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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성(張遇聖)

예술가명
장우성(張遇聖)
구분
동양화가
생애
1912년 경기 여주에서 출생. 19세 때 서울로 올라와 낙청헌에 입소하여 김은호의 문하생이 되는 한편 육교한어학원에서 고전을 연구하였다. 11회 선전에 첫 입선한 이후 1941년에서 1944년까지 연 특선 4회로 추천작가가 되었다. 1946년 서울대학교 동양화과 교수로 영입되어 1961년까지 후학양성에 매진하였다. 국전은 창설시부터 초대작가 겸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이후 국전이 폐지될 때까지 초대작가, 운영위원, 심사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미국 워싱턴에 체류하면서 동양예술학교를 개설하여 실기와 동양미술 이론을 지도하기도 하였다. 1953년 현충사에 봉안된 이충무공 영정을 제작한 것을 비롯, 권율 장군 영정, 정약용 선생 영정, 강감찬 장군 영정, 김유신 장군 영정, 윤봉길 의사, 정몽주 선생 등 역대 주요 인물의 영정을 제작하였다.
약력
1932년~1944년 조선 미전 입선 10회, 특선 4회 1942년~1943년 조선미술전람회 최고상 1946년~1961년 서울대 미대 교수 역임 1949년~1981년 국전 추천작가, 초대작가, 심사위원 역임 1950년 개인전, 동화화랑 1955년 현충사 봉안 이충무공 영정 제작 1956년 서울시 문화위원 역임 1959년 서울시문화상 수상 1963년 개인전, 미국 국무성 화랑 1964년~1966년 미국 워싱턴에 Oriental Art Institute(동방예술학교) 설립 1966년 개인전, 피셔화랑(미국 워싱턴) 1968년 개인전, 현대갤러리 1970년~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71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71년~1974년 홍익대 미대 교수 역임 1974년~현재 대한민국예술원 미술분과 회장 1976년 문화훈장은관장 1982년 초대 개인전, 퀼른시립박물관(독일) 1984년 5·16민족상 1988년 개인전, 동산방화랑 1989년~현재 재단법인 월전 미술문화재단 이사장 1991년 월전미술관 설립 개관 및 동방예술연구회 부설 1994년 개인전, 호암갤러리 1995년 의제미술상(광주시립미술관) 1999년 월전미술상 제정 2001년 문화훈장금관장(문화관광부)
예술활동
월전 장우성은 이당(以堂) 김은호 아래서 수업하고,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서 데뷔, 수차례에 걸쳐 수상하였다. 이 시기에는 채색 기법으로 주로 다루었으나 해방 이후에는 문인화 방면에서 새로운 조형감각을 추구하여 후학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의 예술의 기본은 고고하고 격조 높은 문인정신과 회화적인 감각과 기술을 이상적으로 조화시킨 정신과 형식의 일치에 있다. 간략한 대상의 설정과 여백의 공간 구성을 통한 그의 화면에는 정(靜)과 동(動)의 세계가 함축된 놀라운 직관의 세계가 자리한다. 또한 문인화의 정신세계를 다루되, 현실과 사회상황으로부터 다양한 소재를 채택하여 자칫 빠지기 쉬운 관념의 함몰로부터 의연하였다. 결국 그는 한국적 전통의 현대적 변용이라는 우리 한국화의 제 1 과제를 자신의 화폭 안에서 개척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선전도록’을 통한 입·특선작과 현재 남아 있는 해방 전 장우성의 작품들을 일별해 볼 때 먼저 지적될 수 있는 것이 인물 쪽에 경사된 소재취향이랄 수 있다. 이 같은 소재취향은 1945년 이후 그의 화풍에 커다란 변모가 일어난 시기까지도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이후 장우성의 화풍은 세필과 진채에서 벗어나 간결한 필선과 담백한 담채의 화풍으로 변모되었다. 운필의 격조와 여운을 더욱 높이 사는 문인화적인 발상의 화풍이었다. 1960년대 이후의 조형적 관심과 화풍은 깊어가는 정신성과 이에 상응되는 간결, 요약된 화면의 경영이었다. 1980년대 이후에 들어와 또 하나의 전기를 맞이하는데, 문인화적인 소재에 머물고 있던 그의 관심은 보다 넓은 자연과 현실로 기울어지면서 스케일 있는 화면을 펼쳐주고 있다.
