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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

작품명
독립문
건축가
사바친, 심의석
장르구분
1930년 이전
내용
갑오경장 이후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키 위해 독립협회에서 세웠다. 청국 사신을 ‘은혜로 영접하던’ 의미의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석조 탑형으로 세운 것이다. 서재필(필립 제이슨)이 독립문 축조를 발의했고 설계는 러시아인 사바친이 했다. 시공은 중국인 기사가 담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한국인 기술자 심의석도 참여했다. 문은 중앙에 단일 아치를 틀었다. 조형적으로 재래식 성벽 축조 방법을 택해 프랑스의 개선문을 모방하였으나 유럽식으로만 보이지 않고 오히려 한국적이기까지 하다. 문의 윗부분에는 한글과 한문으로 각각 ‘독립문 獨立門’이라 새긴 현판이 붙어 있다. 문 앞에는 구 영은문의 주초였던 두 개의 돌기둥이 남아 있다. 극동 아시아 유일의 돌문으로 값지다. 2차(1917년과 1228년)에 걸쳐 보수한 바 있고 1979년 성산대로의 고가도 공사 때 원위치에서 서북쪽 70m 되는 위치로 이전되었다. 사적 제32호
건축가
심의석* 개인정보1854년 서울에서 태어나 정동에서 모든 생애를 보낸 한학세대의 건축가로서 우리 나라 전통건축의 마지막 세대이면서 동시에 신건축의 창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도편수였으며 또한 자생적 건축가이기도 했다. 1895년 판임관 6등의 내부 기수로 출발하여 기사가 되었고, 1896년 독립문의 ‘독립기념물 건조사무’를 관장할 임원으로 선정되었다. 승급을 계속하여 1905년 영선사장으로 활동하였다.* 작품정보배재학당, 시병원, 독립문(1896년), 정동제일교회(1898년), 이화학당 본관(1899년), 상동교회(1901년), 팔각정, 손탁호텔
리뷰
* 작품평가 화강암을 사용하여 축조하는 기법을 성문 육축의 홍예문 쌓듯 한 것이나 홍예에 돌기둥을 세워 장식한 기법이 신라 이래 토함산 석불사 석실 금당에서 볼 수 있는 유형이므로 심의석 기사는 서재필 등 지식인의 조언에 따라 1년 만에 충분히 완성시킬 수 있었다. (신영훈 외, <우리 건축 100년>)
연계정보
* 관련도서 우리 건축 100년, 신영훈ㆍ이상해ㆍ김도경, 현암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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