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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작품명
대하
저자
김남천(金南天)
구분
1930년대
개요
1939년 인문사에서 전작 장편소설 기획의 일환으로 발간한 김남천의 장편소설. 1부만 발간되었고, 제2부 <동맥>은 그 일부가 <개화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으나 결국 미완으로 남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봉건적인 사회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하는 개화기를 배경으로 성천 두무골이라는 조그만 마을에 살고 있는 밀양 박씨 ‘박성권’의 가족들의 상호관계와 그 시대적 변이과정을 그리고 있다. 가족사 연대기 소설로 꼽히는 이 작품은 김남천의 첫 장편소설로, 1930년대 후반 문학의 침체에 대응해 이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으로 거론되었던 장편소설론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창작적 성과라 할 수 있다. 한 가족과 그들의 풍속 속에서 봉건과 근대의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과 대립을 그려내고, ‘형걸’이라는 인물의 발전과정을 한국 근대사의 발전과정과 결합시키고자 한 이 작품은 가족의 변화를 통해 사회질서의 변천과정을 총체적으로 드러내 줌으로써 개인과 사회의 역사적·사회적 변동의 실상을 면밀하게 포착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세밀한 풍속의 묘사가 풍속 그 자체의 재현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였고, 근대 초기 개화기라는 배경이 당대의 전사라기보다는 시대적으로 한정된 개화기에 머물고 있으며, 당대 현실의 총체성 확보에 필수적인 농민계층의 분화를 보여주지 못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된다.
내용
‘박성권’은 스무 살의 나이에 아버지의 죽음과 집안의 파산에 직면하게 되지만, 청일전쟁이 일어나자 군대를 상대로 장사도 하고 군수물자를 운반해주기도 하면서 재산을 모으고 그 돈을 높은 이자로 늘려나감으로써 쇠퇴한 박씨가문을 다시 일으킨다. 박성권은 본처인 최씨와의 사이에 형준, 형선, 형식 삼형제와 보패라는 막내딸을 두었고, 빚 대신 첩으로 얻은 쇠퇴한 파평윤씨의 딸 탄실 사이에서 얻은 아들, 형걸이 있다. 22세의 나이로 이미 두 자녀를 둔 맏아들 형준은 장남으로서 집안일 전체를 감독하는 일을 배우고 있으며, 형걸은 형선의 한 달 아래 동갑으로 함께 동명학교에 다니고 있다. 형걸은 평소 마음에 두었던 보부가 형선의 아내가 되자 지향없는 울분에 머리채를 자르고, 자기집 막서리 두칠의 아내 쌍네와 가까워진다. 박참봉이 실권을 넘겨주지 않음으로써 무력감에 빠지고 신혼의 단꿈도 사라져 마음둘곳없이 포악함이 발동한 형준은 두칠이 없는 사이 쌍네를 범하려다 쌍네의 방에서 나오는 형걸을 목격한다. 형준은 아버지에게 이를 알리고 형걸의 혼사를 서두를 것을 종용한다. 형걸은 독실한 예수교 신자 문우성과 친한 사이가 되는데, 그는 형걸에게 적서차별이나 신분차별이 구시대의 유물임을 설명하며 미신타파, 조혼타파 등을 역설한다. 그러던 어느날, 형걸은 예수교 전도를 위해 들어간 기생집에서 기생 부용을 만나고, 둘은 서로 사랑하게 된다. 한편, 쌍네에 대한 마음을 버리지 못한 형준은 쌍네의 냉랭한 반응에 화가 나 두칠에게 형걸과 쌍네의 부정을 말해버리고, 두칠은 박참봉댁을 떠나 도로공사판 노동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두칠을 따라 떠날 것인지 고민하던 쌍네는 형걸을 찾아가지만, 부용에게 반한 형걸은 냉정하다. 결혼문제, 쌍네, 부용에 대한 사랑으로 고민하며 걷던 형걸은 부용의 집에서 들려오는 아버지 박참봉의 목소리를 듣는다. 술취한 박참봉의 희롱에 부용은 형걸과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박참봉은 성난 짐승처럼 뛰쳐나온다. 형걸은 부용을 만나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더 먼 곳에서의 새로운 삶을 찾아 그날 밤 이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저자
김남천(金南天)
생애(1911~1953)
본명은 효식(孝植). 평남 성천 출생. 1929년 평양고보를 졸업한 후 도쿄 호세이대학(法政大學)에 입학하였으나 1931년 제적되었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도쿄지부에 가입했으며 무산자사에서 활동하였다. 1931년을 전후한 카프 제2차 방향전환기에 임화 등과 귀국, 김기진이 주장한 프로문학의 대중화론을 비판하며 극좌적 태도를 취했다. 1931년 카프 제1차 검거 때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사건으로 기소되었으며, 1935년 카프 해산까지 조직에 충실하면서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추구했다. 광복 직후, 조선문학가동맹에서 활동하였고,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문학론에 관심을 기울였다. 1947년경 월북하여 최고인민회의대의원, 문학예술총동맹 서기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3년 숙청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1955년 사형되었다고도 하고, 1977년까지 생존하였다는 설도 있다.
