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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상(李鍾祥)

예술가명
이종상(李鍾祥)
구분
동양화가
생애
1938년에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난 일랑(一浪) 이종상(李鍾祥)은 서울 미대 재학 중이던 1961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에서의 특선을 시작으로 화단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1964년부터 국전의 추천작가가 되었으며 각종 국내외 주요전시에 수차례 초대 출품하였다. 국전 심사위원과 중앙비엔날레 운영위원,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오랫동안 서울대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현대 한국회화의 자주적 자생력을 찾기 위해 한민족의 근원형상을 연구하였고 이를 위해서 그는 한국성에 대한 재자각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며 이러한 재자각이야말로 한국회화가 수용문화의 저자세적 식민성을 탈피하고 비로소 세계 속의 자생적 현대미술로 당당한 위치에 설 수 있는 단초가 된다고 생각했다. 역사적인 인물초상을 재현해내는 작업도 이런 작가정신의 일환이었다. 2001년까지 17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400여 회에 달하는 국내외 단체전에 출품하였다.
약력
1961년 제1회 신인예술상 최고상 / 제10회 국전 특선 1962년 제11회 국전 내각수반상 / 제1회 신인예술상전 최고특상(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상) 1962년~1998년 국전 추천작가, 초대작가, 심사위원 역임 1963년 제12회 국전 문교부장관상 / 서울대 미술대학 졸업 1968년~2003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 서울대 박물관 관장 역임 1975년 제1회 개인전, 미국 텍사스 U.T.D.대학교 1977년 제2회 개인전 ‘이종상진경전’ 1980년 제3회 개인전, 중앙화랑(부산) 1983년~1985년 제2,4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1989년 제4회 개인전 이종상 회화전-한국화의 새도전 새벽화 1990년 제5회 개인전 FIAC90 그랑팔레(프랑스 파리) 1997년 제13회 개인전 루브르 카루젤 설치벽화 개인전, 루브르박물관 1998년 제14회 초대 개인전 BASEL ART FAIR Base Messe(스위스 바젤) 2003년 개인전 이종상 정년퇴임 기념작품전, 서울대 박물관 2003년 제1회 안견 미술문화대상 / 은관문화훈장 2004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2004년~현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
예술활동
이종상은 다양한 경향의 실험적인 작품을 끓임없이 제작하였으며, 철학박사 학위를 받을 만큼 이론을 겸비한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60년대 전반의 작품은 노동 현장을 소재로 한 구상 경향을 보이고 있으나, 1960년대 후반부터는 추상으로의 변모를 보인다. 특히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후반까지는 벽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전통적인 벽화를 최신 기법으로 발전시켜 작품화하기도 하였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眞景山水) 정신을 받아들여 우리나라의 여러 풍경을 호방한 스케일과 즉흥적인 필세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의 다양한 작품세계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선열기록화이다. 그 중의 하나가 <장보고 영정>인데, 표준영정으로 지정되기도 할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은 작품이다. 장보고의 경우, 참고로 할 수 있는 이전의 초상화가 전혀 남아있지 않은 인물이기 때문에 작가의 인물에 대한 연구와 상상력을 최대한 필요로 하는 인물이다. 이종상의 선열기록화의 특징은 인물의 특성을 잘 표현한다는 데 그치지 않고, 벽화 연구를 통해 쌓아올린 내구성 있는 재료를 사용했다는 데에도 있다.
