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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처기

작품명
후처기
저자
임옥인(林玉仁)
구분
1940년대
개요
1940년 11월 문장에 발표된 임옥인의 단편소설. 후처가 된 인텔리 여성의 심리와 숨겨진 심층을 사실적으로 부각시킨 작품으로, 보수적 태도를 고수하면서도 여성적 센티멘털리즘을 추구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주인공의 현실적이고 의지적인 모습을 성격화하는 데 성공한 작품으로 남편과 가족을 위한 주인공의 지극한 부정(婦情)이 유감없이 그려졌다. 주인공은 전실 자식을 학대하거나 피해의식 때문에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고, 강인한 실천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가는 새로운 계모상의 전형을 보여주며, 그러한 인물의 성격은 단순히 인텔리 여성의 오만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되씹는 고고한 인간성으로 제시된다.
내용
주인공 ‘나’는 그가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이규철의 세 번째 부인으로 시집을 간다. 나는 의사였던 연인으로부터 실연의 상처를 가지고 있고 남편 역시 전처의 환상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나는 죽은 전처의 흔적을 씻어버리고 새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 과제를 자신의 의지에 따라 과단성 있게 처리해나간다. 나의 행동들은 전처와 비교되며 주위로부터의 혹평과 잡음이 끊이지 않지만 나는 아랑곳없이 소신대로 살아가며 억척스럽게 일한다. 나의 자신감은 임신 사실을 알고 더욱 강고해진다. “…… 내 속에 커가는 한 생명이 내 유일한 벗이요, 가장 소중한 존재다. 나는 내 것이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터질 듯이 기쁘다. 내 주위는 점점 제한되어 가나, 그러나 내 마음은 무한정으로 확대되어 가는 것 같다. 나는 이런 새 세계에서 내 뱃속에 커가는 아이의 태동을 빙그레 웃으며 느끼는 것이다.”
저자
임옥인(林玉仁)
생애(1915~1995)
함북 길주 출생.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나라여자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모교인 영생여고보와 누끼여고(樓氏女高)에서 근무하였다. 광복 후 함남 혜산진 대오천에 가정여학교를 설립, 운영하면서 야학을 통해 농촌부녀계몽운동에 참여하다가 월남하여 창덕여고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이후 <부인신보>, <부인경향> 편집과 미국공보원의 번역관 등을 지냈으며 이화여대, 덕성여대, 건국대 강사를 거쳐 건국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여자대학장, 가정대학장을 역임하였다. 크리스찬문학가협회 초대회장, 한국여류문학가협회 회장도 역임하였다.
주요작품 및 작품세계
<문장>에 <봉선화>(1939), <고영(孤影)>·<후처기>(1940) 등으로 추천받아 1940년부터 창작생활을 시작했다. <후처기>는 뒤이어 발표한 <전처기>(1941)와 함께 낡은 사회환경과 여주인공의 심리를 치밀하게 그려내어 주목을 끌었다. 이후 단편 <젊은 아내들>(1950), <구혼>(1954), <수첩>(1955), <음화상>(1966) 등과 장편 <기다리는 사람들>(1954~1956), <일상의 모험>(1968~1969) 등을 발표하였다. 특히 <월남전후>(1956)는 고향인 길주에서 맞은 광복에서부터 시작하여 끝내 남하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필연을 추구한 작품으로 제4회 자유문학상을 받았다. 임옥인은 여성의 생활에 얽힌 삶의 애환과 고뇌를 인종과 사랑으로 극복하려는 소설세계를 정립하고 있다. 이러한 문학경향은 주로 인텔리 여성에 대한 생활을 그 소재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작품에서 인텔리 여성은 세계나 인생을 통찰할 수 있는 지성과 세련된 생활감정을 겸비한 인물이다. 또한 임옥인의 작품에는 기독교적인 윤리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이는 인물들에게 인고의 정신으로 나타나거니와, 이것이 보다 확장되어 이웃의 아픔, 시대의 아픔을 초극하려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리뷰
