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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崔貞熙)

예술가명
최정희(崔貞熙)
전공
소설
개요
최정희의 작품세계는 대체로 자기고백·자기폭로적인 경향이었으나 해방 후에는 초기의 주관성을 깨뜨리고 객관적·사회적으로 시대풍경을 다루었다. 그는 비교적 여러 평론가들의 평을 받았는데, 그 주된 이유는 감상에 젖어들지 않고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현실을 냉철하게 관찰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었다. 1930년대 초기 작품들에는 불합리한 사회의 모순에 대한 조용한 항의가 서려 있었으며, 크게 체험적 인생주의, 객관적 리얼리즘, 민족적 역사의식으로 흐르는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 대표작으로는 초기의 <지맥>, <인맥>, <천맥>과, 장편소설 <인간사>를 꼽는다. <지맥>은 미망인의 애정 문제와 사생아에 대한 어머니의 고민을, <인맥>은 남편 이외의 다른 남성과의 애정 문제를, <천맥>은 버림받은 여성의 모성애와 이성에의 애정을 각각 다룬 것이다. 한편 6·25 이후에는 전쟁 때 피난도 못간 노파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다룬 <정적일순>, 우리 근대사를 배경으로 지식인 남녀의 인간역사를 그린 장편 <인간사> 등을 통해 역사의 굴곡 속을 헤쳐나가는 사람들의 삶을 그려나갔다. <인간사>는 중일전쟁에서 4·19에 이르는 우리 근대사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지식인 남녀 및 그 주변 사람들의 생활사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후 <이백오병실>, <탑돌이> 등 허무와 고독이 짙게 배인 작품을 발표하였다. - 참고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누리미디어, 2002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생애
함북 성진에서 출생한 최정희는 숙명여고보를 거쳐 중앙보육학교를 졸업, 1932년 <시대공론>에 <명일(明日)의 식대(食代)>, 1933년 <형상>에 <성좌>를 발표하고 등단했다. 문학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35년 <조광>에 <흉가>를 발표하면서부터이다. 1930년 일본에서 유치진, 김동원 등과 함께 학생극예술좌에 참여했고, 이듬해 삼천리사에 입사했으며, 1934년 제2차 카프검거 때 수감되기도 했다. 카프 제2차 검거사건 이전까지는 주로 프로문학적인 작품들을 발표하였고, 출옥 후부터는 사상문제를 벗어난 작품들을 선보였다. 6·25 전쟁 중에는 공군종군작가단인 창공구락부에 참가하였고, 한국여류문학인협회장, 예술원 회원 등을 역임했다.
약력
1912년 함북 성진 출생 1928년 서울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 1929년 서울중앙보육학교 졸업 / 함남유치원 보모로 부임 1930년 동경 삼하유치원 보모로 근무 / 유치진·김동원 등과 학생극예술좌에 참여 1931년 종합지 삼천리사에 입사 1934년 신건설사 검거사건으로 수감 1935년 조선일보사 출판부에 입사 / <조광>지에 단편 <흉가>를 발표하며 등단 1951년 공군종군작가단체인 창공구락부 부원으로 참가 / 종군기자로 활동 1954년 서울시 문화위원 1960년 현대문학사 추천심사위원 1969년 학원사 학원장학회 이사 / 한국여류문학인협회장 1970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상훈
1958년 서울시문화상 본상 - <인생찬가> 1964년 한국여류문학상 1972년 대한민국예술원상 단편소설집 <천맥>(1948) <풍류잡히는 마을>(1949) <바람속에서>(1955) <찬란한 대낮>(1976) 장편소설 <녹색의 문>(1954) <끝없는 낭만>(1958) <별을 헤는 소녀들>(1962) <인간사>(1964) 수필집 <사랑의 이력>(1951) <젊은 날의 증언>(1962) 동화집 <장다리꽃 필 때>(1954)
작가의 말
남들은 내가 기자 노릇을 시작하면서 문학을 한 것 같이 알지만 실상 내가 문학을 하게 된 것은 그뒤 썩 지나서 전주감옥에 가 있을 무렵부터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 이 소설을 쓸 무렵엔 문학이 어려운 줄을 몰랐다.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가슴에 가득 차 있는 것을 쏟아놓아야만 시원할 것 같아서 쓴 것이다. 이 가슴에 가득 차 있는 증세는 새벽에 잠이 훌쩍 깨기만 하면 생기는 것이었다. <지맥>을 이렇게 시작하던 날 새벽에도 그래서 붓을 들었다. 새벽에 눈을 훌쩍 뜨니까 무엇인가 모를 감정이 가슴에 가득 차 있었다. 답답했다. 원고지와 펜을 갖추어 들고 쓰기 시작했다. 아침도 먹지 않고, 점심도 먹지 않고, 저녁도 먹지 않았다. 그것이 다 끝나기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사백자 원고지로 백장이 넘는 원고를 어떻게 하루에 끝냈던지 모를 일이다. 그때의 나는 쓰기 시작하면 끝을 맺어야 일어서는 줄 알았다. <인맥>도 그렇게 썼다. <천맥>은 다르다. 삼천리사에 있을 때 같이 있던 박계주 씨가 일은 안하고 줄곧 돌아다니는 내가 미웠던지, “그렇게 놀지만 마시구 연재소설이나 하나 쓰시지” 했다. “그럼 쓰지요.” 나는 박계주 씨에게 쉽게 대답하고 그날인지 그 뒤 며칠 있다였던지 분명치는 않으나, 편집실 책상 위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몇 회를 계속했던지는 모르겠으나 언제나 편집 마감날이 다 되어서 쓰곤 했다. 이렇게 나는 소설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소설을 썼다. 