대표작품
<장비>(1963) <취상>(1976) <장보고 영정>(1979)
전시 리뷰
(……) 그가 자생성이라는 한국미술에 대한 미학적 제안을 용어화한 것은 1980년대의 일이다. 당시 모더니즘의 쇠퇴와 더불어 반동적으로 등장한 배타적인 미술운동이 제각기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 무렵, 이종상은 단순히 탈서구, 탈모던, 탈추상 등의 유행적 슬로건이 우리 미술의 구체적 대안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진정한 우리 미학을 찾기 위한 반성은 한국미술 속에 이미 뿌리 깊게 내재해있는 분명한 생명체들을 찾아내어 오늘의 조형의식 속에서 재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전통 중심주의 사고가 아니라 전통에 대한 재인식이며, 그것이 우리 속에 역사적으로 이미 육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움으로써 우리 미술의 활로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생각은 보다 체계적이고 학문적인 연구와 행동을 동시에 수반하는 이른바 운동적 성격이 가미되어 있었다. 이종상의 자생미학에 대한 해석은 그동안 전통주의나 소재주의쯤으로 오해가 된 부분도 상당히 있는 것 같다. 그의 작업이 일견 전통적이고 소재주의적 냄새가 나는 것은 자생미학이나 자생성을 설명해 가는 실험과정이며 방법론이다. 이른바 육질화된 언어를 구축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종상은 전통산수에서 수묵추상, 진경산수, 인물화, 채색화, 벽화, 동유화, 아크릴작업 등 동서양 재료를 거의 모두 섭렵하였다. (……) 그의 작업태도와 미학은 20세기 미술이 갖는 자율형식으로서의 생산자의 것이기보다는 수용자 중심의 미학적 성격이 강하다. 이종상은 <독도>시리즈를 하던 1980년대에 상업적으로 꽤 인기가 있었다. 그 그림이 그만큼 관객의 이해를 위한 소재나 형식에서 매력적 코드가 설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는 그 그림을 엎어버리고 <원형상>시리즈를 시작하였다. 세련미로 따진다면 <원형상>시리즈는 투박하고 촌스러우며 소재에 대한 명시성이 훨씬 직접적이었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매우 아쉬워하였다. 그런데 이 작업은 그가 내세운 자생미학에 대한 해석에 중요한 관건이 될 듯하다. (……) - <가나아트>, 이용우, 1999년 여름호, ‘한국미술의 자생예술론 <일랑 이종상 한그림 40년전>’
평론
(……) 진정한 한국의 현대미술을 개척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깨닫고 실천하고자 했던 화가 또한 흔치 않다. 일랑 이종상은 바로 그러한 역사적 소명을 일찍부터 깨달았던 미술가다. 그의 개인사는 줄곧 한국의 맥과 얼을 계승·섭렵하고 거기에 현대적 새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으로 일관해 왔다. 그리하여 그의 미술가적 삶과 작업들은 미술사적이다. 그가 걸어온 미술행로에서 탐구하고 실천했던 많은 작업들이 한국 현대미술의 발전과 변화에 전기를 제공하는 선구적인 작업들로 평가된다. 또한 전통 기법들을 연구하여 현대적으로 승화시킨 벽화기법, 장지기법, 닥지기법, 초상화기법, 동유화기법 등 자생적 기법의 현대적 개발 역시 개인적인 성과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 미술의 자생성에 대한 연구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양식의 창조 등 한국 현대미술이 나아가야 할 거시적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들은 미술사적이다. 그것들을 체계화하고 이론화하여 후학들에게 교육함으로써 한국 현대미술의 주체적 중심을 잡는 정신의 도구를 마련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의 미술은 역사와 민족, 그리고 현재의 삶에 깊이 뿌리박고 인간이란 덕목을 축으로 진행되어 왔다.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서 그는 우리 민족의 ‘얼’을 자양분으로 삼고, 자생적 우리 미술의 원류들을 찾아내어 도구로 삼았다. 그것을 바탕으로 그는 한국 현대미술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구도적 탐구를 이행해왔다. (……) 서울미대 입학 시 그의 전공은 서양화였다. 서양화를 배우던 그는 자신이 서구미술을 모방하고 있다는 사실에 고민했고, 자신을 포함한 많은 화가들이 지나간 서구미술양식을 따라 작업하거나, 최신의 뉴욕미술을 추종하는 데 급급한 현실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다. 그는 과감하게 ‘유화도구를 모두 불지르고 내 것을 알아야 되겠다’는 신념으로 동양화를 시작했다. 동양화로 전향했을 때 그는 수묵과 모필의 표현적인 사용법에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과 그것이 서양화의 데생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세계란 사실을 알았다. 대가들의 날렵하고 생기 넘치며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필선들이 단순히 손끝의 재주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그는 부단히 연습하였고 스스로 해볼 수 있는 붓과 먹의 다양한 실험들을 통해 스스로 극복하고자 했다. 재료와 표현에 익숙해지자마자 그는 뛰어난 묘사력을 발휘하여 하나의 종합을 시도했다. 즉 전통적인 양식에 서구적 데생력을 결합했던 것이다. 그 종합은 그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가를 이미 알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즉 한국의 미술이면서 동시에 현대의 새로운 미술을 그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현대라는 시대가 도래함으로써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시를 읊고 있거나 폭포를 바라보고 있는 문인들을 묘사하는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을 동양화가들이 깨닫기 시작한 것은 1960대의 일이다. 전통 산수화의 관념적 세계로부터 벗어나 자신들이 직접 체험한 세계를 부수고 현실의 세계로 나아갔던 최초의 작품들도 그렸다. 대학시절 고학으로 보내야 했던 불우한 환경으로 인해 체험하고 발견할 수 있었던 진실을 대담하게 화면으로 옮김으로써 동양미술의 완고한 관념 하나를 깬 것이다. (……) - ‘한국 현대 미술과 일랑’, 서정걸(평론가, 3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
관련도서
<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100인선집 이종상>, 문선호 편, 금성출판사, 1982 <畵室의 窓을 열고: 李鍾祥 畵文集>, 이종상, 庚美文化社,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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