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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건(許楗)

예술가명
허건(許楗)
구분
동양화가
생애
전라남도 진도 출생. 1927년 목포상업전수학원을 졸업한 후 부친으로부터 익힌 그림이 1930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첫 출품하여 입선하고, 1944년 동 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하며 미술계로 들어섰다. 1951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추천작가가 되고 1960년 동 미술전람회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으며, 1976년 남농상(南農賞)을 제정하고, 동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수상하였다. 또 1982년에는 대한민국 은관(銀冠)문화훈장을 수상하고, 1983년 대한민국예술원 원로회원에 피선되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저명한 화가 소치(小癡) 허유(許維)를 할아버지로, 미산(米山) 허형(許瀅)을 아버지로 하는 3대째의 화맥을 이어온, 조선 후기에서 근대와 현대에 이르는 남화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 세계의 의미도 이 같은 회화사적 배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평생을 목포에서 작품활동과 제자 양성에 진력하였으며, 1981년에는 평생 수집한 수석, 자기, 목물과 운림산방 3대 작품을 목포시에 기증, 1987년에는 진도운림산방을 사재로 복원하여 진도군에 기부 채납하여 향토문화발전에 기여하였다. 말년에는 목포에 남농기념관을 건립하였다.
약력
1908년 전남 진도군 신의면 사천리에서 미산 허형의 5남 중 4남으로 출생 1930년 제9회 선전(鮮展)에 입선 후 22회까지 13회 입선 1942년 일본 대동남종원전 입선 1943년 일본 문부성전 입선 1946년 남화연구원 개원 1955년 국전 초대작가 1957년 백양회 창립회원 1958~1965년 목포문화협회(예총 목포지부) 초대 지부장 1960년 국전심사위원(제9회), 목포문화상 수상 1975년 목포난석회 초대 회장 1976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수상 / 서울 통인가개화랑 개관 초대전(첫 서울 개인전) 1977년 서울 신세계백화점 미술관 초대전 1979년 성옥문화상 수상 1980년 동아일보 세종문화회관 회고전 1981년 예총 목포지부에 남농미술상 제정, 목포시에 수석 2천여 점, 3대의 작품(소치, 미산, 남농), 목물(木物) 등 기증 1982년 대한민국문화훈장 서훈 / 운림산방 복원(지방문화재 51호) 1983년 대한민국예술원 원로회원 1984년 영국 캠브리지대학 저명인사 전기편에 수록됨 1985년 인도 정부 국제저명인사록에 기재됨 / 남농기념관 준공 개관 1987년 월남 이상재장(章) 수상 / 운림산방을 진도군에 기부 채납함
예술활동
허건(許楗, 1907~1987)은 동양화의 시대변화에 개의치 않고 옛 화법에 충실하면서 정신적 화격(畵格)을 중시하여 향토적 정경을 사실적인 현실감으로 그리는 독자적인 화취(畵趣)의 수묵담채화 활동을 펼쳤다. 섬세한 세필과 함께 넓게 처리한 공간구성은 실경의 정확한 관찰을 통한 주제의 주관적 표현으로 전통 산수의 맥을 계승하면서 감성적이고 엄격한 중량감을 느끼게 한다. 다양하고 호방한 먹의 효과적인 사용과 화사하고 맑은 채색이 적절하게 구사된 남종화의 안온하고 평온한 조형의 세계를 창조했다. 남농(南農) 허건은 전통적인 남화산수의 계보를 이은 작가이며 국전과 백양회(白陽會)를 통하여 작품 활동을 하였다. 갈필의 수묵담채로 서정적인 산수를 많이 그린 허건은 일찍부터 시대적인 화풍을 따르며 그 속에서 자신의 작품 방향을 정해 나갔다. 허건은 경쾌하고 빠른 수묵 필법과 비교적 풍부한 담채로 전통적 산수와 사실적 실경을 조화시켰다. 그의 화면들은 누구에게나 체험적인 친근감과 정감을 자아내게 하는 모습을 담고 있으며 대부분의 그의 작품은 향토적 정취와 자연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킨다. 허건은 한국의 농촌 풍경으로부터 해촌(海村), 산수(山守), 수향(水鄕) 등을 즐겨 그렸고, 노송과 흑죽, 화조에 이르기까지 실경산수를 독특한 개성으로 자연의 심상을 깊이있게 표현하였다.
대표작품
<도봉산 춘하추동>(1960) <하경산수>(1963) <삼송도>(1974)
전시 리뷰
근대 한국화의 시대적인 흐름에서 ‘남도화맥’으로 불리게 된 특질적 화파 형성이 19세기에 전국적 명성으로 크게 활약한 소치 허유(小癡 許維)의 존재로 소급되는 것임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 소치의 직계 3대 화가로서 남농이 1930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 현실적인 시각과 현장 체험의 시골풍경 및 농촌생활의 정경을 소재 삼은 시대적 작풍의 수묵담채화로 거듭 입선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성립시킨 것은 전적으로 독학의 결실이었다. (……) 1950년대 이후의 남농의 작풍은 그 전까지의 다분히 감각적인 흥취의 경쾌한 용필 특징 등이 무게와 깊이를 수반한 내면적 筆意에 비중이 두어지면서 현실적인 心意의 自然風情을 변화 있게 끊임없이 주제 삼은 세칭 ‘南農山水’를 확립하였다. 그것은 전통적인 보편적 山水畵 형식을 그의 수법과 畵趣로 자유롭게 수렴하면서 독자풍을 성립시킨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南農은 친조부인 小癡가 이룩하였던 심오한 경지의 南農山水畵 세계의 정신적 본질을 형식주의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창초적 畵意와 개성적 표현형태로 새롭게 실현시킨 셈이었다. 南農의 그 작품형태는 거의가 향토적 情趣 표현으로 지향된 것이었고, 그로써 그 화면들은 누구에게나 체험적인 친근감과 정감을 자아내게 한다. 다만, 1970년대 중엽 이후에 가면서는 南農의 예술적 氣力도 쇠잔해지면서 그를 극복하기 위한 필치의 요약과 단순화가 두드러지게 되지만, 心中에 농축된 향토애와 자연애의 표현적 정념은 80세로 타계할 때까지 그의 화면에 변함없이 배어 흘렀다. 세종화랑이 기획한 <南農遺作展>에는 화랑 측이 잘 골라 모은 전형적인 ‘南農山水’의 佳作, 大作을 비롯하여 병풍으로 그려진 四季山水, 그 밖에 南農이 즐겨 손댔던 靑松團 등이 나온다. 그것들은 1930년대로부터 40년대, 50년대, 60년대, 70년대, 그리고 80년대의 만년기에 이르는 제작시기가 선택적으로 고려돼 있어서 南農 예술의 시기적인 내면성과 변화성을 확연히 살펴보게 하고 있다. 매우 신경을 써서 꾸민 南農 재인식 계기의 遺作展이다. - ‘허건: 남농산수의 독자성과 향토적 정취’, 이구열(미술평론가), 1990년 6월, 세종화랑
관련도서
<韓國近代繪畵選集: 韓國畵>, 안중식, 금성출판사, 1990 <南農許楗展>, 世宗畵廊, 1990 <南農 許楗 畵集> 허건, 東亞日報社, 1980 <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100인선집 허건>, 문선호 편, 금성출판사, 1979
관련사이트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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