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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정(太古亭)
- 작품명
- 태고정(太古亭)
-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 지정종목
- 보물 제554호
- 장르구분
- 누정건축
- 개요
- 달성군 하빈면에 지형이 묘하게 생겼다 해서 이름한 묘골마을이 있다. 이 묘골마을은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朴膨年)선생의 후손들이 수백 년 터를 잡고 살아온 묘골 박씨의 집성촌이다. 이곳에는 본래 박팽년의 절의묘(節義廟)와 99칸 종가에 딸린 별당 건물인 태고정이 위치하고 있었다. 1479년 박팽년의 손자 박인산이 묘골 용산 밑에 지은 후 임진왜란 때 불타고 일부만 남았던 것을 후손이 1614년(광해군 6)에 중건하였다. 현재 대청에는 임란 후 치찰사(治察使)로 온 윤두수(尹斗壽)의 한시(漢詩)를 새긴 현판 등이 있어 임란 이전 또는 성종조인 1470~1594년 간의 건축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1455년(세조 원년)에 선생의 일가족이 참화를 당하고 여자들은 관비로 전락하는 처지를 당하였으나 이곳 묘골이 친정인 둘째 며느리 성주 이씨는 경상감영의 관비로 청원하여 경상감영 소속이 되었다. 때마침 성주 이씨는 유복자를 낳았으나, 죄가 아직 풀리지 않았으므로 아들을 낳게 되면 죽이고, 딸은 관비로 삼을 수 밖에 없었는데 같은 무렵 이씨의 여종이 딸을 낳게 되자 아이를 서로 바꾸어 유복자는 박비라는 이름으로 종의 손에서 자라게 되었다. 그 뒤 1472년(성종 3) 이씨 부인의 나이 17세 때 부인의 형부이며 당시 경상감사였던 이극균의 권유에 따라 이러한 사실을 자수하자 성종은 크게 기뻐하며 유복자의 이름을 일산(一珊)이라 고쳐주었다 한다.
- 건축물의 구조 및 특징
-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一'자형 팔작집이다. 평면은 왼쪽 끝에 1칸 크기의 온돌방을 두고 그 뒤쪽에 부엌을 두었으며, 부엌 오른쪽으로 2칸 온돌방을 들였다. 온돌방 오른편에는 2×2칸 규모의 넓은 대청을 두었다. 태고정은 조선전기의 건실한 초익공계 구조의 특색을 잘 보여주며, 막돌 기단 위에 다듬지 않은 큰 초석을 놓고 배흘림 두리기둥을 세워 창방(昌枋)으로 기둥머리를 결구하였다. 기둥머리에는 굽이 비스듬히 끊기고 굽받침이 없는 주두(柱頭)를 얹고, 기둥머리에서 끝이 날카로운 쇠서(牛舌)를 하나 대어 대들보 머리를 받는 전형적인 초익공(初翼工) 양식이다. 가구는 5량으로 대들보를 앞뒤의 평주(平柱) 위에 걸고, 기둥머리에서 운형초각(雲形草刻)이 된 보아지를 내어 들보를 받게 했다. 대들보 위에 첨차로 짠 동자주(童子柱)를 세워 종보(宗樑)를 지지하며, 종보 위에 판대공과 첨차를 놓아 종도리를 받았다. 측면 가운데 기둥머리에서 아름다운 우미량(牛尾樑)을 내어 대들보 위에 걸었다. 대청은 우물마루이며,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되는 연등천장이나 합각머리 부분에만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대청 전면은 개방되어 있으며, 대청 전면 기둥 사이에는 2층으로 된 평난간을 설치하였다. 건물의 규모는 작으나 가구(架溝)나 세부 가공이 정교할 뿐 아니라 초익공계의 정교한 구성을 보이고 있어 건축적 가치가 크다.
- 도면 및 이미지
- [자료제공 : 문화재청]
- 연계정보
- 관련도서 <전국 건축문화자산 경북편>, 건축가협회, 1999 관련사이트
- 관련사이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관련사이트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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