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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작품명
향수
저자
정지용(鄭芝溶)
구분
1920년대
저자
정지용(鄭芝溶)
생애(1902~1950)
1902년 5월 15일 충북 옥천 출생. 옥천공립보통학교를 마치고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서 박종화, 홍사용, 정백 등과 사귀었고, 박팔양 등과 동인지 <요람>을 펴내기도 했으며, 신석우 등과 문우회(文友會) 활동에 참가하여 이병기, 이일, 이윤주 등의 지도를 받았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선근과 함께 ‘학교를 잘 만드는 운동’으로 반일(半日)수업제를 요구하는 학생대회를 열었고, 이로 인해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가 박종화, 홍사용 등의 구명운동으로 풀려났다. 1923년 4월 도쿄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에 입학했으며, 유학시절인 1926년 6월 유학생 잡지인 <학조(學潮)>에 시 <카페 프란스> 등을 발표했다. 1929년 졸업과 함께 귀국하여 이후 8·15 해방 때까지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했고, 독립운동가 김도태, 평론가 이헌구, 시조시인 이병기 등과 사귀었다. 1930년 김영랑과 박용철이 창간한 <시문학>의 동인으로 참가했으며, 1933년 <가톨릭 청년> 편집고문으로 있으면서 이상(李箱)의 시를 세상에 알렸다. 같은 해 모더니즘 운동의 산실이었던 ‘구인회(九人會)’에 가담하여 문학 공개강좌 개최와 기관지 <시와 소설> 간행에 참여했다. 1939년에는 <문장>의 시 추천위원으로 있으면서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등의 청록파 시인을 등단시켰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이화여자대학으로 옮겨 교수 및 문과과장이 되었고, 1946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 및 가톨릭계 신문인 <경향신문> 주간이 되어 고정란인 '여적(餘適)’과 사설을 맡아보았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서 활동했었다는 이유로 보도연맹에 가입하여 전향강연에 종사했다. 1950년 6·25 전쟁 이후의 행적에는 여러 설이 있으나 월북했다가 1953년경 북한에서 사망한 것이 통설로 알려져 있다.
주요작품 및 문학세계
정지용은 한국현대시사에서 언어에 대한 자각을 각별하게 드러낸 시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다양한 감각을 선명한 심상과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고자 했으며, 감상성에 치우쳤던 시적 정서를 절제하고자 했다. 100여 편이 넘는 시 외에도 소설 <3인(三人)>(1919)과 평론 <조선시의 반성>(1948), <문학으로 사는 길>(1949) 등을 발표했으며, 시집으로 <정지용시집>(1935), <백록담>(1941), <지용시선>(1946)과, 이론서로 <문학독본 文學讀本>(1948), <산문 散文>(1949) 등이 있다. 그의 시 세계는 크게 세 단계의 변모과정을 거친다. 먼저, 1926년부터 1933년까지 이미지를 중시하면서도 향토적 정서를 보인 모더니즘 계열의 시이다. 그가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23년경이었다고 하나, 발표되기는 1926년 <학조> 6월호에 실린 시 <카페 프란스>·<마음의 일기에서> 등에서 시작된다. 이어 이미지 시의 면모를 보여준 <바다>(1927)와 <향수>(1927) 등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했다. 