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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

작품명
상록수
저자
심훈(沈熏)
구분
1930년대
개요
1935년에 발표된 심훈의 장편소설.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현상소설 당선작이기도 하다. 1930년대 식민지 수탈로 인해 극도로 피폐해진 농촌문제의 타개를 위해 대두된 농촌계몽운동(브나로드 운동)에서 취재되고 또 이 운동을 고무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장리벼와 고율의 소작료, 소작권의 임의이동 등 농민을 수탈하는 고리대금업자와 친일지주의 모습을 치밀하게 그려내는 동시에, 남녀 주인공의 헌신적인 활동을 통하여 농민들의 삶을 질적으로 향상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문화적 계몽과 경제적 실천을 제시하는 사실적 작풍을 견지함으로써 발표 당시부터 독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피폐한 농촌의 참상을 농촌진흥·자력갱생의 허울로 호도하고 있었던 진흥회를 비판하고, 농촌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 나아갈 길을 동혁과 영신의 실천을 통해 반성적으로 보여준다. 지식인의 귀농을 주제로 한 공허한 메아리가 아니라 민족의 자활과 자강 문제를 바탕으로 미래지향적 낭만성을 살려낸 1930년대 대표적인 농촌소설로 꼽힌다.
내용
고등농업학교 학생인 ‘박동혁’과 여자신학교학생 ‘채영신’은 모 신문사가 주최한 학생 농촌계몽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우수대원으로 뽑혀 보고회에서 감상담을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서로 알게 된다. 두 사람은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을 지키러’ 내려가기로 약속한다. 동혁은 고향인 한곡리로, 영신은 기독교청년회연합회의 특파로 경기도 청석골로 내려가 농촌사업의 기초작업을 시작한다. 두 사람은 각자의 형편과 사업의 진행과정을 편지로 알리며 서로 의논한다. 두 사람의 동지의식은 사랑으로 발전하지만, 3년쯤 지나 후진에게 일을 맡길 수 있을 때에 혼인하기로 약속한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은 역경에 휘말리게 된다. 영신은 과로와 영양실조로 점차 몸이 쇠약해지다가 학원 낙성식장에서 하객으로 초대된 동혁이 보는 앞에서 맹장염을 일으켜 쓰러지고 만다. 동혁은 악덕지주 강기천의 농간에 휘말려 투옥된다.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한 영신은 서울 연합회의 주선으로 요코하마로 정양 겸 유학을 떠나나 곧 돌아와 다시 일에 몰두하고, 결국 건강이 악화되어 숨을 거둔다. 출감한 동혁은 영신의 죽음을 알고서 비탄에 잠기지만, 곧 두 사람 몫의 활동을 해낼 것을 굳게 맹세한다.
저자
심훈(沈熏)
생애(1901~1936)
본명은 대섭(大燮), 아명은 삼준·삼보, 호는 해풍(海風). 백랑(白浪)이라는 별호도 사용했다. 서울 노량진 출생. 1915년 서울교동보통학교를 나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1919년 3·1운동 때 투옥되었다가 집행유예로 석방된 뒤 이 사건으로 인해 퇴학당했으며, 1920년부터 3년간 중국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망명기간 중 베이징·상하이·난징에서 활동하다 항저우의 즈장대학(之江大學)에서 3년간 수학한 후 귀국,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을 내세운 ‘염군사(焰群社)’의 연극부에 가담해 신극 연구단체인 ‘극문회(劇文會)’를 조직했다. 1924년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였고, 1925년 영화 <장한몽>에서 이수일 역을 대역하면서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1926년 <동아일보>에 한국 최초의 영화소설인 <탈춤>을 연재했으며, ‘철필구락부사건(鐵筆俱樂部事件)’으로 동아일보사에서 해직당했다.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정식으로 영화를 공부하고 6개월 후에 돌아와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원작·각색·감독해 단성사에서 개봉했다. 1928년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해 <우리 민중은 어떠한 영화를 요구하는가> 등의 평론으로 프로 작가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1931년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생활을 하다가 이듬해 충청남도 당진으로 내려가 창작생활에 힘을 쏟았다. 1933년 8월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으로 잠시 근무했고, 1935년 장편 <상록수>가 동아일보 발간 15주년 기념 현상모집에 당선되자 이때 받은 상금으로 상록학원을 설립했으며, 1936년 <상록수>의 출판을 준비하던 중 사망하였다.
