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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작품명
고향
저자
이기영(李箕永)
구분
1930년대
개요
1933년 11월부터 1934년 9월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이기영의 장편소설. 연재도중, 카프 제2차 검거에 연루된 이기영의 수감으로 인해 마지막 35·36회분은 김기진이 대신 집필했다. <고향>은 당대의 농촌 현실을 깊이 있게 묘파하여 프로 소설이 일군 최고 수준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작품의 기본구조는 지주, 지주를 대리하여 소작을 관리하는 마름과 소작농민들이 이루는 토지소유관계, 그리고 여기에 식민지적 경제질서가 중첩되어 농민들을 옥죄는 이중적 수탈구조이다. 이 가운데 주인공 ‘김희준’이 뛰어들어 농민을 계몽하고 수탈구조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인식으로 이끌고자 한다. 공부와 외부세계의 체험을 통해 세상 이치에 눈뜬 인물의 귀향과 실천적 삶은, 현실변혁의 지향성과 실천적 투쟁주의에 바탕을 둔 다른 작품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는 설정이지만, 이 작품은 현실반영의 폭과 깊이, 형상화의 예술성 획득 정도에서 훨씬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구체적인 농민생활의 세부적 묘사, 가난하지만 진취성을 잃지 않는 농민상의 제시, 노동자·농민이 같은 조건에 처한 계급임을 밝히는 노농동맹 사상, 민중적 전통문화에 대한 재인식 등 탁월한 형상화를 통해 앞 시기 프로문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중요한 진전을 이룩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통속적 사건전개와 결말부분의 개인적 해결방식이 결함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내용
원터마을은 백여 호가 모여 사는 가난한 소작농 마을로 사람들 대개가 민판서의 논을 소작하여 근근이 목숨을 이어가는 처지이다. 마름이 안승학으로 바뀐 후부터 행악은 더 심해졌다. 이 무렵 동경유학생 김희준이 고향으로 돌아온다. 금의환향을 기대했던 마을사람들은 그의 행색에 실망하지만, 그는 소작인이 되어 농사를 짓는 한편, 청년회와 야학활동 등 마을사람들과 친숙해질 계기를 만들어간다. 희준은 마을사람들의 단결을 위해 두레를 내기로 하고, 안승학은 이를 방해하지만 결국 두레가 성공하여 마을 분위기가 일신되고 희준 자신의 인텔리 근성도 극복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추수 무렵, 수재가 닥쳐 농사를 망치게 되고 농민들은 소작료 탕감을 간청하지만 거절당한다. 희준의 제안으로 농민들은 추수 때가 되어도 벼베기를 하지 않고 버티지만 먹을 것이 떨어지자 이탈하려는 농민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곤경에 처한 희준과 농민들을 돕고 나선 것은 읍내 제사공장의 여직공 갑숙이었다. 안승학의 딸로 어린 시절 희준을 남몰래 사모했었던 갑숙은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희준과 동지적 애정으로 다시 뭉치게 된다. 농민들은 갑숙을 비롯한 여직공들의 지원금으로 좀더 버티지만 한계에 이르게 되고, 갑숙은 자신의 연애사건으로 협박하면 아버지 안승학이 굴복하게 되리라는 고육책을 내놓는다. 갑숙은 읍내 상인인 권상필의 아들 경호와 사랑하는 사이인데, 가뜩이나 이들의 사이를 못마땅해하던 안승학은 경호의 친아버지가 권상필이 아니라 머슴 곽첨지임을 알아내자 광기에 가까운 분노를 터뜨리며 이들을 갈라놓기 위해 애쓴다. 체면을 중시하는 안승학은 그런 인물과 자신의 딸이 연인관계라는 사실을 무엇보다 부끄러운 비밀로 간직하고 있던 터였다. 예상대로 안승학은 농민들의 요구조건을 수락하게 되고 소작쟁의는 농민들의 승리로 끝난다.