이런 경향은 <시문학>의 향토적 정서, 섬세한 이미지 표현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이 시기의 시들은 모더니즘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면서도 순수 서정시의 가능성을 아울러 보여준다. 둘째는 <가톨릭 청년>에 관여하던 1933~35년에 보여준 종교적인 시이다. 이 시기에는 절대적인 신에게 관심을 갖고 시대적 상황에 무력한 자신의 정신적 허기와 갈증을 신앙을 통해 메우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셋째는 1941년까지 발표한 동양적 전통과 정신에 바탕을 둔 산수시이다. 이 시기에 그는 동양적 정신과 산수의 풍경을 그리는 여행을 떠남으로써, 시적 소재가 <바다>(1935)를 거쳐 <옥류동>(1937), <비로봉>(1938), <장수산>(1939), <백록담>(1939)으로 바뀐다. 산수시로의 변모는 일제강점기 말의 고통스러움을 정신적 극기로 감내하고자 한 시인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며, 나아가 한국의 오랜 시적 전통에 근거한 산수시의 세계를 독자적인 현대어로 개진함으로써 한국 현대시의 성숙에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1927년 3월 <조선지광>에 발표된 정지용의 시 작품. <향수>는 누구에게나 있음직한 추억으로서 정서적 호소력을 갖는 고향의 정경을 뛰어난 감각적 표현을 통해 그려낸다. 1연에서는 고향에 대한 공간적 환기가, 2연에서는 전형적인 농가의 풍경에서 육친에의 그리움이 이어진다. 3연에서는 화자의 구체적인 성장경험이 표현되는데, 이것은 어린 시절에 대한 단순한 반추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이상과 낙원으로부터 괴리되어 떠도는 현재의 상황을 시사한다. 4연은 다시 구체적인 삶의 정경으로 돌아가고, 5연은 계절의 순환과 더불어 포착된 고향집이 그려진다. <향수>는 당시 한국인의 심정적 기저를 형성하고 있었던 고향 상실감에서 유발된 고향 탐구의 시이며, 잃어버린 낙원을 그리는 시인의 독특한 언어적 감각을 통해 생동감을 얻은 시라고 할 수 있다. - 참고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출판부, 2004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이 시는 물론 정지용의 시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정지용이 지향하였던 시의 방법과 정신에 비추어본다면 이 시는 시적 언어 자체가 압축과 긴장을 살려내기보다는 서술적이고 설명적이다. 고향의 옛모습을 회상적으로 제시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 제1연은 고향 넓은 들판의 평화로운 저녁풍경을 그려낸다. 실개천이 흐르는 넓은 들의 평화로운 모습은 나지막하게 들리는 황소의 울음소리, 황금빛으로 물든 하늘의 저녁놀을 통해 더욱 구체화된다. 제2연부터 제4연까지는 가족들의 모습과 함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본다. 고단한 생활 속의 늙은 아버지의 모습(제2연), 꿈 많던 어린 시절의 자신의 모습(제3연), 그리고 어린 누이와 함께 고생스럽게 일하며 지내는 아내의 모습(제4연)이 차례로 그려진다. 이 같은 고향 생각이 어느덧 밤의 시간으로 이동한다. 제5연은 단란한 집안의 밤의 정경을 그려낸다. (······) 제1연 해질 무렵에서부터 제5연 하늘에 별이 뜨는 밤으로의 시간 이동이 이 시의 전체적인 시상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니다. 이 시에서 유별나게 드러나는 것은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후렴구이다. 