주요작품 및 작품세계
1930년 조국해방에의 염원을 노래한 시 <그날이 오면>과 장편소설 <동방의 애인>을 발표했다. <동방의 애인>은 주인공이 모스크바의 공산당대회에 참가하는 장면이 일제의 검열에 걸려 삭제되었다. 이어 <조선일보>에 연재한 소설 <불사조>(1931) 역시 게재정지처분을 받아 미완이 되었다. 이 시기 소설은 남녀간의 애정관계를 통해 민족적인 저항의지를 표출한 낭만적인 경향의 작품으로 일제의 검열로 인해 완결되지 못하였다. 1932년 당진에 내려가 창작에 전념하면서 시집 <그날이 오면>을 출간하려 하였으나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 뒤 지식인이 고향에 돌아가 농사짓는 과정을 그린 장편 <영원의 미소>(1933~1934)와 봉건적인 가족제도와 조혼제도가 여성에게 주는 억압을 자세하게 묘사한 장편 <직녀성>(1934~1935), <상록수>(1935~1936)를 연재했다. 그밖에 단편 <기남(奇男)의 모험>(1928), <오월비상>(1929), <황공(黃公)의 최후>(1936) 등을 발표했다. (……) 심훈의 대표작 <상록수>는 그의 문학의 귀결점이자 총결산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돌연히 씌어진 것이 아니요, 그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영원의 미소>에서 발전해나온 것이고, 또한 <영원의 미소>는 그 전신인 <탈춤>에서 발전해나온 것이다. 다시 말해 심훈의 대표작인 <상록수>는 <탈춤>에서 시작하여 <영원의 미소>를 거쳐 도달된 것이다. (……) <탈춤>(1926)은 인물 설정이나 사건 구성에서 프로문학의 색채를 보여주면서, 돈과 권세와 지위 등에 대한 극심한 혐오감을 드러낸 작품이다. 동시에 작가 자신의 방황과 번민, 그리고 삶에 대한 회의와 허무감을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경향은 결국 부패한 도시사회에 대한 강렬한 비판의식으로 이어지게 된다. <영원의 미소>(1933) 역시 프로문학적 경향과 함께 도시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날카롭게 드러낸 작품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탈춤>에서 볼 수 있었던 인생의 허무감이 극복되어 있다. 그 이유는 농민운동이라는 새로운 삶의 방향을 가리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남녀 주인공은 농촌에 뛰어들어 일하는 노동인간으로 새롭게 탄생한다. 그러나 이 같은 삶의 방향은 아직 추상적인 것이어서 당시 농촌현실에 대한 구체적 인식은 드러나 있지 않다. <상록수>(1935)는 <탈춤>에 나타나는 삶에 대한 회의를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영원의 미소>에서 볼 수 있는 농촌현실에 대한 추상적 인식에서도 벗어나, 구체적인 농촌현실 속에서 농민운동을 전개해나가는 남녀 주인공을 그려낸 작품이다. 이 소설에 이르러 작가는 농촌 궁핍화현상의 원인을 성찰하고 있으며, 따라서 앞의 두 작품에 비해 농민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을 보여주게 된다. 그리고 이 같은 작가의식은 이 소설의 곳곳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항일민족의식과 결부되어 식민지 농촌사회의 현실을 더욱 포괄적인 맥락에서 파악해내는 성과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 <상록수>가 씌어진 1930년대는 한국근대문학사상 농민문학운동이 가장 활발히 전개되었던 시기이다. (……) 당시 사회주의측에서는 노농동맹론에 따라 농민들을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을 위한 노동자계급의 동맹세력으로 보고, 농민들이 지니고 있는 혁명성을 고취시키고자 혁명적 농민조합운동을 맹렬하게 전개시켰다. 그러나 사회주의측의 농민운동은 당시 조선의 현실보다는 코민테른의 급진노선에 의거했다는 문제점을 지니게 되는데, 이 같은 비합법적 농민운동을 반영한 것이 바로 카프의 <농민소설집>에 수록된 작품들이며, 이기영의 <고향>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 식민지 시대의 농민문학운동과 관련시켜 볼 때, 당시 민족주의측의 농촌계몽운동은 대체로 세 갈래로 나누어진다. 그 하나는 수양동우회의 이념에 따른 농민교육운동이다. 이것은 인텔리겐치아 중심의 지도단체를 농민교육운동의 중심에 놓은 것으로, 이광수의 <흙>이 이와 관련된다. (……) 다른 하나는 천도교 계통의 농민단체인 조선농민사의 농촌계몽운동이다. 