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작품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저자
이상화(李相和)
구분
1920년대
저자
이상화(李相和)
생애(1901~1943)
호는 무량(無量), 상화(尙火, 想華), 백아(白啞, 白亞). 경북 대구 출생. 18세 때 경성중앙학교 3년을 마치고, 3·1운동 때 대구에서 백기만 등과 거사하려다 실패하였다. 1921년 프랑스 유학을 목적으로 일본에 건너가 아테네프랑세에서 프랑스문학을 공부하다가 1923년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를 겪고 귀국하였다. 1927년 의열단 이종암(李鍾巖) 사건에 연루되어 구금되기도 했고, 1937년 백씨 이상정 장군을 만나러 만경(滿京)에 갔다가 돌아오자마자 관헌에 붙잡혀 4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그후 대구교남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교남학교를 그만둔 후 <춘향전>의 영역본과 국문학사 등을 기획, 독서와 연구에 몰두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1943년 사망했다.
주요작품 및 문학세계
1917년 현진건, 백기만 등과 프린트판 동인지 <거화(炬火)>를 발간하였다. 1922년 홍사용, 박종화, 박영희, 김기진 등과 함께 <백조> 동인으로 참가하여 <말세의 희탄>, <이중의 사망>, <나의 침실로> 등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시작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김기진 등과 함께 파스큘라(PASKYULA)라는 문학연구단체에 가담했으며 1925년 8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KAPF)의 창립회원으로 참여하였고 이듬해 기관지 <문예운동>을 주관하기도 하였다. 습작기의 산문시로부터 출발하여 감상의 시인으로 병적인 관능도취의 시세계를 선보였는가 하면, 경향파 문학의 풍조에 경도되기도 하였으나 그의 시적 본령은 민족주의 시에 있었다. 그는 일제에 대한 울분을 내세워 항거하기에는 많은 시대적 제약이 따랐기 때문에 국토와 자연예찬으로 기울었다. 시인의 저항정신을 서정적 어조로 잘 가다듬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세계를 보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 일련의 후기시가 그의 시적 본령이라고 할 수 있다. 1926년 <개벽>에 발표된 이상화의 작품. 총 11연으로 첫 연과 마지막 연의 대응적인 반복행을 제외하고 나머지 2~10연까지는 3행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순한글로 시어를 구사하고 있으며, 첫 연과 마지막 연을 대응적인 반복행으로 구성하고, 각 연의 시행을 순차로 길게 하는 형식적 특색을 보여준다. 이 시는, 국토는 일시적으로 빼앗겼다 하더라도 민족혼을 일깨워줄 봄은 빼앗길 수 없다는 강한 저항의식을 기조로, 가난하고 굶주린 농촌 아낙네들이 흘리는 뜨거운 눈물과 소박한 감정에서 우러나는 말없는 비애가 있는가 하면, 진한 동족애와 일제강점하의 상황을 극복하려는 저항의식이 표출되어 있다. 빼앗긴 국토에 대한 상실감에서 빚어진 영탄과 국토를 회복해야 한다는 의지를 형상화한 것으로 힘찬 가락과 격정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 참고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우리문학100년>, 김윤식 외, 현암사, 2000 <한국현대문학명작사전>, 김윤식, 일지사, 1979(……) 상화의 대표작인 <빼앗긴들에도, 봄은오는가> 역시 그가 처했던 당대의 암울한 시대상황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위기의식과 절망감을 강렬하게 표출하고 있다. 상화가 표제로 삼은 ‘빼앗긴들’과 ‘봄’의 영역 또한 시인이 처한 치열한 위기감과 갈등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하겠다. (……) 이 시는 과거적 삶의 반성과 비판에서 가능한 현실의 고난상을 극복하려는 비판적이면서도 긍정적인 역사의식이 두드러져 나타나고 있다. 먼저 제목 ‘빼앗긴들에도, 봄은오는가’라는 설의적 의문은 당대 상황을 빼앗긴 모습으로 묘파함으로써 지난 날의 역사에 대한 강한 비판과 부정정신을 내포하고 있다. 주권과 영토는 물론 마지막 남은 역사와 민족혼마저도 빼앗길 것 같은 위기감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1연의 ‘땅’과 ‘들’은 모성적 심상으로서 역사의식을 상징하고 있다. 여기에서 땅과 들은 국가적인 면에서 영토를 의미하며 구체적으로는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적인 터전이고 먹이로서의 양식을 생산하는 농토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땅과 들을 빼앗긴다고 하는 것은 더 나아가서는 그것의 상징으로서의 민족혼까지도 잃는다는 점을 뜻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감과 박탈의식 자체가 지나간 역사의 잘못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연에서는 “그러나 지금은-들을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것네”로 귀결됨으로써 마지막 남은 자연의 이법까지도 박탈당할 것 같은 위기감을 드러낸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역사의 회복을 강력히 외치는 주장이라고 하겠다. 정작 봄은 계절의 자연적 순환 원리에 의해 찾아왔지만 ‘들’을 빼앗겼기 때문에 앞으로는 ‘봄’까지 영원히 빼앗겨버리고 말 것 같다는 역사 상실에 대한 깊은 비판과 탄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들’과 ‘봄’의 대응적 관계에 대하여 관심을 두어야 하겠다. 