이 같은 반복적인 후렴구를 쓴 경우는 <정지용시집>에 수록된 시들 가운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지만, 이 후렴구가 없다면 시의 묘미를 살리기 어려울 것 같다. 고향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직접적으로 토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시는 후렴구를 가짐으로써 오히려 노래로서 널리 가창된 것이 아닌가 한다. (······) - <정지용 시 126편 다시 읽기>, 권영민, 민음사, 2004(······) 작품 <향수>에는 다음 세 가지 점이 지적될 수 있다. 첫째, 농경사회의 가부장제적인 세계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세계를 중심으로 하여 귀밑머리 날리는 누이도, 사철 발 벗은 아내도 있고, 무엇보다 함부로 쏜 화살의 행방을 찾아 꿈을 키웠던 ‘나’가 있을 수 있었다. 연보에 따르면 그의 부친이 약재상을 경영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렇다 해서 그것이 농경사회 전통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충청도 옥천 꾀골이라는 곳의 1920년대란 농경사회의 기본적인 사고의 틀에서 결코 벗어난 곳이 아니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 그러한 정신세계란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주자학적 질서가 지배하는 정신세계이다. 이러한 세계란 정지용이라는 한 시인을 형성시킨 토양이자 안정감의 핵이라면, 동시에 그것은 1930년대에 유년 또는 청소년기를 거쳐 오늘날에 이른 세대의 안정감의 바탕이기도 한 것이다. 종교에 관해 아는 바는 없으나, 정지용이 뒷날 가톨릭에 깊이 관여한 바 있음도 이러한 가부장제적 엄격성에 대한 지향성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엄격성은 시에서 견고한 이미지를 낳게 하는 근원이 아닐 것인가. 정지용 시의 특징 중의 하나는, 여러 비평가들이 지적하는 감정의 절제일 것이다. 둘째는, 진솔한 우리말을 사용한 점. 시인이 우리말의 발굴에 특히 관심을 가질 때는 다음 세 가지 유형을 들 수 있다. (1) 백석(白石) 모양 토속어를 본격적으로 시 속에 끌어들여, 세련성을 보증하고자 하는 정신활동을 먼저 들 수 있다. (······) (2) 이용악처럼 서사적인 세계추구를 들 수도 있다. 전설이나 이야기 또는 민담, 혹은 민적 없는 사람들(유민)의 삶의 줄거리를 담은 언어를 근대시 속으로 이끌어들이는 것은 그 자체가 언어관의 새로움이라 할 수 있다. (3) 언어를 위트의 수준에서 보아 우리말을 갈고 닦아 보는 일도 중요한 지적 실험으로 볼 수 있는데, 정지용은 단지 (3)의 범주에 들 뿐이다. (······) 내가 기리고자 하는 것은 말재롱 쪽이 아니다. 차라리 (1)에 가까운 것, 곧 <향수>의 세계이고, 그것이 진솔한 우리말의 정확한 용법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 <향수>의 언어를 나는 ‘진솔한 우리말의 사용’이라고 부른다. 얼룩백이 황소도, 서리까마귀도, 질화로도, 짚베개도, 그냥 사물이 아니라 옛이야기 지줄대고 있는 실개천 모양 우리 삶 속에 때묻은 것이며, 그 속에는 줄거리는 없지만 얼마라도 도란거릴 수 있는 이야기를 안고 있는 말들이다. (······) 셋째, 절실함이 담겨 있다는 점. 한 점의 스케치가 아니고 그것이 시다운 정서 환기를 강렬히, 또는 은근히 풍길 수 있는 조건은 손바닥만한 서정시 나부랭이로는 불가능하다. (······) 적어도 이러한 종류의 시는 많든 적든 서사성을 지향한 것이어서, 일본말 따위로는 간단히 번역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민족의 원초적 체험이 딸려 있기 때문이다. <향수>에는 그러한 체험이 은밀히 깃들여 있다. (······) - ‘정지용과 김기림의 작품세계’, 김윤식, <김윤식 선집 5: 시인·작가론>, 솔, 1996(······) 1980년대 후반 납월북작가의 해금과 동시에 <향수>는 곧바로 작곡되어 대중들 사이에서 애창되고 있는가 하면, 문학적으로도 많은 논의가 거듭되어왔다. 