(……) 그런가 하면 임옥인의 <후처기>는 여성들의 고정관념인 여성다움의 신화를 깨는 인물을 제시하고 있다. 임옥인의 소설세계의 특징은 여성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봉선화>, <고영>, <전처기>, <산(産)> 등 이 시기의 작품 모두가 여성의 심리, 여성의 조건, 여성의 삶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삶을 다루되 여성을 억압하는 인습을 비판하면서 인내 등 여성다움의 미덕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보기도 하였는데, 이 중에도 <후처기>는 <문장> 3회 추천작으로서 강한 성격의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하고 있는 가작이다. 주인공 나는 단지 그가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이규철의 세 번째 부인으로 시집을 간다. 여학교 교원이요, 전문학교 출신인 나는 중매쟁이를 통해 우선 혼인의 조건으로 피아노 한 대를 요구한다. 의사였던 연인으로부터 배신을 당해 복수하는 심경으로 시집을 오게 된 것인 만큼 그에게서 감상 같은 것은 일체 찾아볼 수 없다. 이는 남편 이규철도 마찬가지여서 기생출신인 옥숙이와 결혼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해 본처를 내쫓았으나 옥숙이 아이 둘을 낳고 죽는 바람에 다시 혼인은 했으나 이 새 후처에 대해서는 애정을 느끼지 못한다. 후처인 나는 전처의 흔적을 정리하는 일과 새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 과제를 자신의 의지에 따라 남의 눈치를 볼 것 없이 과단성 있게 처리해나간다. 전처의 모친을 내보내고 게으르고 처먹기만 하는 식모도 내보내고 손수 물긷고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바느질하며 신여성이면 집안일을 못해도 좋다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엎는다. 그럴수록 남편으로부터는 핀잔이요, 주위로부터는 옥숙의 후하고 너그러운 성품과 비교하며 인색하고 품위없다는 평만 듣게 되지만 나는 아랑곳없이 소신대로 살아간다. 시부모에게도 자기의 의견을 내세웠고 아이들 교육에도 엄격하여 드디어 두 아이의 우수한 성적표를 받아든 남편으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만든다. 내 주위는 점점 제한되어가나 그러나 내 마음은 무한정으로 확대되어가는 것 같다. 나는 이런 내 세계에서 내 뱃속에 커가는 아이의 태동을 빙그레 웃으며 느끼는 것이다. 주인공의 행위는 파렴치할 정도로 전통적인 여성다움의 고정관념을 깨뜨려 보여주고 있다. 체면 때문에 실속없이 겉치레만 번지레하기 쉬운 우리의 삶을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의 역할을 중심으로 살피고 있다. 요컨대 새로운 여성상의 제시요, 전통적인 여성다움의 허위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 - ‘여성주의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준 중요한 업적들’, 서정자, <한국여성소설선 1>, 갑인출판사, 1991
작가의 말
(……) 한때 나는 문학 이상으로 인생에 더 충실해야만 할 시기를 가진 일이 있다. 소위 여성이 형유(亨有)할 수 있는 행복한 길을 현실 속에 찾아보려고, 노력하고 살았었다. 그러나 그렇게 형유하는 이른바 행복이라는 것이, 나의 본질적인 욕구에서는 너무나 멀다는 것을 깨달았다. 커다란 그 공허라는 것은 문학활동을 조지당(阻止當)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일제말엽의 우리 문학인의 비애를 생각하면, 나는 오늘을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를 모른다. 우리 선조가 유례없이 발달된 감각으로써 창조해낸 이 아기자기한 우리말로 자유로 집필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일절의 인고는 가능하리라고 믿는다. (……) 문단에 나오면서부터 표명한 바와 같이 나는 역시 나다운 여성의 세계를 그려본다는 것이었다. 아무의 것일 수도 없는, 내 몸에 맞는 내 옷을 장만하기에 힘썼다고 할 것이다. (……) 내 작품세계에 있어서는 늘 인간의 무구한 성실만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 밖의 일체는 진애(塵埃)에 불과하다. 인간에게 힘과 생기를 주는 역동력을 나는 거기서 발굴하려고 했다. 혹은 이것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다. (……) - ‘후기(後記)’, 임옥인, <후처기>, 여원사, 1957
관련도서
‘자기인식의 문학: 임옥인론’, 권혁경, <청구문학>, 1960년 12월호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출판부, 2004 <국어국문학자료사전>, 국어국문학편찬위원회 편, 한국사전연구사, 1995 <한국근대문인대사전>, 권영민 편, 아세아문화사, 1990
연계정보
-임옥인(林玉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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