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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삼이사

작품명
장삼이사
저자
최명익(崔明翊)
구분
1940년대
개요
1941년 4월 <문장> 종간호에 발표된 최명익의 단편소설. 흔히 우리문학의 최악의 암흑기로 불리는 시기에 발표된 소설로서 그 문학사적 의의가 있다. 이 소설은 뚜렷한 사건이나 이야기 없이 열차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1인칭의 시점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특히 기차 승객들의 방관자적 속성에 대한 심리묘사와 인물묘사가 탁월하다. 이 작품의 장점인 섬세한 심리묘사와 관찰의 탁월함은 1인칭 시점의 효과적 기능과 연결된다. 또한 승객들의 방관적 태도에 대한 묘사는 ‘나’의 심리상태인 연민의 태도와 대립되는 냉정성을 획득하는데, 이 두 가지가 소설의 핵심을 구성하는 서사의 두 축이 된다. 자기 나라와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없었던 암담한 역사적·사회적 환경이 암암리에 소설의 분위기에 반사되고 있다.
내용
‘나’는 기찻간 한끝에 자리잡고 있다. 그때 한 농촌 젊은이가 실수로 뱉은 가래침이 나의 맞은편 중년신사의 구두 콧등에 떨어진다. 젊은이가 내미는 신문지를 거절한 신사는 좋은 종이로 구두 콧등을 필요이상 닦아내고, 사람들은 입을 비죽이며 외면한다. 주위 사람 중 가장 잘 차려입고 가장 뚱뚱한 배를 가진 그 신사는 고량주를 꺼내 마시다가 화장실에 간다. 나는 그의 옆자리에서 담배만 피고 있던 여인과 그의 관계를 추측해본다. 신사가 돌아와 고량주로 술판이 벌어지고 그는 ‘돈벌이야 여자장사만한 것이 없지만 앓아눕기 일쑤요, 죽게되면 장사비가 든다’고 불평하다가 여자를 찾느라 고생했다며 여자를 때리려 한다. 사람들이 하나둘 내리고 나는 그녀와 마주앉는다. S역에 닿자 한 젊은이가 달려와 옥주도 도망쳤으나 잡았다고 말하고 신사는 여자를 남겨놓고 하차한다. 젊은이는 여자의 빰을 후려치고 여자는 눈물이 어리며 화장실로 간다. 나는 변기 속에 머리를 처박고 피를 흘리는 여자의 모습을 상상하며 불안하다. 그때 그녀가 돌아와 앉는다. 무사히 돌아왔을 뿐 아니라 화장도 고친 듯하다. 당장 직업의식적인 추파라도 던질 것 같은 모습으로 그녀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젊은이와 이야기한다. 나는 웬 까닭인지 껄껄 웃어보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제한다.
저자
최명익(崔明翊)
생애(1903~?)
필명은 유방(柳坊). 평북 평양 출생. 평양고보를 졸업했다. 1928년 평양고보 재학 중에 홍종인(洪鍾仁), 김재광(金在光) 등과 함께 문학동인지 <백치(白稚)>에 참여하였으며, 1937년에는 유항림(兪恒林), 김이석(金利錫) 등과 함께 동인지 <단층>을 주관하였다.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한 것은 1936년 <조광>에 단편소설 <비오는 날>을 발표하고부터로, 광복 전에 중편·단편소설 10편 정도를 발표했다. 광복 후에는 평양의 문예단체인 평양예술문화협회 회장과,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상임위원 등을 역임하는 등 사회주의문학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평양에 거주하다가 6·25를 맞았다.
주요작품 및 작품세계
동인지 <백치>에 <희련시대>·<처의 화장>(1928) 등을 발표했다. 이 시기에 발표된 작품들은 자신의 신변사를 중심으로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치밀하게 서술해나간 것이다. <비오는 길>(1936), <무성격자>(1937) 등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역설>(1938), <폐어인>·<심문>(1939), <장삼이사>(1941) 등을 발표하였다. 최명익은 1930년대 지식인 소설의 대표적 작가로 심리소설의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당시 지식계급의 불안의식을 성실하게 표현하였는데, 이는 당시 강화되어가는 일제의 파시즘화 경향으로 인해 “자유롭게 그릴 수 없는 외적 세계를 단념하고 내부세계로 편향해 들어가” 자의식의 세계를 천착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일제의 탄압에 굴복하여 잇달아 발표된 전향선언이 지식인들의 내면 성찰을 요구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품은 이러한 전향의 과정에서 발생된 본래적 자아와 일상적 자아의 괴리를 구체적인 생활을 통해서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처럼 그는 주로 지식층의 불안과 허무를 다루는 반면, 심리적 강박관념을 치밀하게 관찰하고 남녀관계의 갈등이나 사회적 신념의 파탄을 의식의 흐름으로 묘사하는 것이 특징으로 꼽힌다. 지식인의 완강한 자의식, 외부세계로부터의 고립을 고수하는 심리상태는 소설에서 주로 밀폐된 창, 혹은 승차와 산책의 모티프로 나타난다. 그러면서도 개인이 삶과 상호작용하면서 질적 변화의 단초를 보이는 상태에서 작품을 끝맺는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광복 후에는 <기계>(1948), <서산대사>(1958) 등을 발표했으며, 1965년 <조선문학>에 ‘새로운 역사소설을 쓰겠다’라는 결의를 보인 후 소식을 알 수 없다.
