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담양소쇄원(瀟灑園)

작품명
담양소쇄원(瀟灑園)
소재지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지정종목
사적 제304호
장르구분
누정건축
개요
소쇄원(瀟灑園)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별서(別墅) 정원으로 조선 시대 중종대의 인물인 양산보(梁山甫, 1503~1557)의 생활 공간이면서 휴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된 정원이다. 양산보는 사림(士林)의 소장 학자 조광조(趙光祖)의 문하생으로 그의 스승이 기묘(己卯) 사화(士禍)로 정권에서 축출되자 고향인 이곳 창암촌의 산기슭에 소쇄원을 지었다. 1534년부터 조영되기 시작하였으며, 내외종(內外從) 형제간인 송순(宋純, 1493~1583)과 사돈간인 김인후(金麟厚, 1510~1560) 등의 도움으로 1542년 즈음에 완성되었다. 그의 아들 대에는 자징(子澄)과 자정(子淨)이 광풍각 옆 담 밖에 각각 고암정사(鼓巖精舍)와 부훤당(負暄堂)을 건립하여 후손들의 살림터를 장만하였다. 그러나 1597년 정유재란으로 건물이 소실되자 이를 양산보의 손자 천운(千運, 1568~1637)이 1614년에 복원하였다. 이후 후손들에 의해 400여 년간 잘 보존되고 있으며, 조경, 건축, 시문(時文)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소쇄원에 대한 송시열의 수필본(手筆本)을 1755년에 판각(板刻)한 소쇄원도가 전하고 있으며 이 소쇄원 그림을 새긴 목판에 하서 김인후가 당시 소쇄원을 보고 쓴 48수의 시제(詩題)가 새겨있다.
건축물의 구조 및 특징
소쇄원의 생활공간적 기능은 애양단 구역(前庭)과 광풍각 구역(溪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애양단 구역은 남쪽 입구부터 제월당에 이는 도중의 오곡문 옆 시냇가까지의 진입 공간으로서 길이 약 50m, 폭 약 10m의 넓이를 가진 부분이다. 이 구역은 높이 2m 내외의 기와를 입힌 흙돌담이 동쪽을 경계로 하여 둘러 있으며 시냇가에는 자연석 축대를 쌓아 입구부터 연못, 작은못, 정자[待鳳臺] 등의 조경축조물이 차례로 배치되어 엑센트를 주고 있다. 이 구역에서 특별히 주목되는 시설은 두 개의 4각형의 연못이다. 이 연못과 물확은 오곡문 옆 커다란 담 구멍을 통하여 흘러 들어오는 시냇물을 나무에 홈통을 판 물다리를 따라 받아들이고 있다. 광풍각 구역(溪庭)은 북동쪽 구석의 오곡문 옆 담 밑의 담구멍 물길로부터 시작되는 시내(溪流)를 중심으로 하는 시냇가의 공간인데, 냇가 언덕에 있는 광풍각까지도 포함된다. 이 공간은 골짜기 냇물방향과 직각을 이루도록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축조한 높이 2.2m의 담 밑쪽에 만들어 놓은 높이 1.5m, 너비 각 1.5m와 1.8m의 넓이를 갖는 두 개의 유수구를 통하여 흘러드는 계류가 암반 위에 패인 부분을 느리게 굽이쳐 조담에 잠시 머물다가 폭포를 이루며 계곡으로 떨어진다. 이 조그마한 폭포를 십장폭포라 부른다. 넓고 거대한 암반 위에는 위락공간으로서 상암, 암탑, 광석(床岩, 岩榻, 廣石) 등의 명칭이 붙여졌다. 이 곳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오곡문 옆에 있는 담장 하부의 유수구이다. 이 오곡문 옆 물이 흘러드는 담구멍은 넓이 40×50㎝, 두께 20~40㎝ 크기의 자연석으로 축조한 것이어서 보기에도 퍽 위태로워 곧 붕괴할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런데 위에 큰 짐을 지고 있으면서도 400여 년간이나 수압에 견디며 지탱해 왔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이 돌로 쌓은 담구멍의 유수구는 단순히 물길을 위해서만 축조된 것이 아니고 정원의 수식용으로 계획된 것이다. 광풍각 구역은 애양단 구역과 함께 소쇄원의 가장 중심적인 옥외생활공간이며 가장 낭만적인 위락공간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제월당 구역(안마당)을 사적공간이라 한다면 이 두구역(앞마당과 냇가의 공간)은 공적 공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월당 구역(內庭)은 오곡문에서 제월당에 이르는 소쇄원의 상부에 위치한 공간이다. 어귀쪽의 앞마당과는 작은 외나무다리로 연결되고 하부 냇가(溪庭) 공간에 인접하고 있다. 외부와의 출입구의 역할을 하고 있는 오곡문으로부터 제월당에 이르는 통로의 오른쪽에는 2단의 축단이 있어 매화를 중심으로 한 꽃나무가 심어져 있으며 매대라고 불려진다. 소쇄원도에 의하면 매화, 복숭아, 난초, (梅, 桃, 蘭) 그리고 이름 없는 큰나무(側栢)가 심어진 것으로 기록되었다. 또 제월당 앞 왼쪽 구석에는 파초가 있고 전면 마당가에는 매화로 보이는 나무가 두 그루 심어져있다. 이 밖에 앞마당은 괴석이나 다른 조경재료들이 없는 탁 트이고 평탄한 공간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제월당 구역은 정숙을 요하는 지적 생활공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주목되는 시설은 오곡문 아래쪽 지형을 교묘히 이용하여 시공한 기와를 입힌 흙돌담이다. 규모있게 쌓여진 흙돌담은 소쇄원의 옛스러운 정경을 우거진 대숲과 해묵은 노송과 함께 한층 돋보이게 한다.
연계정보
관련도서 <전국 건축문화자산 전남편>, 건축가협회, 1999 관련사이트
관련사이트
문화재청
관련사이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관련멀티미디어(전체7건)
이미지 7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