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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죽서루
- 작품명
- 삼척죽서루
- 소재지
-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
- 지정종목
- 보물 213호
- 장르구분
- 누정건축
- 개요
- 동해시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내려오다가 삼척항 입구를 지나 400m 가면 삼척교가 나온다. 삼척교를 건너기 전에 우회전하여 2km정도 가면 왼쪽에 죽서루가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의 아름다운 경관은 관동팔경의 한 곳이며, 삼척의 명기 죽죽선(竹竹仙)과 민족의 대서사시 <제왕운기>를 쓴 이승휴와의 사랑 이야기가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창건자와 연대는 미상이나 <동인거사집(動安居士集)>에 의하면, 1266년(고려 원종 7)에 이승휴(李承休)가 안집사(安集使) 진자후(陣子侯)와 같이 서루(西樓)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것을 근거로 1266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403년(태종 3)에 부사 김효손(金孝孫)이 옛터에 중건한 이후, 조선 전대에 걸쳐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 최근에는 1960년과 1962년에 기와를 갈고 보수를 하였으며, 1982년에 죽서루 경내를 3,813평으로 확장하고 담장과 평상문 등을 새로 축조하고 죽서루를 개수 및 번와하였다. 죽서루란 이름은 루(樓) 동쪽에 죽림이 있었고 죽림 속에 죽장사(竹藏寺)가 있었다 하며, 또한 그 동편에 죽죽선녀(竹竹仙女)가 있었다 하여 지어졌다고 전해 온다. 전면의 ‘죽서루(竹西樓)’와 ‘관동제일루(關東第一縷)’의 제액(題額)은 1711년(숙종 41) 부사 이성조(李聖肇)의 글씨이고, 루안에 있는 ‘제일계정(第一溪亭)’이란 글씨는 1662년(현종 3) 부사 허목(許穆)의 것이다.
- 건축물의 구조 및 특징
- 죽서루에서는 멀리 태백 준령이 보이고 가까이는 근산(近山), 갈야산(葛夜山), 봉황산(鳳凰山)이 솟아 있다. 오십 굽이를 휘몰아쳐 흐른다는 오십천 절벽 위에 장방형으로 자리잡은 죽서루는 관동팔경 중 바다를 끼고 있지 않은 유일한 예이다. 죽서루는 절벽 위에 자연암반을 기초로 하여 건축되어 있다. 루 아래에는 17개의 기둥이 있는데, 그 중 아홉 개의 기둥은 이 자연암반을 기초로 삼았고 나머지 여덟 개의 기둥은 석초 위에 세웠는데 17개의 기둥 길이가 각각 다르다. 상층은 20개의 기둥으로 7칸을 형성하고 지붕은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현재는 정면 7칸, 측면 2칸에 겹처마 팔작지붕이지만 원래는 5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건물의 가운데 5칸 내부는 기둥 없는 통칸이고, 후에 증축된 것으로 보이는 양측 칸의 기둥배열은 원래의 양식에 구해받지 않고 서로 다르게 배치되어 있다. 가운데 5칸은 긴보 5량 형식의 주심포계 구조이며 나머지 증축부는 이익공계로 공포의 형식도 다르게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천장에는 증축 전 건물의 측면 외부에 나와 있던 도리의 뻘목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이 누각이 5칸 맞배지붕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가운데 5칸의 공포는 주심포, 다포 양식이 혼재되어 있는 형태로서, 주두 위에 두공을 사용하여 대들보를 외1출목 양식을 취하고 있다. 가장 아래에 있는 첨차는 주심포계통에서 볼 수 있는 수법이나 그 원호(圓弧)형 첨차의 형태는 다포집계통의 것을 사용하였다. 실내 대들보 위의 대공은 오래된 공포형식을 취하고 있다. 마루는 우물마루이며 천장은 연등천장인데, 좌측 툇간 일부는 우물천장으로 하였다. 죽서루는 수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치면서도 본래의 누정건축으로서의 기능을 잃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옛수법 위에 새로운 수법을 자연스럽고 치밀하게 계획하여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더하고 있다.
- 도면 및 이미지
- [자료제공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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