주요작품 및 작품세계
1930년 평양고무 총파업에서 취재한 희곡 <파업조정안>(1931)을 발표한 이후 <공장신문>(1931), <공우회>(1932)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1931년 카프 제1차 검거에서 출옥한 후 감옥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물>(1933)을 발표, 문학적 실천에서의 계급적 주체의 문제로 임화와 논쟁을 벌였다. ‘<물> 논쟁’에서 자신을 소시민 지식인으로 규정한 김남천은 어떠한 방식으로 소시민 지식인이 노동계급의 세계관을 획득할 수 있는가를 사유의 중심에 놓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현실에 맞는 이론으로 구성하는 문제에 천착하였다. 소시민 작가의 자기고발에서 시작, 관찰문학론에 이르는 창작방법론의 변화는 이러한 모색의 과정이었다. 1937년 이후부터는 당대 상황에 대한 새로운 창작방법론으로 헤겔과 루카치의 이론을 수용한 로만개조론을 제시해, 묘사하는 대상의 총체성과 풍속이 드러나야 한다는 이론을 폈으며, 이러한 결과로 장편 <대하>(1939)를 발표했다. <대하>는 가족사·연대기를 자신이 제창한 모랄론·풍속론과 결합시켜 장편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 작품이며, <경영>(1940), <맥>(1941) 연작은 1930년대 후반 전망이 불투명한 지식인의 고민을 사상사적인 과제로 제기한 소설로 평가되고 있다. 비평으로는 <창작방법에 있어서의 전환의 문제>(1934), <고발의 정신과 작가>(1937), <도덕의 문학적 파악>(1938), <시대와 문학의 정신>(1939), <소설의 장래와 인간성 문제>(1941) 등을 들 수 있다.
리뷰
(······) 1930년대 후반 일제의 파시즘적 탄압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이에 따라 식민지 조선의 정세 또한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자, 문학진영에서는 이러한 난관을 장편소설의 창작에 기대어 돌파해내고자 하는 기대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는 소설의 창작방법에 관한 오랜 기간의 토론 끝에 나타난 결과로서, 현실의 구체적인 현실성을 확보하고,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진정한 미래에의 전망을 얻어낼 수 있는 문학적 방법의 하나로 장편소설의 양식이 선택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1930년대의 가파른 역사적 현실 속에서, 보이지 않는 미래에의 전망을 구하고자 하는 열망이 자연스럽게 문학적 외피를 입고 나타난 것이다. 근대의 전사인 개화기를 무대로 하였고, 근대 초입부의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풍속적 측면에서 드러내고자 한 장편소설 <대하>의 탄생은 바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 <대하>는 형걸이라는 한 젊은이를 중심으로, 개화기의 신흥 부호인 아버지 박성권과 그의 적자들, 그리고 비복간의 관계로 구성되는 가족의 역사를 통하여 개화기에서 근대의 초입부에 이르는 한국사회의 사적 규정성을 읽어내려 한 작품이다. 먼저 박성권의 치부과정에 대한 묘사, 중인의 자손이라는 점, 청일전쟁을 계기로 가산을 모았다는 점, 그 과정이 초기 상업자본의 모습과 일정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점을 이의 특징으로 들 수 있다. 그러나 박성권의 축재과정이 가지는 비정상적인 성격을 들어 한국에 있어서의 자본발전이 갖는 초기적 파행성을 운위하는 것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못한다. 예컨대 고리대금업을 통한 자본형성이라는 문제가 <대하> 이외의 여타 소설에서도 끊임없는 일종의 유형으로 등장하는 것만 보아도 이는 알 수 있다. (······) 작중에는 개화기의 풍속에 관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나열되어 있다. 