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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에게서 소년에게

작품명
해에게서 소년에게
저자
최남선(崔南善)
구분
신문학의 등장~1910년대
저자
최남선(崔南善)
생애(1890~1957)
호는 육당(六堂)·대몽최(大夢崔)·공육(公六)·일람각주인(一覽閣主人)·한샘. 1890년 3월 서울 출생. 열 살 이전에 이미 한글과 한문을 깨쳐, 1901년 <황성신문>에 <대한흥국책(大韓興國策)>을 발표한 것을 필두로 <제국신문>, <독립신문> 등에 글을 투고했다. 1902년 경성학당에 입학하여 일본어를 익히고, 1904년 황실 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도쿄 부립 제일중학에 입학했으나 2개월 만에 귀국했다. 1906년 다시 도일하여 와세다대학 고등사범부 지리역사과에 입학하여 유학생회보를 편집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으나 1907년 모의국회사건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1908년 귀국하여 신문관(新文館)을 세우고 종합월간지 <소년>을 창간하면서 신문화운동에 앞장섰다. 1909년 안창호와 함께 청년학우회를 설립했으며, 1910년 광문회(光文會)를 창립하여 고문헌 보존과 재간행에 힘썼고, 1914년 종합월간지 <청춘>을 창간하는 등 신문화 초기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의 기초 책임자로 체포되어 복역하다가 이듬해 출옥하였으며, 1922년 잡지 <동명>을 발간하였다. 그러나 1927년 총독부 조선사편수위원회의 촉탁으로 위촉되면서 훼절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1938년에는 만주로 건너가 만몽일보의 고문을 지내기도 하였다. 광복 후 반민특위에 의해 반민족행위자로 기소되어 수감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하였고, 1957년 10월 사망했다.
주요작품 및 작품세계
1908년 2월 일본 유학생 잡지인 <대한학회월보(大韓學會月報)>에 시 <모르네 나는>, <막은 물>, <생각한 대로> 등을 발표하며 문필활동을 시작하였다. <해에게서 소년에게>(1908)로 대표되는 초기의 신시 실험과 후기의 시조 창작, 조선사 연구와 결부된 수필 창작, 평론활동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활동하였다. 그 중에서 그의 초기 신시 실험은 창가와 신체시를 중심으로 전통적 운율에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면서 새로운 시대정신과 계몽의식을 담으려 했다는 점에서 시사적 중요성이 인정되지만, 그 미학적 기반은 취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1920년대 들어 신시를 버린 후, <심춘순례>(1926), <백두산 근참기>(1927) 등의 수필집과 창작시조집 <백팔번뇌>(1926)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평론으로는 <조선 국민문학으로서의 시조>(1926), <시조 태반으로서의 조선민성(朝鮮民性)과 민속>(1926) 등이 있다.1908년 11월에 창간된 <소년>의 권두시. 신시(新詩) 혹은 신체시(新體詩) 등의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전 6연으로 각 연은 모두 7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1연을 제외하고는 모두 의인화된 바다가 화자로 등장하여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될 소년들에게 부정적인 현실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끌고 나가 줄 것을 기대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시의 내용에서 드러나는 가장 큰 특성은 계몽성이라 할 수 있다. 기존 질서를 질타하고 기존 세계에 물들지 않은 소년들에게 연대의식을 나타낸다는 점 등에서 작가의 의지가 잘 드러나나, 그 계몽이 실천 가능성보다는 극단적인 현실 부정으로 흐르고 있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또 하나의 내용적 특성으로 이 시의 ‘바다 지향성’을 들 수 있는데, 시인은 ‘바다’를 새로움을 향한 젊은 전진의 통로, 근대적 문물과 정서를 지향하는 계몽의 표징으로 삼으려 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바다라는 자연물에 대한 전통적 이미지에 획기적 변화를 낳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형태적인 면의 특성으로는 과도기적인 율격 실현을 찾아볼 수 있다. 각 연이 4·4조나 7·5조 등의 정형적인 율격을 버리고 자유율에 상당히 접근해 있다. 그러나 각 연이 모두 7행이며 각 연의 2·4·6행은 3·4·5의 자수율이 지켜지며, 3행과 5행은 대부분 4·3·4·5 혹은 4·3·4·7로 글자수가 고정되어 있다. 