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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제비

작품명
산제비
저자
박세영(朴世永)
구분
1930년대
저자
박세영(朴世永)
생애(1902~1989)
호는 백하(白河). 1902년 7월 경기도 고양 출생. 1917년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 송영(宋影) 등의 동기생들과 함께 소년문예구락부를 조직하고 동인지 <새누리>를 펴냈다. 졸업 후 중국으로 건너가 혜령 영문전문학교에서 수학하였고, 송영 등이 주도한 사회주의 문화단체 ‘염군사’에 중국 특파원 자격으로 가담했다. 1924년 귀국하여 이호, 이적효 등과 교류하면서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학습했으며, 1925년 연희전문학교에 편입하고 그해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입했다. 송영과 함께 무산계급 아동잡지인 <별나라>의 편집을 담당하면서 무산계급 아동을 위한 다수의 동시를 창작하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1946년 월북한 뒤로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출판부장 등을 거쳐 1948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1967년 조선작가동맹 상임위원 등을 역임했다.
주요작품 및 작품세계
1927년 <문예시대>에 <농부 아들의 탄식>, <해빈의 처녀>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1931년에는 <카프시인집>에 단편서사시 계열의 <누나>를 수록하기도 하였다. 이어 발표한 작품으로 <산골의 공장>(1932), <산제비>(1936), <위원회 가는 길>(1946) 등이 있다. 1938년 간행된 시집 <산제비>에는 시 <산제비>를 비롯, <오후의 마천령>, <화문보로 가린 이층> 등 총 38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시들은 대체로 서술적 어투를 사용하여 긴장이 다소 이완되어 있지만, 삶의 체취가 배어들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일제강점기 민족의 고통스러운 삶을 그려내려는 성실하고 꾸준한 자세가 돋보이며, 엄혹한 현실 속에서도 자유에 대한 염원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진보적인 정신의 궤적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방 이후, 박세영의 시는 현실인식을 더욱 첨예하게 드러내며, 그것은 대체로 귀향 이민문제와 민족반역자 단죄, 새조국 건설에의 참여의지로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광복 후 프로예맹계 시인들의 해방기념시집 <횃불>(1946)에서는 <위원회에 가는 길>, <날러라 붉은 기> 등 체제 선택과 관련된 시들을 수록하였다. 1936년 11월 <낭만>에 발표된 박세영의 시 작품. 시집 <산제비>(1938)의 표제작으로 박세영의 대표작이다. 시적 주체가 산 위에 올라 산제비를 보고 말하는 형식으로 짜여 있으며, 카프 해산 이후 악화된 정세 속에서 이상을 추구하는 마음이 산봉우리 암벽에 깃든 산제비의 형상을 통해 적절히 표현되어 있다. 이기영이 쓴 시집 <산제비>의 서문은 대부분 시 <산제비>에 대한 언급에 할애되어 있다. 이기영은 “가장 쉬운 말로 간결히 썼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탈속하고 구체적으로 묘파되었다. 그리고 의미가 심원한 이상을 독자로 하여금 동경하게 하였다”고 촌평하였다. <산제비>는 박세영 특유의 원시적 생명력과 야성적 건강미가 현실에 대한 관심과 극복의지, 자유에의 갈망으로 솟구치고 있다. ‘산제비’의 상징 의미는 ‘자유롭게 이상을 펼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당대의 정신사적 과제이자 열망과 결부되며, 이 작품은 193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진보주의적인 시로 평가받고 있다.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출판부, 2004 (······) 시집 <산제비>의 표제시이기도 한 이 작품은 시문학사상 박세영 시인의 대표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만큼 이 작품에는 박세영 시세계의 특질이나 방법적 특징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이 작품은 무한허공을 자유자제로 날아다니는 산제비를 매개로 해서 일제 식민지 치하의 고통스럽고 불행한 민족현실을 극복하고 자유와 해방을 지향하는 시인의 신념이 형상화되고 있다. 1연에서는 산제비를 ‘더 오를 수 없는 곳’에 위치한 신비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로 묘사하고 있으며, 3연에서는 그런 곳에 위치한 산제비의 자유스러움과 위대함을 부러워하는 시인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시인의 이러한 모습은 ‘너희는 장하구나’하는 감탄적인 독백 속에서 반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시 말해 시인은 산제비의 모습을 부러워하면서 동시에 산제비와 같이 날을 수 없는 자기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4연에서는 시인의 이러한 모습이 좀더 구체적으로 진술되고 있다. 