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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진(朴斗鎭)

예술가명
박두진(朴斗鎭)
전공
개요
박두진은 1946년 박목월, 조지훈과 함께 발간한 <청록집>에서 일제 말기 한국인의 겨레 인식과 저항적 자세를 주로 자연을 제재로 하여 시화하고 있다. 이후 시집 <해>와 <오도>를 간행하면서 기독교적인 이상을 시 속에 끌어들임으로써 시적 방향과 특성을 뚜렷이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부터 강렬한 민족의식과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두고, 사회적 부조리와 불합리에 대한 분노와 비판을 보여주는 작품을 발표하였다. 시집 <거미와 성좌>, <인간 밀림> 등은 현실의 격동을 체험하면서 초월적인 신념보다 오히려 삶의 의지와 적극적인 비판의식을 중요시하는 그의 변모를 잘 보여주는 시집이다. 이 시기의 시에서 과감하게 활용되고 있는 의성어·의태어나 직유적인 표현, 파격을 이루는 산문 형태의 시적 진술 등은 격렬한 정서의 충동을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수석열전>, <포옹무한> 등의 시집을 발간한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의 시는 내밀한 자기 인식에 근거하여 무한의 시간과 무한의 공간을 두루 섭렵하는 절대적이고 신앙적인 경지에 도달하고 있다. 그는 시를 윤리와 종교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기법의 세련보다는 주제의식의 심화를 가져온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 참고: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누리미디어, 2002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생애
경기도 안성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측량소, 경성부청, 금융조합 등에서 근무하다가 1939년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에 시 <향현(香峴)>, <묘지송(墓地頌)>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해방 후 김동리, 조연현, 서정주 등과 함께 조선청년문학가협회의 결성에 참여하였으며, 1948년 한국청년문학가협회 시분과 위원장과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중앙위원을 역임했고, 1949년에 결성된 한국문학가협회에 가담해 민족주의계열의 문학건설에 힘썼다. 1955년 연세대학교 전임강사가 된 뒤, 1959년 조교수로 취임했다가 이듬해 사임했다. 이후 대한감리회 신학대학교, 한양대학교 등에 출강했으며, 1970년 이화여자대학교 부교수를 거쳐 같은 해 다시 연세대 교수로 취임, 1981년 정년퇴임했다. 그 뒤 단국대학교 초빙교수로 있다가 1986년 추계예술학교로 옮겼다. 아세아자유문학상, 서울시문화상, 3·1문화상, 예술원상 등을 수상하였다.
약력
1916년 경기도 안성 출생 1939년 정지용에 의해 <문장>지에 <향현> <묘지송> 등 추천 1948년 한국청년문학가협회 시분과 위원장 /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중앙위원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 참여 1955년 연세대학교 전임강사 1959년 연세대학교 조교수 1961년 대한감리회신학대학, 한양대, 동덕여대, 건국대 등 출강 1965년 우석대학교 조교수 1970년 이화여자대학교 부교수 1972년 연세대학교 교수 1981년 단국대학교 초빙교수 1986년 추계예술대학교 전임대우 교수
상훈
1956년 아세아자유문학상 1963년 서울특별시문화상 1970년 3·1문화상예술상 1976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88년 인촌상 1989년 지용문학상 1993년 한글학회외솔상 시집 <청록집>(1946) <해>(1949) <오도>(1954) <박두진시선>(1956) <거미와 성좌>(1961) <인간 밀림>(1963) <하얀 날개>(1967) <청록집 기타>(1968) <고산식물>(1973) <사도행전>(1973) <수석열전>(1973) 수필집 <시인의 고향>(1968) <생각하는 갈대>(1970) <언덕에 이는 바람>(1973) <하늘의 사랑, 땅의 사랑>(1979) 시론집 <시와 사랑>(1960) <한국 현대시론>(1970)