신식 결혼식이라든지, 개화기의 새로운 풍물에 대한 소개 등과 같은 것들이 곧 이것일 터인데, 문제는 이러한 풍속묘사가 인물형상화의 차원에서 적절히 종합되지 못한 채, 단지 하나의 풍경에 지나지 못한 것으로 산만하게 제시되고 있을 따름이라는 데 있다. 현대의 전사(前史)를 그림으로써 현실의 발전방향을 제시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운 시대에의 전망을 획득하려 기획되었지만, 결국 자연주의적 묘사의 한계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형걸은 서자라는 신분이 갖는 전통 파괴자적인 이미지를 중심으로 형상화된 인물이다. 학도라는 점. 선생이 있을 것은 당연한 일일 터. 문우상이라는 선생이 그에게 가르쳐준 새로운 세계란 무엇이었던가? 기독교로 대표되는 근대문화가 곧 그것이다. 형걸은 남다른 열정으로 이를 수용하게 되고 결국은 새로운 가치의 실현을 위해 가출을 감행하게 된다. 장편 <대하>의 마지막 부분은 형걸의 가출을 감동어린 어조로 묘사하고 있거니와, 한 어린 소년의 무작정한 가출에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시대적 현실의 속성을 깊이있게 천착하지 못한 젊은이의 폭좁은 선택이기에 이 가출은 힘찬 것인 만큼 위험한 것일 수밖에 없다. 형걸의 가출을 재촉한 또 다른 요인으로 비복 쌍네와 기생 부용, 형수인 보부 사이에서의 심리적 갈등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고충 또한 여기에서 말미암은 것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당대 현실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축으로서, 일본 제국주의에 관한 언급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 또한 형걸의 형상화에 있어서 나타나는 중요한 한계일 터이다. 이렇게 본다면 장편 <대하>는 그것이 원래 목적한 가족사를 통한 새로운 문학형식의 건설과 이를 통한 문학과 현실의 새로운 관계정립에 관한 모색, 실천적인 측면에서의 시대넘기라는 당초의 목적과는 다소 동떨어진 결과를 낳고 만 셈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문학형식을 얻고자 한 작가 김남천의 열정과 고민의 빛이 바래는 것은 아니다. 형걸과 그의 부친 박성권, 그리고 이들 주위에 존재하는 비복류들의 삶을 통해 개화기에서부터 근대의 초입부에 이르기까지의 한국사회의 형성사를 살피려 한, 이른바 가족사 소설이라 불리는 그의 새로운 문학형식은 1930년대 후반기 한국소설계의 한 전형으로 확립되었으며, 이후 한국소설계의 끊임없는 귀감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 ‘리얼리즘 문학의 대하’, 차원현, <한국소설문학대계13 : 대하 외>, 동아출판사, 1995
작가의 말
장편소설이 완성되기까지의 순서를 열거하야, 제작의 과정을 공개하라는 것이 제목의 요지인데, 실상은 나는 아직 장편창작의 경험이 그리 많지는 못하다. 아니 많지 못할 뿐 아니라, 단 한 번의 경험밖에 없는 것이다. (……) 대체로 단편에서도 그러하지만 나는 먼저 주제를 생각하는 편에 속한다. 제재나 소재가 손에 들어와도, 그와 함께 주제가 뚜렷이 서지 않는 것이면, 나는 좀처럼 작품에 손을 대지 못한다. 어설피 손을 대였다가 주제가 서지 않으면 그 소재와 제재를 자유로 요리하고 제 마음대로 재구성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모델’ 소설이면 더욱 현저하다. 주제를 뚜렷하게 세우지 않고 작품을 구성한 것을 보면 ‘모델’에서 발을 뽑지 못하고 그것에 끌리워 단긴 흔적이 눈에 띠이는 법이다. (……) 주제와 불가분리의 시간적 연관 밑에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물론 구성인데, 이것은 작가의 구상력이라고 하는 사상이나 인식의 정도, 또는 현실 파악과 현실 요리의 능력 기타 일체에 의하야 제약되는 것으로 이것만 보면 그 작가가 어느 정도의 능력과 안식을 갖고 재료에 임하였으며, 동시에 그의 세계관, 문학적 입장 등이 어떤 것인지 대체로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물과 성격의 설정, 전형 창조에의 노력 등이 우선 앞서고, 그 다음은 푸롯트의 정리와 창조가 뒤선다. 