이에는 분열, 틈이 있기 마련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완벽한 답은 신의 몫이겠지만 대충 말한다면 사물에 대한 언어의 양적 빈곤, 사물과 떨어져 있는 언어의 독자성, 그 가동성, 언어의 추상성과 언어의 구조적 결함, 언어 사용자의 주관, 등등을 들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을 이런 정도로 해둘까 한다. (……) 그러한 분열·불일치가 있으므로, 그것을 극복하여 일치시켜보려는 시도(즉, 진실과 진리의 추구나 노력)에서 사물과 언어와의 만남의 양상도 또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 하나는, 먼저 어떤 관념을 정해 놓고, 그 관념에 알맞은 사물을 찾아 그 관념을 해석하거나 그 관념에 사물을 끌어다 연결시키는 방법이 있다. 이러한 태도의 근원은 낭만주의 또는 인간중심주의에 있다고 하나, 고전주의에도 있다. 사물보다 관념을 선행시키는 토대는, 사물을 이데아의 가상이나 모상이라고 하여 참된 실재로 보지 않고, 참된 사물의 실재는 ‘이데아’라고 주장한 플라톤의 이상주의에 그 이론적 연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하나는 ‘관념’을 먼저 만들지 않고 사물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인식하려고 하는 리얼리즘의 방법이다. 이 경우, 그 사물에서 가급적이면 인생론이나 사회론 같은 관념을 배제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고 그 사물에서 어떤 관념을 귀납적으로 끌어내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사물과 언어와의 만남의 양상에서, 낭만주의(휴머니즘)와 리얼리즘이 갈라지기 시작하는 분기점의 하나를 발견할 수 있음도 흥미롭다고 하겠다. (……) - ‘사물과 언어와의 만남’, 문덕수, <꽃잎 세기>, 시문학사, 2002
평론
(……) 우주를 점과 선과 원의 집합으로 보고 기하학적 상상력을 작동시켜 이미지의 변화를 집중적으로 추구하는 문덕수의 창작방법은 당연히 엄정한 질서감각 혹은 균형감각으로 발현된다. 원래 기하라는 학문 자체가 공간의 입체적 형상을 점과 선을 중심으로 수리적 차원에서 분석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기하학에서의 공간은 그 나름대로의 질서와 균형을 갖춘 것으로 인정된다. 만일 질서나 균형이 어긋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수의 세계에 들어올 수 없고 당연히 기하학적 공간이 될 수 없다. 삼각형은 삼각형으로서의 법칙성을 지니며 원은 원으로서의 법칙성을 지닌다. 만일 원이 원으로서 지녀야 할 법칙성을 어긴다면 그것은 더 이상 원이 아니다. 기하학적 상상력에 기반을 둔 문덕수의 시가 질서감각이나 균형감각을 내보이는 것은 이로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질서감각은 시를 완벽한 정물화의 차원에 놓이게 한다. 즉 사물의 존재양태와 구도를 기하학적 시각에서 포착하려 하는 것이다. (……) 이러한 기하학적 상상력은 늘상 대상과의 거리감을 유지하기 마련이다.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하나’, ‘흰’, ‘반쯤’, ‘먼’, ‘빈’ 등의 말들은 대상과의 거리감이 언어로 표출된 예들이다. 그의 시 <빈 유리컵>이라든가 <여백> 등의 작품들은 대상과의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사물이 뿜어내는 이미지의 훈기를 모아 직조해낸 전형적인 예들이다. 잠자고 있는 것도 눈뜨고 있는 것도 아닌 빈 유리컵의 중립적 상태, 먼 공간을 엿보거나 세상을 종일 방관만 하고 있는 사물들의 정황은 대상과의 거리감을 유지하려는 자아의 심정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러한 대상과의 거리감은 당연히 현실과 역사에 대한 거리 유지로 나타난다. 기하학이 표방하는 수와 선의 세계는 엄정한 질서가 요구되기는 하지만, 이념이나 사상이 끼여들 여지는 없다. 수의 세계란 그야말로 중도적 세계이고 가치중립적 세계이다. 이념이나 사상에 의해 수가 변질되는 경우란 없는 것이다. 기하학적 상상력으로 시를 쓰는 경우도 그 이미지는 하나의 사물이나 혹은 숫자처럼 가치중립적이고 이념단절적인 속성을 지니게 된다. 역사나 현실에 대한 관심이 시에 수용될 가능성을 차단해버리는 것이다. 문덕수는 그러한 자신의 시관을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엄격한 의미에서, ‘순수 이미지’란 객관적 대상도 없고, 개념으로 바꾸어 놓을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지는 이미지 그것만으로서 충분하고, 그밖에 이미지가 지시하는 객관적 대상을 찾는다든지, 이미지가 내포하는 철학적·인생론적 관념을 찾으려 한다는 것은 오히려 이미지를 불순케 하는 심리적 과욕이라고 생각한다. 이미지는 이미지 그 자체가 하나의 실재이다.” 여기서 보는 것처럼 문덕수는 하나의 실재로서의 이미지, 사물로서의 이미지를 이해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일반적인 시 이해의 방법을 말한 것이지 자신이 시쓰는 방법에 대해서 해명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창작방법과 관련된 측면은 분명히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쓸 당시에 그의 창작관은 분명히 모더니즘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수와 기하의 가치중립적 세계를 표방하며, 무이념과 무역사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김없는 모더니즘의 세계관이다. 그 모더니즘 세계관이 언어로 현시화된 정상의 작품이 현란한 사물 이미지가 직조된 <새벽바다>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미지 조성의 탁월성과는 별도로 우리는 가치중립적 시각에서 과연 시가 지속적으로 제작될 수 있는가를 회의하게 된다. (……) 균형과 질서의 추구는 역으로 불균형에 대한 거부, 무질서에 대한 혐오로 굴절된다. 처음에는 도시 문명을 구가하며 출발한 모더니즘이 종국에는 현대문명의 위기를 진단하고 문명비판적 성격을 표나게 내세운 것도 현대문명의 무질서·불균형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문덕수의 경우 무질서하고 혼잡한 현대문명을 대표하는 사물은 자동차이다. 도시를 질주하는 자동차의 무질서함은 기하학적 상상력으로 정돈된 시인의 의식 속에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도시의 자동차 문화에 대한 혐오감은 그의 후기 시 여러 곳에서 반복해서 나타난다. (……) 도시의 자동차가 주는 불길감이 시인의 신경을 크게 자극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이 불길감은 그의 시에 수시로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하는데, 이 죽음의 인식이 가치중립적 시각에서 생명과 관련된 가치유관적 시각으로 전환하게 되는 계기를 이룬다. (……) 이 단계를 넘어서서 <벼랑 끝에 서서>나 <나의 발걸음>에 오면 도시문명과는 분리된 차원에서 고독한 자아의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면서 죽음에 대한 인식이 더욱 심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이러한 죽음의 인식이 허무주의에 함몰되지 않은 것은 기하학적 상상력이 지닌 균형감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엄정한 삶의 무게중심이 균형을 이루고 있기에 이 시편들은 허무의 늪에 기울지 않는다. 또한 대부분의 죽음에 대한 명상이 그렇듯이 그것은 언제나 삶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 - ‘문덕수론’, 이숭원, <한국현대시연구>, 민음사, 1989
관련도서
<니힐리즘을 넘어서>, 문덕수, 시문학사, 2003 <한국현대시인연구 하>, 문덕수 외, 푸른사상사, 2001 <한국현대시연구>, 김용직 외, 민음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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