저자
이기영(李箕永)
생애(1895~1984)
호는 민촌(民村). 충남 아산 출생. 천안에서 성장하였으며, 천안 상리학교, 도쿄 세이고쿠영어학교에서 수학했다. 1924년 7월 <옵바의 비밀편지>가 <개벽> 현상문예에 입선됨으로써 등단했고 1925년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에 가담하여, 중앙위원 및 출판부 책임자를 지냈다. 1931년 카프 제1차 검거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2개월 만에 풀려났고, 1934년 카프 제2차 검거사건으로 다시 구속되어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일제 말기에는 조선총독부의 시국인식간담회에 참석하거나 조선문인협회 간사로 선출되는 등 일제에 순응했으나, 이에 환멸을 느끼고 1944년 강원도 철원에 은거해 8·15 해방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1945년 9월에 결성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연맹을 이끌다가 월북, 이후의 북한 문학과 문학정책을 주도했으며, 1984년 병으로 사망하였다.
주요작품 및 작품세계
등단 이후 <가난한 사람들>·<민촌>(1925), <농부 정도룡>(1926), <아사>(1927), <홍수>(1930), <서화>(1933), <고향>(1934) 등 가난한 소작농의 삶을 다룬 농민소설을 주로 창작하였다. 그의 소설은 청년 지식인들의 고뇌를 주로 문제삼았던 직전의 소설들과는 달리 하층민의 삶을 탐구, 구체적으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농민소설 부문에서 작가적 역량을 드러냈는데, 토지소유관계를 중점적으로 문제삼았다는 점, 계몽성의 요체가 시혜적 농민계몽이 아니라 계몽자가 농민과 마찬가지 처지에서 자신들의 현실을 함께 타개해 나가는 실천의 과정임을 그렸다는 점, 그리고 농촌현실과 농민들의 삶을 깊이 탐구하여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였다는 점 등에서 농민문학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이광수의 <흙>, 심훈의 <상록수>, 이무영의 <모범경작생> 등과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이기영의 문학은 1935년 카프 해체 이후 변모하는데, 풍자적 수법을 실험한 장편 <인간수업>(1936), 전향자의 내면을 다룬 <설>(1938), 유년을 그린 장편 <봄>(1940), 일제의 경제정책을 무비판적으로 반영한 장편 <대지의 아들>(1940), <광산촌>(1943) 등에서 그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월북 이후 <개벽>(1946), <땅>(1949), <두만강>(1954~1961) 등의 작품을 남겼다.
리뷰
(······) 모두 38개의 소단락으로 구성된 <고향>의 주요 인물과 기본 구조는 맨 첫 단락인 ‘농촌점경’에 뚜렷이 제시되어 있다. 마름 안승학으로 대표된 수탈층의 유한한 생활과 권력에의 유착, 엄청난 노동에도 불구하고 혹심한 가난에 시달리며 마침내는 폭염 속 개구리처럼 희생당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농민들의 참담한 생활이 마주보고 선 가운데, 동경 유학생 출신 김희준이 등장한 것이다. 작품 전개와 함께 김희준은 문제적 인물로 부상, 폐쇄된 농민들의 의식을 깨우쳐 농민의 집단의식을 결집시키는 매개적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문제적 인물-소작농민의 계몽관계를 품은 농촌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대립구조가 성립하게 된다. 이 같은 기본구조는 이전의 경향소설과 다르지 않지만, 그러나 형식의 차원에서는 엄격히 구별된다.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고향>이 전형적 상황에서의 전형적 인물들의 집단적 창조에 성공한 데 말미암는다. 두루 알 듯, 인간 집단의 생활형태에 대한 형상적 인식은 개인의 생활 형태를 형상적으로 인식하는 것만큼 세밀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주도면밀함을 견지하기 어려우며, 따라서 개념적 인식에 머물고 말 가능성을 크게 지닌다. 