거듭 말하지만 이 ‘땅’이란 민중의 삶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져온 바탕이며 터전이다. 그러므로 ‘땅’과 ‘식물’은 이 땅에서의 역사적 삶의 양식을 포괄적으로 상징한 것이다. 역사 상실의 ‘빼앗긴들’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민족의 뼈저린 아픔은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식물과 같은 모습이다. 그러기에 시인은 뿌리내릴 수 있는 우리의 ‘땅’과 우리의 ‘봄’을 찾을 수밖에 없다. (……) “남의땅”이며 “빼앗긴들”에서의 봄은 실제로 살아있는 봄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걷잡을 수 없는 정신적인 갈등과 방황이 “논길을따라 꿈속을가듯” 걸어가고, “혼자라도 갓부게” 나가야 하고, “아주까리 기름을바른이가 지심매든 그들”을 다 보고 싶고, “조흔땀”을 흘리고 싶은 갈망으로 나타나면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지 않을 수 없는 몸부림으로 귀결된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서 ‘다리를 저는 모습’은 바로 당대의 불구화된 역사의 모습이며 민족의 모습을 표상한다고 할 것이다. 특히 “발목이 시도록” 밟아보고 싶은 흙에 대한 강렬한 애착과 동경은 화자의 빼앗긴 들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식은 여러 가지 심상을 통해서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보리밧/삼단/맨드램이/들마꼿/아주까리/지심’ 등과 같은 식물 심상과 ‘종조리/나비/제비’ 등의 동물 심상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정서와 생활에 밀착해 있는 단어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봄의 상징이며 ‘푸른/풋내’의 색채 감각과 더불어 봄의 서정적 세계를 육화시키고 있다고 하겠다. 이렇게 볼 때 이 시는 이 땅의 빼앗긴 역사에 대한 비탄과 함께 불구화된 당대의 역사적 삶 또는 민족의 모습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고 할 것이다. 대지에 뿌리내린 건강한 삶을 갈망하면서 역사 속에 뿌리를 둔 민족의식을 회복하고자 하는 능동적인 열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박탈된 역사와 민족의 부활과 소생을 갈망하는 뜻도 깊이있게 형상성을 획득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 점에서 이 시는 모성적 세계관에 의해 대지사상과 조국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주권과 국토를 빼앗긴 참담한 식민지 현실하에서 흔들리지 않는 대지와 변하지 않는 대자연의 섭리를 통해서 민족혼이 살아있음과 불멸함을 탁월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 - <이상화 시연구>, 차한수, 시와시학사, 1993
작가의 말
(……) 더욱이 문단으로 말하면 어느 나라에서나 별달리 책임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책임 가운데는 자기의 양심에서 스며난 창조력으로 말미암아 그도 몰래 책임을 짊어질 때도 있고 또는 개성과 사회와 시대를 관찰함으로 그의 양심이 그러하지 않고는 만족할 수 없음에서 책임을 알면서 질 때도 있다. 책임이라 함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그 나라 사람으로서 그 나라 말로 그 나라의 추구(사람의 모든 노력을 아울러 영원한 추구라 할 수 있다)하는 바를 말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그에게는 그 나라 사람으로서 글 쓰지 않는 그 사람들보다는 무엇 한 가지 더 가질 책임이 있다. 그렇다고 한 개씩 가진 눈을 세 개, 네 개나 가지라든지, 하나뿐인 머리를 둘씩 셋씩 가지라는 짬 없는 요안(要案)은 아니다. 말하자면 글 안쓰는 사람들이 그 날의 공급과 그 날의 존재를 얽매기에 바빠서 마음으로나 몸으로나 사람답게 살아야 할 아름다운 생활을 생각지 못할 때나 또는 그 생활의 아름다움을 가지지 않을 때마다 이는 모독이다, 이는 자멸이다, 할 만한 마음과 다시 그런 결함 있는 자리를 보다 더 완미(完美)한 마당으로 만들 수 있다는 설계서를 꾸밀 만한 관찰성, 관찰안, 관찰력 및 그를 계속할 성실을 의미한 책임이다. 책임 한 가지를 더 가진다 함은 그 책임한 만큼 한 가지의 노동(맘으로나 몸으로나)을 더함이다. 여기서 글 쓰는 사람의 즐겨 하는 희생적 향락이 있고 이로써 문단의 존재가 있다고 할 만한 정명적(定命的) 의식을 가지게 된다. 이 의식의 심핵(心核)을 가지지 못하고 따라서 이 향락의 정의를 잡지 못한 때에는 혼이 참되지 못한 노동 - 곧 사특한 장난을 하면서도 한 가지 더 노동한다는 망상만으로 그만 본질에 대한 의식을 빼앗기고 잃어버리고 만다. 그러한 가운데서는 전진이 없고 자족이 있으며 창조가 없고 미봉(彌縫)이 있으며 열등(熱騰)이 없고 한축(寒縮)이 있으며 젊은 듯하기를 꺼리고 늙은 체하기를 즐겨해서 마치 제때에 먹는 끼니를 싫어하고 호작질 비슷한 군입 다시기를 좋아함이나 다름이 없는 그 따위 망녕을 부리게 되나니, 의식을 잃어버린 문단에는 다만 아무도 몰래 모든 것을 빼앗아가고는 말 죽음이 오기를 기다리는 헛소리가 날 뿐이다. (……) - ‘문단측면관(文壇側面觀)’, 이상화, <이상화>, 문학세계사, 1993
관련도서
<이상화 시전집>, 이상규 편, 정림사, 2001 <이상화: 이상화전집·이상화연구>, 정진규 편, 문학세계사, 1993 <이상화 전집>, 김학동 편, 새문사, 1987 <이상화 전집>, 이기철 편, 문장사, 1982 <이상화>, 김학동 편, 서강대출판부, 1996 <이상화>, 김재홍 편, 건국대출판부, 1996 <이상화 시연구>, 차한수, 시와시학사, 1993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관련멀티미디어(전체3건)
이미지 3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