그럼에도, 이 작품의 몇 가지 용어에 대한 해석상의 문제점을 위시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직 남아 있다. 따라서 필자는 이런 용어상의 문제점에 유념하면서 각 연의 내용을 검토하기로 한다. (······) 제1연에서는 시적 화자의 고향 마을을 둘러싼 자연적인 공간이 화폭처럼 제시되어 있다. (······) 여기서 문제되는 용어는 ‘지줄대다’, ‘휘돌아 나가고’, ‘해설피’ 등과 반복구의 ‘참하’가 있다. ‘지줄대다’는 ‘지절거리다’의 변형으로 생각된다. ‘낮은 목소리로 지껄인다’는 뜻으로 지금은 변모되었지만 당시로서는 정지용의 집 옆의 청석교 밑을 흐르는 ‘실개천’과 잘 어울리게 구사되고 있다. ‘휘돌아 나가고’는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되었던 <조선지광>이나 <정지용시집> 초판본에 수록될 때는 ‘회돌아 나가고’로 되어 있다. 이것이 8·15 해방 직후 을유문화사에 근무했던 박두진과 조지훈이 펴냈다고 전해지는 <지용시선>에 와서야 비로소 ‘휘돌아 나가고’로 바뀌고 있는데, 무슨 까닭으로 ‘회’가 ‘휘’로 바뀌었는지 모른다. 이 두 가지 표현에서 ‘굽어돈다’는 뜻에서는 별로 차이가 없으나 어감에서 큰 차이를 나타낸다. 후자는 ‘마구 돈다’는 강하고 큰 느낌인 데 반하여, 전자의 ‘굽어돈다’는 보다 약하고 작은 느낌이 든다. 따라서 큰 강물이 아닌 작은 실개천은 ‘굽어돌다’가 어감상 어울릴 뿐 아니라, 작자도 그것을 의도하고 쓴 것으로 생각된다. ‘해설피’를 혹자는 ‘해프게’의 뜻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는 잘못이다. ‘해가 설핏하다’의 줄인 말로 해가 서산에 기울어 황혼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가을의 황혼녘 누런 벌판을 가르는 황소의 울음소리를 금빛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반복구의 ‘참하’는 처음부터 <지용시선>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표기로 일관되고 있다. 현대어로 표기하면 ‘차마’로, ‘애뜻하고 안타까운 정을 억눌러 참는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그런데 계속 ‘참하’로 표기하고 있음은 음악성을 의식한 작가의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 제2연에서는 ‘질화로’와 ‘짚벼개’의 심상을 통하여 아버지를 환기한다. (······) 제3연에서는 시인의 꿈 많은 유년기를 회상하고 있다. (······) 제3행의 ‘함부로’는 <조선지광>에 처음 실릴 때는 ‘되는대로’로 하고 있다. 그리고 ‘활살’은 ‘화살’의 방언인데, <지용시선>에 수록되기 전까지는 ‘활살’로 되어 있다. 이는 그의 고향에서 썼던 방언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끝으로 ‘함추름’은 문맥상 담뿍 젖는다는 뜻으로 ‘함초롬’인데 작자의 의도적인 변형임은 <지용시선>까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렇게 짐작케 한다. (······) 제4연에서는 온통 전설의 바다를 이루고 있는 농가 마을의 정경을 소묘하고 있다. (······) 제5행의 ‘햇살을 등에 지고’는 <조선지광>에 처음 실릴 때는 ‘등에’가 없이 ‘햇살을 지고’로 되어 있다. (······) 제5연에서는 온 가족이 모여 단란하게 살아가는 한 농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성근 별’과 ‘모래성’과 ‘서리까마귀’ 등의 원초적 심상으로 표상되는 의미는 가난한 농촌 생활의 신고(辛苦)로 집약된다. (······) 제1행의 “하늘에는 성근 별”에서 ‘성근’의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조선지광>과 <정지용시집> 초판본에서는 분명 ‘석근’으로 되어 있다. ‘성근’으로 표기된 것은 <지용시선>에서 비롯된다. 