대표작품
<귀목>(1935) <승무도>(1937) <절규>(1980) <비>(1982)
전시 리뷰
우리 전통미술의 계승과 발전에 노력해 온 호암미술관은 이번에 월전 장우성 화백의 화업을 결산하는 <월전회고 80년전>을 마련하였습니다. 월전은 1930년 이당(以堂) 김은호의 문하로 한국화에 입문한 후 오늘까지 80여 평생 동안 한 순간도 붓을 놓지 않았던 근대 한국화의 산 증인입니다. 1932년 선전(鮮展)에서 입선하여 화가로 데뷔한 그는 연속 4회 특선으로 추천작가가 되었으며 이후 국전 심사위원, 서울대 미대 교수직을 거쳐 워싱턴에 동양예술학원을 개설해 후학을 지도하는 등 예술가로서의 작업과 미술교육자로서의 길을 함께 걸어온 우리 화단의 원로입니다. 그의 예술은 간결한 필의와 담백한 색채감각을 추구함으로써 전통적인 문인화의 격조를 현대적으로 변용시켜 새로운 한국화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근대미술 초기 채색 위주의 일본식 동양화를 민족적인 한국적 동양화로 발전시킨 구체적인 미술사적 방법론의 결과였습니다. 그의 예술의 기본은 고고하고 격조 높은 문인정신, 선비정신과 회화적인 감각과 기술을 이상적으로 융합시킨 정신과 형식의 일치에 있습니다. 이를 위한 시(詩), 서(書), 화(畵) 삼절(三絶)의 일치는 그의 예술에 있어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월전은 또한 이에 그치지 않고 현실적 소재를 선택하여 정신적 세계와 융화하여 작품의 리얼리티를 함축적으로 배가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간략한 대상의 설정과 여백의 공간 구성을 통한 그의 화면에는 내밀한 정감과 웅장한 변화의 정(靜)과 동(動)의 세계가 함축된 놀라운 직관의 세계가 자리하여 깊고도 청아한 기운을 풍기고 있습니다. 현대미술이 다양한 표출양식으로 나타나는 이 시기에 전통문인화의 맥을 계승하여 현대적으로 그 격조를 고양시킨 장우성 화백의 이번 회고전은 우리 전통 회화정신의 기조뿐만 아니라 한국화의 어제와 오늘을 살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 <월전 회고 80년>, 1994년 10월, 호암미술관, ‘월전회고전에 부쳐’
평론
(……) 월전선생은 그의 작품을 통해서도 후소 정신과 무위사상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선생의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은연중 선비정신이 그윽이 배어 나옴을 알게 된다. 거기엔 한 점의 허세나 억지가 없는 잔잔한 운율의 번짐이 있을 따름이다. 안으로 농축된 깊은 사유가 조심스럽게 살포시 그것도 매우 간결하게 표출되고 있다. 선생의 작품은 화제와 관계없이 문인화적인 세계를 펼치고 있다. 선생이 즐겨 그리는 학이나 백로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인물이나 정물 또는 산수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이나 그러하다. 거기엔 풍진 세상 저쪽에 있는 초연한 세계가 있다. 예로부터 학과 백로는 고고한 선비들의 기품과 곧잘 결부시켜서 해석되어 왔다. 선생이 학을 그린 소재성에서 오는 관념상의 의미보다는 선생 특유의 조형방식, 즉 간결하고 응축된 선으로 대상의 본질적 형태를 창출해 내고 그 주변에 긴밀한 조화를 이루는 여백을 설정함으로써 최대한의 여운을 유추해 내는 화면처리에서 얻어지는 상념의 세계인 것이다. 이 고독한 인간상을 은유적으로 시사하는 학 그림뿐만 아니라 월전 회화의 모든 영역에는 깊은 명상에서 얻어지는 선의 정적이 확산되고 있음을 느낀다. 지금 생각하면 선생은 예술가로서의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가 아닌가 한다. 아무런 현대 교육을 받은 바 없는 분이면서도 동양화가 빠지기 쉬운 고루함이나 진부함을 일찌감치 극복하고 전진적이고 현대적인 새로운 동양화를 개척해 낼 수 있다는 것은 천부적인 능력 아니고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동양화의 현대화라는 과제를 놓고 더러는 서구의 조형방식이나 개념을 직접 모방하거나 변조하는 형식으로 해결하려는 시행착오를 범한 데 반해 선생은 전통의 진수를 추출하여 더 본질화함으로써 현대 미학이 지향하는 이른바 순수화와 직설화에 도달한 것이다. 선생은 해방이후 우리 한국화단에 참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선구자이기도 하다.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도 크게 성공하여 지금 그 이 기라성 같은 많은 제자들이 옛날의 가르침에 힘입어 한국화단의 중진으로 활동하고 있고 각기 독창적인 세계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이와 같은 교육자적 천성 때문에 선생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사재를 털어 법인체 미술관을 만들어 후학들의 연구의 장으로 내어놓았다. 또한 미술상을 제정하여 유망한 작가에게 창작의욕을 북돋우는 일과 정규강좌를 개설하여 중견작가들에게 올바른 동양정신이 무엇인가를 일깨우는 일 등을 통해 잊혀져 가는 우리의 소중한 정신유산을 계승, 발전시키는 일에 남다른 집념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도 우리는 우리 후학들보다 더 정력적으로 제작과 교육에 전념하는 노화백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 ‘월전회화의 정신세계’, 이열모(성균관대학교 교수)
관련도서
<20인의 한국현대미술가>, 오광수, 시공사, 1997 <月田 張遇聖: 畵集>, 장우성, 知識産業社, 1981 <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100인선집 장우성>, 문선호 편, 금성출판사, 1976
관련사이트
국립현대미술관
관련사이트
월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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