또한 각 연의 1행과 7행이 전부 파도소리의 의성어로 되어 있다는 점도 이 시의 형태적 고정성을 심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창가 형식에서 진일보한 준정형적 형태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율격의 실험이라는 문학사적 의의를 인정받고 있는 한편, 과도기적 실험에 그치고 말았다는 한계가 지적되기도 한다. <한국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 개화계몽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시 형식은 개화가사나 개화시조가 유지하고 있던 형식의 고정성을 벗어나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규칙적인 율격과 고정적인 형태의 파괴현상으로 그 특징이 집약된다. 율격의 규칙성과 형태적 고정성을 벗어나는 것은 시적 형식의 자유로움과 그 개방성을 지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에서부터 <꼿두고>와 같은 작품을 보면 파격적인 율조와 산문화된 자유로운 형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나 최남선은 자신이 창안한 이 새로운 시 형식에 대해 확고한 장르 의식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이 새로운 시 형태를 신체시가나 신시라고 지칭하였는데, 이 명칭은 기존의 시가 형식과 다른 ‘새로운 형태의 시가’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을 뿐이다. (······)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경우는 전체 작품이 4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연이 7행으로 구성되는 형태적인 균형을 취하고 있다. 이 같은 연의 구분은 당시에 일반화되어 있던 가사의 분장 형태와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고정된 율격의 규칙성을 벗어남으로써 시적 형식의 자유로움을 어느 정도 획득하고 있다. (······) 최남선이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시 형식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시적 언어의 문제이다. 개화가사나 시조가 여전히 한문투의 관념적인 한자어를 많이 동원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 <해에게서 소년에게>와 같은 새로운 작품에는 일상어의 시적 활용이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다. 의성·의태어의 대담한 구사가 시적 대상에 대한 표현의 구체성을 살리고 있는가 하면, 구어체를 활용함으로써 경험적 구체성을 실감 있게 표출하고 있는 것도 특징적인 면이다. 이 같은 언어적인 변화는 국문체의 시적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형식적인 실험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이들 작품은 시적 대상의 인식과 그 형상화 방법에 있어서 서정성의 결여가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시적 대상을 시인의 주관적인 의지와 일치시키고자 하는 데에서 나타나는 부자연스러움과도 연관된다. 그리고 시적 표현에 있어서 정서적인 측면을 외면하고 이념적인 주제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이 시기의 시가들이 지니고 있던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할 것이다. 말하자면, 새로운 시적 형식의 실험을 시도하면서도 여전히 이 시기의 시대정신을 외면하지 못하고 시를 통한 계몽의식의 구현에 힘썼던 것이다. 결국 최남선이 실험하고 있는 새로운 형식의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것은 시적 미학의 결여와 근대적인 자아의식의 결여이다. 시 이전의 모든 목적의식을 배제한 철저한 시 의식과 시적 미의 창조를 생명으로 하지 않고서는 근대시로서 성립되기 어렵다. 개인적인 정감의 심미적 재구성이라는 근대시의 요건을 놓고 볼 때, 최남선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시 의식의 결여는 근대시의 성립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과도기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 <한국현대문학사 1>, 권영민, 민음사, 2002
관련도서
<한국현대문학사 1>, 권영민, 민음사, 2002 <한국 현대시 작품론: 최남선에서 김수영까지>, 김용직·박철희 공편, 문장, 1996 <한국현대시사 연구>, 김윤식 외, 일지사, 1987 <한국근대시사>, 김용직, 학연사, 1986 <최남선과 이광수의 문학>, 신동욱, 새문사, 1981 <한국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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