리뷰
최명익의 소설들은 다음과 같이 두 갈래로 나누어질 수 있다. 공장에서 소사·급사·서사의 일을 한 몸에 다 감당하고 있는 병일을 내세운 <비 오는 길>(<조광>, 1936. 5~6), 아버지로부터 파문당하다시피 한 채 폐병을 앓는 한 여인과의 사련(邪戀)을 이끌고 나가는 교사 정일의 입장과 자의식을 깊게 파헤친 <무성격자>(<조광>, 1937. 9), 교장 후보에까지 오른 영어 교사로 세사(世事)를 자꾸 피해만 살려 하는 문일을 주인공으로 한 <역설>(<여성>, 1938. 2~3), ‘시대 인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교직에서 쫓겨나 폐병과 절망감, 그리고 방황 심리의 포로가 되어버린 현일의 경우를 다룬 <폐어인(肺魚人)>(<조선일보>, 1939, 2. 5~25), 상처한 화가로 옛 애인을 찾아 할빈에 갔다가 그 여인의 비극적인 삶의 행로와 종말을 지켜 보게 된 문일을 내세운 <심문>(<문장>, 1939. 6)은 충분히 한 갈래로 묶여질 수 있다. 이들 다섯 작품의 주인공들이 모두 우선 지식인으로서의 외적 조건을 지니고 있는 이상, 최명익의 소설들 중에서 절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이 갈래는 ‘지식인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불려도 무방할 것이다. 또 이들 다섯 작품들은 최명익이 특히 작중 인물의 내면 철학과 심리 묘사에 있어서 동시대의 여타의 작가들 사이에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큰 의욕과 능력을 보이고 있음을 잘 실증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들은 ‘심리 소설’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게 된다. <역설>과 <폐어인>의 사이에 발표된 <봄과 신작로>(<조광>, 1939. 1)는 일제가 자기 야욕을 채우기 위해 강요한 ‘억지 근대화’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남긴 피해상을 상징적인 수법으로써 들려주었다는 점에서 논자들의 주목을 받아오기는 했다. 그러나 최명익이 가장 큰 관심을 가졌던 것은 지식인이었고 또 집중적으로 강조하고 싶어했던 것은 1930년대 지식인들의 자포자기 심정, 무기력 증세, 소외감, 절망감 들이었고 보면 <봄과 신작로>는 오히려 예외적인 것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멀리 달아났다가 붙잡힌 색시와 그녀를 붙잡아 데리고 가는 색시 장사꾼, 그리고 그들 옆자리에서 속사정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한 마디씩 참견했다 어울렸다 하고는 하나둘씩 제 갈 길로 가 버린 동승객들을 대상으로 해서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스냅 사진을 찍은 <장삼이사>(<문장>, 1941. 4). 이 소설도 최명익의 주제 의식과 서술 능력을 유감 없이 잘 대변해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봄과 신작로>와 마찬가지로 예외적인 경우로 밀려나기 쉽다. 하층민의 뿌리 뽑힌 삶을 대상으로 하여 리얼리즘의 시각과 방법을 살린 소설들을 우선적으로 꼽아 놓고 보는 논객들이라면 최명익의 소설들 중에서 <장삼이사>에게 가장 큰 점수를 줄 것이다. 물론 이 작품에서도 최명익은 예의 뛰어난 심리 분석 능력을 억제하지는 않았다. 최명익은 피사체로서의 ‘장삼이사’에게 충실하기보다는 그들 ‘장삼이사’의 삶의 모습을 살피고 헤아리는 사진사(작중의 ‘나’)에게 더 충실한 결과를 낳았다. 만일 <장삼이사>에서 관찰자인 ‘내’가 처음부터 아예 설정되지 않았더라면 최명익은 제목에 더 잘 부합되는 방향으로 구체성과 총체성을 갖춘 리얼리즘 소설을 남겼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신사’ ‘당꼬 바지’ ‘가죽 자켓’ ‘곰방대 노인’ ‘여인’ ‘촌 마누라’ ‘젊은이’ 등으로 불릴 뿐 구체적 이름을 얻지 못하고 있는 작중 인물들은 ‘나’로부터 동정심보다는 반감을, 일체감보다는 거리감을 사고 있다. 이렇듯 이 작품에서 은연중에 내비친 지식인과 대중적 삶 사이의 거리감은 이미 <비 오는 길>, <무성격자>, <폐어인>에서 분명하게 실연된 바 있다. (······) 지식인과 속악(俗惡)한 인간들을 대비시키거나 아니면 양자사이의 뚜렷한 거리를 확인시키거나 한 최명익의 근본 의도는 어디에 있는가. 최명익은 대중적이거나 세속적인 삶을 아래로 내려다보려는 의도를 지닌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초속주의적(超俗主義的) 세계관을 내세우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1930년대의 우리 지식인들이 만날 수밖에 없었고 겪을 수밖에 없었던 무기력과 절망감, 자조적 감정과 소외 의식을 보다 인상 깊게 음각하려 한 것으로 파악된다. 최명익은 동시대의 현실과 역사에 대해 도저히 외면할 수도 눈감을 수도 없는 지식인들이 무기력과 절망감의 수렁에 참으로 깊게 빠져들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위와 같은 대조법을 선택한 듯하다. (······) - ‘패배의 삶, 그 다양성’, 조남현, <북으로 간 작가선집>, 을유문화사, 1988