이에 대하여 해금 후에도 몇 차례 논란이 되기도 했으나, 그의 고향에 세워진 시비에는 ‘석근’으로 초기의 표현법을 따르고 있다. (······) 전자 ‘성근’이 ‘듬성듬성하다’는 뜻이라면, 후자 ‘석근’은 ‘섞이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양자가 그 문맥으로 보아 어느 것을 쓴다고 해도 시적으로 큰 문제는 없다. 다만 차고 맑은 가을하늘 속에 듬성듬성 박혀진 별들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있을 뿐이다. (······) 작자가 처음 이 작품을 썼을 때는 ‘석근’으로 했다가 후에 ‘성근’으로 고쳤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서리 까마귀’는 ‘찬 서리가 내리는 가을철의 까마귀’란 뜻으로 만추의 춥고 황량한 농촌 정경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위에서 <향수>에 나타난 몇 가지 용어에 대한 해석상의 문제점을 원전비평의 차원에서 검토하면서 각 연의 내용을 간추려보았다. ‘실개천’, ‘얼룩백이 황소’, ‘질화로’, ‘짚벼개’, ‘활살’, ‘성근별(석근별)’, ‘서리 까마귀’ 등 이들은 거의 향토성의 원초적인 심상들이다. 이들이 결합되어 이루는 주제의식은 유년기의 고향으로 회귀하는 데 있다. (······) 한마디로 이 시에서 “금빛 게으른 울음”이나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와 같이 ‘울음소리’와 ‘바람소리’를 색채화하고 조형화하여 보이게끔 한 표현기법을 처음부터 구김살 없이 실험하고 있음은 정지용의 타고난 남다른 시적 재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 ‘전설의 바다와 실향의식: <향수>의 분석’, 김학동, <정지용 연구>, 민음사, 1997
작가의 말
(……) 시도 타당한 것과 협화(協和)하기 전에는 말하자면 밟은 자리가 크게 옳은 곳이 아니고 보면 시(詩)될 수 없다. 일간(一間) 직장(職場)도 가질 수 없는 시는 너무도 청빈하다. (……) 시가 도리어 병인 양하야 우심(憂心)과 척의(慽意)로 항시 불평한 지사는 시인이 아니어도 좋다. 시는 타당을 지나 신수(神髓)에 사무치지 않을 수 없으니, 시의 신수에 정신 지상의 열락이 깃들임이다. 시는 모름지기 시의 열락에까지 틈입할 것이니, 세상에 시 한다고 흥얼거리는 인사(人士)의 심신이 번뇌와 업화(業火)에 끄실르지 않았스면 다행하다. 기쁨이 없이 이루는 우수한 사업이 있을 수 없으니, 지상(至上)의 정신비애가 시의 열락이라면 그대는 당황할 터인가? 자가(自家)의 시가 알리워지지 않는 것이 유쾌한 일일 수는 없으나, 온(慍)하지 않어도 좋다. 시는 시인이 숙명적으로 감상할 때 같이 그렇게 고독한 것이 아니었다. 시가 시고 보면 진정 불우한 시라는 것이 있지 않았으니, 세대에 오른 시는 깡그리 우우(優遇)되고야 말았다. 시가 우우되고 시인이 불우하였던 것은 편만한 사실이다. 이제 그대의 시가 천문(天文)에 처음 나타나는 미지의 성진(星辰)과 같이 빛날 때 그대는 희한히 반갑다. 그러나 그대는 훨썩 지상으로 떨어질 만하다. 모든 맹금류와 같이 노리고 있었던 시안(詩眼)도 신의 허여하신 배 아닐 수 없다. 시안이야말로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차라리 선의와 동정과 예지에서 굴절하는 것이요, 마침내 상탄(賞嘆)에서 빛난다. 우의와 이해에서 배양될 수 없는 시는 고갈할 수 밖에 없으니, 보아줄 만한 이가 없이 높다는 시, 그렇게 불행한 시를 쓰지 말라. 시도 기껏해야 말과 글자로 사람사는 동네에서 쓰여지지 않았던가. 부지하허(不知何許)의 일개 노구(老嫗)를 택하야 백낙천(白樂天)은 시적 애드바이서-로 삼았다든가. 