평균적 타입이 아니라 이상적인 타입으로서 집단 또는 계층의 근본 동향 및 본질을 한몸에 구현하고 있으며, 어떤 상황이 지닌 모순을 첨예한 갈등으로 제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전형’이란 그러므로 세부적인 부분들의 구체적 형상화를 전제로 하여 비로소 성립하는 개념이며 그 같은 전형들의 상호관련이 소설의 총체성을 가능케 한다. (······) <고향>은 전형적 상황에서의 전형적 인물들의 집단적 창조에 성공함으로써 당대 농촌 현실의 총체성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던 것인데, 이에 이전의 작품들과 그 형식에 있어 명백히 구별되는 것이다. <고향>에서 확립된 그 새로운 형식은 문제적 인물과 소작농민들의 계몽관계를 품은 농촌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대립이라는 기본구조 위에 성립하는 참된 ‘계몽의 형식’이라 이름붙일 수 있다. <고향>에서 창조된 전형적 인물 중 마름 안승학의 의미는 특별한데, 여기에 <고향>이 제시하는 역사의 방향성이 잠겨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죽산 호방의 아들인 그는 남보다 먼저 개화, 새로운 세상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는 인물이다. 개화기에 부상했던 조선조 중인 계층 출신들의 재빠른 시대 적응력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그의 이 같은 면모는 그를 군청 직원으로, 졸부로 만들었고, 권력과 결탁하여 소작농민들을 착취하는 악랄한 마름·고리대금업자가 되게 하였다. 이 같은 출세를 가능하게 한 ‘시대 적응력’은 세 가지 층위에서 살펴질 수 있다. 하나는 식민지 반봉건의 토지 소유 관계가 엄연한 현실에서는 일제와, 일제가 기득권을 보장하여 구조적으로 자기 편에 유착시킨 친일성 지주가 현실적 힘의 소유자임을 정확히 감지하고 거기에 적극적으로 들러붙어 소작농민들을 수탈하는, 수탈구조의 대리인 역할을 수행하는 측면이다. 안승학은 작품의 기본 갈등을 이루는, 당대의 토지 소유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수탈 구조의 한복판에 놓여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근대화와 관련된 것이다. 당대 조선에서의 근대화는 일제의 식민지 조선에 대한 효율적인 수탈을 위한 파행적인 측면을 뚜렷이 지닌 것이었으니 이를 꿰뚫어보는 작가의 시선은 날카롭다. (······) 5년 만에 귀국한 김희준을 놀라게 한 급격한 도시화·근대화의 본질 또한 이와 같음은 물론인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안승학은 식민적·파행적 근대화와 관련된 수탈 구조의 대리인인 셈이다. 토지 소유 관계와 관련된 수탈구조의 대리인으로서의 측면과 식민적·파행적 근대화와 관련된 수탈 구조의 대리인으로서의 측면 모두를 체현한 안승학에 대한 싸움이 곧 <고향>이 제시하는 역사의 방향성인 것이다. (······) - <한국소설사>, 김윤식·정호웅, 문학동네, 2000
작가의 말
내가 소설을 쓴다고 남의 숭내를 내기 시작한 제는 벌서 10년 하고도 한두 손가락을 더 뽑을 만큼 된 듯 싶다. 10년 공부 도루아미타불(阿彌陀佛)이란 말이 있다. 내가 그동안에 써왔다는 소위 소설이란 것이 하나도 소설다운 것이 없고 보니 이 말이 역시 나를 두고 한 말이 안일는가. 무릇 창조적 사업처럼 지난(至難)한 것이 없으니 그것은 위대한 천품(天稟)과 노력이 합작해야만 될 줄 안다. 그러타면 나와 같은 비재천학(菲才淺學)이 남에게 보람있는 예술품을 제공한다는 것이 원래 바랄 수 없는 일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여태까지 소설을 써왔다는 것은 말하자면 남의 숭내를 낸 것밖에 안 되는 셈인데, <고향>이란 것도 역시 그러한 작품에 불과할 줄 안다. 그러나 이 <고향> 한 편은 내가 쓴 장편 중에서는 그중 나은 편이니 부족하나마 내 자신에 있어서도 다소간 애착을 가질 수 있는 작품이 있다면 <고향>을 빼놓고는 다시 없을 것이다. (……) - ‘자서(自序)’, 이기영, <고향>, 슬기, 1987
관련도서
<이기영 여성소설 연구>, 이선옥, 국학자료원, 2002 <민촌 이기영의 작가세계>, 권유, 국학자료원, 2002 <이기영: 이야기꾼·리얼리즘·이데올로그>, 조남현, 건국대출판부, 2002 <민촌 이기영 문학연구>, 김상선, 국학자료원, 1999 <이기영>, 정호웅 편, 새미, 1995 <이기영 시대와 문학>, 이상경, 풀빛, 1994 ‘이기영론’, 김윤식, <한국 현대현실주의소설 연구>, 문학과지성사, 1990 ‘이기영론’, 정호웅, <한국 근대리얼리즘작가 연구>, 문학과지성사, 1988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출판부, 2004 <한국문학명작사전>, 임헌영·김재용, 한길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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