시인이 현재 하늘을 날 수 없는 것은 ‘하루 아침 하루 낮을 허덕이고 올라와’야 하는 땅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땅은 곧 현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로 일제 식민지치하의 고통스럽고 불행한 민족현실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나라잃은 백성의 부자유와 억압과 한계성을 의미한다. 박세영 시인이 땅을 박차고 제비처럼 날고 싶어하는 것은 결국 이런 부자유스런 속박의 대지, 즉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욕망을 상징한다. 박세영의 그러한 욕망은 궁극적으로 민족의 독립과 해방의 의미로 전이된다. 그러나 박세영은 이 작품의 어느 곳에서도 민족의 현실에 관하여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그러한 모습은 5, 6연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는 오히려 어떠한 민족적인 현실과도 동떨어진 듯한 산정상의 원시적인 자연의 생명력, 또는 야성적인 건강성 등을 노래하고 있다. 다만 <산제비>에서 민족의 현실문제와 관련하여 서술하고 있는 부분은 8연에서 등장하는 ‘가난한 농민’이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이 작품은 시인 자신의 시대, 사회적인 메시지를 철저하게 행간의 이면에 감춰놓고 있다. 다시 말해 민족적 현실을 어떠한 이념이나 혁명의식으로 구호화하거나 직접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고도의 시적 방법을 통해 간접적,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산정상, 그곳은 이미 시·공간적으로 인간계를 벗어나 천상계와 맞물려 있는 신비하고 초월적인 곳으로 민족독립의 희망을 성스럽고 웅대하게 상징하는 것이라면, 그곳을 자유자재하는 산제비는 바로 현실의 땅 위에 구속되어 있는 우리들에게 그러한 민족적 희망을 전해줄 수 있는 유일한 메시아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가 ‘~왔다’, ‘~구나’, ‘~다오’, ‘~요’, ‘~라’ 등의 원망형(願望形)의 감탄적 종지부로 끝을 맺고 있는 것에서 시인의 그러한 메시아에 대한 굳은 신념을 읽을 수 있다. 박세영의 이러한 신념은 이미 그의 시작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시의 사상적 기초가 되어왔다. 생경한 이데올로기나 투쟁성이 서술적 방법을 통해 단순히 카프 세계관의 추수로 이어졌다. 하지만 1935년 카프 해산 이후, 일제 파시즘이 대륙침략전쟁으로 고조되는 시기에는 이렇게 고도한 시적 방법을 통해 예술파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 - <박세영 시 연구>, 한성우, 대광문화사, 2000자화상 지나간 내 삶이란, 종이쪽 한 장이면 다 쓰겠거늘, 몇 짐의 원고를 쓰려는 내 마음, 오늘은 내일, 내일은 모레, 빚진 자(者)와 같이 나는 때의 파산자(破産者)다, 나는 다만 때를 좀먹은 자다. 언제나 찡그린 내 얼굴은 펼 날이 없는가? 낡은 백랍같이 야윈 내 얼굴, 나는 내 소유를 모조리 나누어주었다. (……) 해밝은 거리언만, 왜 이리 침울하며 끝없는 하늘이 왜 이리 답답만 하냐. 먼지 날리는 끓는 거리로 나는 로보트같이 거리의 상인이 웃고, 왜곡된 철학자와 문인이 웃는데도, 나는 실 같은 희망을 안고, 세기말의 포스타를 걸고 나간다. - ‘자화상’, 박세영, <산제비>, 미래사, 1991
관련도서
<박세영 시 연구>, 한성우, 대광문화사, 2000 <산제비>, 박세영, 미래사, 1991 ‘도시성향과 사실주의-박세영론’, 김용직, <현대시>, 1993년 3월호 ‘박세영론-빈 총겨누기와 뛰어들기’, 한만수, <현대문학>, 1990년 10월호 ‘리얼리즘 서정시로서의 박세영의 시’, 황정산, <어문논집>, 1990년 2월호 ‘박세영론-자유에의 의지와 자기 다짐’, 정영자, <시문학>, 1989년 7월호 ‘박세영론, 대륙적 풍모와 남성주의-월북문인연구’, 김재홍, <문학사상>, 1988년 11월호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출판부,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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