작가의 말
(······) 나는 언제부터, 어떻게 해서 문학을 하게 되었는지 모호하다. 맹랑한 수작 같으나 사실이다. 이걸 할까? 저걸 할까? 이것저것 직업을 선택해보다가 문학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어려서 하도 몸이 약했기 때문에 사람구실을 할 것 같지 않다고 해서 어머니 아버지는 학교에 가라고 재촉하지도 않았다. 내버려두는 대로 나는 집에서 이야기책만을 읽었다. (······) 내가 열일곱 살 때 3·1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평양 고등보통학교 4학년이었던 나는 몇몇 동무들과 함께 등사판으로 선전 삐라를 만들어 평양 시내에 돌리다가 발각되어 출학을 당했다. 학교를 그만두게 된 나는 옥편과 씨름해가며 삼국지와 맹자 같은 책을 뜯어 읽어서 한문공부를 조금했다. 문학을 하는 데는 한문을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2년 후에 다시 학업을 계속할 양으로 일본 도쿄로 갔으나 그때도 역시 몸이 약했으므로 수속을 밟아 대학에 들어갈 생의는 못 했다. 문학공부는 자습으로 장기전을 할 셈 치고 속성과로 외국어를 한 가지만이라도 배우리라는 생각에 동경 정측영어학교에 다니는 한편 문학서적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실로 닥치는 대로 읽는 탐독이었다. (······) 습작도 했다. 같은 또래의 4, 5명이 소설을 써가지고 일요일마다 모여서 읽고 평했다. (······) 지금도 그렇거니와 날렵한 재주가 없는 나는 붓이 무척 굼떴다. 불과 백 오륙십 매 정도의 그 첫 작품을 근 일 년 동안이나 주물렀다. 두고두고 추고를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 그리고 표현이 문제였다. 재간이 없는 나는 단어 하나를 고르는 데도 무진 애를 써야 했다. 나는 어쩐지 내가 써가는 단어의 하나하나가 그 정확성, 부정확성을 따라 육체적으로 다른 감각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 이런 말을 집어넣어보고, 저런 말로 바꾸어 쓰며 애쓰다가 정확한 어휘가 붙잡힐 때에는 가슴에 무엇이 듬뿍 안기는 것 같은 감각을 느낀다. 그것이 절실감, 핍진감이라고 생각한 나는 그런 말을 골라내고야 만족하는 습성이 생겼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고른 말들로써 묘사한 장면, 또는 서술한 내용이 독자들에게도 작자인 내가 느끼는 것과 같은 절실감과 핍진감을 줄 것인가?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나의 노력은 헛것이다. 내가 느끼는 절실감, 핍진감은 곧 독자들의 그것이어야 할 것이다. (······) 독자들이 읽기 쉽고, 또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는 소설가는 자기 작품의 도상(圖像)을 선명히 그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확한 어휘선택과 선택한 어휘를 빛나게 구사하는 데 많은 힘을 들여야 할 것이다. (······) 작가는 자기 모국어에 대하여 엄숙한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러시아어에 대한 푸쉬킨과, 독일어에 대한 괴테와, 영어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공헌을 우리는 안다. 우리 작가들도 우리 조선말을 더욱 정리하고 풍부히 하고 더욱 아름답게 세련하도록 힘써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 - ‘소설 창작에서의 나의 고심’, 최명익, <나의 인간수업, 문학수업>, 인동, 1989
관련도서
‘<장삼이사>의 자의식 연구’, 이강현, <한국언어문학>, 2000년 5월호 ‘최명익론: 이데올로기 비판적 의식을 중심으로’, 이수형, <문학사와비평>, 1997년 3월호 ‘최명익론: 승차 모티프를 중심으로’, 장수익, <외국문학>, 1995년 가을호 ‘최명익 소설에 나타난 근대성의 경험양상’, 진정석, <민족문학사연구> 1995년 12월호 ‘최명익론, 세계의 폭력과 지식인의 소외: 월북문인 연구’, 이동하, <문학사상>, 1988년 11월호 ‘말기 지식인의 자의식을 묘파: 최명익의 작품세계’, 김양수, <월간문학>, 1988년 6월호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출판부, 2004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국어국문학자료사전>, 국어국문학편찬위원회 편, 한국사전연구사, 1995 <한국문학명작사전>, 임헌영·김재용, 한길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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