신당동, 이 집에서도 오래 살지 못하고 떠난 관계로 여기서 쓴 소설로서 기억되는 것은 이상 세 편, 신문 연재의 장편소설을 두 번 써 보았다. <녹색의 문>과 <그와 그들의 연인>이었다. 어느 것이나 실어주는 편에서 재미가 없다고 말해서 끝날 무렵해선 늘 후다닥 마치곤 했다. 그러한 불쾌한 일을 두 번씩이나 당하고 나니 이젠 신문에 장편 연재할 생각이 없다. 즐겁지 않은 일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좀 어떻게 해서 잘 살 도리를 해보라고 하지마는, 좀 어떻게 해서 좀 어떻게 잘 살 도리를 하기보다 이대로 사는 것이 즐겁다면 이대로 살 밖에 없는 것이다. 가난하고 평탄치 못한 길을 걸어오면서…… 나를 구원할 자는 하느님도, 부처님도, 마리아도 아니고 나 자신임을 안 것 뿐이다. - ‘문학적 자서’, 최정희, <젊은 날의 증언>, 육민사, 1962
평론
(……) 그의 첫 작품 <명일의 식대>는 삶의 가장 기초적인 문제인 식생활의 어려움을 문제삼고 있다. 이와 같이 작가는 현실적인 삶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작가적 출발을 시도했다. 1938년에 발표된 <곡상>의 이야기를 보면, 만주에 가서 돈을 벌어온다던 남편이 아편 중독자로 변모되어 귀향한다. 그리고 남편 ‘인표’의 귀향에 큰 기대를 걸었던 아내 ‘남이’나 아들 ‘문수’는 실망에 빠진다. 이러한 빈민층의 절망적 생활상과 가정의 파탄 현상을 이야기의 표면적 짜임새 논리로서 바라보면, 남편의 불성실과 아편 중독에 의하여 파탄이 일어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표와 같은 아편 중독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일제 치하의 제도적 압력이 뒤에 도사리고 있음을 작가는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 이 작품은 가난을 사회적이며 시대적인 문제로 보는 점이나, 무지하고 비정한 어버이에 대한 문제나, 가냘픈 여인이 혼신의 노력으로 지탱하려는 한 가정이 허망하게도 무너지는 사태를 제시한 점에서나 뜻있는 작품임은 물론이고, 식민지 시대의 빈민층 삶의 일단을 훌륭하게 조명해내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또한 가장의 도덕적, 경제적 파탄은 그것이 개인의 문제이기보다는 이 시대의 제도적 압력과 깊게 관련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문제성을 지닌다고 하겠다. 이러한 관심은 이 작가의 다른 여러 작품에로 확대되고 심화되어간다. <흉가>에서도 신문사에 나가는 여류 문필가인 화자는 단칸방의 셋방살이에 지쳐 세검정에 독채를 새로 얻게 된다. 비오는 날 능금나무니 앵두나무니 감나무로 삥 둘러싸인 그 집을 보고 반갑게 생각하지만 “집은 대문에 쇠가 잠겨 있었다”와 같은 서술에서 보이듯이, 그 집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는 뜻과 들어오는 사람을 거부한다는 의미를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 최정희의 소설세계에는 가난과 불행에 시달리는 인간들의 고뇌가 문제로 제기되어 있다.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최정희 특유의 포용주의적인 인간애로 통일화되고 조화된다. 그의 작품 중에서는 <인간사>가 가장 대표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거의 전 작품들은 ‘나’라는 화자로 일관했는데, 그것은 이 작가가 주관주의적 정신의 소유자라는 것을 짐작케 하며, 소설의 구조가 긴장과 숨찬 대결이나 투쟁의 모습을 장면화하기보다는 서술에 의존하여 약간 느슨한 느낌을 주고 있으나,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가치가 떨어진다고는 말할 수 없다. 좋은 작품은 우리에게 사람다운 삶을 실천해나아가는 인간을 제시하는 일이고, 보다 더 깊고 넓은 삶의 통찰을 가능하게 하는 작가의 상상력의 제시이다. 최정희가 만든 인물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있을 법한 사람들이긴 하지만 특유하게 운명론적 결정에 흘러가는 여인들이 많았다. 이것은 아마도 이 작품이 설정한 시대의 각 시기가 지닌 사회적·풍속적·정치적·도덕적 의미가 이 여인들에게 짙게 강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최정희의 문학 속에서 창조된 ‘문오’나 ‘채희’와 ‘채균’은 우리의 여러 역사 시대의 단계를 대표한다. 최정희의 여성들이 운명에 짓눌리는 시대적 한계성을 지니고는 있으나, 끈질긴 사랑과 생산적 정열의 소유자라는 것이 입증될 수 있으며, 이러한 인물들은 우리 민족의 한 전통성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인물들을 통해서 우리는 내일의 삶을 비추어볼 수 있고, 오늘의 삶도 비판해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즉 내일과 현재는 살아 있는 모든 인간에게 필연의 과정이고 기대의 시간이기도 하다. - ‘최정희 작품에 나타난 여성과 인간의식’, 신동욱, <동서한국문학전집13>, 동서문화사, 1987
관련도서
<동서한국문학전집 13>, 최정희 외, 동서문화사, 1987 <젊은 날의 증언>, 최정희, 육민사, 1962 <한국 근대 여성소설의 타자적 여성성 연구: 강경애, 백신애, 최정희 단편소설을 중심으로>, 박금주, 한남대 박사논문, 2002 <최정희 소설 연구>, 황수남, 충남대 박사논문, 2001 <1930년대 여성작가 소설 연구: 박화성, 강경애, 최정희, 백신애, 이선희를 중심으로>, 윤옥희, 성균관대 박사논문,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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