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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모순

작품명
슬픈 모순
저자
양건식(梁建植)
구분
신문학의 등장~1910년대
개요
1918년 2월 <반도시론> 10호에 발표된 양건식의 단편소설. 1910년대에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그린 초창기 비판적 사실주의의 대표작이다.
내용
‘나’는 멀거니 책상을 대하고 앉았다가 갑갑증이 나서 길거리로 나선다. 특별히 갈 곳이 있어 나온 것이 아니었기에 그냥 어슬렁거리다 광화문행 전차를 잡아탄다. 차 속의 사람들은 모두 바쁜 듯하고 나는 별안간 고독의 적막을 느낀다. 종로에서 내려 다시 전차를 타지만 도로 내린다. 길거리의 상점도, 사람들도, 모든 것이 보기 싫고 가슴이 뒤틀린다. 약자에 대한 강자의 압박이라 하는 것이 통절히 느껴져 불안과 공포가 머리를 때리고 벗어나려 할수록 고통만 더할 뿐이다. 한참 그냥 걷다가 안동으로 나왔는데, 순사 파출소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파출소 안에는 하이칼라 술집에 들어갔다가 무시를 당하자 행패를 부린 막벌이꾼이 끌려와 순사보에게 취조를 당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기묘한 대조를 느낀다. 두 사람 모두 향상심 없고 단지 자신의 지위에 만족함은 같지만, 순사보는 다만 관복을 입고 칼을 찬 까닭에 막벌이꾼을 징계할 권리와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순이 이쯤 되면 심하되 이 점은 나의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생활의 압박으로 진실성과 모순되는 허위의 옷을 두르고 생활의 방편을 찾는 것은 슬프고도 더러운 일이다. 무심중에 인력거를 타게 된 나는 친구 김영환을 찾아가다가 길거리에서 그와 마주친다. 김영환은 백화가 자기 아버지와 싸우고 집을 나간 지 사흘이 되었다고 알린다. 나는 새벽 꿈에 백화가 나타나서 자신은 죽노라고 우는 것을 보았던지라 가슴이 철렁하다. 집에 돌아오니 백화에게서 편지가 와 있다. 편지에는, 무식한 부모 밑에 태어나 야학으로나마 향학열을 불태우던 자신은 그나마 부모가 가로막으며 돈벌어 올 것을 강요하는 데 대해 원망하며 죽기로 하였으며, 부모가 귀족에게 첩으로 보내려 하는 여동생 동순이를 돌봐달라는 유언이 적혀 있다.
저자
양건식(梁建植)
생애 및 작품세계(1889~1938)
호는 백화(白華)·국여(菊如). 1889년 경기도 양주 출생. 한성관립학교에서 수학하였다. <불교진흥회월보>의 편집책임을 맡으면서 불교적 색채가 짙은 첫 단편 <석사자상>(1915)을 발표하였다. 이후 소설과 비평영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함으로써 한국 신문학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소설 가운데서는 특히 소설가 자신이 작품을 써서 출간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이색적인 작품인 <귀거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드러낸 <슬픈 모순> 등을 주목할 만하며, 평론 중에서도 문학의 미적 가치를 중요시하면서도 효용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인정할 것을 주장한 <춘원의 소설을 환영하노라>(1916) 등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미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1930년대에는 중국문학을 소개하는 번역문학가로 활동했으며 그 중에서도 희곡에 중점을 두어 <인형의 가(家)>, <비파기> 등의 번역희곡을 남겼다.