인물의 설정에서 당연히 따르는 것은 환경의 창조다. 이런 것이 대충 세워지면, 방계 인물, 그리고 푸롯트에 들어가서 삽화(에피소-드)와 시튜에-슌(발단, 크라이막스, 대단원 등)과 서술의 순서 등을 생각케 되고 끝으론 장면을 만들고 서경 등을 고려하야 전체의 빈틈없는 구성에 착수하게 되는데, 이때에 장면이나 인물에 순응하야 표현 형식을 적당히 생각하게 된다. 편지의 형식으로 한다던가, 설화체로 한다던가, 보고의 형식으로 한다던가, 어쨌든 재주껏 표현과 기교에 힘을 써본다. 이것이 되면 나는 종이에 붓을 대여 작품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 이상과 같은 순서로 나는 장편을 제작하였고 또 금후에 제작하려고 하는데, <대하>의 실제에 즉하야 그 요점을 말해보고 이 고(稿)를 끊으려고 한다. <대하>의 제재와 작가의 태도는 내가 작년도에 발표한 <현대조선소설의 이념>과 <풍속과 세태> 등 일련의 장편소설 개조론에서 누차 말해온 “연대기를 가족사의 가운데 현현시킨다”는 일구(一句)로써 짐작할 수 있는 것으로 시대는 삼십 년 전부터 현대까지, 서도(西道)의 어느 고을 신흥 부호의 가족사(흥망기)로써 말해볼 수 있다. 어째서 이것을 쓰게 되였는가, 쓰면 어떠한 태도에 의하야 쓰겠는가 등은 톨스토이의 이른바 제재와 작자의 독립한 도덕적 관계를 결정하는 것인데, 그 취지의 기본적인 거점은 전기논문(前記論文)에서 대체로 천명되였다. 이러한 생각을 먹고 작년 5월 중순 시골로 가서, 특히 내가 <대하>를 위하야 준비하고 자료수집 등을 한 기간은 약 1개월로써, 6월 13일 집필을 개시하기까지 서적과 구전(口傳)을 따라다님으로써 날을 보내었다. (……) 이 외에 풍속, 세태, 생활감정, 당시의 교육상황, 상품, 종교 등 일체는 연로한 분들을 왕방(往訪)하야 수석(酒席) 혹은 좌담 등을 통해 얻어드른 말에 의하였다. 특히 당시 성행하던 삼십육계(三十六計)를 조사하려고 일주일 동안이나 당시의 건달패들을 쫓아다닌 것은 잊히지 않는다. 이상으로써 부득이, 나는 시대나 역사에 대한 정확한 파악을 얻을려고 노력하였다. 이리하야 얻은 시대정신의 파악을 기축(基軸)으로, 당해 시대의 역사적 특성으로부터 유출된 성격과 환경과 사건의 설정으로 길을 잡었다. 가족사의 초석으론 근본없는 신흥부호로 하되 그후 30년을 존명할 장년, 지주 겸 고리대금업자로 할 것이라 하야 당년 40세의 박성권(朴性權)이가 가장으로 선택되었다. 시대정신의 구현된 성격으로 전통의 파괴자, 가족계보의 이단자를 청소년에서 구하되, 서자 학도로 할 것. 이리하야 박성권의 삼남(三男), 서자, 19세의 박형걸(朴炯杰)이가 선발되었다. 전 가족의 연령, 출생지, 기타를 정하야 표를 꾸미는데 하로가 걸렸다. 장남, 차남, 4남, 큰며누리, 작은며누리 등을 각각 바라에티(Variety)를 두도록 만들되, 차남의 안해 정 보부에 기독교의 책임을 지우고 중요시할 것. 연애사건을 주요사건으로 하되, 그 상대자를 비복과 기류(妓流)에서 잡을 것. 이런 순서로 구성을 진행한 것인데 지면관계로, 여기서는 이것으로 끝막고 전 작품이 완성되면, 한번 다시 정리해볼 날도 있을가 한다. (<조광(朝光)>, 1939년 6월) - ‘작품의 창작과정: 나의 창작노트’, 김남천, <대하>, 슬기, 1987
관련도서
<김남천 전집>, 정호웅 외 공편, 박이정, 2000 <김남천 문학>, 이재인, 문학아카데미, 1996 <김남천>, 이상갑 편, 새미, 1995 <김남천>, 김재남, 건국대출판부, 1994 <김남천 문학론>, 김재남, 태학사, 1991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출판부, 2004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림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국어국문학자료사전>, 국어국문학편찬위원회 편, 한국사전연구사, 1995 <한국문학명작사전>, 임헌영·김재용, 한길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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