이것은 중농주의 세계관에 기반을 둔 것으로, 조선농민사의 일련의 단편소설들이 여기 해당된다. (……) 나머지 하나는 동아일보,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일어난 브나로드운동 내지 문맹퇴치운동이다. 동아일보의 브나로드운동에 호응하여 현상모집에 당선된 심훈의 <상록수>가 일단 이에 대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상록수>를 단순히 민족주의측의 농촌계몽운동을 그대로 수용한 작품으로 취급해버릴 수는 없다. <상록수>는 앞에서 이광수의 <흙>이나 조선농민사의 단편소설들이 지닌 시혜적 성격을 탈피하고 당시의 농민문제의 본질에 육박하는 다분히 현실주의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브나로드운동이나 기독교 계통의 농촌계몽운동과 관련성을 가지면서도, 그로부터 상당히 벗어나 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실제로 <상록수>에는 그와 같은 민족주의측의 농촌계몽운동에 대한 맹렬한 비판이 나타나 있는 것이다. (……) 그렇다면 <상록수>가 이처럼 당시 민족주의측의 농촌계몽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고 독자적인 의의를 획득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당시 민족주의측이 주도한 농촌계몽운동이 일제하에서의 합법적인 공간에서의 활동이었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참여자들에 의해 어느 정도의 성격변화가 초래되기도 했으리라는 점이다. 또한 지역에 따라 민족주의측의 농촌계몽운동이 농민들의 주체적 참여에 의한 자생력 신장의 계기로 작용한 측면이 있는데, 이런 사정이 <상록수>라는 소설에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작가인 심훈이 사회주의에 일정한 관심을 지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투철한 항일민족의식의 소유자라는 사실이다. 이 점이 바로 <상록수>가 많은 부분에서 이상주의적, 낭만주의적 성격을 띠면서도 당시 농촌의 구조적 모순을 발견하고, ‘일본 제국주의>식민성 지주>농민’이라는 착취의 메커니즘을 암시함으로써 식민지 농촌사회에 대한 현실주의적 접근을 할 수 있었던 소이이다. 셋째, <상록수>는 민족주의측의 다른 농민소설들과 달리 보고문학(현장문학)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 자신이 낙향하여 이 소설을 썼다는 점, 그리고 소설의 남녀 주인공이 모두 모델(심재영과 최용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이와 관련된다. 이 보고문학적 성격이야말로 <상록수>가 다른 민족주의측의 농민소설에 나타나는 시혜적이고 관념적인 한계를 탈피할 수 있었던 결정적 원인일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면, 동아일보의 브나로드운동이나 기독교 계통의 농촌운동과 <상록수>의 관계는 단지 외면적인 것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즉 <상록수>는 민족주의측의 농촌계몽운동이나 사회주의측의 농민운동,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독자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상록수>의 농민문학에서의 위치를 말해주는 것이며, 또한 그 문학사적 의의를 설명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 ‘좌우익 한계 넘은 독자적 농민문학’, 류양선, <한국소설문학대계 21 : 상록수 외>, 동아출판사, 1995
관련도서
<그날이 오면>, 심훈, 차림, 2000 ‘나로드니키의 로망스-심훈의 상록수론’, 유문선, <장편소설로 보는 새로운 민족문학사>, 열음사, 1993 ‘심훈연구서설’, 최원식, <한국근대문학사의 쟁점>, 창작과비평사, 1990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출판부, 2004 <국어국문학자료사전>, 국어국문학편찬위원회 편, 한국사전연구사, 1995 <한국문학명작사전>, 임헌영·김재용, 한길사, 1994
연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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