리뷰
(……) 필자가 <슬픈 모순>의 작가인 양건식이라는 이름(국여(菊如), 백화(白華)로도 잘 알려져 있다)을, 그의 소설에 앞서 관심있게 접하게 된 것은 <춘원의 소설을 환영하노라>(매일신보, 1916년 12월 28일~29일)라는 일종의 소설론의 성격을 띠고 있는 그의 글에서였다. 이 글은 소설의 미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것을 그 기본 논조로 하면서도 소설이 가질 수 있는 효용적 가치 역시 그 테두리 안에서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있어, 당시로서는 이광수의 <문학이란 하(何)오>(매일신보, 1916년 11월 11일~23일)도 따를 수 없는 논리적으로 치밀하고 일관된 체계를 가지고 있는 글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양건식의 소설에 대한 인식수준이 그의 소설 창작 역량을 그대로 입증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지만, 소설에 대한 그의 남다른 관심과 그 관심의 높은 수준을 짐작해볼 수 있게 한다. (……) 이 작품의 주인공 ‘나’의 의식세계는 당대 유학생 계층의 소설들에서 보여지는 현실로부터 소외된 주인공들의 의식세계와 흡사하다. (……) 작품 서두에서부터 어수선한 꿈을 꾸고 아침에 잠을 깬 ‘나’는 머리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무엇인가 내려 누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몽롱한 담배연기에 싸여 우울함에 빠져든다. (……) ‘나’의 우울함과 우울함의 원인은 좀더 구체적이다. 그것은 작품 서두에 ‘나’의 방안 풍경을 묘사하는 간단한 디테일에서도 드러난다. ‘나’의 방 벽에는 “노동복을 입은 노국(露國) 문호 막심 고리끼의 반신상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 ‘나’가 요즈음 읽는 소설은 도스또예프스끼의 처녀 장편소설로 짐작되는 바의 <학대받는 사람들>(1861)이란 책이다. (……) 이러한 배경적 디테일이 ‘나’의 관심이 어떠한 곳을 지향하고 있는가를 짐작케 한다. (……) 이러한 비판적 태도 내지 시각은 그가 외출을 하여 도심을 방황하면서 부닥치게 되는 몇몇의 사건을 통해 구체화된다. (……) <슬픈 모순> 외에도 1910년대 소설에는 핍박받는 노동자, 도시빈민들의 삶의 현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계층의 인물군이 나타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10년대에 진행되었던 ‘토지조사사업’ 등의 식민지 경제정책은 일본자본이 조선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의 전제조건을 폭력적으로 창출하는 과정의 일환이었다. 이러한 과정 중에서 창출되는 프롤레타리아트는 당대의 사회경제 조건하에서 창출되는 정도만큼 자본주의적 관계 속으로 흡수될 수 없어, 이들은 결국 자신의 생존을 위해 부랑자, 걸인 등으로 되거나 반(半)프롤레타리아트로 될 수밖에 없었다. <슬픈 모순>에서 행랑살이를 하며 날품을 팔아 살아가는 도시의 막벌이 노동자들이 이러한 계층군이다. (……) 특히 작가의 현실비판이 돋보이는 점은 막벌이꾼을 잡아가 뺨을 때리며 자못 훈계까지 하는 순사보에 대해 혐오와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데 있다. 막벌이꾼이나 순사보나 모두 식민지 지배구조의 희생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순사보가 그 알량한 지위를 내세워 막벌이꾼의 게으름을 탓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주인공은 조소를 보내며 이러한 사회현실의 모순에 환멸을 토로한다. 그리고 작품 말미에 주인공은 그의 친구인 ‘백화’의 아버지가 자신의 딸을 돈많은 귀족의 첩으로 넘기려는 의도에 대해 금권만능의 현실을 비판한다. 이는 첩을 거느리고 사는 당대 상층계급의 성적 방탕을 고발함과 동시에 식민지 통치체제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더욱 부패해져가는 봉건 기득권 계층에 대한 비판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 <슬픈 모순>의 이와 같은 사건 설정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추악한 현실에 대하여 심각한 폭로와 예리한 비판을 기본적인 특징으로 하는 비판적 사실주의 문학의 과제를 수행해나가고 있는 셈이다. 특히 당대 도시 시정의 세태, 풍속, 인정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진실한 묘사를 통해 당대 사회의 암흑면을 폭로하고 비판한다는 점에서 <슬픈 모순>을 따르는 작품은 당대로서는 없을 듯하다. (……) 단 이 작품에서 아쉬운 점은 역시 당대 이광수 등의 소설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안이함이 작품 결말에서 보여진다는 점이다. (……) 작품 전반부에서 주인공이 핍박받는 하층민의 삶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사회현실의 모순에 괴로워하던 긴장감이 이완되면서, 백화의 자살이라는 낭만적인 도피가 설정됨으로써 결국에는 소시민 계급의 공허한 절규, 추상적인 반항을 드러내버리고 마는 꼴이 된다. (……) 덧붙여 작품 전반부에서도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는데, 막벌이꾼을 ‘향상심과 자각’이 없어 그 지위에 만족하는 것이 순사보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의 태도가 그러하다. 이는 아직도 당대 하층민들의 궁핍한 삶의 현실의 원인을 본질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당대의 작가의식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 - ‘<슬픈 모순>과 1910년대 비판적 사실주의의 문제’, 양문규, <창작과비평>, 1990년 봄호
관련도서
<한국 근대소설과 현실인식의 역사>, 양문규, 소명출판, 2002 ‘<슬픈 모순>과 1910년대 비판적 사실주의의 문제’, 양문규, <창작과비평>, 1990년 봄호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출판부, 2004 <한국문학명작사전>, 임헌영·김재용, 한길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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