시는 다만 감상에 그치지 아니한다. 시는 다시 애착과 우의(友誼)를 낳게 되고, 문화에 대한 치열한 의무감에까지 앙양한다. 고귀한 발화에서 다시 긴밀한 화합에까지 효력적인 것이 시가 마치 감람 성유(聖油)의 성질을 갖추고 있다. 이에 불후의 시가 있어서 그것을 말하고 외이고 즐길 수 있는 겨레는 이방인에 대하야 항시 자랑거리니, 겨레는 자랑에서 화합한다. 그 겨레가 가진 성전(聖典)이 바로 시로 쓰여졌다. (……) 시가 실제로 어떻게 제작되느냐. 이에 답하기는 실로 귀치 않다. 시가 정형적 운문에서 별(別)한 이후로 더욱 곤란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차라리 도제가 되어 종장(宗匠)의 첨삭을 기다리라. 시가 어떻게 탄생되느냐. 유쾌한 문제다. 시의 모권(母權)을 감성에 돌릴 것이냐 지성에 돌릴 것이냐. 감성에 지적 통제를 경유하느냐 혹은 의지의 결재를 기다리는 것이냐. 오인(吾人)의 어떠한 부분이 시작(詩作)의 수석이 되느냐. 또는 어떠한 국부가 이에 협동하느냐. 그대가 시인이면 이따위 문제보다도 달리 총명할 데가 있다. 비유는 절뚝바리. 절뚝바리 비유가 진리를 대변하기에 현명한 장녀(長女)노릇 할 수가 있다. 무성한 감람 한포기를 들어 비유에 올리자. 감람 한포기의 공로를 누구한테 돌릴 것이냐. 태양, 공기, 토양, 우로(雨露), 농부, 그들에게 깡그리 균등하게 논공행상(論功行賞)하라. 그러나 그들 감람을 배양하기에 협동한 유기적 통일의 원리를 더욱 상찬하라. 감성으로 지성으로 의력(意力)으로 체질로 교양으로 지식으로 나중에는 그러한 것들 중의 어느 한가지에도 기울리지 않는 통히 하나로 시에 대진하는 시인은 우수하다. 조화는 부분의 비협동적 단독행위를 징계한다. 부분의 것을 주체하지 못하여 미봉한 자취를 감추지 못하는 시는 남루하다. (……) 시의 기법은 시학 시론 혹은 시법에 의탁하기에는 그들은 의외에 무능한 것을 알리라. 기법은 차라리 연습 숙통(熟通)에서 얻는다. 기법을 파악하되 체구에 올리라. 기억력이란 박약한 것이요, 손끝이란 수공업자에게 필요한 것이다. 구극(究極)에서는 기법을 망각하라. 탄회에서 우유(優遊)하라. 도장에 서는 검사는 움지기기만 하는 것이 혹은 거저 섰는 것이 절로 기법이 되고 만다. 일일이 기법대로 움지기는 것은 초보다. 생각하기 전에 벌써 한대 얻어 맞는다. 혼신(渾身)의 역량 앞에서 기법만으로는 초조하다. 진부한 것이란 구족(具足)한 기구(器具)에서도 매력이 결핍된 것이다. 숙련에서 자만하는 시인은 마침내 맨너리스트로 가사제작에 전환하는 꼴을 흔히 보게 된다. 시의 혈로는 항시 저신(抵身)타개가 있을 뿐이다. (……) - ‘시의 옹호’, 정지용, <정지용 전집 2>, 민음사, 1988
관련도서
<정지용 전집>, 정지용, 민음사, 1988 <정지용 시 126편 다시 읽기>, 권영민, 민음사, 2004 <정지용 시의 미학성>, 김용희, 소명출판, 2004 <정지용 사전>, 최동호, 고려대출판부, 2003 <정지용의 정지용 시집을 읽는다>, 권정우, 열림원, 2003 <정지용 이해>, 김종태 편, 태학사, 2002 <정지용 시의 공간과 죽음>, 김종태, 월인, 2002 <정지용의 문학세계 연구>, 지용회 편, 깊은샘, 2001 <정지용 문학의 연대성>, 김신정, 소명출판, 2000 <정지용 시의 심층적 탐구>, 이숭원, 태학사, 1999 <정지용 연구>, 김학동, 민음사 1997 <정지용: 20세기 한국시의 성좌>, 민병기, 건국대출판부, 1996 <정지용>, 김은자 편, 새미, 1996 <정지용>, 이숭원 편, 문학세계사, 1996 <정지용의 시 연구>, 정의홍, 형설출판사, 1995 <정지용>, 김학동 편, 서강대출판부, 1995 <정지용 시 연구>, 장도준, 태학사, 1994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출판부, 2004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연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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