작가의 말
시의 사상, 시의 윤리, 시의 심미적 창조가치는 언제나 그 창조의 주인, 시인에 의해서만 시적 진실을 획득한다. 시인이 처해 있는 그 시대와 사회, 역사와 문화적인 대응태도로서의 이상가치의 추구와 현실적 비판과 저항을 통해, 그 고유한 시적 기능과 상대적인 시적 효능을 발휘한다. 인간과 세계, 민족과 역사의 궁극적 이상의 실현을 위한 자유와 사랑, 평화와 평등의 현실적 갈등과 비극을 극복하는 인류의 비원 역시, 시와 시인이 추구하는 당연한 주제이며 그 소명임을 말할 것도 없다. 시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필자는 장차 써나갈 시세계의 단계적 윤곽을 자연, 인간, 신의 세 단계로 설정한 일이 있었다. 자연은 말 그대로 자연이었고, 인간은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와 민족, 인류와 세계, 시대와 역사적 현실을 포괄하는 카테고리로서였다. 신의 세계는 기독교 사상과 그 신앙, 신학을 바탕으로 한 지성·지고·지애의 세계, 창조주 하나님과 인류의 구세주로서의 그리스도와 그 말씀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러한 순서로 단계화해서 시를 쓰고 또 써진 것은 아니었다. 자연이라는 제1단계의 개념도 소박한 자연만이 아닌, 우주 전체 영원과 그 실체로 다루게 되었다. 인간과 사회와 신의 세계를 주제화하는 데 있어서도 이러한 자연은 그 시적 표상의 체질화된 후천적 경험체계로서 또는 순수 초자연적인 자연으로서 나의 모든 시의 복잡된 형상으로 구체화되어 있다. (……) - ‘문학적 자화상’, 박두진, <문학적 자화상>, 한글, 1994
평론
박두진 시인의 첫 작품은 1939년 <문장>지 6월호에 게재된 <향현>과 <묘지송>이다. 다음 작품은 같은 해 <문장>지 9월호에 발표된 <낙엽송>이고, 다시 1940년 1월호에 <의(蟻)>와 <들국화>가 발표됨으로써 추천이 완료되었다. 그 당시의 선자(選者)는 ‘신자연’을 시로 형상화하여 독자적인 세계를 지니고 있음을 높이 평가했다. 이 무렵 시인은 그의 시에 관한 견해를 보이고 있는데, 개성 있는 창조에 관심을 두고 기교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시에 있어서의 기교는 밖으로 드러나는 수사나 외형적인 것이기보다는 시인의 내면의식을 형상화하는 개성적이고 특수한 능력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개성의 존중은 시 창조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문제로서 제기된다고 하겠다. 이러한 개성의 확인으로부터 한 시인의 출발과 그 방향이 모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시인의 관심은 민족문학의 특수성에로 연결되어, 민족의 고유한 문학을 창조하는 것에 더 역점을 두는 대신 외래적 요소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민족의 전통적인 풍토에 뿌리를 내리는 시세계를 구축한다는 것은 일제 치하의 정치적 상황 하에서 매우 바람직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그의 이러한 견해는 단순히 시 창작에 있어서 표면적인 기교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확고한 가치를 창조한다는 뜻과 연결된다. 1946년에 <청록집>이 출간되고, 이어 1949년에 <해>가 출간되었다. 그의 초기 시와 <해>의 심상은 일제의 억눌림으로부터 치솟아오르는 늠렬(凜烈)한 아름다움을 가장 잘 나타내고 형성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같은 억눌림으로부터 치솟음의 의미는 이 시기의 시인의식을 대표하는 한 특질임은 말할 것도 없으며, 이 시인이 살았던 일제 말기의 사회적 환경의 짜임과 깊은 상관관계에서 그 형성적 여러 요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화자와 한국의 국토인 자연과 태양이 일체화되어 ‘어둠’을 불사르는 세찬 기운이 ‘이글이글 타는 얼굴’에 명징하게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기와 정열은 화자의 개인의 상상적인 언어의 짜임으로서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으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겨룸과 맞섬으로 확인되고 있다. 민족적인 대주체의 온전한 확립을 성취하려는 끈질긴 노력과 그 실패의 아픔은 역사 발전의 문맥 자체를 이룩하는 이중적 의미가 된다. 시인의 사명은 엄정한 눈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이러한 역사발전의 흐름을 증언적으로 또는 예언적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할 때, 시집 <오도> 전체에 번져 있는 기다림의 의식은 민족 전체의 소망을 대변한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그에게 있어서 기다림의 자세가 흩어지거나 변질됨이 없이 일관되고 있는 것은 그의 기독교적인 종교의식에 뒷받침된 일면과 민족의 미래에 거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의 정서표출은 대개 긍지심이 깃들여 있거나 당당하고 의젓하거나 또는 분노의 가락이 격렬한데, 그럴 만한 믿음의 근거가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 작품집에 자주 보이는 바다의 의미도 풍요하고 부드러운 감각을 통하여 와야 할 주체자를 기대하는 자세와 결합되어 있다. <섬에서>와 같은 작품에 보이는 자연의 거센 광경과 화자와의 융합에서도 억센 의기를 실감케하고 있다. 서정시의 일반적인 특성이 영탄과 호소에 있다면 이 시인의 작품세계는 확신에 찬 의기로 앞서가는 기세가 우세한 특질로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은 기세와 의기의 시학은 한용운에 있어서나 이육사에 있어서조차도 이만큼 늠렬함을 보이지는 못하였다. 이 시인의 시의 율조가 자유분방하고 거침이 없는 호쾌감을 주는 이유도 그의 민족의 미래에 대한 확신과 신앙의 굳음에 연유한다고 볼 때, 그의 시형과 사상의 조화임을 이해하게 된다. 이 시인의 작품세계는 늘 현실과 밀착되어 있으며, 조국의 앞날을 전망하면서 현실을 광정(匡正)하는 사명감이 우세하게 나타나 있다. - ‘해와 삶의 원리’, 신동욱, <박두진전집1>, 범조사, 1982(······) 그의 이때까지의 수많은 시편들이 지향하면서 보여주는 사물이나 현상들 속에는 아름다운 것, 추한 것, 눈물겨운 것 혹은 고통스럽게 노여운 것 등등의 무수한 개인적 정서들이 일정한 교합과 마찰을 일으키며 시적 짜임으로 짜여진 채 독자들의 시선 속에 와서 푸드덕거리며 되살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개인의 소박한 생활에의 꿈이나 이웃에 대한 애틋한 연민 혹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물에의 애정을 읊은 그의 여러 시편들은 이 시인으로 하여금 소박하고 그러면서도 꿋꿋한 한국인을 보게 한다. 그러나 그의 소박한 시적 표면 속에 깊숙이 깔린 정서적 심연은 무엇보다도 불의를 참지 못하는 시인적인 치열함과 지사적인 뜨거움으로 활활 불붙고 있음에 누구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박두진이라는 자연인 한 개인으로서만 해당되는 서정적인 느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몸담은 사회가 진행시켜가고 있는 역사적인 삶의 현장 한복판에서 주위를 보고 시인으로서 느끼는 그런 사회적인 감정이고 민족적인 감정이며 인간적인 감정이라고 뭉쳐 일컬을 수 있는, 보편성에의 눈돌림으로 얻어진, 순수한 감정인 것이다. - ‘한국역사의 시적 검증’, 정현기, <박두진전집9>, 범조사, 1984
관련도서
<박두진 전집>, 박두진, 범조사, 1982~1984 <박두진의 생애와 문학>, 임영주, 국학자료원, 2003 <박두진>, 박철희 편, 서강대출판부, 1996 <문학적 자화상>, 박두진, 한글, 1994 <박두진 시연구>, 임종성, 동아대 박사논문, 2003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기독교 정신 연구>, 천기수, 영남대 박사논문, 2003 <한국현대기독교 시 연구: 윤동주, 김현승, 박두진 시의 상징성을 중심으로>, 한영일, 성균관대 박사논문, 2000 <한국 기독교시 연구: 박두진, 박목월, 김현승 시를 중심으로>, 정경은, 서울여대 박사논문, 2000 <박두진 시 연구>, 임영주, 경원대 박사논문, 1998 <한국 기독교시에 있어서 삶과 신앙의 상관성 연구: 윤동주, 김현승, 박두진을 대상으로>, 박춘덕, 부산대 박사논문, 1993
연계정보
-묘지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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